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경제위기 이후 금융산업의 은행합병과 노동조합 통합문제

노동사회

IMF 경제위기 이후 금융산업의 은행합병과 노동조합 통합문제

편집국 0 5,944 2013.05.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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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금융노조의『은행합병 이후 노사관계 발전방안』(인수범, 김승호, 김종진) 프로젝트의 일부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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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한국의 금융산업은 1998년 IMF 경제위기 이후 여러 차례 구조조정을 통해서 금융기관 퇴출 및 대규모 인력감축을 겪었으며, 공적자금 투입은행은 민영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2000년에 들어서는 은행합병으로 규모를 키워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수익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다.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 및 대형화를 위해 은행합병을 추진하였으며, 은행 경영진에서도 효율성을 제고하는 수단으로 은행합병을 생각하기도 했다. 현재 국내의 이름 있는 은행들 가운데 합병의 흔적이 없는 경우가 없을 정도이며, 그 많던 은행들도 이젠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수가 적어졌다. 아마도 국민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 한국씨티은행이 대표 사례일 것이다.

한국의 은행들은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금융 구조조정 및 대형화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다섯 개의 주요 은행으로 축소되었다([그림 1]). 우연히도 합병 은행들 사이에 기업문화와 인사제도가 비슷하더라도 똑같을 수는 없으므로 조직 사이의 ‘차이’는 엄연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합병 과정과 합병 이후에는 양 조직 성원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곤 했었다. (구)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에서는 은행 대형화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빚어졌고, (구)신한은행과 조흥은행, 한미은행과 (구)씨티은행 사례에서는 조흥은행지부와 한미은행지부가 합병반대 파업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합병이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인사제도 및 기업문화를 통합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합병을 겪은 주요 다섯 개 시중은행의 노동조합이 통합하게 된 이유와 과정 그리고 각 조직이 취했던 태도를 개괄적으로 살펴 볼 것이다.

Ⅱ. 은행합병 이후 노동조합 통합 과정 및 평가

1. 노조통합 유형과 구분


서구에서 노동조합의 통합은 1980년대 이후 일반 현상이 되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장체제가 확산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 교섭구조 분권화, 민영화 바람이 불었고, 이것이 조합원 감소와 재정악화, 교섭력 약화로 이어지면서 위기감에 휩싸인 노동조합의 대응전략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중반 이래로 민주노총 소속 연맹들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산별노조 건설을 통한 노조통합이 활발해지고 있다.

여기서 다루는 금융노조 산하 지부 통합과정은 두 가지 점에서 독특하다. 하나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이라는 외부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금융노조로 조직 통합을 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노조 건설 이후, 은행 합병으로 인해 지부 통합을 앞두고 있거나 지부 통합을 했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 기업단위 조직의 조직체계와 운영방식, 집행부 선출방식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대폭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하나의 산별노조 내에서 은행합병이라는 외부조건에 의해 지부간 통합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그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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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노조 통합을 구분하는 주요한 특징은 △개별적인 둘 혹은 그 이상의 조직들이 결합하는 것, △법적 효력을 갖는 결합, △최소한 당사자 가운데 하나의 노조에 대한 자율성과 통제권의 상실, △통합시점 혹은 일정 시점 이후에 자율성과 통제력의 감소 등이다. 이들 특징을 모두 충족시킬 때 노조통합으로 규정하며 서구의 주요 나라(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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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 노동조합의 통합과정은 크게 △통합의 동기, △통합에 대한 반대, △통합협상, 그리고 △통합직후의 시기로 나누어진다. 노조 통합의 동기와 관련해서는 외부의 환경 변수와 노조 지도부에 의해 추동 되는 노동조합 내부 동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비슷한 외부 요인에 대응하기 위한 지도부의 선택을 중시하며 통합하려는 이유와 왜 통합의 결과가 달리 나타나는지에 주목하는 입장이 있다([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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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 유형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러한 유형은 상호 중첩되기도 하고 통합 협상 과정에서 노조 지도부들이 하나 이상의 목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노조통합은 조합원 유형의 변화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며 통합 범주를 기술하는 것은 이러한 유형에 의해 구분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할 수 있다.

외국 사례에 견주어 금융노조 지부들의 노조통합의 유형을 규정한다면 한미은행과 씨티은행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등통합으로 분류할 수 있다. 대부분의 노조 통합이 조합원 수, 규모와 관계없이 대등한 조건에서 통합이 이루어지거나 혹은 통합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통합노조 지도부의 선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거권을 배정함에 있어서 동일한 숫자로 조합원 수를 맞추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통합 유형은 통합과정에서 통합을 둘러싼 협상과 그에 따른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특히 인사, 임금체계 등 상이한 제도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제는 각 노동조합의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접점이 되고 있으며, 노동조합 통합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 노동조합 통합에 대한 조합원 및 직원들의 반응과 의식

본 연구를 위한 설문조사는 금융노조 산하 5개 시중은행의 조합원 및 직원(비조합원인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노조 통합 이후 노조 통합의 필요성, 노조 통합과정에서 금융노조의 조정과 중재 역할, 노조 통합 이후 제도적(교섭력, 조직력 등) 평가를 주로 살펴보았다. 특히, 이들 주요 내용들의 종합적인 평가는 46.5점(100점 만점 기준, 5점 척도 2.86)으로 노조 통합 이후 제도적인 평가는 상대적으로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이번 설문조사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은행합병과 노동조합 통합 문제이다. 응답자들은 합병은행 이후 “노동조합이 통합되어야 한다”(4.07, 81%)는 의견을 갖고 있었으며, 노동조합의 통합 시기는 “1~2년 이내에 통합되어야 한다”(70.9%)는 의견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편 통합 노조 집행부의 구성 방식으로 단일위원장제(50.7%)와 공동위원장제(41.7%)에 대한 의견이 거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표3]). 노조 통합이 지연되는 이유로는 △조직간 이기주의(29.7%), △노조 집행부의 기득권 유지(23.7%), △조합원간 정서적·문화적 차이(23.8%)를 꼽았다([그림2]). 그리고 노동조합 통합 과정에서 금융노조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 그리고 조정 역할에 대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절반 가량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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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노동조합 통합 이후 조직 내부 평가 문제(제도적 측면)이다. 응답자들은 노동조합 통합 이후 조직 내부 평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면 노조통합 과정에서 조합원 의견수렴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편”(25.4%)이라는 의견보다 “긍정적인 편”(36.5%)이라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 통합의 주된 목표 설정으로 △단체교섭 등의 대 사용자 교섭역량 강화(33.4%), △노동자들의 내부 통합력 강화(23.1%), △사용자와의 협력적 노사관계 조성(22.5%), △노동조합의 효율적 운영(15.8%)을 꼽은 반면에 산별노조의 위상과 역할 강화를 위한 노력은 5%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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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조통합 과정

노동조합의 통합은 외부의 환경변수, 즉 은행합병을 계기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수세적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기업별노조에서 금융노조로 통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강한 독립성을 유지하던 각 지부들이 은행합병이라는 외부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조를 통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하나의 조직으로 출범한 마당에 노동조합 또한 통합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조통합 과정을 보면 ‘지도부의 선택’이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외부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 즉 수세적 측면만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합병 이후 과제로 제기되는 제도통합에 대해 각 노조 지도부가 취하는 행동이나 태도는 합병 이전 소속 조합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한 협상과정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 지도부는 통합 이후에 자신들의 지위가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반대할 수 있으며, 조합원들은 노조 통합 이후에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사례에서 본 노동조합들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사례로 든 노동조합 통합과정에서는 노조통합에 대한 반대 혹은 지연되는 이유가 노조지도부와 조합원에 의해 동시에 제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노조통합을 자신의 이해관계 관철의 통로로 바라보는 조합원들을 배경으로 통합 집행부를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와 관련된 사항들이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합병은행에서 노조통합을 반대하는 특정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제도통합 이전에 노조통합을 하게 될 경우 어느 은행 출신이 집행부를 장악하는가에 따라 출신에 따른 차별 대우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우려를 배경으로 집행부의 선출방식, 즉 선거권을 가진 조합원 수의 공정한 배분이라는 쟁점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통합집행부 선출을 통한 노조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도록 자사 출신이 집행부를 장악해야 한다는 조합원의 심리, 그리고 이러한 조합원의 심리에 기댄 노동조합 간부의 집행부 장악의지가 노조통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4. 노조통합 협상과정

앞에서 본 선행연구에서는 노조통합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지도부의 역할, 특히 통합(준비)위원회라는 통합과정을 주도할 주체의 형성이 중요하며, 통합노조의 대표성을 중심으로 집행부 구성, 대의원배정, 통합노조의 명칭 등이 중요한 협상의제로 대두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또한 통합노조의 구조나 정책, 사업 등에 관한 사항 등은 일정기간 이후에 정하는 과도기 설정이 성공적인 통합요인이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사례에서 본 노동조합들의 경우는 사실상 통합은행의 인사, 임금제도 등 제도통합을 이루는 기간이 노조통합으로 가는 과도기로 설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즉, 노동조합 자체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도기 설정보다는 은행과의 관계에서 제도통합 등과 관련된 과도기가 불가피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내용적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조통합을 위한 협상과정은 집행부 선출을 둘러싼 쟁점으로 압축되고 있다. 대의원 수의 배정, 조합원 수의 동일한 배정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합병 이후의 입사자에 대해 어느 쪽으로도 조합가입을 받지 않고 비가입 상태로 두는 경우가 많고, 통합집행부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 배정 시 동일한 선거인 수를 맞추는 형태로 나타타기도 했다. 

다음으로, 영국노총(TUC)이나 호주노총(ACTU) 사례에서 나타난, 노조통합과정에 대한 상급단체의 개입이 금융노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체 조합원들의 절반 가량이 금융노조의 조정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를 놓고 판단하면 금융노조의 조정역할에 대한 찬성 정도가 가장 낮은 곳은 국민은행(2.93점)과 주택은행(2.95점), 한미은행(3.00점) 등이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 조합원들의 찬성 정도는 높다. 이들 3개 지부의 찬성률이 낮은 것은 상대적으로 은행과의 노사관계 형성에서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거나 통합대상 노조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한미은행의 경우). 또한 규모가 크고 서로 비슷한 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부 조정보다는 자체의 힘에 의해 균형점을 확보하려는 의도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경우). 국민-주택은행과 합병한 국민카드에서는 국민-주택과 조합원 수, 규모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열세한 조건에 있었기 때문에 금융노조의 조정역할에 대한 찬성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노조가 각 지부의 노조통합 과정에 개입하기 어려웠던 조건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노조통합에 대한 방향과 방침을 상급단체 차원에서 정했던 영국이나 호주와는 달리 금융노조에서는 은행 구조조정이라는 외부 변수에 의해 하부 조직의 통합 요인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요인 때문에 하부조직 간 다양한 조건 차이에 따른 세부 지도지침을 사전에 준비하기 어려웠고, 쟁점사항에 대한 조정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실제로 금융노조의 어느 간부는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재편하기 위한 금융노조로의 통합과 달리 “조합원의 이해관계와 집행부 선출이라는 노조 대표성이 직접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상급단체가 개입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지적했다. 금융노조라는 상급단체와 각 지부 간에는 친소관계나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개입이 어렵고, 자칫 산하지부의 문제가 금융노조 전체의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둘째로는 은행합병 이후 노조통합의 선결조건으로 제기되는 각종 제도통합 과정에서 금융노조가 정책적 개입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던 점을 들 수 있다. 합병 이후 제도통합은 단순히 새로운 제도를 형성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부 조합원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구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상급단체 차원에서 정책대안을 모색하고 조정역할을 자임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금융노조의 조정·개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본 연구조사의 대상 노동조합들의 통합은 엄밀한 의미에서 노조통합 사례라 할 수 없다. 국민은행 지부가 통합노조로 출발하기는 했지만, 각기 선출한 집행부가 순번제로 대표위원장을 맡는 체제이기 때문에 사실상의 노조통합은 통합집행부를 선출하는 것으로 완결이 될 것이다. 노조 내부에서도 여전히 통합 이전 출신은행에 따른 분리감이 존재한다고 평가하고 있어 완결된 통합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어 아직 형식상 통합이 화학적 통합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통합집행부 선출 이후 조직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더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Ⅲ. 글을 나가면서: 노동조합 통합의 특징과 시사점

각 은행의 합병 이후 노조통합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은행 간 합병에 대해 거의 대부분의 노동조합이 반대하고 있다.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확신하기 어려운데다 자신들이 개입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외부의 압력이나 은행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들이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또한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노조 간에도 불신과 갈등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기업 간 합병에서 합병에 대한 조직구성원들의 저항이 크거나 두 조직 간 사회문화적 차이가 클 경우 단계적으로 통합의 정도를 높여가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둘째, 은행별 노사관계에 대한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같은 은행권이면서도 노동조합의 역사나 노사관계 과정에서 드러나는 은행별 노동조합의 역량이나 노사관계에 대한 판단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앞에서 언급한 이유와 함께 자기은행에 대한 충성도 또한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 특히 독자생존이 가능한데도 정부나 외국자본에 의해 합병이 이루어진다고 인식하는 경우에는 자기 은행에 대한 충성도는 매우 높게 작용한다. 이런 경우 예외 없이 인수합병을 반대하며 자기은행의 독자생존이나 독립적인 경영에 대한 주장이 강도 높게 제기된다.

셋째, 무엇보다도 합병 이후 은행 간 임금, 직급체계와 승진경로, 연령이나 경력 등 인적자원의 차이가 노조통합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집행부나 조합원들은 인수하는 입장이든, 인수당하는 입장이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거나 혹은 현재의 고용을 유지하는 가장 주된 통로로 노동조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합병 은행 내에서 통합노조의 주도권을 어느 쪽이 장악하는가가 가장 주된 관심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노조통합을 했거나 노조통합 논의가 진전되고 있는 노동조합들은 대체로 임금, 직급체계, 각종 근로조건 등 제도통합이 이루어진 곳들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노조통합보다는 제도통합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게 강했다. 이처럼 제도통합이 중요한 이유는 은행의 교차인사 때문이다. 은행 특성상 수십에서 수 백개의 영업점이 존재하고 합병은행에서는 점포 간 이동이나 인사발령에 있어 하나의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데, 제도통합이 안 된 상태에서는 각자 자신들이 불이익을 당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넷째, 노조통합 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쟁점은 결국 집행부를 둘러싼 것들이다. 합병은행 간 조합원 수가 비슷한 경우 특히 이러한 현상이 크게 나타나는데, 선거권을 둘러싼 조합원 수의 균형, 대의원 배정 등이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쟁점은 합병 이후 신규 입사자들의 소속을 어디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거나 상대적으로 조합원 수가 적은 곳으로 가입시키는 사례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자기은행에 대한 충성도(자사 이기주의), 상대적 불이익처우에 대한 불안감, 합병과정에서 나타나는 노동조합 간 갈등 양상들이 종합적으로 집약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대부분 은행들은 노조통합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통합은행 노사관계의 안정이라는 측면과 함께 조직 구성원 사이의 융화가 은행경영에 필수적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금융시장에서 은행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면, 합병은행에서 노조통합은 노동조합의 결정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제도통합이라는 사전 과정이 우선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는 결국 노사간 교섭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은행 측이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합병을 결정하고 난 이후, 합병과정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정하지 않을 경우 상당기간 내부 진통을 겪는다는 것을 각 사례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합병과정에서 혹은 합병 이후 한쪽이 상실감을 느끼거나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리고 어느 한쪽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커질 경우 조직 간 갈등이 증폭된다는 점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앞에서 살펴본 사례는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 회사간 합병과정에서 주요하게 쟁점이 되는 고용과 인사, 임금, 근로조건 등의 영역에서 노사간 협의과정을 충분히 거침으로써 노조의 저항이 수그러들었고,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면서 구체적인 합병과정에서 노조의 협조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노조통합 과정에서 사전 준비를 충분히 못 했다는 점이다. 금융노조 산하 지부의 사례를 보면 은행 합병 이후에도 일정기간 동안 노동조합들이 독립적인 활동을 진행하면서 통합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상호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대등한 관계에서 자사 이기주의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은 조합원 수의 배정을 둘러싼 집행부의 거취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다는 평가에도 드러난다. 

이것은 앞에서 지적한 각종 제도의 통합을 위한 협의과정이 합병 이후에 진행됨으로써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은행이 특히 유의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노조통합에 대해서는 조합원만이 아니라 은행도 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노조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개입이 아니라 노조통합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한 제도통합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충분한 노사협의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으며, 피합병은행의 조합원들이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이나 차별의식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