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의 경제교과서 장악과 재벌이 꿈꾸는 아이들의 미래

노동사회

전경련의 경제교과서 장악과 재벌이 꿈꾸는 아이들의 미래

편집국 0 5,813 2013.05.29 08:28

지난 2월9일 교육부와 전경련은 『차세대 고등학교 경제교과서』(이하, 차세대 교과서) 모형을 개발하여(필자와 저작권자 모두 교육부와 전경련 공동명의) 각 고등학교에 1부씩 보급하고 교과지도에 활용토록 할 것이라 발표했다. 이후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간의 첨예한 갈등과 논란을 거치면서, 교육부는 결국 5월 중순에 일선 학교가 아닌 시도교육청과 소속 도서관 등에만 이 책 1,500부를 배부했다. 그러나 전경련은 교육부의 이러한 조치에 반발하여 자신들이 직접 주문을 받아 교사와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글에서는 이 교과서가 탄생하기까지 어떠한 과정이 있었는지, 그리고 여기에 노동 및 사회운동 진영은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또한 이 교과서와 현행 경제교과서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자본 중심의 세계관을 학생들에게 교육하기 위한 이런 시도들에 대항해 노동 및 사회운동진영에서 준비하고 고민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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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와 전경련이 공동 개발한 고등학교 '차세대 경제교과서' 표지. 왼쪽부터 차례로 처음 개발 직후의 표지, 교육부가 제목과 필자를 바꾸고 배포한 표지, 현재 전경련이 직접 배포하고 있는 표지 ]

재벌의 공교육 장악, 교육부의 헌법정신 위반

2003년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우리나라의 ‘반기업 정서’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반기업 정서가 형성된 바탕에는 사회와 경제 과목 관련 교과서의 영향이 가장 크다며 일방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교육부는 이러한 요구사항을 대부분 반영했다. 2005년에는 보수적 학자들이 교과서포럼을 만들어, 『경제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에서 같은 주장을 하면서 ‘대안 경제교과서’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그해 10월에는 전경련, 상공회의소, 재경부, 한국은행, KDI 등 5개 기관이 현행 초·중·고교의 사회 및 경제 교과서와 지도서가 “반기업적”, “반시장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수정을 요구했는데, 교육부는 이러한 요구사항들도 대부분 수용했다. 

한편, 전경련은 2006년 3월에는 미국 중학교 경제교재를 거의 그대로 번역하여 『즐겁게 배우는 체험경제』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이 책 역시 수많은 항의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교육청 인정도서 심사를 통과하여 일선 학교에 배부됐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차세대 교과서』는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차세대 교과서는 2006년 2월 교육부와 경제5단체가 경제교과서 개발을 위해 각각 개발비 5,000만원씩을 분담하는 협약을 맺고 올해 초 교육부·전경련 공동명의로 발간한 것으로서, 자본의 논리에 치우친 편향적인 교과서라는 문제 때문에 각계각층의 항의를 받고 있다.

『차세대 교과서』를 만든 이유라는 소위 반기업 정서가 생기게 된 데는, IMF 이후 재벌의 부도덕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재벌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커지고 사회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된 탓이 크다. 그런데 재벌을 대변하고 있는 전경련은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은 도외시한 채 문제의 원인을 애꿎은 경제교육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들을 교과서에서 전면 삭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현 정부는 이들과 한통속이 되어 전경련의 삭제 요구를 받아들였다. 대부분 그들이 추천하는 사람들만으로 교육과정 및 교과서 개발진과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이와 같이 편향적인 교과서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이 사태는 재벌의 사적 이익단체일 뿐인 전경련이 공교육의 근간을 장악한 것이며, 헌법 정신에 입각해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교육부가 헌법을 위반하고 재벌의 힘에 굴복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온갖 비판을 받아도, 세상 밖으로 당당히 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국사회교사모임과 전교조, 민주노총, 그리고 노동부 산하 단체인 한국노동교육원 등은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경제교육 실태를 비교·분석하여, 현행 경제 관련 교과서가 오히려 지나치게 친시장적이고 반노동적이므로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한국노동교육원, 『선진 5개국 학교노동교육 실태』, 2003년 12월). 물론 이런 입장은 거의 반영이 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논란이 확산되면서 전교조와 전국사회교사모임은 2006년 2월 교육부와 경제5단체의 경제교과서 협약 문제, 『즐거운 체험경제』 발간 문제 등에 대해 각각의 명의로 비판 성명서를 발표했다. 필자 또한 전국사회교사모임의 명의로 많은 언론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다양한 매체들이 이 사태와 관련하여 심층적인 기사를 다루었다. 4월5일에는 전국 사회교사 614명이 서명을 모아 교육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또 올해 2월9일 교육부와 전경련이 『차세대 교과서』 개발·활용에 대해 발표하고 난 후에도 전국사회교사모임과 전교조,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 되어 지속적으로 항의했고 언론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계속 보도를 해왔다.

이러한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자 차세대 교과서는 잠시 인쇄가 중단됐으며, 결국 교과서 필자에서 교육부의 이름을 빼고 발간하기로 했다. 한편, 이에 전경련이 반발하자 교육부는 이 교과서를 쓴 집필자 10명이 소속된 한국경제교육학회를 필자로 내세우고, 저작권자는 원래대로 교육부와 전경련 공동 명의로 하기로 했다. 또, 문제가 된 내용은 수정하지 않고 원래 계획대로 인쇄하여 고등학교에 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에 부딪히자 결국 교육부는 5월 중순에 책 제목을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 연구』로 바꾸고 학교를 제외한 시도교육청과 소속 도서관 등에 1,500부를 배부했다. 이에 전경련은 애초 계획대로 교과서 활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에 항의하며 자체적으로 교과서를 배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결코 공정하지 않고 한쪽으로만 치우친 경제교과서가 일선 교사와 학생들에게 폭넓게 보급되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개발진도 필자도 전경련의 친구들, 앞으로도 주욱~ 

『차세대 교과서』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경제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전에 그 교과서가 어떤 내용들로 채워질지 결정하고 뼈대를 구성하는 ‘경제교육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러한 경제교육과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이 중요하다. 첫째, 경제교육과정 개발진이, △일선에서 경제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들 대표, △사범대에서 경제교육을 담당하는 학자들의 연구모임 대표, △교육연구기관 대표 등으로 공정하게 구성돼야 한다. 그런데 전경련 측은 이번 경제교육과정을 넘어 차기 경제교육과정까지 장악하기 위해, 『차세대 교과서』를 쓴 필자 중 3명과 평가원 담당자 1명만으로 경제교육과정 개발진을 구성했다. 이렇게 경제교육과정을 전경련의 입맛에 맞게 만들고 그에 따라 교과서를 만들었으니 당연히 내용도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 경제교육과정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서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자문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전경련은 ‘경제교과서발전자문회의’라는 자문기구를 만들면서 이 기구 역시 대부분 자신들의 논리들을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들만으로 구성하였다.

또한 이번 경제교과서 개발 과정의 절차적인 문제점도 지적할 수 있다. 즉 교과서 개발 후에 교과서 심사를 해야 하는 교육부가 심사를 받아야 할 전경련과 함께 교과서를 개발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심사를 할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그나마 그런 심사조차 제대로 통과하지 않은 교과서를 일선 학교에 배부하고 있다는 것은, 도를 넘어선 비상식적 행위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렇게 태생부터 비상식적인 차세대 경제교과서 내용의 구체적인 문제점들을 따져보자면, 아래와 같은 것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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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쪽 탐구활동 “성장 대 분배”: 미국식 모델과 유럽식 모델을 비교하면서, 유럽식 모델은 빈부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사회 구성원의 근로의욕과 기업의 이윤동기를 떨어뜨려 고실업과 저성장의 악순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은 어떤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해 보자”는 과제를 내주고 있다. 이렇게 유럽식 모델에 관해서만 장단점을 단순화시켜 일방적으로 제시하면 유럽식 모델에 대해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식 모델과 유럽식 모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글을 제시하고 우리 나름대로의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쪽으로 탐구활동을 해야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다.
- 49쪽 시장과 정부개입 부분과 관련하여: “정부의 개입은 나에게 이익의 감소를 초래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손해를 초래한다”고 하여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에 반감을 갖도록 하고 있다.
- 55쪽 읽기자료 “남미 국가들은 미국보다 왜 가난하게 사는가?”: 남미의 빈곤의 원인에 대해, 남미의 국가들은 관료 중심의 스페인의 제도를 미국은 시장 중심의 영국의 제도를 이어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빈곤 상황들에는 각기 다른 다양한 원인이 있다. 빈곤의 원인을 한 가지 이유로 단순화해서 제기하는 것은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
- 62쪽 경제성장 과정과 관련하여: 박정희 시대에 “근로자들은 생산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그 업적에 대해서 금전적 보상을 받아 점차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고 일방적으로 왜곡하면서, 성장과정에서 나타난 정경유착, 저임금, 빈부격차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 63쪽 외환위기 현상: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실업상태에 놓여 있다. … 따라서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과제는 다시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이다.”고 설명하여 성장과 분배, 안정 등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우리 경제의 과제를 성장으로만 한정짓고 있다. 
- 71쪽: 자본주의만이 민주주의에 친화적인 경제체제이며 다른 체제는 그렇지 않다는 내용의 표가 있는데, 세계적인 상황을 살펴볼 때 정말 그러한가? 이는 아전인수 격의 단순화와 편향성을 넘어서 그야말로 ‘이데올로기 공세’에 불과하다.
- 101쪽 부동산 정책에 대하여: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 교과서에서는 실패한 부동산 통제정책 사례만 나열되어 있다.
- 102쪽: 가격하한제의 부작용의 예로 최저임금제를 들면서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이 줄어든다는 편향적이고 부정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 163쪽의 개념구조도: “경영정신-이윤”을 “현대적 생산요소”로 그리고 있고, 167쪽에서는 “이윤은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켜 준 데 대한 보답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178쪽 그림에서도 이윤은 경영(기업가정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이윤 개념에 대한 보수적인 학설만을 소개하고 있는 대표적인 편향 사례이다.
- 172쪽 읽기자료 “노동력이 아니라 인적자본이다”: 읽기자료뿐만 아니라 본문에서도 사람을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인적자본으로 평가하고 있다.
- 190쪽 노동조합과 관련하여: “노조는 고용안정과 적정 임금수준으로의 인상을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노조가 있는 기업의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 기업의 노동자보다 높은 임금을 받게 된다. 그러나 기업은 해고가 용이하고 임금이 낮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기에 결국 기업은 높은 임금을 받아들이는 대신 노동자를 적게 고용하는 쪽으로 결정을 하게 된다.”고 하여, 정리해고를 쉽게 하고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고용하고 싶어 하는 기업의 속내를 정당화하고 있으며, 결국 노조 때문에 노동자를 적게 고용하게 되어 실업률이 높아지게 된다고 하여 실업률 증가의 책임을 노조에게 돌리고 있다.
- 203쪽 소득분배와 관련하여: “작은 떡에서 30%를 가지는 것보다 큰 떡에서 20%를 가지는 것이 더 클 수 있다”고 하여, 분배와 성장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는 사회적 노력을 경시하고 있다.  
- 280쪽 실업과 관련하여: “실업률이 높으면 기업은 다른 기업으로부터 노동자를 빼오지 않고 임금도 더 높일 필요 없이 원하는 노동자들을 쉽게 고용할 수 있다”고 서술하여 실업률 감소를 위한 현대 국가의 노력을 무시하고 있다.
- 365쪽 탐구활동 “새로운 유망산업의 발굴과 육성(선택과 집중)”: 산업자원부가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15개 산업을 발표했는데 이들이 무엇인지 조사해보자라는 탐구 과제를 제시하여 국제거래 부분만을 다루고 있다. 세계시장과 한국경제 연관 단원에서는 내수와 국제거래 부분을 균형 있게 다루어야 한다. 한국경제는 싱가포르처럼 모두 국제거래에 의존하지 않는다. 국제거래 부분에서는 경쟁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해 다루는 것이 맞지만, 한국경제의 또 다른 축이며 대다수 국민이 종사하고 있는 내수산업 부분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내수부분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고 국제경쟁력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 또한 주로 대기업들이 이끄는 15개 주력산업에 대해서만 학생들이 학습한다면, 이들 산업에 종사하는 직업은 우월하고 그에 해당하지 않는 산업에 종사하는 직업은 열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기 쉽다. 
- 366~67쪽 WTO체제 특징 설명: WTO 체제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도 긍정적 서술로만 일관하고 반대 입장은 전혀 없어 편향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 369쪽 읽기 자료 “세계화로 국가번영 이룬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경제 회복이 세계화로 인한 것이라는 입장만 싣고 있다. 아일랜드의 경제회복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세계화라는 한 가지 원인만을 단정적으로 얘기하면서 필자가 주장하는 세계화 찬성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균형 있는 서술이라면 적어도 경제회복의 다양한 원인을 함께 기술해야 한다. 또한 아일랜드는 세계화로 인한 빈부격차가 유럽에서 최상위를 달리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함께 기술해야만 균형 있는 서술이 담긴 교과서로서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 381쪽 사회적 찬반 논란이 거센 FTA에 대해서: 안정적 수출여건을 확보하기 위하여 “우리나라는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거대한 시장을 가진 중국, 인도 등의 개발도상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일방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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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현재 교과서도 심각하게 ‘반노동적’

그러나 사실 이번에 문제가 된 전경련 교과서 못지않게 현행 경제교과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문제점들에 대해 간략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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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적 인간관과 경쟁관에 입각하여 서술하고 있다.
- 기업의 목적을 “적정한 비용을 투입하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재화와 용역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 범위 내에서 생산하고, 적정한 가격으로 판매하여 적정한 이윤을 남기는 것”으로 상정하지 않고, “최소 비용 최대 이윤”의 관점으로 보고 있다.
- 기술 지상주의와 경제성장 지상주의로 가득 차 있다.
- 우리나라 경제성장 과정을 미화시키고 있다.
- 남북통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심화시키고 있다.
- 일방적인 세계화 찬성 논리로 가득 차 있다. 
- 경제는 정치, 사회문화, 법 등 사회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경제교육도 사회체제와 관련지어 종합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현행 교과서는 내용 구성에 있어서 경제적 측면만을 따로 떼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사고력을 길러주기가 어렵다.
- 우리나라 헌법은 시장경제체제가 아니라 혼합경제체제에 입각한 민주복지공화국을 지향한다. 그런데 현행 교과서는 자유방임주의에 가까운 시장경제논리 중심으로 되어 있으며, 정부규제를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행 경제체제인 혼합경제체제가 아니라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체제를 가르치면서 계획경제체제를 추구하는 나라의 경제상황과 비교하여 시장경제체제가 우월하다는 점만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 생산과 소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환경파괴문제, 기업과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으로서 환경보전과 윤리경영, 소비절약 등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현행 교과서는 이러한 부분이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 노동을 생산요소로 보고 있으며 “노동자”로 표현하지 않고 “근로자”로 표현하고 있다. 기업가만 생산의 주체로 취급하고, 노동자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즉 인적자본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반노동자적인 서술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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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내용들을 현행 교과서의 구체적인 반노동자적인 서술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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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학사 223쪽: 임금과 생산성 증가율 추이 비교, “노사 간의 극단적인 대립과 폭력사태는 국가의 신뢰도를 저하시키고 외국의 투자를 가로막는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 오고 있다.”
- 두산 43쪽: “근로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할 때 생산활동에의 공헌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 두산 212쪽: “근로자의 소득은 그들이 창출해 낸 생산성의 범위 내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하루에 5만원 정도의 가치를 창출했다면 그 범위 내에서 소득을 얻으려고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 이상을 요구하면 기업에게 부담이 되며, 그러면 근로자도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는 기업가와 대립 관계가 아닌 상호 공존관계임을 인식하고, 조화와 협조 속에서 기업을 성장시키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 천재 63쪽: 가격 하한제의 예로 우리나라의 최저임금법을, 가격 상한제의 예로 미국의 임대료통제법을 들면서, 최저임금제와 임대료통제법을 시행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를 탐구 과제로 내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법의 목적은 생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하는 것인 만큼, 가격 하한제의 문제점을 최저임금법과 연관시켜 파악하라는 탐구과제는 부적절하다.
- 천재 217쪽: 외국인의 입을 빌려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내용인 것처럼 말하는 신문 기사 읽을거리를 통해, 한국사회의 가장 큰 약점이 고임금과 대립적인 노사관계, 과격한 노동운동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학습자료를 구성하고 있다.
- 천재 223쪽: “일반적으로 임금이 상승하면 그만큼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증가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임금 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증가율보다 클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지게 된다. 기업은 일반적으로 임금 인상률만큼 제품가격을 인상하여 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이윤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근로자들은 물가상승에 압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 천재 224쪽: 임금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수출이 막히고 생산 규모가 축소되고 일자리를 잃게 되므로, 임금은 노동생산성 범위 안에서 인상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KDI 경제정보센터의 자료를 읽기자료로 구성하고 있다.
- 대한 117쪽: 생산성 증가를 앞지른 임금 인상
- 대한 176쪽: “△△제지는 노동조합이 출범된 이후 거의 매년 파업 내지 쟁의발생신고를 하는 등 극심한 노사대립과 갈등을 겪어 왔다. 이러한 △△제지가 대화와 타협의 노사관계로 전환된 것은 노사 간의 불신과 권위주의적 관리 형태를 청산하고 신뢰를 회복하면서부터이다.”
- 대한 184쪽: “근로자들은 자신의 복지가 기업의 성공에 달려 있음을 인식하고, 기업의 경영혁신과 경쟁력 강화 노력에 적극 동참하는 한편, 새로운 기술과 정보 습득 및 활용 능력을 양성하고 스스로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기능력 계발에 힘써야 한다.”
- 대한 184쪽: “인플레이션이 진행될 때에 실질소득을 유지하기 위해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임금상승은 추가적으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비용을 기업과 근로자가 나누어 부담하는 자세가 장기적으로 더 이득이 될 수 있다.” “소비자로서 근로자는 … 경기가 과열되었을 때는 소비를 뒤로 미루거나, 불경기에는 소비를 확대하여 경제안정과 성장에 기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 법문사 59쪽: “최저임금제 또한 일부 근로자들의 소득은 올라가지만 다른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임대료통제나 최저임금제는 파생되는 문제점을 고려하여 적절한 수준으로 행해져야 한다.”
- 법문사 101쪽: “근로시간이 많고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근로자일수록 소득이 많아진다. 또 자본가와 지주는 보유하고 있는 자본량과 토지가 많을수록, 기업가는 경영능력이 뛰어날수록 높은 소득을 가지게 된다.”
- 법문사 192쪽: “노사 간의 이기적 동기에서 비롯된 힘의 대결은 서로 손해만 보고 얻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경제안정과 성장을 해친다.”
- 법문사 199쪽: “임금이 물가상승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생산성의 범위를 벗어난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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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교과서가 ‘사회’를 ‘공정’하게 담도록 하기 위하여

현행 경제교과서도 이런 수준인데 교과서가 반시장적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교과서의 반시장성을 얘기하려면 일관되고 공정한 잣대를 들이댈 일이다. 노동 및 사회운동진영에서도 이런 편협한 시각에 맞서 자본의 논리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교과서를 만들어내기 위한 대응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교과서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제도 면에서 교과서 내용구성의 뼈대가 되는 ‘교육과정’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 교육연구기관 및 단체, 노사단체,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교육과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여기에서 교육과정부터 교과서 구성과 사후평가까지 다루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교과서를 개발한 후 교사들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경제문제는 사회경제적 위치와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사회적 교육과정위원회를 꾸린다 해도, 이것이 그대로 공정성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교과서 발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현행 교과서 관련 제도 하에서는 어떤 교과서도 오류와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보통 5명 정도가 1년도 안 되는 단기간에 교과서 1권을 개발하고, 역시 몇 사람만이 1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검토를 해치우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오류가 없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오류다. 또한 경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다양하기 때문에 필자들이 아무리 공정하려 노력했더라도 ‘편향성’ 시비는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교과서 개발 기간을 2년 정도로 늘리고 현장교사와 학계가 참여하는 검토기간과 검토자 수도 충분히 늘려야 한다. 또한 현장에서 각 단원을 나누어 시범실시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편향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서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여 각계각층의 다양한 검토의견을 받고, 규정된 절차에 따라 합리적인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야 한다.

교과서 내용의 구체적인 공정성 확보도 중요하다. 경제문제는 대부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고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한 경제는 정치, 사회문화, 법 등 사회체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며, 우리나라는 혼합경제체제에 입각한 복지공화국을 지향하는 헌법을 갖고 있다. 그리고 생산과 소비로부터 발생하는 환경문제가 이 시대의 사활이 달린 문제가 되고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무분별한 이윤추구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환경파괴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교과서는 이런 점들을 감안해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혼합경제체제 하에서 경제가 다른 사회분야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반영한 종합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여기에 더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서 친환경적인 생산과 환경보전 및 윤리경영, 그리고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으로서 환경친화적인 소비 등을 가르쳐야 한다. 

또, 앞에서도 살펴보았듯 이번에 발간된 차세대 교과서뿐만 아니라 현행 경제교과서 역시 기업가만을 생산의 주체로 다루고, 노동자는 단지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도구 즉 인적 자본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생산과 소비의 주체는 기업가와 더불어 노동자들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공화국에서는 기업가나 노동자 모두 존엄한 인간들이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노동의 문제를 떼어놓고 경제문제를 다룰 수는 없다. 따라서 경제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역할과 의미 등 노동문제를 좀 더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한다. 

요컨대 경제교과서는 ‘지속가능한 사회’의 관점에 입각하여 소비생활 비판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노동문제와 일터에서의 민주주의 및 시장문제 등을 바로 보도록 해야 한다. 또한 물가, 고용, 실업, 화폐와 금융, 조세와 예산, 소득과 사회보장 등과 관련한 정부의 역할과 세계화문제 등 시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실경제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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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시장경제와 기업의 시각에서 본 중고 경제, 사회교과서 개선과제'라는 주제의 경제교육포럼 모습   ▷ 대한상공회의소 ]

이와 관련해 외국 경제교과서의 사례를 검토해보자. 프랑스에서는 경제교과서를 시장지상주의를 넘어 사회체제와 연관지어 구성하고 있다. 책 제목도 『경제사회학』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노동 단원을 기업 단원과 대등한 분량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경제를 불평등, 계급, 저개발, 연대, 사회규범, 사회정치적 조직, 민주주의, 유럽연합, 세계화 등과 연관해 다루고 있다. 즉 우리처럼 자유방임과 경쟁논리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보편적 가치와 조화를 추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또 독일에서는 “경제정책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경제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실업계에서는 노동문제만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 역시 기업과 시장경제만을 주요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노동, 재정, 복지, 환경 등을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

2012년 더 나쁜 교과서의 출현을 막기 위한 준비 

2005년부터 진행된 차기 교육과정 개정안은 올해 2월에 이미 고시되었다. 그동안 전교조와 각 교과연구모임들이 숱하게 문제제기를 하며 나름대로 교육과정 내용을 개선해보고자 노력해왔지만, 교육부는 비웃기라도 하듯 그 내용들을 거의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정안을 고시해버렸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차기 경제교육과정은 전경련 교과서를 쓴 필자들만으로 개발진을 구성되었기 때문에 현행보다 더욱 더 보수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특히 노동문제는 사회과 필수교과나 선택과목인 경제교육과정 어느 곳에도 나와 있지 않다. 이번 전경련 교과서는 숱한 비판에 직면하여 결국 학교 현장에서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2011년까지는 문제가 많은 현행 경제교과서가 사용되고, 또 2012년부터는 이번 차기 경제교육과정에 의해 전경련 교과서보다 더 보수적인 경제교과서가 전체 학교 현장에서 사용될 것이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 및 사회운동진영에서 현행 경제교과서의 문제점을 수정할 것을 공동으로 교육부에 요구해야 한다. 둘째, 차기 경제교과서에 있어서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차기 경제교육과정을 전면 재개정할 것을 공동으로 요구해야 한다. 기존에는 교육과정이 한번 고시되면 약 10여년간 중간에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유효했지만, 앞으로의 교육과정은 ‘수시개정체제’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규정상으로는 다소 유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솔직하게 말해 노동교육과 경제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노동 및 사회운동진영에서 제대로 만들어 놓은 내용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공동으로 대안적인 노동·경제교육 내용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전국사회교사모임은 새로운 대안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중심에 서서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