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문화활동, 욕심을 내자고요!

노동사회

노동조합 문화활동, 욕심을 내자고요!

편집국 0 3,579 2013.05.29 08:33

원고 청탁을 받았다. ‘왜 나한테 왔을까’라는 생각에 물었다. 

“어떻게 제게 전화하시게 되었어요?” 
“OOO분이 추천하시더라고요.” 
“하하. 지들이 쓰지.”


이 이야기를 굳이 글 첫머리에 꺼낸 이유는, 에세이라는 형식의 편한 글이지만 현재 노동조합 문화운동의 세가 위축된 현실이 글로 옮기기에 별로였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고, 노동자문화운동을 한다는 일꾼들이 ‘생활 글쓰기’조차 버거워한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도 신변잡사 같은 얘기라도 할 곳이 있는 것이 고맙고 그 뜻을 잘 가꿔야 다음도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덥석 “예. 그러면 저라도 해 드려야지요.” 했다.

욕심이 필요하다

그랬던 게 4월17일이었고 청탁서를 자세히 들여다 본 것은 27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금속노조 대의원대회 준비하랴, 몇몇 집회 참가하고 기획 지원하랴, 음향기기 구입하러 다니랴, 금속노조 문화담당자회의 준비하랴…. 그렇게 시간이 마구 간다. 시간을 가꿀 틈도 없이. 여유롭지 못하다는 거다. 조금은 여유로워야 문화 생각이라도 떠오르는데….

여유가 많이 없어도 요즘 한겨레문화센터로 ‘드럼’을 배우러 다닌다. 강제로라도 여유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흔히 ‘스텝’이라고 표현하는 발동작은 입문도 못했고 손으로 박자감 맞추기만 몇 주째 계속하고 있다. 강제로 드럼을 몸에 익혀 금속노조 전 조합원 상경투쟁 시 ‘조합원 힘 받기 투쟁문화제’를 기획하고 조합 내 문화일꾼들과 함께 투쟁의 열기가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현장에서 신나게 두드려 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욕심을 갖는 것이다.

사실 원래 글 청탁내용은, 노조 문화운동가를 지향하는 후배들에게 또는 다른 노조운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풀어봐 달라는 것이었다. 청하는 내용에 모두 맞춰 글을 쓰자니 너무 많은 말들을 풀어내야 할 것 같아, 이 글에는 “노동조합 문화일꾼은 욕심을 가져야 된다.”는 말과 함께, 그 욕심을 갖고 있는 이들 몇몇을 소개하면서 그들처럼 항상 애쓰자는 마음을 담고자 한다.

욕심은 신뢰를, 신뢰는 스타를 낳는다

금속노조 전북지부에 대우상용차 지회가 있다. 큰 공장이다. 이곳에 ‘강철바위’가 있다. 노동자 몸짓을 표현하는 동지들로 흔히 말하는 ‘몸짓패’다. 5년여의 경력을 자랑하는 동지들로 지회 내 활동 단위 중 가장 사랑을 받는 모임으로 성장해 있다. 이들은 지회의 투쟁집회 및 문화행사에 참가할 뿐만 아니라 금속노조 전북지부가 조직하는 거의 대부분의 투쟁집회 공연에 참가한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민주노총 전북본부 대부분의 투쟁집회에 중심적인 문선대로 활동한다. 

“전북은 상용차 ‘강철바위’가 없으면 집회 못해요.”

금속노조 전북지부 어느 상집간부가 하는 말이다. 이들이 조합원 모두에게 깊은 사랑을 받는 것은 지회 내에서 꾸준히 멋진 공연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투쟁집회에 열일을 제쳐두고 참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강철바위가 참가하는 무대에서의 공연하는 몸짓의 파장이나 잠깐 짬나는 시간에 인사하면서 투쟁을 독려하는 목소리는 투쟁에 참여한 조합원들의 가슴속에 내려앉는다. 전북지역 금속노동자들에게는 강철바위는 소중한 ‘스타’들인 것이다. 이들은 매년 5월 노동절이나 11월 노동자대회에 중앙문선대로 참여하여 그들이 익힌 재주와 참여정신을 발휘한다. 이들의 투쟁 욕심은 조합원 마음속에 그들의 투쟁력이 신뢰로 전달될 만치 스타성을 확보했다.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낼 작품이 기대된다. 

최악 상황에도 웃을 수 있는 게 문화운동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하이닉스-사내하청지회에는 ‘불새’라는 몸짓패가 있다. ‘폭풍전야’라는 이름을 가진 노래패도 있다. 피눈물의 세월을 밟아오고 있는 이 지회는 금속노조뿐만이 아니라 민주노총 내의 대표적인 장기투쟁사업장이다. 2004년 12월25일, 이들은 세상 대부분의 가족들이 화목한 저녁상 분위기를 누리고 있을 때 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전원 해고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인 12월31일 공장에서 전원 쫓겨난 후, 현재 거리에서 2년 반을 투쟁해 오고 있는 비정규직 동지들이다. 투쟁을 결의하고 투쟁동력의 유지를 위해서는 문화패 건설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풍물패를 비롯하여 노래, 몸짓을 함께 할 동지들을 모으자는 얘기가 나왔다.

투쟁 집회가 있는 날,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속하고 문화적 소양이 뚜렷하게 높지는 않더라도 투쟁결의가 전체 대오보다는 약 ‘반발’ 앞서 있던 동지들 20여명을 모아서 투쟁 집회 뒤풀이를 명목으로 둘러앉았다.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 ‘금속노조가’를 부른 최고의 노동가수라는 선배 형도 함께 모시고 크게 취하자고 선동하며, “우리 한번 예술가 되어보는 거야”하고 분위기를 잡았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힘든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투쟁이 힘든 날 누군가는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걸 하자.”고 했다.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문화패를 하고 투쟁을 할 때, 세 번 웃자. 한 번은 조합원 동지들 앞에서 웃자. 나도 똑같이 힘든 상황이지만, 기왕에 문화패로 나선 거 ‘힘든 것을 극복하면서 투쟁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웃자. 투쟁하는 조합원이 웃을 일이 뭐 있겠는가? 우리와 함께 할 때만이라도 스트레스 확 풀어진다는 소리 나오게 해보자. 

두 번째는 지도부 동지들 앞에서 웃자. 얼마나 힘들겠는가? 같은 처지에서 같이 조합 만들고 이제는 투쟁지도부가 됐다. 혹여 상황이 발생한다면 제일 앞에서 싸울 동지들이다. 우리들 조합의 운명과 120여명 조합원들 생계와 삶에 대한 결정을 해나가야 된다. 신중하고도 활력 있게 ‘이끔이’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주자. 지회장을 비롯한 상집 간부들 앞에서 웃자. 

세 번째는 연대하러 오는 동지들 앞에서 웃자. 우리의 노동운동은 투쟁하는 사업장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기풍을 놓지 않아 왔다. 연대의 기풍은 민주노조 운동의 기본 기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자 싸우도록, 힘든 상황에 혼자 처해지도록 놔두지 않는 정신이 우리 금속노조의 정신이다. 비정규 투쟁이 운동의 중심으로 잡혀져 나가는 지금 아마도 전국의 수많은 동지들이 다녀갈 것이다. 어차피 사람 사는 세상, 힘든 일정 빼고 와 준 그들에게 찡그려진 표정 보일 필요는 없다. 그들도 힘 받고 가야 한다. 그들의 연대 투쟁으로 우리가 아주 많이 힘 받고 있고 그 힘으로 이렇게 멋진 투쟁대오를 지켜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우리 민족의 함께 살기 정신인 두레정신과 품앗이 정신을 절대 잃지 말고 우리도 동지들의 투쟁이 있으면 달려가겠다는 것을 보여주자. 고맙다고 웃자. 

그러다가 ‘힘든 나를 위해서는 언제 웃어요? 나도 힘들어요.’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면 그땐 나하고 웃자. 언제라도 술 한 잔 하자. 우리 그렇게 다져나가면서 투쟁하자”


그리고 건배의 잔을 올렸다.

시간도 돈도 없지만 욕심으로 함께 하는 연대

그런 후에 악보를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마지막으로 봤다는, 허리가 굳어서 맨손체조도 잘 안 된다는 그들과 함께 할 노래강사, 몸짓강사를 찾아 나섰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마땅히 시간을 내주실 수 있는 분이 없어 서울에서 찾아야 했다. 강사님들도 개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분들이 필요했다. 지회 조합원들의 투쟁 일정이 아주 바쁘게 돌아가고 있어 연습을 위한 공식적인 시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사를 모시고 나니, 연습시간이 문제였다. 문화패 전체가 한꺼번에 연습해야 했다. 집에서 방청소라도 열심히 해야 할 해고노동자들의 주말을 빌리고, 일정이 끝난 야간 시간을 빌리고, 서울 상경투쟁 시 짬나는 시간을 빌리면서 3개월여를 연습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할 수 있는 공연에는 가능한대로 꼭 참여했다. 투쟁대오의 무대는 “잘하니까 나와”가 아니라 “나와서 잘 해봐”의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지부, 지회뿐만 아니라 본조 내 어느 구석에도 문화패 강사료를 뽑아낼 예산항목이 없어서 비록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사재를 털어 강사료를 지불하면서 문화패가 자리 잡아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 운동의 다양한 문화일꾼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집회기획으로 지원하였다. 이제 그들은 전국의 많은 문화일꾼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몸짓패 패장은 말한다. “우린 전국에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전국 투쟁현장은 거의 다 가봤고 공연 섭외가 들어오면 투쟁 일정에 큰 무리가 없으면 무조건 가니까요.” 그들은 민주노총 내 투쟁 사업장만이 아니라 장애인투쟁, 이주노동자투쟁에도 함께 한다.

2006년에는 하이닉스-매그나칩 투쟁이 계기가 되어 모이게 된 지역문화일꾼들이 지역문화운동단체를 결성했다.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문화패 회원들이 주력으로 참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구민 회관을 빌려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노동문화제도 치른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정불화가 주머니 속에 송곳을 여러 개 넣어 둔 것 마냥 튀어나오고 각자의 주머니에 변변한 술값이 들어있지 않아도, 그들은 투쟁의 욕심을 키워 나가고 있다. 너무나 힘든 시간을 지내면서……. 그들의 투쟁 승리를 기원한다.

즐거운 삶을 위해선 신명이 필요해 

얼마 전 어느 후배와 함께 등산을 했다. 강제로 시간을 내어 내몸에 대한 배려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형, 나 다시 풍물패 조직하기로 했어요. 다음 달이면 뜰 거예요.” 
“그래, 잘됐네. 함께 할 사람들은 있고?” 
“네, 전에 같이 하던 사람들 몇 하고, 새롭게 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몇이 있어요. 거기다가 몇 사람 더 얘기해보면 괜찮게 출발할 수 있을 거예요.” 
“잘됐다. 선생은 누가 하게?” 
“찾아보고 안 되면 제가 하죠 뭐” 
“하하, 잘되겠냐?” 
“그럼요. 하하. 형, 이래봬도 나 ‘종합예술인’이에요. 작년에는 7개월 동안 태평소도 배웠다고요.” 
“하하. 그려. 언제 그걸 다 했냐. 잘했다. 그 욕심에 찬사를 보낸다. 투쟁을 위한 무기로도 좋지만, 사람 사는데 취미활동 삼아서 문화활동 하는 것도 참 좋지. 풍물패는 서로 어울리면서 좋은 일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 신명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라.” 
“하하. 그러죠 뭐.”
 

산행 들머리에서 이뤄진 대화가 산마루까지 이어졌다. 조금 조금씩 준비하는 거다. 필요하면 해야 한다. 욕심을 가지고……. 그와 함께 할 동지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현장노동자들의 작품을 들고 전국을 돌고 싶다 

우리의 현실과 의지와 꿈을 만들어내고 보여주는 것, 그리고 함께 어울려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 사실 말은 쉽다. 

하지만 우리는 말만으로는 안 된다.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의지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눈에 보이는 공연물로 만들어 내어야 한다. “내 작품 하나 없는 문화패가 문화패라고 하기에는 좀 멋쩍잖아?”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한 해에 한 편 이상은 작품 내야지”라는 얘기도 해야 한다. 

욕심내야 한다. 노동자문화운동은 벽을 깨는 운동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의식 속에 흐르는 차별의 벽을 깨고, 사무직과 생산직의 벽을 깨고, 여성과 남성의 벽을 깨고, 한국인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벽을 깨는 운동이다. 60년 장기 고착화되고 있는 분단의식의 벽을 깨는 운동이다. 공장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노동자가 자기 이해관계에만 욕심내는 벽을 깨고 담벼락을 넘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문화운동이 맨 앞에서 그걸 해야 한다. 표현하고 보여주어야 한다. 

금속노조 문화국은 올해 상반기에 ‘금속 창작 동호회’라는 프로그램을 제출했다. 분기에 1회 이상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발표회를 하는 것이다. 노래도 좋고 시도 좋다. 극도 좋고 춤도 좋다. 소박한 발표의 장을 만들어 창작열을 높여 나가고 기회가 되면 힘 모아서 규모 있는 발표회도 준비해나가려고 한다. 

2006년에는 2005년 하반기부터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미술협의회, 노동만화네트워크의 몇 분과 공공연맹의 몇 일꾼들과 함께 준비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노동문화 전국 순회 예술전’을 펼친 바 있다. 노동운동과 함께 하고 있는 유명 작가들과 사회에서 높은 지명도를 갖고 있는 분들에게 기획 취지를 설명하고 신작을 중심으로 1인 1작품씩 90여 편의 작품을 얻어서 간이식 표구를 하고 복사물로 전체 두 벌을 만들어서 전국을 순회한 사업이다.

물론 전시현장에서의 다양한 ‘댓거리’ 행사를 배치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창작의욕 고취와 비정규직 노동현장의 차별의식을 없애자는 목적, 현장을 찾아가는 문화행사라는 기획 취지에는 대단히 잘 부합된 사업이었다. 특히 전시공간의 확보가 용이한 대공장 금속사업장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작은 공장까지도 찾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철도, 지하철, 병원 등 공공 영역에서의 전시도 기획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금속 창작 동호회를 발전시켜 순회 예술전에 현장노동자의 작품들도 참가할 수 있게끔 하고픈 욕심이 있다.

노동운동 전반에 걸친 문화운동에 대한 지원의 부재, 노동조합 간부들의 노동문화에 대한 협소한 시각 등이 문화운동을 진행함에 있어서 큰 장애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일선에 있으면 일부 수긍이 가는 얘기다. 다만, 그런 부분들은 장애물이라기보다 ‘토론거리’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만들어 내고 조금 더 보여주면서 인식을 확대시키고 설득해나가야 한다.  

작살판 한바탕 흥겨운 썽풀이로 여는 노동자 새 세상

‘작살판’이란 말이 있다. 스승이신 백기완 선생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기억해 옮겨본다. 

“아들딸들이 제게, ‘아버지 어머니, 우리 민족의 특징 가운데서도 문화적인 특징이 있다면 뭐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라고 또는 외국 사람들이 와서, ‘당신들이 이 땅에 산지가 백 만년도 더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당신들은 역사적인 민족이라 말들 하는데, 당신네 민족의 문화적인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라고 질문을 해오면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겠습니까?” 

내가 여쭈었더니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민족의 문화적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이겠느냐 물었을 때 몇 가지 답변할 수 있는 자료들을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찾을 수는 있습니다. 첫째, 남대문, 국보 1호입니다. 둘째, 불국사 석굴암, 셋째, 우리 한글,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은 대단한 문화적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적 특징을 예술적 면에서 조명했을 때 너희 나라의 특징적인 문화의 한 가닥을 얘기하라고 혹시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판노름’입니다. 요새말로 하면 ‘연극’입니다. 그것을 뒤집어 말하면 ‘굿’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굿이라는 말은 보면 모여서 회의하는 것도 굿이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연극적인 측면도 있고 회의라는 집단적인 측면도 있는 것이 굿이고 그걸 조금 우리말로 구체화하면, 굿 또는 연극을 판노름이라고 합니다. 연극은 현실이 아닙니다. 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꿈을 무대나 마당 판에서 실현하는 예술의 세계요 문화의 세계지, 그 자체가 현실은 아니지요. 

사람이 사람다운 데 가장 필요한 것은 꿈입니다. 꿈이 없으면 죽은 겁니다. 꿈은 욕망과 욕구하고는 틀립니다. 사람에게 꿈이란 무엇이냐? 우리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희망입니다. 연극, 판노름이라 하는 것은 우리들의 꿈을 마당판 혹은 연극무대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아들딸들이 우리문화의 특징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판노름이라고 대답해 주어도 됩니다. 
그럼 판노름 중에서도 예술적으로 수준이 높은 판노름은 뭐냐? 그걸 ‘작살판’ 이렇게 부릅니다. 작살판은 죽었던 판을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작살판은 없었던 판을 새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이 패 저 패 모여서 판을 벌려서 한바탕 놀다가, ‘새벽부터 농사짓는 사람은 나인데 우리 집 쌀뒤주는 텅 비어 있고 등짝이 빠지도록 일을 하는데도 맘 편히 놀러 한 번 못 가는구나. 더럽게 기분 나빠…….’ ‘쌀은 주인 놈 창고에만 있고 자기만 맛난 술 빚어 먹고.’ ‘가자!’ 그러면서 나서는 우리네 춤이 ‘썽풀이’입니다.”


우리 현실세상은 어떠한가? 우리네 노동자들의 삶의 구조는 팍팍하게 조여져 있고 돈벌이 속에만 아등바등 갇혀 있어 갑갑증이 날 정도이다. 아등바등해도 생활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차별은 심화되고 상대적 박탈감은 깊어져만 간다. 고용불안은 항상 우리네 목을 죄고 있다. 한바탕 어울려 작살판을 만들고 흥을 돋워 썽풀이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그걸 하자. 우리네 노동자 문화일꾼은 우리 운동 대오의 맨 앞에 있다.

2007년 5월1일 제117주년 노동절 아침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