약자의 희망으로 우뚝 서는 노동운동

노동사회

약자의 희망으로 우뚝 서는 노동운동

편집국 0 2,786 2013.05.24 12:47

지난해 한국의 노조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 속에서 길을 모색해 왔다. 노조운동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지적을 받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자료들은 기존의 조직노동운동이 최소한 일정한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10% 내외에서 정체하거나,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조조직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양분된 전국조직의 균열, 끝없이 분열을 거듭하는 노조운동 내부의 정파적 분열 등은 노동운동이 처한 고질적 문제의 일단에 불과하다. 

민주노조운동 20년, 혁신의 실마리는 어디인가

jspark_01.jpg그러나 노동운동의 부진을 이러한 고질적 문제들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현실의 변화는 훨씬 심각하다. 정규직에 버금가는 규모로 확장된 비정규직 문제, 세계화의 급진전과 더불어 진행된 고용의 위기, 임금구조와 근로조건의 양극화 등의 문제들에 대해 노조운동이 지금보다 더 무력해 본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은 오늘의 노동운동을 위기로 규정하게 만드는 충분한 근거가 되고 있다. 

물론 노조운동 내부에서도 일정한 희망의 조짐들을 읽을 수는 있다. 금속이나 금융부문 등을 중심으로 진행된 산별노조 운동의 진전은 기존 노조운동이 스스로 조직적 혁신을 일구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KTX 여승무원들을 중심으로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과 이를 지원하는 각계각층의 사회적 연대 노력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희망으로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금융권 등 일부 사업장들에서 정규직노조가 임금인상을 포기하는 대가로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키로 한 것 역시 노조운동이 사회적 연대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적 조짐들에도 노조운동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산업화시절 노조는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에게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한국의 노조운동은 민주화운동의 핵심세력으로 노조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노조운동은 그러한 희망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희망의 중심에서 노조가 떠나면 그 자리는 누가 대신할 것인가? 한국의 노조운동은 이제 우리 사회의 희망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기 혁신의 길을 찾고, 그 길을 개척하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에 나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혁신의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노조운동의 도덕적 지도력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그러한 혁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약자의 희망’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기 혁신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것에서 노조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노조 지도력 원천은 ‘약자의 희망’임을 되새기길

지난 세기에 한국의 노조운동은 한국사회 뿐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사회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권위주의 체제의 억압을 뚫고 만들어진 이 땅의 노조들은 분명 노동자들의 희망이었다. 민주노조라는 하나의 목표와 정체성에 대한 커다란 사회적 지지는 권위주의 체제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강력한 사회적 토대가 되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지닌 강력한 도덕적 지도력 때문이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정치적으로 억압된 이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공급했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에너지가 바로 노동조합으로부터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노조운동은 사회개혁의 주도세력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도덕적, 문화적 지도력을 상실하기 시작하였다. 그 근본 원인에 대한 진단도 다양하다. 기업별노조의 근본적인 한계, 노조운동의 정치화, 노조 내부의 도덕적 부패, 시민사회운동과의 연대 부재, 세계화 및 신자유주의 확산 등이 그 주요한 원인들로 지적된다.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그 나름대로 진실의 일부를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은 기본적으로 노조운동의 주체가 안고 있었던 정체성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주체가 직면하는 위기의 근원은 그 내부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노조운동이 정말로 위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외부 환경이나 제도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시작한다. 노동조합이 그들만의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작은 기득권에 도취되어 스스로 이 사회와 담을 쌓고, 끊임없이 양산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게 될 때 노조운동은 스스로 권력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노조운동은 분명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위기가 진짜 심각한 이유는 약자의 희망이라는 노조운동의 도덕적 지도력과 문화적 정체성의 근본을 변질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 극복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약자의 희망이라는 노조운동 본연의 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