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희망 다지는 보람찬 해가 되기를!

노동사회

새 희망 다지는 보람찬 해가 되기를!

편집국 0 2,964 2013.05.24 12:43

새해가 밝았습니다. 동쪽하늘에 힘차게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처럼 우리의 삶도 활기와 신명이 넘쳐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너나없이 지난해는 정말 힘들었다고 합니다. 올해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빨리 변하는 세상일에 어디를 봐도 칙칙하고 답답하기만 한 전망들이 이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개중에는 애써 밝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지난해 소박하고 조그만 꿈들이 속절없이 배반당하고 보니 쉽사리 믿기지 않는군요. 

실제 새해의 많은 예측치들은 우울하기만 합니다. 공공요금 인상을 비롯한 물가상승이 줄을 잇는다 하고 중소 영세기업들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수출이 그런대로 괜찮을 거라고 하는데 그 성과는 거대기업의 몫으로 남을 공산이 큽니다. 거기다가 사회적 양극화현상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많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파고를 뛰어넘어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현상을 하루아침에 개선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환상이겠습니다만, 정부의 정책기조가 변함이 없고 제17대 대선 싸움에 민생이 내팽개쳐질 것이 뻔한 이치고 보면 근로대중의 어려움은 어느 때보다 심해질 전망입니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기대만큼 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자본 쪽은 ‘경제살리기’만이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투자증대, 시장주의, 경제성장의 논리로 그 내용을 채웁니다. ‘경제성장정책 → 투자증대 → 경기회복 → 일자리창출’이라는 공식에 일관하여 적용될 원리는 시장주의라는 것이지요. 우리사회는 오랫동안 성장주의 신화에만 심취당해온데다가 최근에는 워낙 일자리잡기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이 논리에 쉽사리 끌려들 수밖에 없고, 또한 그런 분위기는 경제살리기를 위해 노동조합의 자제와 노동자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여론몰이가 되기 십상입니다. 일자리 창출을 외치면서 노동 쪽을 희생양으로 삼는 모순이 되풀이되는 셈입니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 지표상으로는 복지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었다는 지금 우리 노동자의 모습은 이렇게 일그러지고 있습니다.  

87년으로부터 20년, 노동운동은 희망인가?

올해는 19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으로부터 20주년, 1997년 외환위기로부터는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10년, 20년이라 하여 특별한 의미가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처럼, 이렇게 셈을 하는 이유는 새로운 시대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언가 다짐을 하자는 뜻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게다가 최근 20년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관련하여 무척 중요한 시기입니다. 민족해방 60여년에, 그리고 어렵게 획득한 민주화 20년 동안 무엇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외환위기 이후 우리사회는 어떻게 대응하였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를 되짚어 봐야 할 시점입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민주화가 크게 진전되었다고 주장하는 쪽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른바 민주화정부 10년간의 권력자들과 이들에게 권력을 뺏겼다고 원통해 하는 세력들이 그들입니다. 그러나 서로 맞서야 할 이 두 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중들에게 똑같이 원망과 질타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한쪽은 민주화의 방향을 잘못 잡아 극복되어야 할 대상인 기득권자들을 더욱 살찌우는 모순을 범한 데 대하여, 다른 한쪽은 기득권 이익을 위해 민주화를 가로막고 역사를 되돌리려 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해야만 참된 민주주의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천착해 봐야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뉴라이튼가 하는 보수화의 첨병들이 세를 키워가는 판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난 20년, 10년을 돌이켜 보는 문제의식 한가운데에는 노동운동이 있습니다. 노동운동은 우리사회 변화의 어김없는 중심축이었고 따라서 오늘의 문제상황에는 노동운동의 역할과 책임이 무시 못 할 비중으로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이 제대로 서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요원하다는 역사의 교훈이 그 근거입니다. 지난 20년간 노동자들은 지난한 투쟁을 전개해왔습니다. 특히 10년 전부터는 악전고투의 연속이었고 지금까지도 그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에도 투쟁은 치열했고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저항은 처절했습니다. 지난해 11월까지 187명이 구속되었고 그 가운데 171명이 비정규직노동자들이었으며, 이는 2005년 구속자 109명, 비정규직 노동자 92명에 비하면 2배나 늘어난 규모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이렇게 어려운 투쟁을 겪으면서 일정하게 성과도 거뒀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는 거의 대부분의 조직이 산별노조로 전환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또한 조합원 약 20%가 참가한 12차례의 총파업을 통해 한미 FTA를 저지를 천명했고, 노사관계 로드맵을 대부분 무력화시켰으며, 비정규법안도 당초 정부와 자본의 의도를 상당한 정도로 무산시킨 데다가, 무엇보다 민주노총이 투쟁의 깃발을 내리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성과에 대한 평가는 이러한 점들에 의미를 두고 있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투쟁에 대한 노동현장의 평가는 냉정한 것 같습니다. 구속자 상황은 잔혹한 노동탄압의 결과입니다만, 그럼에도 국회에서 통과된 비정규직노동법의 내용을 봤을 때, 그리고 직권중재가 폐지되는 대신 확대된 필수공익사업장과 대체근로 허용 및 필수업무유지 의무 부과 등의 조항이 생겨난 것을 봤을 때, 이 결과가 그렇게 값비싼 희생에 버금할 수 있는 수준인가하는 의문들이 그 평가의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원칙적인 입장만 되풀이하며 교섭 없이 투쟁으로만 치달은 결과는 무엇인가 따위의 지적이 있는가 하면, 정의의 투쟁이라는 자부심에 비해 법제도에서 확보하지 못한 조항 때문에 겪어야할 고통은 너무도 크다는 울분의 소리도 있습니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내리꽂기 총파업에, 이게 목표쟁취를 위한 투쟁인지 투쟁을 위한 투쟁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라는 불평이 높아가는 속에서 정부와 자본의 압박은 가중되고 이래저래 노동현장은 우울하고 냉랭합니다. 

100년 역사의 한국 노동운동, 1987년 이후 10년의 급성장 끝에 외환위기를 맞아 막다른 벼랑으로까지 내몰린 노동운동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으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과연 민주노총은 노동자계급의 희망일 수 있는가 따위의 질문과 우려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산별노조시대 뚫고 갈 중장기전략, 그리고 정책참가

제도개선 투쟁이 한 장을 접고 울분과 혼돈과 우려가 착종되는 가운데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와 임원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때와 마찬가지로 임원 후보자들은 현란한 공약과 구호를 내세울 것입니다만, 과연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도부 분열과 혼란을 막기 위해 ‘통합집행부 구성’을 제안했지만 신통한 응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를 두고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아직 위기를 못 느끼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래와 같은 계파 간의 합종연횡과 자파독식의 집행구조가 되풀이되는 관성이 지배하는 한 민주노총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임원과 대의원 직선제가 무언가 바꾸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듯합니다만, 다른 조직혁신안은 제쳐두고 그것만이 지상명제인양 매달리는 것도 어딘가 맥을 잘못 짚었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민주노총이 해야 할 일을 조리 있게 한마디로 정리하기에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만 몇 가지만 생각나는 대로 들어보기로 하지요. 지도부가 어떻게 바뀌든 민주노총은 지난 20년과 10년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당면 투쟁에 몰린 나머지 혼미해진 ‘중장기 전략’을 다시 추슬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앞으로 5년 후 또는 10년 후 변화한 정세 속에서 민주노총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 것인가를 노동대중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명제는 노동운동의 혁신과 닿아 있다고 봅니다. 이미 산별노조 건설, 정치세력화 확대 강화, 운동이념의 재정립, 조직운영의 개혁 등이 그 주제로 제시되고 있습니다만, 올해 최대 과제는 역시 산별노조의 확대 및 강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산별노조는 노동운동에서 보편의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물론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이고 시행착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기본원칙은 노동자계급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키운다는 것에 두고 조직체계, 조직운영, 단체교섭, 투쟁전술 등은 현실을 감안하여 다양한 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외국의 사례를 고정불변의 원리로 생각하고 우리 상황을 무시한 탓에 쓸모없는 논쟁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한 과거 경험을 돌이켜보면 쉬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산별노조시대에는 많은 변화를 준비해야겠지요. 기존과 같은 기업별노조의 협의체로서 산업별연맹과 그 중앙협의체로서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은 새롭게 정리되어야 합니다. 기업별노조의 요구와 투쟁에 중앙조직이 휘말려 그것이 마치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한 것인양, 강력한 전투적 조합주의로 포장하는 일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업장, 지역, 산업, 전국 단위의 위상과 역할이 새로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산별노조체계에서는 교섭과 투쟁을 어떻게 결합시키고 배치해야 하는가가 우선과제로 제기되며, 그 하나가 ‘정책참가’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책참가는 노조의 정치적 무기인 총파업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요구실현을 담보해주지 못한다는 한계에서 나온 것으로, 노조의 제도적·정책적 요구투쟁의 중요수단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정책참가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함께 노동운동의 중대한 정치적 과제로 대두됩니다. 물론 수년간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갈등 때문에 자칫 거리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정책참가는 모든 나라 노동조합운동의 핵심활동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산별노조가 노동자의 다양한 요구를 담아 산업별 노동시장의 장악과 사회개혁 또는 사회공공성 확대 그리고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지향한다면 정책참가야말로 그 중요한 경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파들, 합의를 이루는 습관을 배워야  

많은 사람들은 민주노총 내부 의견그룹 사이의 갈등, 곧 정파갈등을 매우 심각한 문제의 하나로 지적합니다. 정파는 웬만한 대기업노조만이 아니라 지역, 산별, 민주노동당에도 존재하여 조직운영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정파의 분화가 너무도 현란해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차이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립갈등은 이념논쟁에 그치지 않고 인간관계 까지도 변질시킵니다. 정파들은 전체조직을 자기주장에 종속시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전체조직의 체계와 질서를 무너뜨리고 조직분열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정파들은 자기들만이 대중을 가르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물론 대중조직이든 정치조직이든 정파는 필연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반공주의 독재정권하에서 이념대결의 실증적 경험이 차단되어 온 경우 그 대립과 갈등은 더욱 치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주장을 위해 전체조직을 종속시키려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끝내는 분열로 귀결될 것입니다. 따라서 정파들은 민주적 토론과 결정방식을 공부해야 합니다. 정파 간의 차이를 인정한 토대 위에서 전체조직이 움직일 수 있는 공통의 준거에 대해서 토론을 거쳐 합의를 이루어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정파가 있는데도 노동자 대통령을 만들어낸 브라질 노조와 노동자당의 경험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정파문제를 얘기하다 보면 활동가들이 이념과잉에 빠져 있지는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결코 냉철한 이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노동운동은 사상, 신념, 종교, 신앙 등을 달리하는 노동자들이 모인 대중조직의 운동이며, 대중조직은 같은 처지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애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노동운동의 역사는 하나의 이념이나 신조를 강요할 경우 조직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중요한 교훈으로 강조합니다. 지나치게 정서에만 매달리는 것도 금물이지만 이념의 잣대로만 모든 것을 재단하여 서로를 배척하여 분열을 일으키는 것 역시 본말이 전도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지애와 초심을 언제나 되새기길

여기서 우리는 언제나 초심을 돌이켜 보고 노동자의 품성을 생각하며 동지애를 바탕으로 자기반성을 먼저 하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의 기준을 상기하게 됩니다. 총체적인 자본공세 앞에 자칫 피폐해지기 쉬운 풍토에서 항시 초심으로 돌아가, 서로를 품어 안고 이끌어주는 포근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면 훨씬 힘이 덜 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일을 향한 신념과 열정도 그 속에서 더 힘 있게 솟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부디 새해에는 민주노총이 새로운 모습으로 힘찬 희망을 일굴 수 있는 보람의 한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