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기록, 조심스런 다짐, 그리고 『아름다운 저항』

노동사회

아름다운 기록, 조심스런 다짐, 그리고 『아름다운 저항』

편집국 0 3,159 2013.05.24 01:00

감동 깊게 읽은 책에 관에 글을 부탁받았다. 내가 무슨 글을 쓰나, 이분들이 나에게 연락한건 다른 사람과 헷갈려서나 혹은 잘못 연락을 한 거라는 생각으로 큰 고민 없이 지냈다. 그러다가 로드맵저지 투쟁과 연말 수많은 송년회 약속으로 거절의 때를 놓쳤다. 술을 탓할 수밖에…. 글을 쓰는 것도 잊고 있었지만, 가장 큰 실수는 못쓰겠다는 연락을 못 한 것이다.  


아무튼 하는 수 없이, 부담을 백만 배 가슴에 안고, 쓰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천근만근이다. 이럴 때 우리가 잘 쓰는 말이 있다. “동지들 사랑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잊고 있던 삶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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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외롭고도 무모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은 그런 지극히 ‘비현실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 왔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시간이 중요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 현실의 시간, 이것도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었다. 현실도 역사의 한부분이라는 것을, 역사의 한부분속에 현실이 놓여 있다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을 우리는 자주 망각한다.
역사가 한발자국씩 진보를 이룰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누군가는 반드시 치러 왔다. 이 책은 노동자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대가를 치른 사람들과 그 현장의 기록이다 
-『아름다운 저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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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구려의 역사를 다룬 주몽이라는 드라마가 최고의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고구려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고조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구려를 비롯한 선조들의 역사에서 일제시기 조선독립군들의 역사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금 내가 들이마신 숨에서 다시금 내뱉는 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또한 역사일 것이다.

방현석 님의 『아름다운 저항』은 오래 전 『○○사』, 『□□법』, 『◇◇론』, 『XX설』 따위의 제목을 달은 책들을 가지고 잘도 주둥이를 나불거렸던 내 모습을 무참히 무너뜨렸다. 또한 나에게 『아름다운 저항』은 어린 시절까지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초등학교 때 서울의 창신동에서 살았는데 그때 92번 종점 바로 옆에 살며 우리식구 모두 한빛교회를 다녔다. 교회 위층은 구두공장이었고, 그 위층은 봉재 공장이었다. 그 때 교회를 함께 다니던 어떤 누나한테서 청계피복노조에 소속돼 있는 공장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그게 전태일 열사의 피로 만들어진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87년 겨울쯤으로 기억한다. 광화문 국립박물관에 숙제를 하러 갔다가 갑자기 시위대를 만났다. 길가에 서있던 나는 경찰이 던졌는지 시위대가 던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서 날라 온 돌멩이에 발목을 맞은 적이 있다. 그때 엉엉 울며 집에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그게 1987년 민주화투쟁과 노동자대투쟁이라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비록 꼬맹이였을지라도 거기에 함께 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난 지금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분명히 항쟁의 역사 그 중심에 나도 함께 서 있었다고. 

어쨌든 현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직부장으로서, 그리고 새내기 노조활동가로 서 있는 내게서 『아름다운 저항』은 이토록 다양한 기억들을 되살려줬고, 역사는 변화할 수밖에 없음을 가르쳐줬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노동자가 있으며,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의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이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저항의 역사 속에 담긴 아름다움

또한 『아름다운 저항』은 저항의 역사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과 희망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각장의 끝에 붙어 있는 당시 주역들에 대한 인터뷰들은 아픔과 아쉬움도 노동자의 삶 속에서 용해되면 빛나는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줬다. 이처럼 『아름다운 저항』은 내게 ‘아름다운 기록’으로 다가왔다. 역사의 주인이 그 시대의 민중대중이며, 주몽보다 더 거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장 속 깊이 알싸한 기분과 함께 남겨준 것이다. 

어쨌거나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책을 다시 뒤적이자니, “노동자가 하나가 되기만 하면 하루 만에 대통령도 뭐든 다 할 수 있는데 너무 간단한 그걸 못한다. …… 어떻게든 하나로 단결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던 이소선 어머니의 말이 내 귓속에 남아 울린다. 마지막으로 이제 새내기 활동가가 선배님들과 후배들에게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더욱 치열하게 살겠다고, 그리고 함께 하자고.

(방현석 지음. 작은책 냄. 9천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