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공화국과 건설노동자의 기본권

노동사회

부동산공화국과 건설노동자의 기본권

편집국 0 3,654 2013.05.29 08:12

부동산에 미쳐 돌아가고 있는 부동산 공화국 한국에서, 국회를 바라보고 있는 건설노동자들의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국회 안 논의 상황이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는 <부동산 주택관련 법안> 때문이 아니다. 상정조차 되지 않은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과 국회의원의 관심 밖에 있어 법안소위에서조차 미끄러진 <건설근로자 고용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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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민주노총 ]

“아파트는 금값 건설노동자는 똥값”

지난해 6월 한 달간의 파업투쟁을 진행한 대구·경북 건설노동자들이 외친 구호가 있다. 바로 “아파트 값은 금값, 건설노동자 임금은 똥값”이다. 2003년을 전후로 재건축·재개발을 중심으로 아파트가격이 수직상승하면서 왜곡되어 있는 건설산업의 구조를 더욱더 기형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2000년 이전 한국의 건설산업은 공공공사 70% 민간공사 30%의 구성을 보였다. 그러나 2006년 107조라는 사상 최대의 수주액수를 달성할 당시를 살펴보면 공공공사 30% 민간공사 70%로, 수년 만에 구조가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사상 최대 수주액 107조 속에서 70%를 차지하는 민간공사의 핵심은 바로 전국을 투기지역으로 만든 민간아파트공사였다. 전통적으로 다리나 터널, 댐 등 토목공사를 주로 하던 건설업체들도 이제는 돈이 되는 아파트공사로 몰려든 지 오래다. 대림의 ‘e-편한 세상’이나 삼성의 ‘래미안’이 처음으로 광고를 쏟아 붓기 시작할 때만 해도 시공기술보다 광고에 돈쓰는 풍조를 술자리에서나마 걱정하던 건설산업의 분위기는 이제 180도 완전히 달라졌다. 신문광고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파트광고, 지역의 분양광고, 개발에 투자하라고 집집마다 전화를 돌리는 부동산회사, 그리고 모든 국민의 부동산 투기꾼화가 바로 오늘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아파트의 부실시공 문제를 제기하면, 그 지역 부녀회에서는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안전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값 떨어진다며 쉬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평당 수천만원 하는 아파트, 일년에 수백억의 이익을 내는 건설회사들, 한해에 5조 9천억의 이익을 낸 포스코. 그러나 그 현장에서 일하는 200만 건설노동자는 기이하게도 점점 더 임금이 하락하고 있다. 2005년에는 전체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이 7% 인상됐는데, 건설노동자만은 유독 -0.7%로 물가인상의 반영은커녕 더 임금이 떨어졌다. 수천억짜리 공사든 몇천만원짜리 공사든, 민간공사든 공공공사든, 어떤 현장에서도 건설노동자들은 휴게실이 없어서 공사현장 바닥에서 시멘트 포대나 스티로폼을 깔고 휴식을 취한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2004년부터 전면적용 되었지만,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고 있는 건설노동자들 중에서 실제로 급여를 받는 노동자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 하루에 2,000원씩 적립해서 일년 꼬박 일하면 50여만원을 적립하게 되는 퇴직공제제도도 실질적으로는 실행이 안 되고 있다. 

현재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비정규직도 대기업 비정규직은 상황이 다른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는 이러한 상식에서조차 벗어나 있다. 원청회사가 삼성이나 현대건 이름 모를 중소 건설업체건 간에, 건설노동자들은 월평균 110만원대의 저임금, 주당 70시간의 장시간 노동, 하루에 두 명이 죽어나가는 산업재해, 4대 보험 구경도 못하는 현실에 ‘공평하게’ 놓여 있는 것이다. 2005년에는 굴지의 정유회사인 SK를 비롯한 울산 산업단지에서, 2006년에는 소리 없이 세계를 경영한다는 포스코 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은 화장실, 휴게실, 탈의실 같은 누려야 할 최소한의 인권마저 유린된 채 파업을 하다가 구속이 되고, 급기야 하중근 열사가 경찰의 살인 폭력에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만악의 근원, 다단계 하도급 구조

이러한 상황은 건설산업의 다단계하도급 구조에서 비롯된다. 외국의 건설업은 50% 이상이 직영공사를 하고, 하도급을 주더라도 원도급과 하도급의 1단계 도급밖에 없다. 또한 유럽이든 일본이든 간에 90% 이상이 상용직을 고용하고 있다. 즉, 원도급 회사가 직접고용해서 직접공사를 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도급을 준다고 하더라도 전문건설업 이상의 도급은 없고, 일부 국가에서는 동절기 해고를 제한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이야기한다. 건설공사 품질의 핵심은 기능인력이기 때문에 건설회사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건설노동자를 우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한국은 건설노동자를 시공의 소모품으로, 아니 인간취급도 안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먹고 싸기 위한 기본적인 시설조차 제공하지 않고서 평당 수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짓고 있고, 그렇게 건설노동자를 기름짜듯 쥐어짜서 지어낸 아파트는 주거의 공간이 아니라 제일순위 투기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건설산업이 7~8단계에 이르는 불법 다단계하도급 구조를 가지면서, 중간에 공사현장에 삽질 한번 안하고 공사를 따서 넘기기만 하는 건설업체가 수두룩하게 되었다. 이러한 공사브로커들이 몇 단계에 걸쳐 판을 치다보니, 실제 공사는 설계가의 40%대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이로 인해 건설업체들은 공사비를 부풀려서 제출하게 되고, 지난 몇 년간 이러한 공사비 부풀리기가 문제로 지적되면서 최저낙찰제가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건설산업의 다단계도급 구조는 그대로 둔 채 확산된 최저 낙찰제는 공사비 거품을 빼는 것이 아니라 건설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입찰단계에서 60%대로 낙찰을 받으면 원청업체들은 그걸 하청의 덤핑단가로 후려치고, 이것이 몇 단계 공사브로커를 거치면서 결과적으로 말단의 건설노동자들 임금을 후려치게 되는 것이다. 공사단가가 점점 낮아지면서 건설현장에는 저임금의 외국 인력이 넘쳐나고 있다고, 그야말로 눈이 팽팽 돌 정도로 노동자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건설노동자들의 고용관계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체불임금 싸움을 하다보면, 원청 이름만 알고 들어간 현장에서 해당 노동자를 고용하고 임금을 책임지는 사장은 몇 단계를 거쳐 얼굴도 모르는 사람으로 되어 있는 경우를 수두룩하게 보게 된다. 현장에서 일수 찍듯이 죽어라고 꼬박꼬박 일했는데, 막상 실업급여나 퇴직공제를 신청하러 가보면 이름도 안 올라가 있거나 일한 날이 며칠밖에 안된 것으로 되어 있어서 실업급여나 퇴직공제 몇 푼조차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 때문에 건설노동자 투쟁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건설산업의 다단계하도급 철폐요구는 끊이질 않았다. 노동조합의 의식적인 제도개선 투쟁현장이든 체불임금을 해결하기 위한 자연발생적인 투쟁현장이든, 어김없이 “다단계하도급 철폐”가 외쳐졌다.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단골 메뉴 중 하나가 불법 다단계하도급 문제였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건설노동자 체불임금, 살인적인 산업재해, 4대 보험 미적용의 제일 큰 원인이자 부실시공과 세금 포탈의 원인이 되고 있는 다단계하도급은, 그저 주문만 될 뿐 요리는 안 나오는 메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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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참세상 ]

피어린 투쟁으로 만들어진 건설민생법안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건설산업연맹은 2006년 초부터 “건설산업 다단계하도급 철폐 3개년 투쟁계획”을 세웠다. 그 첫째 단계는 시공참여자 제도 철폐, 불법도급 처벌시스템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입법 투쟁’이고, 둘째 단계는 건설현장에서의 불법 다단계하도급 근절 투쟁으로, ‘고발 및 현장의 대대적인 감시투쟁’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단계는 ‘현장정착화 투쟁’으로, 도급계약을 고용계약으로 전환시켜 도급노동을 근절시켜 나가는 투쟁이다. 이러한 3개년 투쟁 계획 속에 건설연맹은 2006년 상반기 건교부와 실무협의를 진행했고, 7월11일에는 “1만명 건설노동자 상경투쟁”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게서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 △불법도급 처벌 강화, △노동조합의 불법 다단계하도급 신고센터 참여 등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연맹 차원의 이러한 정책추진에 더불어 현장에서 투쟁이 폭발적으로 전개되었다. 2005년에 이어 전개된 건설운송노조의 2006년 4월 총파업, 5월의 타워 파업, 6월의 대구·경북건설노조의 총파업, 7월에 전국을 뒤흔든 포항지역건설노조의 파업투쟁과 포스코 점거농성, 8월의 올림픽 대교 고공농성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장의 폭발적인 투쟁 모두가 다단계하도급과 연계되어 있었다. 덤프노동자들이 한 달에 100만원 가까이 적자를 내고 신용불량자로 내몰려 분신기도를 하기에까지 이르는 구조적 원인 역시, 건설기계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다단계하도급의 문제였다. 이러한 다단계도급 구조 속에서, 공급과잉과 치솟는 기름 값 그리고 유가보조에서의 제외, 또 과적을 하지도 않는데 처벌은 운전자에게 하는 도로법의 문제 등이 덤프노동자들의 현실이었다. 2005년 투쟁으로 도로법이 개정되고 수급조절에 대한 법안이 상정되었으나,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문제는 역시 다단계도급의 문제였다. 

6월의 대구·경북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은 “시공참여자제도 폐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다단계하도급의 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토목건축현장에서 시공참여계약이 확산되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더욱 고착화되고 4대보험이 휴지조각이 되자, 대구·경북지역 건설노동자들이 아파트현장 최초로 지역총파업을 전개했던 것이다. 지난해 7월, 포스코의 불법 대체인력 투입으로 들불같이 번졌던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의 투쟁 역시도 처음에는 다단계도급 구조에서 휴지조각이 되고 있는 주5일제 시행과 노동시간 단축이 핵심적인 요구사항이었다. 이렇듯 건설현장 ‘만악의 근원’인 다단계도급 구조에서 파생되는 현장문제들이 건설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면서 폭발적인 투쟁으로 벌어지게 됐던 것이다. 

이러한 치열한 투쟁 속에서 지난해 7월 건설교통부와 합의한 △시공참여자 폐지, △불법 도급 처벌강화, △건설기계 어음지급 금지, △4대 보험 공사비 반영 등을 내용으로 하는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고, 사용자 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은 건교부의 입법예고 이후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과 이영순 의원실과 더불어 후속 입법과정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건산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었다. 건산법 개정안으로 시공참여자제도가 폐지되어 도급계약이 불법으로 판정된다고 하더라도, 현행 노동관계법에서는 여전히 시공참여자(소위 ‘십장’, ‘오야지’)를 사용자로 보기 때문에 체불임금 등이 해소되지 않을 우려가 있었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을 비롯한 제반 근로기준법 준수 문제와, 화장실, 휴게실, 탈의시설 등 기본적인 복지시설에 관한 문제 역시 건산법 밖에서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6년 11월, 단병호 의원을 통해 <건설근로자 고용개선에 관한 법률(건고법)> 개정안을 발의하게 되었다. 또한 이영순 의원실에서도 정부의 건산법 개정안에는 빠져 있는 “불법 도급 시 체불임금의 직접지급” 부분을 후속 발의하게 되었다. 

3대 건설민생법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지난해 12월부터 건설산업연맹은 <건설기계관리법>,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근로자 고용개선에 관한 법률> 등 3대 건설민생법안 쟁취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먼저,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안은 2005년부터 건설운송노조 덤프분과의 파업투쟁과 타워크레인기사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의 요구로 제기된 법안이다. 이 법안은 △건설기계의 수급조절위원회 설치, △건설기계의 표준임대차 계약서 체결, △건설기계의 검사제도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현재 건설기계의 평균 가동률은 50%이다. 즉 공급과잉으로 인해 건설기계의 덤핑이 횡행하고 있다. 이를 규율하기 위해 현재 신고제로 무한정 공급되고 있는 건설기계를, 등록을 통해 제한할 수 있게 한자는 것이 ‘수급조절위원회 설치’의 내용이다. 그리고 ‘표준임대차 계약서 체결’은 면허가 있는 건설업자와 건설기계가 직접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건설기계의 다단계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나 시공참여계약은 제외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건설기계 검사제도 강화’이다. 건설현장의 상징인 타워크레인은 건설기계로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검사제도에서 방치되어 중대재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 타워크레인의 건설기계 등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이 건설기계의 검사제도 강화이고, 건교부에서도 법안이 통과되는 즉시 타워크레인의 건설기계 등록을 약속 한 바 있다. 

다음으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은 건설현장의 불법 다단계도급의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시공참여자제도를 철폐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불법 도급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했다. 종전에는 불법 도급이 고발되어도 지방자치단체에 처분 권한이 있고 과징금 정도의 처벌이어서 실효성이 없었는데, 개정안에는 이를 강화하여 3년 이하의 징역과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매기고 있다. 더불어 원도급사가 하도급의 불법 도급을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가되었다. 또한, 건설기계의 어음 지급을 금지하고, 공사비에 4대 보험 반영을 의무화하는 규정과 더불어, 하도급단계의 전반적인 보호제도 강화와 건설업의 겸업제한 폐지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한편 정부 개정안과는 별도로 이영순 의원실에서는 “불법 도급 시 면허가 있는 건설업자가 임금을 직접 지급”하도록 하는 추가 입법을 발의하고 있는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건설근로자 고용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불법도급으로 판정되면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불법 도급 시 고용의제”이다. 이 밖에 △건설현장에 화장실 등을 설치하도록 규제하는 것, △면허가 있는 건설사업주가 근로계약서 등을 교부하도록 되어 있는 기존 법안에 ‘처벌 조항’을 신설하는 것, △종전에는 건설퇴직공제제도 당연적용 사업장의 경우에도 미가입 시 과태료 200만원 정도의 처분만 받고 있던 것을, 당연 성립으로 개정하여 퇴직공제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건설노동자의 체불임금과 관련하여 직상수급인 연대책임 규정을 확대하여, 다단계 도급구조에서 발생하는 건설노동자의 체불임금에 대해 상위단계 도급과정이나 원수급인이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텅 빈 국회 거짓 약속… 다시, 모멸감을 추스르며

지난해 건설연맹은 11월29일 국회 앞에서의 집회를 개최하고, 12월에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당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전개했다. 이 투쟁의 결과로 건설기계관리법(건기법) 개정안은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를 통과했고, 건고법 개정안은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되었다. 그러나 건산법은 건교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2007년 2월 국회 상정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07년 2월 국회를 앞두고 건설연맹은 “건설민생 3개 법안 쟁취 추진단”을 결성하여, 1월부터 건교위, 환노위,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을 상대로 전국의 단위노조에서 면담투쟁을 전개했다. 2월에는 기자회견(12일)을 진행하고 국회 안에서 단병호, 이영순 의원실과 공동주최로 건설현장에 대한 사진전, 영화제, 증언대회 등을 개최했다. 2월22일에는 또 다시 국회 앞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국회투쟁을 전개하면서 건설노동자들의 가슴 속에는 다시 한 번 분노와 모멸감이 쌓이고 있다. 지난해 건설노동자들은 하중근 열사를 가슴에 묻었고, 덤프노동자들의 분신을 비롯해 전국에서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하면서 140여명이 구속되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국회는 건설노동자들의 절절한 생존권적인 투쟁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포항건설노조의 포스코 점거농성 이후 “정부 8개 부처가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서 종합대책을 세우겠다”니 어쩌니 호들갑을 떨 때는 언제고, 막상 건산법 개정안이 국회로 이송되자 여유만만이었다.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는 열린우리당의 집단 탈당을 핑계 삼아 한 달 내내 열리는 2월 국회에서 법안소위의 일정을 단 하루로 잡았고, 2월 국회에 논의하자던 건산법 개정안은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노동조합 간부들은 국회의원회관에 출근 도장 찍듯이 돌아다녔지만, 의원들은 대선캠프에 차출되어 상임위나 각종 소위가 성원조차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또 내년 4월에 있는 국회의원선거를 준비하느라 지역구에 사무실을 차리고 돌아다니느라 국회에서는 얼굴조차 보기가 힘들었다. 과연 2월 국회가 열리고는 있는 건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각 정당은 서로에게 책임전가를 하고, 상임위원장, 간사의원, 소위 의원, 의원 등이 각자의 처지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2월27일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가 열려 건고법 개정안이 심의되었지만 통과하지 못하고 4월 국회로 넘겨졌다. 이유는 “건설현장에 화장실 설치나 체불임금 등의 내용을 법에 담는 것이 맞느냐”는 ‘법리논쟁’과 더불어, “불법 도급 시 고용의제” 조항 등에 대한 거센 반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대의 핵심에 노동부가 있음은 물론이다. 건설현장에 화장실 설치하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가 하는 비참한 심정이다. 1월부터 환노위 국회의원을 만나고 노동부에 면담 요청을 했지만, 2월27일 법안소위가 열리는 그때까지 노동부나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그 법안의 내용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법안 심의도 하지 않고 있다가 2월27일 법안소위에서는 형식논쟁만 주절거렸던 것이다. 

2월27일에 법안소위에서는 건기법 개정안도 심의되었다. 이미 건교위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이지만, 건설기계 공업협회 등의 사용자단체가 수천만원짜리 반대 광고를 뿌리고 로비를 위해 법사위를 문턱이 닳도록 다니는 등 상황이 만만치 않아, 법안 소위 직전까지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몇 가지 조문만 수정하는 것으로 하여 가결되었다. 그러나 사학법과 부동산법을 연계한 정쟁놀음으로 국회파행 조짐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어, 3월6일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또 초조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법안인 건산법 개정안은 2월 국회에서 끝내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건산법 개정안이 상정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주택부동산법안이 정부입법으로 급하게 끼어 들어오게 된 정황도 있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집단 탈당으로 국회 건교위가 불안정하게 운영된 탓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다단계하도급 철폐로 이득을 보는 집단의 반대다. 다단계하도급으로 건설노동자가 죽건 말건, 아파트가 무너지건 말건, 불법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받아 정치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건설사업주와 정치인이 반대의 핵심에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200만 건설노동자가 죽어나가건 말건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하중근 열사 가슴에 묻은 이들에게, 연대 부탁드린다!

건설산업의 생산기반이 불법 다단계로 썩어나가고 있는 마당에, 이러한 근본을 살피지 않는 건설관련법제도는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 삼성의 아파트건 중소건설사의 아파트건 간에 그 아파트를 짓는 것은 똑같은 건설노동자다. 삼성이라고 특별히 건설노동자 상용직을 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단계구조 속에서 저단가로 철근을 빼돌리고 시멘트에 물을 타서 만드는 아파트. 말단의 건설노동자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다 “빨리 빨리!”의 도급 노동으로 찍어내는 아파트. 이러한 아파트를 도배지, 장판 좀 고급으로 처바르고 광고 열심히 해서 수십억짜리로 만들어 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부동산 공화국에서 건설사의 눈속임 광고와 투기 열풍에 휘말려 실제 건설산업의 구조개편과 건설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무관심한 사회풍조가 개탄스럽다. 

현재 건설연맹은 건산법의 건교위 추가 상정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2월 국회의 성과와 분노를 가지고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지난해 우리는 포항건설노조투쟁과 하중근열사투쟁을 전개하면서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연대에 감사를 드리면서도, 또 한편으로 연대투쟁의 폭과 깊이에 대해 반성한 바가 있었다. 이번 건설민생 3개 법안투쟁 과정에서도 건설연맹은 각계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에게 서명운동 동참을 요청한 바가 있다. 그러나 그 성과는 미미하다. 2월 투쟁이 건설연맹만의 투쟁이었다면, 이제 3~4월에 전개될 투쟁에는 노동계 전체와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연대투쟁을 부탁드리고 싶다. 이것이 하중근 열사를 가슴에 묻은 우리들이 함께 지고 나가야할 역사적 책임이며, 마음의 부채를 갚는 길이 아닐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