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의 구멍, 사용자들은 어떻게 활용하는가

노동사회

비정규직법의 구멍, 사용자들은 어떻게 활용하는가

편집국 0 3,903 2013.05.29 08:36

1990년대를 관통하면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유연화’라는 명제 아래에서 인위적으로 조정됐다. 특히 해고의 자유와 고용형태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사용자들의 거침없는 요구는 외환위기를 계기삼아 대부분 관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는 최소한의 법제도적 제한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속에서 무럭무럭 성장했고, 그리하여 계약직, 하도급, 파견 등의 형태를 이종교배 하면서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거칠 것이 없어라, 외환위기 후 비정규직 남용 

chkim_01.jpg외환위기 직후부터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진 작년까지 사용자들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형태는, △기간을 정한 계약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하는 방법, △하도급계약을 통해 간접적으로 고용하는 방법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계약직으로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방식은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것이었다. 이는 수시로 다가오는 근로자와의 계약갱신일에 계약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사용자들이 근로기준법 제30조(해고의 제한)를 피해서 ‘제한 없는 해고권’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상존하는 재계약 거부 위협으로 인해 계약직 근로자들이 노동조합 가입을 기피하도록 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하도급의 활용이었다. 하도급회사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고용형태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즉, 숙련도와 기업이 요구하는 조직충성도의 강약에 따라 하도급회사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해서 고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비록 하도급회사에 정규직으로 채용돼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에게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하는, 즉 기업조직으로서의 실체를 지닌 주체는 대부분 원청기업이었다. 대부분의 하도급회사는 일개 부서 혹은 일개 작업집단 수준에 불과했다. 원청회사와 하청회사 사이의 도급계약 자체가 ‘기간제’였기 때문에 원청과의 계약해지는 즉시 하청회사의 해산을 의미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청에 직접 고용된 기간제 근로자들과 비교해 봤을 때 하도급회사 정규직들이 형편이 더 낫다고 볼 여지가 전혀 없었다.

한편, 사용자들이 위와 같은 비정형적 고용형태들을 속속 도입하게 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사용자들은 대체로 “고용의 유연화를 추구함으로써 기업조직의 기동성을 확보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비정규직 고용의 궁극적인 효용은 저임금기조를 유지하면서 단기 기업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 모여 있었다. 당시 제한적이나마 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이 교섭을 벌일 때 사용자들이 임금인상에 대해 극도로 저항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기간제한이 없던 당시에는 사용자들이 임금인상 없는 자동갱신제도 등을 우선 교섭조항으로 내놓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법이 만들어지긴 했는데…

2006년 말에 마련된 이른바 ‘비정규직법’은 어쨌거나, 한국 노동시장의 왜곡으로 발생한 비정규직들을 보호하고 그 증가를 제어하겠다는 미명 아래 이루어진 입법이었다. 노동계가 노동자보호기능을 기대할 수 없는 법률을 통과시키는 것은 더 많은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우선 입법을 추진하고 부족한 부분은 나중에 채워나가자며 강하게 입법을 추진했고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입법이 논의되던 당시의 고용촉진제도는 잦은 해고를 당하는 비정규직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었다. 

나아가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 및 노동조건의 차별처우는 사회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적되고 있었다.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비정규직고용의 남용은 사회적 해결이 필요한 과제로 제기됐고, 정부는 즉각적인 해결대책을 내놓을 것에 대한 압박을 받았다. 이에 따라 “차별은 없게 고용은 유연하게”라는 슬로건 아래 정부가 기간제법, 파견법, 노동위원회법에 대한 제·개정안을 입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규직법은 대부분 사용자들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특히 사용사유제한이 아니라 “2년 이상 고용 시 정규직 고용의무”라는 기간제한 방식은 사용자들에게 2년이라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했고, 이에 따라 사용자들은 재고용에 따른 교육비용과 무기계약 전환에 따르는 비용을 상호 교환하는 방식으로 추가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 변화된 법률적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정규직법의 차별시정에 관한 부분은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때문에 노동계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과 경영계의 “기업경영에 대한 기여도에 따른 비례적 차별 허용”이 지루한 원칙 싸움을 벌일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지난 6월3일 노동부가 『차별시정제도안내서』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자는 차별시정절차뿐만 아니라, 그간 제기돼온 차별시정제도상의 쟁점에 대해서 노동부 나름의 정리된 입장을 담고 있었다. 

노동부는 이 책의 앞머리에서 “노동위원회의 판정이나 법원의 판례를 통해 차별적 처우의 내용이 확정되겠지만 판례가 축적되어 이를 참고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결릴 것이므로 우선 참고자료로 이용하기 위해 안내서를 발간한다.”고 했다. 결국 이 책자가 차별시정절차의 기준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기간의 경험으로 봤을 때 노동부가 발표한 기준은 노동위원회의 판단기준으로 여과 없이 수용될 가능성이 높고, 그러한 노동위원회의 판단은 장차 판례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동부 ‘차별시정제도안내서’ 행간 들여다보기

그러한 맥락에서 노동부의 차별시정기준은 보다 꼼꼼하게 분석되어야 하며, 특히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chkim_02.jpg ● 명문화된 것만 차별시정 대상? 노동부가 사정 더 잘 알 텐데 
노동부는 차별적 처우가 금지되는 영역인 “임금 및 그 밖의 근로조건”에 대해 “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서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근로기준법 제2조제5호)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밖의 근로조건 등”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조건과 단체협약,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 등에 의한 ‘명문화된 근로조건’이며, 이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근로조건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적용하는 모든 근로조건을 명문화하고 있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부의 기준은 사실상 차별시정의 실효성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이런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노동부가 이런 입장을 내세우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 사업 내 사업장 분리와 차별시정 비교대상자 선정
노동부는 “사업 또는 사업장”을 해석함에 있어, 하나의 회사가 본사와 여러 지점, 지사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 경우 각각의 사업장을 구분해서 차별시정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각 사업장 별로 인사·노무·재정 및 회계 등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고, 서로 다른 단체협약, 취업규칙을 적용받는 등 각각의 사업이 독립적으로 영위되는 경우에 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부의 기준은 차별 당사자의 선택 폭을 제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사업장의 식당 종사자와 B사업장의 식당 종사자와 같이 사업장은 다르더라도 수행하는 업무가 동일해도 노동부가 마련한 기준에 의하면 이들의 비교가능성 자체가 사전에 차단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노동위원회가 실제 차별시정 과정에서 개별 사안의 특성 따라 심사할 수 있도록 열어 두는 것이 법 취지와 원칙에 더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 파견 300명 정규직 4명이면 차별시정 못 한단다 
노동부는 또한 파견법상의 차별시정제도 적용여부 기준이 되는 “상시근로자수 산정범위”에 있어서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모든 근로자”를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그리고 비교대상자 존재여부 및 사용자의 법 준수 능력 등을 고려하여, 직접고용 근로자가 5인 미만인 경우에는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한 사람이 5명 미만이면 파견노동자가 300명이 넘더라도 차별시정제도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말인데, 이는 상식적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노동부는 직접고용 근로자가 5명 미만이면 비교대상 자체가 없을 것이라며 차별시정제도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예단했는데, 이러한 ‘추정’이 기준 수립의 방식으로 적절한 것인지 정말 의심스럽다. 

 ● 반복 갱신된 기간제노동자는 보호받지 마라?
안내서에는 “근로계약서에서 지시된 근로계약기간이 근로계약의 종료가 아닌 동일한 임금조건이 유지되는 기간으로 해석될 경우, 이를 기간제 근로계약으로 볼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언뜻 보면 연봉제 근로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일한 임금조건이 유지되는 기간으로 해석될 경우”가,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체결하긴 했지만 계약을 계속 갱신해온 즉 기간의 정함이 형식에 불과한 노동자의 경우”로까지 해석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간의 정함이 형식에 불과한 노동자들을 사용자가 함부로 계약해지하면 부당해고라는 게 대법원 판례인데, 위 기준은 이러한 노동자들을 차별시정절차에서 배제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노동자가 차별시정을 요구하는 순간 사용자가 이 근로자들의 기간 정함은 사실상 형식에 불과하다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하고 나서면, 결국 차별적 대우가 고착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기간제법에서 명시된 “기간제한 예외사유”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의 근로계약이 장기간 반복되는 경우 현실화될 수 있다. 

 ● 차별처우로 떼인 돈이 임금채권이 아니라니 
노동부는 차별적 처우로서의 임금은 임금채권법에 의해 보장을 받는 임금채권이 아니라고 본다. 즉 차별시정 판정을 받아도 노동자가 그 임금 차액을 청구할 수가 없다고 본다. 이는 특별한 법적기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노동부가 스스로 만든 행정해석에 의한 것일 뿐이다. 노동부는 차별시정으로 확인된 채권의 성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를, 제척기간 개념을 근거로 하여 전체 재직기간의 차별적 임금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직 신청일로부터 3개월 전부터 발생한 차별적 처우에 대해서만 금전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척기간이라는 법률적 개념은 권리의 소멸을 다루는 소멸시효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그럼에도 노동부가 위와 같은 입장을 굽히지 않고 또 노동위원회가 이러한 기준을 그대로 따를 경우, 실제 보상금액이 과소하게 책정되게 됨으로써 결국 차별시정제도의 존립의의가 자체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차별적 처우에 의한 보상채권은 임금채권이 아니다.”라는 노동부의 주장은 제도의 합리적 안착을 방해하기만 할 뿐이다.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사용자가 습득한 ‘인사노무기법’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정규고용에 대한 규제 미비는 고스란히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희생을 강요해왔고, 이를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입법 역시도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사용자들은 몇 가지 ‘인사노무기법’ 도입을 통해서 손쉽게 기간제법상의 차별규제 규정을 벗어날 수 있다. 아래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법 시행 이전부터 현재까지 활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방식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 기간제와 파견제를 교차로 사용하는 방식
비정규노동자들을 기간제로 고용하다가 기간이 만료된 직후 파견제로 전환하거나, 혹은 파견회사를 통해 파견으로 채용한 근로자를 파견 만료기간이 종료되기 직전에 기간제로 전환하는 방식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비정규직법 시행 이전에는 파견허용 직종이 26개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업종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파견허용 업종이 상당부분 개방된 지금부터는 이러한 기간제-파견제 교차사용 방식이 더 많은 직종에서 애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법은 단순노동, 인력대체가 비교적 용이한 업종 등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 완전도급 및 특수고용형태로 전환하는 방식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각각 수행하는 업무가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거나, 기업조직의 본질적인 부분과 그 외의 부분을 구분할 수 있는 경우에는 완전도급의 형태를 빌어 조직을 분리하는 방식이 흔히 사용된다. 회사측이 비정규직근로자들을 일제히 해고하고 용역전환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집단 농성으로 이어진 이랜드 사태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어쨌든 이는 기업의 입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방식일 것으로 보인다. 우리 법의 법인절대주의에서는 법인 단위로 구분되어 있는 근로자 집단은 절대 비교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청 사용자들은 계약서에 기간을 명시하기만 하면 도급회사 자체를 기간을 정한 인력집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아가 노동조합과 같은 경영상의 장애요소가 발생하는 경우, 해당 기업과 계약을 파기하거나 혹은 해당 기업을 해산시킴으로써 노동법의 제약을 피해 효율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의 계약이 도급이 아니라 파견일 경우에만, 즉 ‘도급위장 불법파견’의 법리에 의존해서만 원청의 고용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현실은 노동조합운동에게 매우 큰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특수고용형태로 고용을 변경하는 방식도 활용된다. 이는 몇몇 기업들이 근로자 개개인의 특수화된 직무능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 사용되는 방법이다. 개별 근로자들에게 사업자등록을 내도록 하고, 이들과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 혹은 프리랜서계약 등을 체결함으로서 노동법의 범주에서 탈출할 수 있다. 

 ●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직군을 분리하는 방식
비정규직들이 기업영업의 본질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도급회사를 통해 외부화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거나, 관련법에 의해 도급전환이 불가능한 경우, 혹은 도급으로 전환하더라도 필연적으로 불법파견 시비를 비켜나갈 수 없는 경우, 사용자들은 직군분리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정규직화’를 발표한 몇몇 은행들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방법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조직을 구분하고 직무의 중첩이 없도록 하여, 비정규직이 비교할 대상자를 찾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 그렇게 직군분리를 하더라도 이는 외형일 뿐 실질적으로는 구두상의 명령에 의해 중첩된 업무를 부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그러나 자료나 증거로 이를 실증해내는 것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 저임금 무기계약직을 신설하는 방식
이는 비정규직들을 교체하려면 재교육비용이 많이 들거나, 해당 업종의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어 인력수급이 원활치 못한 경우에 사용되는 방법이다. 비정규직 집단을 전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되, 기존의 정규직과 다른 근로조건이 적용되는 직종을 만들어 기존 비정규직들을 그 직종으로 배속하는 방식이다. 무기계약직은 기간의 정함이 없어 고용상의 안전은 확보되지만 여전히 낮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편, 무기계약 전환자들이 기존 정규직노조와 다른 노동조합을 만들 경우 복수노조 시비에 시달릴 수 있다. 따라서 기존 정규직노조가 무기계약 전환자들을 위해 별도로 교섭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강력한 사용자의 저항으로 인해 자칫 노동조합의 의사와 무관하게 노-노 갈등으로 전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저임금 무기계약직 직종에 일부 비정규직을 배속하여 동일한 업무를 수행시키는 경우, 이 비정규직들은 차별시정절차를 밟아도 실질적인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유사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이 아니라, 저임금의 무기계약 전환자들이 우선 비교대상자가 되기 때문이다. 

 ● 급여항목을 조작하는 방식
임금구조를 이중적으로 하여 차별구제신청이 제기되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방법들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형이 정규직에게는 호봉제+수당급제를 적용하고, 무기계약직이나 비정규직에게는 연봉제, 성과급제를 적용함으로서 지급되는 금액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지 실증해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평가제도를 기본 축으로 하여 완전연봉제를 실시하는 방식도 있다. 전사적으로 연봉제를 실시하되, 호봉형 또는 연공형 연봉제가 아닌 실적 및 개인평가 결과에 연동하는 연봉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동일유사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집단 사이에 임금차이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사용자가 만들어 놓은 평가기준에 의해 지급된 금액이라는 점 이상을 밝혀내지 못하면 그 차별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수당의 상당부분을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을 통한 우회적 지급방식으로 전환하는 방법들도 도입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은 사용자와 구분된 별도의 독립법인이고, 따라서 차별시정제도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차등적 수당을 적용하였다는 것은 기간제법이나 파견법의 차별시정명령 대상 행위가 아닌 것이다.

구멍난 법 쏙 빠져나가는 사용자, 정부는 모르쇠할 건가

남녀고용평등법이 도입된 지 십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이 정말 줄어들었는지 의문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이 도입된 이후 대부분의 기업들은 취업규정들을 변경하여, 남녀구분이 아닌 다른 근거를 통해 기존의 체계를 유지하려 했다. 또 설사 사용자의 차별처우가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몇 푼의 임금인상을 위해 해고위협을 무릅쓰고 사건을 크게 만들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결과 남녀고용평등법의 취지는 상당부분 몰각되어 버렸다.

이번에 제기된 기간제법과 파견법의 차별시정제도가 현실에서 어느 정도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안개 속에 있다. 제도 실시 이후 갓 1개월이 넘은 시점에서 제도의 실효성을 논하는 것이 다소 무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앞에서 살펴봤고 또한 다양한 현장에서 직접 목격되는 것과 같이 사용자들의 갖가지 회피방법은 현실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제도의 입법취지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을 시정받기 위해 제도를 이용하는 데 발생되는 장애요소의 최소화”다. 이러한 입법취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법률과 제도의 개정이 필연적이라고 판단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