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산별노조 비로소 시작되다

노동사회

공공 산별노조 비로소 시작되다

편집국 0 3,158 2013.05.24 12:46

정부는 해마다 공공부문에 대한 예산통제를 강화하고 경제시스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업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미 경영평가는 노동자의 목을 죄어 오고 BSC(균형성과표), ERP(전사적 자원관리), 차등성과급확대 등 민간기업의 첨단 경영기법들이 공공부문을 뒤덮고 있다. 

이런 속에서 노동조합이 정부지침을 넘어서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현장통제로 활동가마저 줄어들고 있다. 사업장마다 노동조건의 악화와 양보교섭이 현실적 조건이 돼 버렸다. 아웃소싱, 민간위탁 등 비정규직 확산을 지칭하는 다양한 단어들은 이미 우리 귀에 모두 익숙한 것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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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26일 열린 4조직(공공, 민주버스, 민주택시, 화물통준위)의 통합 대의원대회. ▶ 전국공공운수서비스연맹 ]

공공부문 노동자는 어디에 서 있는가

정부는 KTX 승무원 투쟁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의 강력하고 완고한 투쟁에 밀려 지난해 8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비정규직 전체 규모부터 턱없이 줄여 잡은 것을 시작으로, 완전한 정규직 대신 ‘무기계약직’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차별을 기정사실화 했다. 외주용역부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요구인 ‘원청 사용자성 인정’은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비정규직 차별을 확대 심화시킬, ‘핵심’과 ‘주변’ 업무의 구분을 새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KTX 등 비정규직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었다. 몇 달 뒤 서울지방노동청은 KTX 승무원들을 불법파견이라고 볼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두 번 울렸다. 

한국노총과 경총, 노동부 등은 지난해 9월11일 노사관계 로드맵을 밀실야합으로 통과시켰다. 국회 입법절차가 남아 있지만 이번 야합에 따라 직권중재가 없어지는 대신 직권중재보다 더한 필수공익사업장 확대에 대체근로 합법화, 부당노동행위 때 사용자 처벌조항 삭제 등의 개악안이 관철됐다. 이대로라면 사실상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원천봉쇄되고,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상조회 수준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야합으로 피해를 입게 된 공공연맹의 사업장노조는 철도노조와 여러 지하철노조, 항공 관련 노조에 의료연대노조, 전기, 가스, 석유공급사업, 증기·온수공급, 폐·하수처리 관련 노조 등으로, 특히 연맹 내 환경에너지본부는 광해방지사업단 등 일부를 빼고 전부 해당된다. 시설관리노조도 대형건물과 아파트 온수를 관리하기 때문에 포함된다. 이렇게 따지만 전체 11만여 공공연맹 조합원 가운데 필수공익사업장 범주에 들어가는 7만여명이 사실상 파업권을 뺏긴 것이다. 이들은 파업을 하더라도 필수업무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파업효과가 없다. 또 파업 땐 대체근로가 허용된다. 여기에 노동위원회의 긴급조정권까지 포함하면 3중 제어장치가 마련돼 정상적 파업은 거의 불가능하다. 

2006년 11월30일, 공공노조 건설 

산별노조는 이런 위기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만능해결사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 위에서 현재처럼 기업별노조체제를 유지하는 건 무의미하다. 따라서 공공연맹은 지난해 9월27일 대의원대회에서 산별노조 건설방침을 확정했다. 짧게는 지난 1년 반 동안, 길게는 1999년 공공연맹 창립 때부터 논의해온 산별건설의 중요한 첫 결실이었다. 

대의원대회에서 확정된 사항은 모두 8가지다. 다소 많다. 이는 공공연맹의 다양성 때문이다. 우선 현재 공공연맹 소속 노조는 2006년 연말까지 조합원 전체 투표를 통해 공공노조와 운수노조로 전환한다고 결정했다. 현재 공공연맹 내 공공서비스, 사회서비스, 사회복지, 정보통신, 환경에너지, 공공시설환경, 운수 등 7개 업종본부 중 운수본부를 제외한 6개 본부가 공공노조로 뭉치고, 운수본부는 공공연맹 밖에 있는 화물연대, 민주택시, 민주버스와 통합해 운수노조를 세우기로 했다. 두 개의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올 연말까지 공공연맹을 포함한 4개 연맹은 통합연맹을 건설한다. 그리고 다시 내년 연말까지 공공노조와 운수노조를 통합해 하나의 산별노조인 공공운수노조를 만들기로 했다. 즉 올 연말이 되면 현재 공공연맹과 화물, 택시, 버스가 합쳐 조합원 14만명이 넘는 통합연맹이 만들어질 것이다. 

공공노조는 지난해 11월30일 발기인대회를 통해 창립했다. 43개 조직 3만명으로 출발했으나 12월을 거치면서 한 달 만에 이미 4천여명이 새로 가입했고, 가입 대기 중인 조합원까지 이달 말이면 4만여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운수노조도 지난해 12월26일 창립대회를 열어 출범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두 산별노조를 아우르는 통합연맹인 가칭 공공운수연맹을 출범시키려 했으나 성사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공공연맹은 현재 비상대책위원회 형태로 통합연맹 출범을 위해 의견을 조율 중이다. 그러나 1월19일 통합연맹을 출범시킬 통합발기인대회를 앞두고 각 조직 간의 이견 조율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한편 공공노조는 연말에 임시대의원회를 열어 규약의 일부 조문을 정리하고, 오는 2월 말로 예정된 직선 지도부 선출과 2007년 임단투를 포함한 조직체계 정비를 위해 규정제정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지역과 업종본부, 이중 편재

공공연맹은 대의원대회에서 ‘노조중앙↔지역/업종본부↔지부’를 골간으로 하는 공공노조 조직체계를 결정했다. 모든 조합원은 지부를 통해 지역본부와 업종본부에 이중 편재되는 구조다. 지역본부과 업종본부가 병렬적 구조로 시작한다. 산별노조의 일반적 모습은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편재이지만, 공공연맹을 그동안 업종 중심의 사업을 통해 20여년 동안 연대와 투쟁의 전통을 확립해 왔기 때문에 당장 업종본부를 해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어쨌건 향후에는 지역본부 중심으로 활동하기 위해 인력과 재정, 의결권을 업종본부보다는 지역본부에 더 많이 투여하기로 했다. 따라서 공공노조의 업종본부는 3년 내 단계적으로 지역본부로 전환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이렇듯 지역본부와 업종본부로 이중 편재(이중 멤버십)하는 것은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 등 앞선 산별노조와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당초 이 안이 제출됐을 때 현장으로부터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는 공공연맹의 역사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더 멀리는 20여년 전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출발부터 지금까지 각종 연대조직체 건설의 역사와도 밀접히 관련돼 있다. 전문노련, 구 공공노련, 민철노련 등이 이런 것들이다. 그만큼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업종의 틀 속에서 연대해왔다는 거다. 

이런 이중 편재가 실제 운영상의 혼란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금속산업연맹 부양본부 A조합원을 가정할 경우, 이 조합원은 금속연맹의 지침을 받아 서울 상경투쟁도 하지만, 지역에서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의 지침을 받아 부산역 결의대회에도 나온다. 그럼에도 조직적 혼란은 없다. 마찬가지로 공공노조에서도 이중멤버십이 큰 혼선을 불러올 일은 거의 없을 것이란 결론이다.

지역본부와 업종본부의 역할

공공노조의 지역본부는 산별노조 중앙과 현장을 연결하는 중심축이 될 것이다. 동시에 지역본부는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의 중심축도 된다. 모든 노동자들은 지역을 근거로 생활하고 노동한다. 이들의 모든 일상활동은 지역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이들을 조직하는 데는 지역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을 위해 대국회나 대정부를 상대로 한 법제도 개선투쟁도 중요하지만 정작 이들을 조직해야 할 단위는 지역일 수밖에 없다. 또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노동의 성격상 각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를 주요한 교섭상대로 싸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공노조 지역본부는 대지자체 투쟁을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지자체에 대응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정부도 작은 정부를 실현하고 지역자치를 이루기 위해 많은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고 있다. 따라서 지자체 단체장들의 영향력과 결정권도 커지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는 업무의 특성상 지자체 단체장을 사용자로 하는 직접교섭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산별노조의 지역본부는 당연히 대지자체 투쟁의 중심축이어야 한다. 공공노조 지역본부는 공공부문 노동의 성격이 이윤창출이나 수익성 제고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고 대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적 서비스가 되도록 감시·감독해야 한다. 지역본부는 일반 국민이나 현장조합원이 있는 지역에서부터 이런 투쟁의 실천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의 사회적 교섭력을 극대화시킬 최상의 무기다. 국회의원부터 기초의원까지 모든 정치는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지역본부는 이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유력한 실천공간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비행기 조종사부터 연구기관 연구원까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노동의 과정이 다양한 만큼 생산품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업종본부는 이들의 노동 특성을 그룹별로 묶어서 조율한다. 그리고 공공부문의 사용자 역시 공공자본과 민간자본, 교섭대상도 정부, 지자체, 민간 등으로 자본의 성격 또한 다양하다. 업종본부는 다양한 자본의 성격에 맞는 교섭내용을 개발한다. 다양한 노동과 자본의 성격에 맞는 정책적 과제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업종본부는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지향점은 하나지만 해당 업종별로 각기 서로 다른 정책적 과제를 생산하고 조율해야 한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사용자는 궁극적으로 정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산방식과 생산물이 다양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사실상 17개 정부 부처 모두를 교섭 대상으로 해야 한다. 그만큼 교섭도 다양하고, 그 교섭에 합당한 정책적 접근방식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당장 문화예술노조는 정책담당 부처인 문광부와 해당 지자체가 교섭대상이어야 한다. 사회보험노조와 사회연대연금노조, 의료연대노조 등은 복지부가 실질적 교섭대상이다. 또 서울상용직노조와 민주연합노조는 행자부와 해당 지자체를 상대해야 한다. 보육노조는 여성부, 가스공사노조와 발전노조는 산자부, 철도노조는 건교부 등을 나뉜다. 업종본부는 이런 다양한 교섭정책을 생산하는 일차적 과제를 안고 있다. 

그동안 공공연맹은 산별기획단에서 재정운영의 기본방침을 논의한 결과, 산별노조와 현장의 조합비 분배율을 4:6으로 시작해, 해마다 조정을 거쳐 3년 뒤 5:5로 하기로 대체로 의견을 모았다. 전체 조합비 가운데 10%는 투쟁(파업)기금과 희생자기금 등으로 원천 적립키로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토대로, 공공노조는 1월9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조직의 골간체계인 지역본부와 업종본부 설치안을 통과시키고 조직정비를 위해 지역본부와 업종본부 준비위를 가동 중이다. 

물리적 통합에서 화학적 통합으로!

공공연맹은 산별방침을 확정하면서 지부조직에 대해서는 특정한 방식으로 강제하지 않고 다양한 구성방식에 대해 문을 열어 두었다. 이런 개방형 지부 구성방식 속에서 지부의 모양은 대략 5가지 종류가 될 것이다. 

우선은 사업장 단위노조나 기업별노조가 그 자체로 지부로 바뀔 수 있다. 둘째, 두세 개 사업장(기업) 단위노조가 통합해서 하나의 지부를 만드는 사업장(기업) 통합지부도 있을 수 있다. 셋째, 현재 대구경북지역 공공서비스노조와 같이 특정 지역에 여러 사업장이 뭉쳐 하나의 노조로 활동해온 지역노조가 그대로 지역지부로 전환할 수도 있다. 넷째, 사회보험노조나 전기안전공사노조 등 조합원이 전국에 흩어져 있지만 하나의 기업인 전국사업장 단위노조의 지역조직들이 지부로 전환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노조나 연구전문노조, 전국보육노조 등 소산별노조들이 지부로 편재될 수도 있다. 이렇게만 나열해도 공공산별노조는 제조업보다는 훨씬 복잡할 수밖에 없다. 

현재 공공노조는 지부의 구성방식을 놓고 내부논의가 한창이다. 동시에 산별노조 건설 이후 사업계획에 대해서도 다양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물리적 통합 이후 화학적 통합을 이루기까지 최소 3년 이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공공부문보다 앞서 산별노조를 건설했던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 등 선배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고,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공공부문의 특색 있는 산별노조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