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합의 존중”속에 2단계 개혁 준비한다!

노동사회

“노사정 합의 존중”속에 2단계 개혁 준비한다!

편집국 0 2,749 2013.05.29 08:10

‘산재노동자의 보호’, 그리고 ‘효율성과 안정성’. 이는 산재보험 운영상의 두 가지 대원칙이다. 산재노동자의 보호가 산재보험의 근본적인 입법취지라고 한다면, 효율성과 안정성은 산재보험이 채택한 보험방식의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운영요소이다. 이들 두 원칙은 사실상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으로 분리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그럼에도 노사, 노정 간 그리고 노동 사이에서도 종종 충돌되고 있다.

산재보험이 효율성만 따지면서 산재환자의 보호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아예 말이 안 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무차별하고 무조건적인 산재환자 보호를 외치며 효율성과 재정안정성을 외면한다면, 이 역시 결국 그 폐해가 산재환자에게 돌아오는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산재보험제도를 없애고 근로기준법상 사업주에 의한 재해보상으로 회귀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면 아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문제는 그 어느 선에선가 적정한 요양, 재활, 그리고 생활보호의 범위를 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바로 최근 진행되고 있는 산재보험의 개정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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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한국노총 ]

산재제도 개정안에 대한 ‘한국노총의 시각’

“그동안의 산재보험이 요양관리, 재활서비스, 급여체계 등 제도 전반에 걸쳐 신속 공정한 산재근로자 보호라는 본연의 취지에 미흡하여 각계로부터 산재근로자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하는 한편 보험관리의 효율성을 기하도록 제도개혁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이는 지난해 연말의 산재보험제도 개선안 노사정 합의문의 전문에 있는 내용이다. 이 전문 문안은 노동계의 주장 속에서 다시 쓰인 것이다. 당초의 문안은 “그동안 제도운영이 현금보상위주로 흘러 요양관리, 재활서비스, 급여체계 등 제도의 질적 내실화에 소홀하여 각계로부터 산재보험제도의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체계를 시급히 구축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였다. 즉, 보험관리의 효율성과 재정의 안정성을 강조하였던 초안을, 실무단위에서의 논의를 거쳐 제도운영이 산재근로자 보호라는 취지상에 미흡하였음을 반성하고 이에 따라 산재노동자의 보호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도록 바뀐 것이다.

전문에 이어지는 제도개선의 네 가지 역점사항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요양 및 재활’ 분야에서는, 당초 “요양기준과 절차의 합리성”에 초점을 두었던 것을 산재노동자에 대한 “양질의 의료 재활서비스의 확충과 이들에 대한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것”에 방점을 찍도록 했으며, 또 ‘보험급여’ 분야에서는 “재해근로자 상호간의 형평성과 공정성 제고”에 의의를 두었던 것을 “저소득 근로자 및 재활근로자의 보장성 강화”를 우선토록 바꿔냈다.

이렇게 장황하게 합의문 전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번 산재보험제도 개정안에 대한 ‘한국노총의 시각’이라는 것이 바로 이 전문에 반영된 것임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개정 ‘형식’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굴러왔나

2004년 7월1일 산재보험제도가 40주년을 맞았다. 산재보험제도에 대한 노사정의 이해와 요구가 지극히 상반되는 속에서, 당시 정부는 산재보험제도 발전방향을 새로 수립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산재보험제도 발전위원회’(2006년 노사정위원회 산하 산재보험제도 발전위원회와는 다른 기구임)의 운영에 착수하였다. 

이 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개선 논의는 이후 급속히 악화된 노정국면 속에서 갈등과 대립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원인은 이 위원회가 태동단계에서부터 노동을 ‘이해당사자’로 몰아붙이며, 아예 참여를 배제한 채 개정논의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잇따른 공청회의 무산과 반대집회, 반대성명 끝에 정부가 2006년 2월10일 내놓은 산재보험제도 개정안(연구용역결과) 역시 노동계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개악안이었다. 양대 노총은 각각 2월 11일과 12일 이 연구용역결과가 곧 제도개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하며 반대를 천명하였다.

2월10일 발표된 연구결과 내용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산재보험의 독소조항들이 여과 없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후일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산재보험 개정논의가 악의적으로 왜곡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이 연구용역의 대표적인 독소조항들은 △휴업급여 지급기간의 인위적인 제한을 비롯하여, △산재보험과 국민연금 간 중복급여의 조정, △장해연금 및 상병보상연금 수준 삭감, △민사배상제도 폐지 또는 조정, △진료비심사 일원화, △사업주의 이의신청권 허용 등으로, 그 하나하나가 산재환자의 보호에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이들 중 그 어느 하나라도 현실화되었을 경우 어떠한 개선효과일지라도 충분히 상쇄하여 산재환자를 고통에 빠뜨릴 것이 분명했다.

한편 연구용역결과에 대한 후속대책으로 정부가 2006년 4월에 제기한 ‘산재보험제도 개선협의회’에 대해서, 한국노총은 잘못 태동된 개악안에 대해 들러리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분명한 반대를 표명하였다. 또한 그 이전인 2월에 이미 노사정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한 제도개정을 요구하며 의제를 제출한 상태였다.

다만 4월초 협의회를 위한 준비모임에 참여를 요청받으면서, 한국노총은 두 가지 전제 조건을 못 박았다. 첫째, 민주노총이 이 협의회에 참여하겠다는 방침과 이에 따른 협조요청에 대해 실무단위의 논의와 분리된 책임 있는 논의단위(최소 사무총장급 이상)의 운영, 둘째 단순한 의견수렴기구로 활동이 국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이행 담보 등이었으며, 결국 이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써 협의회는 구성조차 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산재보험의 개정논의가 결국 노사정위원회로 이관되었던 것이다.

노사정위원회 참여한 한국노총의 대응 방향

한국노총은 이후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통해 완벽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성과를 거두었다. 먼저 ‘요양 및 재활분야’와 관련하여, △재활급여의 신설을 비롯하여 △산재승인 전 ‘선 치료’의 보장, △요양비 중 본인부담분의 해소, △날인제도의 폐지를 통한 진입장벽의 완화 등이다. 이중 ‘요양신청단계에서 날인제도의 폐지’ 문제의 경우 이후 노사 간, 그리고 노동 사이에서 수많은 논란을 거쳤다. 그 결과 현재의 노사정합의에 담겨있듯 사업주 날인 서식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산재노동자의 입장에서 사업주 날인을 유명무실화하고, 오히려 의료기관이 사업주 날인 없이 산재노동자를 대신하여 요양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귀결되었다.

이와 함께 요양관리의 미비로 인한 무분별한 ‘장기화 문제’가 노동자 입장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의료기관이나 주치의의 역할과 책임을 확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산재환자에게 적극적인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선 치료의 보장이나 재활급여의 신설, 재활치료의 수가 반영 등은 산재노동자에게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요양치료와 재활체계로의 진입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전체 요양기간의 단축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써, 일방적으로 산재보험 재정의 증대로 이어지지 않음을 분명히 하였다.

다음으로 산재노동자의 생활과 직결되는 ‘보험급여’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부와 사측이 제기했던 △전체 보험급여의 일률적인 조정, 예컨대 경영계가 이야기하는 장해연금을 최대 70% 이하로 제한하는 감액, △휴업급여 지급기간의 제한, △민사배상제도의 폐지 등에 대해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국노총은 사회보험으로서 산재보험의 특성에 비춰 일부 급여항목의 조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그 결과가 △저소득근로자에 대한 보험급여의 인상과 △60세가 넘는 재직노동자에 대해 휴업급여가 지속적으로 인상되는 것 등으로 조정한 것이다.

또한 산재보험제도 개정에 있어서 한국노총이 방점을 찍은 것 중 하나가 ‘보험제도의 관리운영 문제’였다. 그동안 한국노총은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의 일방적인 제도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노사 참여에 의한 산재보험제도의 정책결정과 보험운영이 어느 정도 이뤄지도록 조정함으로써, 산재심의, 산재심사, 공단의 운영 등에 있어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노사참여 공간을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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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한국노총 ]

사회적 대화 그리고 사회보험으로의 진일보

한편 이번 산재보험제도 개정에 있어서 주목할 것은, 정부의 주도가 아닌 노와 사가 산재보험제도 개선의 주체로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도개선방안을 도출해냈다는 점이다. 이는 향후 산재보험제도의 발전방향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변화, 즉 산재보험제도가 노사에 의한 운영으로 돌아서도록 하는 실질적인 전기이자, 강력한 추진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사실 지금까지의 제도개선 과정은 ‘경영측의 로비나 압력-비민주적인 의견수렴-노동측의 반대성명을 통한 압박-투쟁의 천명’ 등을 거쳐,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와 입법화가 이뤄지는 게 보통이었다. 뒤늦은 반대투쟁에도 불구하고 개정제도는 대부분 현실화되는 게 일상이었으며, 앞에서 이야기한 노사정 합의 이전의 2004년과 2005년이 실제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대화의 틀 속에서 노와 사는 산재보험제도에 대한 모든 개선의제를 망라해냈으며, 이에 따른 우선순위를 정하고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뤄낸 것이다.

또한 이번 제도개선의 내용적 의의로, 산재보험이 이제 본격적으로 사회보험으로 발전하는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재활체계 개편 및 ‘선 치료 후 정산’제도의 도입, △저소득근로자에 대한 휴업급여의 확대, △관리운영체제에 대한 노사의 참여확대 등 산재특위에서 가시화된 성과는 향후 완성된 사회보험으로서 산재보험 개혁을 위한 충분한 기반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자. 요양종료 후의 재활훈련과 이에 따른 일정한 생계보장 급여가 노동자의 고유한 권리로서 확보되었으며, 이는 산재보험이 현금보상에서 재활체계를 중시하는 사회보험체계로 넘어가는 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저소득 근로자의 휴업급여 인상, 선 치료 후 정산제도의 도입, 요양비 중 본인부담분의 해소, 의료기간의 요양신청제도 등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취약계층 노동자를 산재보험으로 끌어안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노동은 산재보험기금의 운영이나 제도의 운영단계에서 부분적이고 형식화된 참여에 그쳐왔다. 그러나 이번 개정을 통해 산재심의나 산재심사, 공단의 운영에 있어서 노사참여를 확대하고 내용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일대 변혁을 일궈냈다. 이제 공익이라는 이름을 둘러쓰고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던 심의기구, 아침식사 시간 1시간 만에 결정되는 산재심의, 그리고 일방적인 공단운영 등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높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치밀한 대응 준비할 때

산업재해의 예방과 보상의 문제가 이번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제도개선 합의로 ‘완결’되었다고 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양대 노총의 평가는 공히 부족한 부분을 적시하고 있으며, 그 해결이 이후 노동운동의 과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천만원 미만 무면허 건설공사 등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의 확대, △재활인프라의 구축과 재활급여의 현실화, △원직장 복직의 법제화, △출퇴근 재해의 인정 등이 대표적인 우선과제이다.

이러한 과제들을 노사정합의를 통해 한꺼번에 현실화시키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일이지만, 이들 조항의 경우 다른 의제에 비해 각기 단기간의 현실화를 어렵게 하는 원인들이 있었다. 이는 단순한 재정부담의 문제만이 아니라, 관련 법규의 중복 및 조정 문제, 기초적인 실태조사의 미비 등이었다. 그러한 원인들을 해소함으로써 하루빨리 2차 개선요구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물론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 대타협을 통해 이러한 의제들을 현실화시키는 방안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앞에서 언급한 연구용역결과의 독소조항들은 그 어느 하나도 현실화돼서는 안 됐다는 점에서 시기적 가능하지 않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노사정, 특히 당사자인 노동계로서도 산재취약계층의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실태자료나 효과적인 보호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원론적으로 ‘무조건 확대’를 요구하는 식에 멈췄을 뿐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2006년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통해 노동계는 물론 노와 사, 그리고 정이 취약계층에 대한 산재보험의 보호확대를 조속히 확보해야할 것이다. 이를 수년씩 미룰 수 여유도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이미 현재 법규상 정규직, 비정규직을 불문하고 산재보험이 당연 적용되고 있음을 모르는 것인지, 아무런 대안 없이 “비정규직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해달라”고 요구하는 수준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산재보험과 국민연금 간 중복급여의 조정, △민사배상제도의 조정, △연금수준의 조정 등 경영계나 일부 사회복지학계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연구조사와 산재환자의 보호실태 파악, 산재환자의 현장 복직문제와의 연계 속에서, 이를 조정하는 대안의 마련이 필요하다.

합의 존중과 동시에 시작될 ‘2단계 개혁’

한국노총은 지난해 노사정 합의를 통해 산재보험의 개혁이 마무리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노사정 합의의 정신이 입법화 과정에서 존중될 수 있도록 견제와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는 한편, 2단계 개혁을 현장의 힘으로 쟁취하기 위해 정책연구와 현장의 조직화에 나설 것이다. △원직복직의 법제화와 △출퇴근재해에 대한 보호, △진폐재해자 등 특수상병 노동자에 대한 보호의 확대 등을 쟁취하기 위한 제도개선활동과 함께,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고 또 노동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권리를 단체협약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다양한 현장활동을 조직해나갈 것이다.

산재보험제도는 노동자의 산업재해와 관련한 사회안전망으로서, 건강한 노동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기반으로서, 우리 노동운동이 견고하게 지켜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운동이 진정으로 제도운영의 주인으로서 참여하고 책임질 수 있는 제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