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조직화, 같은 길은 없다

노동사회

비정규조직화, 같은 길은 없다

편집국 0 3,249 2013.05.29 08:25

전국여성노동조합(이하 ‘전여노조’)은 조합원들의 99%가 비정규직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여노조 규약이 가입대상을 비정규직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규약상 가입대상은 “기존 노동조합의 가입대상이 아닌 여성노동자”로 되어 있다. 당연히 정규직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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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18일 용역 중장년 여성노동자들이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 출처 : 전여노조 ]

굳이 비정규직들만 모인, 전여노조를 소개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조합원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데는 현실적으로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비정규직을 표적대상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여성노동자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조건도 열악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 우선적인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전여노조는 한국여성노동자회와 함께 ‘여성비정규직 권리찾기 운동본부’를 전국적인 조직으로 만들어 법권리를 홍보하고 상담과 투쟁을 지원하는 일을 가장 큰 사업으로 진행했다. 우리는 노동시장의 성차별이 ‘성별 직종분리’, ‘여성의 비정규직화’라는 구조적인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즉, 고용형태를 통한 그리고 직종분리를 통한 차별이 여성비정규직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여노조는 그 대부분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고 있고 차별의 중심에 서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화의 우선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둘째, 정규직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기존 노동조합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기존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 여성비정규직들의 상담이 오고 지원을 해서 이들을 정규직화한 사례들이 있다. 주부사원을 전원 해고하고 남성으로 대체하겠다는 ‘노사합의’를 했던 경우, 또 계약직 여성노동자들을 해고한 경우 등에 대해 전여노조가 지원하여 노사합의를 철회시키고 비정규직 해고를 막아낸 적이 있다. 이들은 정규직이 되었다. 이런 경우 전여노조는 당사자들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가능하면 기존 노동조합에 편입되도록 하였다. 물론 당사자들도 기존 노동조합으로의 편입을 원하였다. 우리는 이것이 현재 노동조합의 조건(기업단위 중심, 복수노조 금지 등) 속에서는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기존 노동조합이 있고 그 노동조합이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될 때는 기존 노동조합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현재 전여노조에는 학교비정규직, 대학교 청소용역, 호텔 용역, 경기보조원, 의료급여관리사 등 6천여명의 조합원들이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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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22일 있었던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쟁취 2차 결의대회 모습. ▶ 출처 : 전여노조 ]

비정규직 조직화, 고용형태별로 분리 대응해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새롭게 만나는 업종이나 직종별로 고용의 조건들이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업종을 만나게 되면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보면서 기본적인 공부를 해야 했다.

먼저 학교비정규직을 만났을 때다. 이들의 고용형태는 기간제였다. 이들의 근로조건에 핵심적인 영향을 주는 곳은 교육부였고, 그러나 고용의 당사자는 학교장이었다. 학교비정규직 안에서도 직종별로 그 직종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들이 달랐고 직종마다 근무일수, 임금 등도 달랐다. 급식조리원을 제외하고는 10개가 넘는 직종의 사람들이 대부분 한 학교에 한명씩 일하고 있었다.

가입하는 조합원들의 요구도 많고 부당한 처우도 많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명확한 것은 교육부와 교섭을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교섭당사자에 대한 현재의 법해석에 기초할 때 교육부가 교섭에 나오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학교장과 교섭하는 것은 쉽게 가능하다. 그러나 학교장과 교섭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지나치게 제한적이다. 해고 등 학교 안의 생활에서 부당한 점들을 해결하는 것 외에는 거의 없다. 임금부터가 교육부 예산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에 따라 전여노조가 정했던 원칙은 교육부를 상대로 기본적인 투쟁을 진행해야 하며, 부당한 해고 등에 대해서는 학교장을 상대로 교섭과 투쟁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국적인 실태조사와 토론회 등을 통해 요구를 모아 나가고(이는 조직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를 근거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 대한 대응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을 만나는 형식은 ‘면담’이다. 교섭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는 것에 대한 내부 논의가 물론 있었다. 당시 전여노조는 앞으로 교육부와 교섭을 하는 것이 과제인 것은 분명하나 현행법으로 교섭대상이 아닌 정부부처를 교섭에 끌어내는 것은 대단한 힘이 조직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현재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조합원들의 당면한 요구를 해결해나가면서 교섭을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었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기근로계약으로의 전환과 차별해소를 위한 대응, 그리고 지역별 집단교섭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용역 중장년 여성노동자들을 만났을 때

대학교 청소용역 중장년 여성노동자들을 만났을 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이들을 만나면서 최저임금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고 최저임금이 너무 적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2001년 6월8일 전여노조와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현재의 한국여성노동자회)는 ‘비정규직을 통해 본 최저임금제 개선방안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 토론회는 용역 중장년 여성노동자들의 실태조사를 근거로 한 것이었는데(전여노조는 이러한 조사과정을 중요한 조직화의 계기로 삼는다) 토론회는 당시 최저임금 심의위원회가 진행되는 시기에 열렸다. 이러한 토론회 외에도 당시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등 대중적인 방식으로는 우리나라 노동계 최초로 최저임금 현실화의 필요성과 제도개선 방안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를 매우 중요한 활동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 또는 관련 제도의 변화가 함께 동반되지 않으면 이들 중장년 용역여성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은 크게 변화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즉, 이런 조건 속에서 용역회사를 상대로 압박하고 교섭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 원청인 대학교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용역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역시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원청인 대학측은 교섭에 나오지 않는다. 학생들과 함께 학내 집회와 홍보 등으로 분위기를 만들고, 또 지역사회 여성단체, 노동단체들을 조직해서 지역 여론을 형성해 나가면서 학교측을 테이블에 끌어 들인다. 물론 만남의 형식은 역시 면담이다. 그리고 조합원들과 최저임금제도의 문제를 함께 공유하면서 근로조건 개선투쟁을 진행한다.

용역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과제로는 도급(용역)과 관련한 법제도 전체를 검토해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또 개정해야 할 내용들은 뭔지, 노동관계법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 내용은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제기해나가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세밀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예산으로 집행되는 사업이면서 고용의 당사자는 지방자치단체장(구청장)인 의료급여관리사들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건복지부의 어떤 법과 제도에 근거한 일인가, 예산은 어떻게 정해지고 어떤 경로로 내려가는지, 구청장이 갖고 있는 권한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 역시 각 구마다 한명씩 일하고 있다(올해부터 충원한다고 함). 이들 의료급여관리사를 둘러싸고 있는 각종 제도와 시스템을 이해하고 어디(누구)를 상대로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의료급여관리사는 공공부문 특성상 기본 대응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해야 하고, 해고 등에 대해서는 고용 당사자인 구청장과 대응을 해야 하는 직종이었다. 물론 당사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전국적으로 조사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의료급여관리사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전여노조는 보전복지부를 압박하기 위한 면담과 집회, 사이버시위, 그리고 국회의원들을 통한 문제제기 등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국 의료급여관리사의 90% 이상이 조직되어 있으나 그 수가 230여명이고, 고용 당사자가 지방자치단체장인 조건에서 보건복지부를 교섭테이블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의료급여관리사들과 관련한 과제는 공공부문인 학교 비정규직처럼 무기근로계약으로의 전환과 차별해소를 위한 대응이다. 단체교섭과 관련해서는 아직 더 많은 고민과 모색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인 경기보조원들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특수고용노동자가 무슨 말인지, 노동자성에 대한 노동부나 법원의 판정과 판결은 어떤 경향을 띠고 있는지 등에 대해, 역시 한바탕 공부를 해야 했다. 그만큼 어떻게 교섭을 성사시킬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노동관련법이 적용되도록 하기 위한 입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여성계, 시민사회단체, 양 노총과 소속 특수고용단위들이 함께 문제제기해 온 결과로, 6년여의 논의 끝에 국회에 관련법이 상정된 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문제는 이제 사회적 의제로 자리 잡았다. 이는 그동안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주체들의 대응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보다 구체적인 대응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한 운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나가야 할 때이다. 고용형태별로 요구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정규직 안에서도 다양한 고용형태가 존재하고, 그에 따라 처지도 요구도 과제도 다양한 것이 비정규직운동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된다.

투쟁의 방식은 한 가지로 정리할 수 없는 일이다. 고용형태별 특성 이외에도 각 사업장의 특성이 있고 아주 구체적으로 사업주의 성향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일이니까 말이다. 지금껏 이야기한 전여노조의 경험에 비추어서 말한다면, 비정규직운동의 특징에 걸맞게 우리들의 요구와 대응도 더 세밀해지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앞으로 우리들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직무급 임금체계, 차별시정과 정규직화 모델을 위한 초석

앞에서 전여노조의 경험을 근거로 해당 업종별 과제를 정리하였다. 여기서는 전체적인 차원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하여 시급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한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앞서 나는 학교비정규직과 의료급여관리사 관련 과제로 무기근로계약으로의 전환과 차별해소를 들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기간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모델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무기근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 또는 ‘비정규직법’에 있는 기간제한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니터링하고 대응하면서 대책과 법이 의미 있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적인 일일 것이다. 

그런데 차별해소를 생각하면 더 답답해진다. 차별해소는 결국 어떤 임금체계를 마련할 것인가의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연공급체계의 임금구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비정규직 임금체계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옳은가? 또는 가능한가? 가령 학교비정규직 임금은 무엇을 기준으로 얼마를 요구해야 할 것인가? 근속년수가 같은 교사나 공무원의 임금 수준을 요구해야 하는가? 학교비정규직 안에서도 직종이 다양하고 하는 일이 다른데 똑같은 임금을 요구해야 하는가?

노동시장에서 차별의 핵심은 결국 ‘임금’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이, 직종별 임금차이, 남성과 여성의 임금차이를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가? 각각에게 적용되는 임금체계부터 다른 조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객관적인 직무평가에 의한 임금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사용자측에서는 다른 필요에 의해서 직무평가와 관련한 연구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임금체계에 대한 노동계의 논의가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안하고 싶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