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성노동자들의 삶에서 변할 것과 변하지 않을 것

노동사회

2007년, 여성노동자들의 삶에서 변할 것과 변하지 않을 것

편집국 0 4,117 2013.05.24 12:41

“20여년간 여성노동운동을 해 왔지만, 과거에 비해 여성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kashin_01.jpg연초에 가진 모임에서 어느 여성노동운동가가 한 말이다. 이러한 질문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의 더 근본적인 물음이 깔려 있다. 첫째,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의 제정부터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 보호법안’에 이르기까지, 각종 법과 제도적 정책이 그 문제의식이나 내용, 시정 절차의 측면에서 성차별적인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도구로 얼마나 적절한 것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법의 효과를 현실에서 실현해 갈 수 있는 조건과 역량이 얼마나 성숙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잘못된 관행을 고쳐가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 필요하며, 그것을 현실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여건과 주체적 역량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2007년 새해의 상황은 남녀고용평등법을 만들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다르다면 성평등의 가치가 이미 법적으로 제시되어 있어 표면적으로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는 점이며, 같은 것은 노동시장에서 자기 몫을 찾는 일은 여전히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져 있다는 점이다.  

2006년을 보내고 2007년을 시작하는 이 시점 역시 여느 해의 이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아주 다른 시점에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르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가능한 이유는 노동시장에서 늘 있어 온 성차별적 관행과 불평등이 여전히 지속되리라는 판단에서이며, 아주 다른 시점에 있다는 전망의 근거는 ‘비정규직 보호법’의 시행으로 인한 것이다. 

여성노동, ‘비정규직 보호법’의 칼날이 춤출 자리  

2007년이 다른 해에 비해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이유는 비정규직 보호법의 시행이 가져올 여러 가지 변화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연초부터 문제가 됐던 법원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해고 사건에서도 나타났듯이 “2년까지의 자유로운 고용과 2년 후 무기계약 전환” 조항을 피하기 위해 이미 상당수의 사업장에서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남성에 비해 훨씬 먼저 노동유연화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2006년 내내 불씨가 꺼지지 않았던 KTX 여승무원의 간접 고용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그동안 여러 차례 논의의 대상이 되었고 우리의 가장 큰 걱정거리의 하나였기 때문에 여기서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굳이 여성승무원들만을 따로 분리해 위탁업체의 파견노동자로 만들어 버린 행위의 이면에는 “젊은 여성인력을 잠깐 쓰다가 방출하겠다”라는, 감추려 해야 감추기도 어려운 계산이 깔려 있다. 또 가장 취약한 노동자집단을 희생해서 구조조정이니 합리화니 하는 등의 업적 아닌 업적을 꾸며보려는 경영진의 비열함이 도사리고 있다. 회사 측에서는 여승무원들이 KTX 레저관광이라는 위탁업체의 정규직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현행법상 승무업무는 파견대상 직종이 아니다. 외주위탁업체의 간접 고용은 직접 고용 관계에 있는 정규직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여성계와 학계의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남성이 대부분(약 96%)인 열차팀장은 철도공사의 정규직으로 두고 팀원인 여승무원만을 외주위탁직으로 규정한 것은 명백한 성차별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를 인정하여 논란이 정리되었지만, 그러나 판결이 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에도 성차별은 경영합리화에 필요하다면 불법적일지라도 용인되는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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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 여성위원회에서 개최한 ‘돌봄노동과 노동조합활동에 나타난 성별차이’ 토론회. ▶ 한국노총 ]

우리은행 직군제 변화가 간접차별 혐의 벗을 방법은?

비정규직 보호법의 시행 결과 나타날 수 있는 또 다른 변화로 직군제 확산을 들 수 있다. 지난해 말 우리은행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소식이 비정규직 보호법의 통과로 암울해진 사회에 한줄기 밝은 빛처럼 전해졌다. 이것은 “정규직 노조가 사측과의 교섭테이블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요구안으로 다뤘다는 점”과 “비정규직의 고용조건을 안정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 안의 내용은 기간제 은행원들을 매스마케팅 직군, 고객만족 직군, 사무지원 직군 등의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고용은 보장하면서 임금을 정규직의 50~60% 수준으로 지급하고, 승진의 조건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 안정을 얻는 대신 임금, 승진상의 불평등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반정규’라는 새로운 노동계급이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 새로운 직군제의 경계가 성별 경계와 거의 일치하리라는 우려다. 보통 은행에서 여성 일자리로 알려진 창구텔러 업무는 영업점 정규직들과 동일하게 일반영업직군에 속해 있고, 여성이 다수인 사무지원직군 역시 본부 부서의 정규직과 함께 일반지원직군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우리은행의 ‘계약인력 인사제도 개선안’은 이러한 업무들을 매스마케팅직군과 사무지원직군으로 각각 구분하여 계약직화하고 있다. 즉 과거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대다수 여성들이 계약직으로 분리되면서, 고용안정을 보장받는 대신 임금과 승진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는 조건을 수용하도록 바뀐 것이다. 

그간 우리사회의 관행을 얼핏만 돌아봐도 개인영업직군, 기업영업직군, 투자금융직군, 경영지원직군, 영업직군, 지원직군 등 일반직(정규직)에 비해, 매스마케팅직군, 고객만족직군, 사무지원직군 등 계약직(비정규직)에 여성들이 훨씬 더 많으리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분리직군제가 과거의 여(女)행원제도나 신인사제도 등의 성차별적 직군제의 전철을 밟지 않고 간접차별 혐의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전원 정규직화’와 더불어 ‘직군 간 불평등의 실질적 해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새해 전망을 예년과 다르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2006년 도입된 ‘적극적 고용 개선 조치(Affirmative Action)’의 본격화를 들 수 있다. 이 정책의 내용은 공기업 및 상시근로자 1,000인 이상 기업(2008.3.1부터 5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주가 남녀근로자 현황을 보고하도록 한 것으로, 이에 따라 직종별 여성근로자의 비율이 산업별·규모별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시행계획’을 수립, 제출하여야 하며, 1년 후에는 이행실적을 보고해야 한다. 물론 이 조치의 성과를 예단하기는 어렵고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처벌 조항도 미미하다. 하지만 민간부문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적극적 조치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또 장기적으로 그 성과가 나타날 경우, 대기업에 제한되기는 하지만 ‘유리천장’ 현상이 완화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고객에 의한 성희롱도 법적으로 규제돼야  

반면 새해에도 여전할, 묵은 문제들도 수두룩하다. 그중 하나가 ‘직장내 성희롱’이다. 성희롱 예방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으며, 특히 소규모 사업장 내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해 10월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에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서울, 인천 등 8개 지역 대인업무 종사자 467명에게서 고객에 의한 성희롱을 겪은 적이 있다는 응답이 41.1%나 나왔다. 특히 10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성희롱에 매우 취약한 환경에 놓여있다. 2006년 상반기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에 접수된 여성노동자 상담 중 이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상담건수 219건 중 직장내 성희롱 상담은 33%인 73건이었으며, 이중 35%(26건)가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사건이었다. 

그러나 현재 1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성희롱 예방교육은 실질적으로 거의 실시되지 않고 있으며 관련 법규에 대한 인식 수준도 매우 낮다. 직장내 성희롱은 여성노동자의 노동환경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할 경우 해고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에서, 그 예방의 중요성이 무척 크다. 특히 여성 일자리의 다수가 대인 서비스 분야에서 늘어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현행법상의 고용관계내 성희롱뿐만 아니라, 고객에 의한 성희롱도 인정되고 금지되고 예방될 수 있도록 법규를 개정해야 한다. 또 소규모 사업장의 직장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현실화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되어야 한다. 

지난 해 여성노동자들을 실망시킨 소식으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부정된 것도 들 수 있다. 정부가 마련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대책’에서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이 거의 인정되지 않아, 이들은 노동3권을 비롯한 노동권 전반과 모성보호, 직장내 성희롱 등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법조항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 5년여 간에 걸친 토론과 조사, 연구의 결과를 무시한 것이며, 특히 특수고용노동자의 65%에 이르는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처럼 파편화된 노동의 시대 상당수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성이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법적 보장의 사각지대에 있고, 주체적 역량을 다질 조직화조차 허용 못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조의 성평등 의식은 안녕하십니까?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된 문제지만 ‘문제’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 즉 노동조합 내부의 젠더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사회 각 부문에서 젠더(Gender,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관계, 그 관계의 불평등성을 함축하는 용어)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성평등의 가치가 논의되고 있지만,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안에서 이 문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보이고 얼마나 자주 실천의 과제로 인정되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노총에서 필자 등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6백여명에 이르는 조합원 중 여성과 남성의 가사노동시간과 육아시간은 커다란 차이가 있으며, 남성들의 다수는 가사나 육아 등 돌봄 노동 자체에 대해 무관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응답자들의 40~60%가 가사나 육아 등 돌봄 노동을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답변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이처럼 가족 안에서 돌봄 노동을 함께 나누는 것은 물론, 노동조합내 여성의 대표성이나 지위 향상에 대해서도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간부나 임원, 대의원의 여성 할당제와 관련해서는 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 무척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노동조합은 언제까지 여성들의 이중 부담 문제를 외면할 것인가? 남성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지도부가 성평등 이념을 자신의 문제로, 노동자가족의 선결 과제로, 노동조합의 우선적인 이슈로 받아들일 날은 언제일까? 이러한 문제는 단지 개인적인 차원의 인식 개선이나 의식 각성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합 차원의 구조적인 노력이 진행되어야 한다. 즉, 노동조합 활동의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를 향한 지속적인 실천과 점검이 필요한 것이다.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 단체협약, 파업투쟁 등 제반 실천에서 젠더의 문제가 얼마나 제기되고 논의되고 수용되는가, 성평등 관점이 얼마나 일관되게 관철되는가, 그 결과 조합원의 의식과 활동, 노동조합의 정치가 얼마나 성평등한 것으로 탈바꿈해 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고 평가해 나가야 한다. 

사회 전체의 성평등을 이끄는 노동운동이 되길!

2007년은 노동조합이 먼저 성 주류화를 실천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성 주류화를 견인해 가는 시대의 첫 걸음을 떼는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변할 수 있을까? 노동조합은 변하는 쪽에 있는가? 변하지 않는 쪽에 있는가?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 필요한 시간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