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민주노조운동의 ‘자기 역사 세우기’를 위하여

노동사회

스무 살 민주노조운동의 ‘자기 역사 세우기’를 위하여

편집국 0 6,632 2013.05.29 08:35

올해는 그 뜨거웠던 여름, 1987년 6월의 민주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2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 땅 노동자들이 억압과 착취의 사슬을 끊고 기계가 아닌 인간임을 선언하며 나섰던 87년 대투쟁 20주년을 맞아, 다양한 평가와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투쟁을 회상하고 기념하는 자리는 몇몇 인물의 무용담을 끄집어내 환기하는 박제된 행사가 아니어야 한다. 대중들은 20여년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공과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역사를 자신들의 손으로 정립하며 새로운 20년을 설계하고 전망을 세우는 행사를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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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가두시위에 나선 대우 거제조선소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민주노조운동, 노동현장에서 싹튼 직접민주주의

울산에서 시작된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니었다. 자본의 무차별적인 억압과 착취, 왜곡된 성장과 부의 축적이라는 구조 위에 6월 민주항쟁의 뜨거운 함성의 확산이 뒤엉켜 빚어낸, 역사적 필연이었다. 군대투입의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민중들이 나서자 군부독재는 결국 백기를 들고 항복을 선언했고, 그해 6월 민주주의의 승리에 대한 감동은 온 국민들의 가슴을 전율케 만들었다.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군부의 압제에 시달려온 민중들이 스스로의 투쟁과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혁명이요 사변이었다. 이렇게 수백만의 민주운동 및 학생운동 세력이 온갖 박해와 탄압을 뚫고 일궈낸 6월 민주항쟁의 승리는 곧바로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이어졌고,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의 싹을 틔워냈다.

1987년 7월5일 현대엔진에 노동조합이 설립되면서, 울산의 각 현장에서는 “우리에게도!”라는 외침이 퍼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누군가 준비된 지도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하는 열악한 작업환경, 비인간적인 처우와 병영식 통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봉건적인 차별처우에 대한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젊은 남성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밀집되어 일하던 억압과 착취의 상징 울산의 현대왕국은 막 개봉된 휘발유 통과 같았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확산 흐름과 현대그룹의 어용노조 설립 추진의 격돌은, 그 휘발유 통에 불씨를 던지는 꼴이었다. 대투쟁의 불길은 삽시간에 치솟았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이제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예전의 노예가 아니었다. 6월 군부독재 타도의 목소리는 현장에서 어용노조 타도로 나타났고, 대통령직선제 쟁취는 노조위원장 직선제 쟁취 요구로 나타났다. ‘민주노조운동’의 전형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가 세상의 주인임을 자각한 노동자들의 자주성은, 대통령도 위원장도 내 손으로 뽑도록 하고, 회사 편에 서서 투쟁을 회피하며 대중의 뜻을 배신하는 지도부는 즉시 축출이 가능한 불신임제도를 도입하도록 했다. 또, 조합원총회를 통해 “내 임금은 내가 결정을 하는”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대중투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어 민주노조운동의 상징으로 지리를 잡아갔다. 

이처럼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변치 않는 민주노조운동 힘의 원천은 대중들이 직접 참여하여 결정하고 책임지는 직접민주주의였다.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쟁취한 민주화는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산업민주화, 경제민주화, 재벌개혁과 사회개혁이라는 요구와 투쟁으로 발전하고 꽃피워졌다. 이렇듯 민주항쟁의 가장 큰 수혜자는 노동운동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체제 변화는 실패했지만 삶의 질 향상에선 성과 내 

다시 2007년, 민주노총의 6월 말 총력투쟁과 금속노조의 한미 FTA 저지 총파업이 정권과 자본, 보수언론의 일방적인 매도와 왜곡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노동운동이 사회적 고립현상에 빠진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물론 노동운동은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러나 지금 여기저기서 떠들어지고 있는 ‘노동운동 실패론’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며, 불순한 의도가 있어 보인다. 노동운동의 빈틈과 분열을 노리며 기회를 엿보던 보수반동세력들이 1987년 이전의 무노조 저임금 체제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난 20년 우리는 노동조합운동을 통해 이 세상을 많이 변화시켰다. 멸시와 천대의 상징인 ‘공돌이’와 ‘공순이’에서 당당한 ‘노동자’로, 세상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1987년 이래 전국에 들불처럼 번진 대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조합원들은, 비록 빚을 얻어서이지만, 불과 10여년 만에 내 집을 마련하고 자가용도 소유할 만큼 삶의 질이 향상됐다. 세계 어느 혁명의 역사에서도 불과 10여년 만에 집 한 채와 자가용을 가질 만큼 부의 분배를 이루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또한 파괴력이 있는 대공장 노동자들의 선도적인 임금인상 투쟁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이끌어 올리는 데도 선순환 작용을 하며, 물질적으로나마 조금이라도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민주노조운동의 임금인상 투쟁은 1천5백만 노동자들의 소득 증가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했고, 이는 곧 소비를 활성화시켜 한국경제가 부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비록 민주노조운동이 사회체제의 근본적 변화에는 성공하지 못했을지라도, 이처럼 물질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삶의 질 향상에는 기여를 했다. 이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어쨌든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한 성과라는 점은 인정해고, 승리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전투적 자본가들의 무노조 경영시대 꿈은 부풀어 오르고

1987년 이래 끊임없이 어용노조 혹은 무노조 공작을 벌여온 한국자본과 10여년 동안 온갖 탄압을 이겨내며 자주성과 민주성을 사수해온 민주노조운동은 1997년 IMF 사태로 함께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대대적인 포화 속에 대표성을 상실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조운동 세력은 자신의 투쟁력으로 임금을 인상하면 오히려 힘이 없는 중소영세기업과 비정규직노동자들과의 차별과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되는, 신자유주의 구조를 타파할 정치적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악몽을 경험한 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보다는 고용안정을 중요시 여겼고, 중소영세기업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열악한 저임금과 차별처우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방패막이’로 생각하는 경향까지 생겨났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무한경쟁의 정글 법칙만 존재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런 한편에서 자본가들은 노조간부들을 금품으로 회유하여, 기득권의식과 선민의식을 조장하고 부패와 타락으로 유도했다. 노조 근간을 허물고자 하는 한국 ‘전투적 자본가’들의 전근대적 노무관리 방식과 기조는 결코 흔들린 적이 없다. 이러한 공세 속에서 지금 민주노조운동은 자본가들의 이이제이(오랑캐로써 다른 오랑캐를 제어한다) 전략과 차도살인지계(남의 칼로 살인을 하는 계략)에 빠져 있다. 이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우익보수단체들은 사이비 시민단체로 위장하여 노동자들의 요구를 ‘집단이기주의’로 거침없이 몰아붙이고, 투쟁과 파업을 혐오하는 헌법 파괴세력까지 등장하는 형편이다. 그리고 그 뒷돈과 편의를 기업과 지방정부가 대주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은 예전 방식으로는 더 이상 조합원들의 임금도, 고용도 보장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노동조합운동은 이제 한국 정부와 자본뿐만 아니라 초국적 자본까지 상대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 내부는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국인과 외국이주노동자, 남성과 여성, 직장인과 실업자, 고령자와 청년층으로 분할지배 관리되고 있으며, 단결투쟁의 원리는 급격히 훼손되고 있다.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사실 우리 민주노조운동은 지난 10년 노동조합조차 결성하지 못하는 90%의 중소영세기업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그 결과 국민들이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을 ‘집단이기주의’나 ‘배부른 투쟁’으로 여기는 착시현상이 발생했고, 아직까지 그 위기와 고립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1987년 대투쟁 2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한국의 전투적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87년 이전의 노동자로 되돌리려는 ‘무노조 경영 시대’의 부푼 꿈을 꾸고 있는 반면, 민주노조운동 세력의 위기와 흔들림은 잦아들 줄 모르고 있다.

사선을 함께 넘어 온 동지들, 이제 마주 봅시다

요즘 집회에 나가면 흰머리들이 많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정의를 위해 한 몸을 불태우겠다고 나섰던 20~30대의 젊은이들이 이제는 40~50대의 반백이 됐고, 형님과 선배들은 하나 둘 정년퇴직으로 현장을 떠나갔다. 이미 현장에는 87년 대투쟁을 실제 경험한 사람들이 20% 미만에 불과하다. 뒤를 돌아보니 수많은 활동가들이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어느 순간 소리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던 옛 동지들은 선거 때만 되면 등을 돌리며 서로를 갈라치기 하더니, 이젠 모두가 외롭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동지에 대한 믿음’보다 ‘적보다 더 미운’ 원망과 증오가 더 크게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20년이 흘렀다. 너나 할 것 없이 대중을 위한 복무보다 정파와 조직을 우선했고, 충성한 만큼 보상심리에 집착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처신했음을, 서로가 인정할 시기도 되었다.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자신들이 만든 업보와 악연을 후배들에게까지 연장시키지 말아야 한다. 반성 없이는 새로움도 없다. 상처는 주고받는 것이다. 일부러 상대를 깎아 내릴 필요도 없다.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화해의 술잔’을 권해보자. 우리들은 20여년 동안 숱한 고비를 넘기며 사선을 함께 넘어 온 동지가 아닌가! 

이름 없이 싸우다 소리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무명의 용사들을 생각한다면, 혼자 잘나서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되새겨야 한다.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서던 가슴 설렘을 떠올리고, 그 때 그 겸손했던 활동가로 나 자신부터 되돌려보자. 온갖 험난함을 견디며 사선을 넘어 온 동지들이기에 서로에게 고맙고 소중하게 생각하며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지도자들부터 모범을 보인다면 아주 쉽고 가능한 일이다.

내부 갈라치기 했던 최대강령주의는 정말 ‘전투적’이었나 

그런데 전대미문의 대혼란과 대격변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들의 자세는 너무 안이하고 분열되어 있다. 이대로는 지난 20년 동안 쌓아올린 투쟁의 성과도 한방에 날아가고, 노동대중과 기층 민중들이 기나 긴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겪게 만들지도 모른다. 현재의 정세는 1987년 대투쟁 당시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권력과 자본 앞에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초심이 필요한 시기이다. 노동운동의 ‘위기’ 앞에서 개인의 이해관계와 사소한 불만 불평 때문에 대의를 그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양심에 비추어 봐야 한다. 지금은 자칫 어긋나면 천신만고 끝에 건너 온 산별노조의 시대를 열어보지도 못하고 자본과 결탁한 반동들의 준동에 민주노조운동 자체가 와해될 수 있을 만큼 엄중한 시기이다. 

노동운동이 현실의 위기와 고립에서 탈출하려면 모험주의와 최대강령의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대중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은 사실에 기초하고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20년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정권, 자본과의 투쟁보다 내부 정치와 논쟁에 힘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동운동은 대중과 함께 두 발을 땅에 굳건히 딛고 앞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다. 대중들의 이해와 동의를 넘어서는 과도한 요구와 투쟁은 역으로 노동대중들로부터 고립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지난한 논쟁이 따르겠지만 노동운동은 스스로가 만든 그 덫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바로 ‘전투적 조합주의’ 이야기다. 과연 전투적 조합주의라는 게 실제 우리 현실에 존재하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이를 주장하는 세력이 존재하긴 하다. 검증 안 된 모험주의와 최대강령으로 표현되는 그들의 주장이 조직을 위기에 빠뜨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최대강령은 주로 정파별 대립 속에서 상대 정파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었지만, 그런 부분을 진실 되게 비판받지 못했다. 때문에 요즘에는 임금인상이나 성과분배 투쟁 등 경제적 ‘실리주의투쟁’을 ‘전투적’으로 치러내는 오히려 더욱 강력한 실리주의자들이, 전투적 조합주의를 자칭하는 경향까지 목격하게 된다. 

무엇을 위한 투쟁이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투쟁에서는 한국노총 사업장도 한 달 이상 파업을 하고 어용노조도 쇠사슬을 감고 굴뚝에 올라간다. 이런 걸 전투적 조합주의라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전투성을 내세우며 대중 위에서 군림하려 들고, 선도투쟁을 주장하며 동지들을 짓밟으려는 태도는 노동운동에 큰 해악일 뿐이다. 노동자 전투성의 강도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맞춰지는 것일 뿐, 이를 가치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은 사회변혁지향성과 연대투쟁성이 거세된 채 공장 담벼락 안에 갇힌 ‘전투적 실리주의’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오히려 분열의 씨앗이 되어 온 역사도 올바르게 평가되어야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단결은 생명이요 분열은 죽음”이라는 1987년 당시의 비장한 결의가 변치 않는 진리가 되어, 2007년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으로 부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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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10일 울산에서 열린 ‘87년 노동자 대투쟁 정신계승 기념사업 추진위 발족식’의 모습 ▶ 민주노총 울산본부 ]

성년이 된 민주노조운동, 스스로의 역사를 정립하자

1987년 대투쟁의 진원지이고 ‘노동운동의 메카’라는 영광을 누렸던 울산의 노동운동도 기세가 내리막길이다. 현대중공업 비정규직노동자로 일하던 박일수 열사가 “하청도 인간이다”라는 절규를 유서로 남기며 2004년 분신자살한 사건에,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이 반동적 대응을 한 것을 사유로 금속연맹에서 제명을 시킨 이후, 조직세가 계속 위축되고 있다. ‘진보정치 1번지’라는 명예도 2005년 말 울산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패배하고, 2006년 지방자치단체선거에서도 8년 아성의 북구와 동구 수성에 실패하면서 무색해지고 말았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반전의 계기를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20주년, 1997년 외환위기 사태로 본격화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10년을 되받아치기 위해, 노동계가 ‘산별시대 원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노동자 대투쟁 20주년 기념사업을 통해 지난 역사와 노동운동의 공과를 우리 스스로 평가하고 정립하고, 또 새로운 전망을 세우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정립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산별시대 원년을 맞이하며 지역사회 차원에서 노동운동의 위기와 고립을 탈출하기 위해, 현재 5만 조합원을 2010년까지 10만으로 조직하여 정치적 위상을 강화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구체적인 사업은 7월26일, 동구 울산해수욕 기념행사부터 시작된다. 이후 현장 순회전시부터 8월 학술토론회와 강연회, 9월10일부터 16일까지 ‘87년 노동자 대투쟁 20주년 정신계승 주간’ 등을 진행하여, 그 속에서 대중적 참여와 현장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울산 노동운동의 역사를 복원하고 새로운 노동운동의 시작을 알려낼 것이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도 이젠 20년의 ‘성년’이 된다. 스스로를 반성과 성찰의 관점에서 되돌아보는 여유를 갖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과거에 발목이 잡히는 불행한 운동에서 벗어나 새로운 20년의 희망을 세우는 2007년 여름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정리하고 복원할 때만이 진정한 노동자의 역사가 될 것이다. 1987년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이라는 그 가슴 벅찬 감동이 노동자 대투쟁으로 발현되었다면, 2007년에는 다단계하도급에 의한 중간착취 근절을 통한 ‘차별철폐’ 투쟁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