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이름으로!

노동사회

‘노동자’의 이름으로!

편집국 0 2,989 2013.05.29 08:30

한미 FTA 협상이 결국 타결되었다. 범국민적인 반대여론과 저항에도, 미국 무역촉진법안(TPA)이 강제한 시한에 맞추려는 노무현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협상은 결국 한 노동자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최소한의 민주적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앞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영향에 대한 충분한 검토 과정도 생략된 채 진행된 한미 FTA를 인정할 수 없다. 향후 체결과 비준과정에서 적극적인 저지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아래에서는 한미 FTA 협상 진행 과정에서 진행된 양국 노동자 공동 대응과정을 개괄하고, 향후 계획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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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민주노총과 미국노총은 '한미 FTA 체결 저지 양국 노동계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미국노총은 6월11일부터 샌프란시스코, 뉴욕, 위싱턴 D.C., 조지아 등 4개 도시에서 민주노총의 총파업시기에 맞춰 1주일간의 공동총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 출처 : 민중의소리 ] 

노동자로서 공통성, 한미 노조의 연대를 이끌다

민주노총은 한미 FTA 협상 개시가 선언된 이후 협상 과정과 협상타결이 공식 선언된 지금까지, 양국 노동자 공동 대응을 위해 노력해왔다. 주요한 공동 사업으로는 △공동성명서 및 입장 발표, △집회와 비폭력 시민불복종행동을 포함한 공동행동, △의회브리핑 등 의회를 상대로 한 대응 활동 등이다. 

작년 2월 한미 FTA 협상 개시가 선언된 이후, 민주노총은 공동 대응 방안 모색을 위해 1차 공식 협상이 시작되기 한 달 전인 2006년 5월 미국을 방문하였다. 그 결과로 6월 워싱턴 D.C. 1차 협상 때, 양국 노동계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공동 집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양국 노동자의 첫 번째 공동 성명서는 한미 FTA가 나프타에 근거한 ‘표준 FTA 모델’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와 반대를 표명하였다. 공동 성명서를 통해 노동자들은 양국 정부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 협상 중단을 촉구”하고, 동시에 “한미 FTA는 노동자의 권리와 환경에 대한 취약한 보호,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정부 권한의 침해, 다국적기업 투자와 이익을 위한 강력한 보호 조항 등 실패한 나프타(NAFTA) 모델의 전철을 똑같이 밟고 있다”는 점을 제기하였다. 또한 양국 노동자들은 위와 같은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한미 FTA 협상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이 협정이 이행되지 않도록 함께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공동 성명서는 그 이후 양국 노동자 공동 투쟁의 원칙으로 기능했다. 애초 민주노총은 미국 노동계가 전통적으로 협상이 진행 중인 FTA에 대해서 ‘협상 중단’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우려했었다. 협상 결과가 나온 뒤에 찬반을 논해도 늦지 않고, 의회 검토 및 비준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민주당과 공조를 취할 수 있는 미국 노동계의 정치적 조건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동 성명서 논의과정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미국 노동계 역시 한미 FTA 협상 개시 자체가 민주적 절차를 밟지 않았고, 양국 정부가 발표한 협상의 기본 틀이 나프타 모델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결국 “협상 중단”을 공동으로 요구하는 데까지 나갈 수 있었다. 이는 나프타가 미국 노동자들에게도 재앙에 가까운 영향을 미쳤으며, 협소한 ‘노동보호조항’을 FTA에 편입시키는 것으로는 재앙적 효과가 상쇄될 수 없다는 교훈에 기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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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6월 민주노총, 한국노총, 미국노총산별회의, 승리혁신동맹이 미국 현지에서 한미FTA저지 공동성명 조인식을 하는 모습 ▶ 출처 : 노동과 세계 ]

비폭력 시민불복종, 대미 의회 활동 전개

공동 행동과 관련해서 양국 노동자들은 다양한 계기를 통해 연대를 강화해왔다. 작년 6월6일 1차 협상기간 중에 벌인 협상장 앞 공동 집회에는 약 60여명의 조합원들이 참가하였다. 이 집회를 시발로 하여, 3차 협상이 진행된 시애틀에서는 협상 개막일인 9월6일 약 1천여명의 현지 노동자와 사회운동 활동가가 참가한 가운데 집회를 벌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는 한미 FTA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와 행진을 미국 노총이 주도적으로 조직하였다. 동시에 3차 협상 마지막 날인 9월9일에는 민주노총이 긴급하게 제안한 비폭력 시민불복종 행동을 미국 노동계가 조직적으로 지지하고,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음에도 현지 노동자들이 직접 참가하였다. 이날 전개된 비폭력시민불복종 행동은 양국 노동자, 민중들의 의지와 절박함을 절실하게 보여주고, 양국 노동자 연대 수준과 질을 한 단계 상승시킨 계기였다. 

당시 진행된 비폭력시민불복종 행동에는 킹 카운티 노동자 지역협의회, 전미항만노동조합 등이 직접 참가하였다. 이들은 “왜 우리는 비폭력시민불복종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라는 선언문을 통해, “양국의 정부를 대표하는 협상단은 우리들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하고 민중의 사회적 기본권과 생존권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음모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한미자유무역 협정은 한국과 미국의 노동자, 농민, 여성 등 모든 민중의 삶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민중들은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모두가 가져야 할 이 권리마저 빼앗길 수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비폭력 평화적인 시민불복종 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라고 발표하였다. 

7차 협상이 벌어졌던 올해 2월 워싱턴 D.C.에서 다시 한 번 양국 공동 집회가 성사되었다. 이 집회는 워싱턴 코트호텔(협상장) 앞에서 진행되었으며,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 승리혁신연맹(CTW) 조합원들 약 100여명이 참가하였다. 집회 이후 미국 노동계의 지원 아래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 대표단이 중심이 되어 한미 정부협상단 수석대표 면담을 요구하며, 협상장 진입을 시도하는 비폭력시민불복종 행동이 다시 한 번 진행되었다. 

또 다른 공동 대응사업으로 진행된 것은 의회를 상대로 한 활동이다. 이는 워싱턴 D.C.에서 진행된 두 차례의 방미 투쟁과정(2006년 6월 1차 협상, 2007년 2월 7차 협상)에서 진행되었다. 이와 별도로 조준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과 임두혁 금속연맹 전 수석부위원장이 작년 9월 워싱턴을 방문하여 미 하원 관계자 면담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또한 7차 협상이 진행되었던 지난 2월13일에는 미 하원빌딩에서, 약 40여명의 미 하원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의회브리핑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 의회브리핑에는 민주노총 허영구 부위원장을 비롯하여 미국노총산별회의 제프 보그트 국제경제전문위원과 전미자동차노조 전 국제국장인 스티브 베크만이 참석하여, 한미 FTA의 문제점과 양국 노동자들의 우려를 전달하였다. 대미 의회 활동은 한미 FTA에 대한 의회 차원의 관심을 제고하고, 향후 의회비준거부 투쟁을 전개함에 있어서 토대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지난 3월 23일에는 16명의 미 하원의원들이 공무원 노동탄압 중단, 구속노동자 석방, ILO 권고 이행을 촉구하는 서한을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자동차산업과 개성공단을 둘러싼 미묘한 입장차이

그러나 우리는 현재 타결된 한미 FTA에 대해 양국 노동자들의 견해가 특정 이슈에 있어서 일정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한미 FTA가 자동차 산업에 미칠 영향과 개성공단 문제이다. 지난 4월2일 발표된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 존 스위니 위원장의 성명서를 예로 들 수 있다. 존 스위니 위원장은 성명서를 통해, 자동차 협상과 관련하여 미국노총은 자동차 무역불균형과 미국 자동차시장의 추가 개방으로 인해 수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우려하고, 한국 자동차 시장의 관세·비관세 장벽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였다. 동시에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하여, “개성 노동자들은 결사의 자유, 단결권, 단체교섭권 등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는 등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이처럼 억압적인 상황에서 생산된 상품이 미국 시장 접근에 대한 특혜를 받는다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미국 자동차노동자의 협소한 이해를 대변하고 있고, 동시에 개성공단 문제의 특수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 차이는 양국 노동자 공동의 시각과 이해를 추출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이는 올해 노동절을 계기로 발표된 ‘전국금속노조-전미자동차노조 한미 FTA 반대 공동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공동선언은 “북미자유무역협정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노동 및 환경 기준의 구속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 자유무역협정의 재앙적인 결과를 보았다. 나프타가 실행되었을 당시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가 즉각적으로 폐지되자 자동차 기업들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자동차와 부품의 생산을 급격히 줄여버렸다. 한편 멕시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과 노동조건은 심각히 저하되었다. 금속노조와 전미자동차노조는 한미 FTA가 채택되면 이러한 파괴적인 시나리오가 다시 되풀이될 것이라고 깊이 우려한다”며, 양국 노동자 공동관점에서 자동차 협상 문제점을 정당하게 제기하고 있다. 

한편 개성공단의 문제는 뿌리 깊은 미국노총산별회의의 ‘반공주의’ 노선에 기반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민주노총은 기본적으로 개성공단문제는 순 경제적인 논리를 넘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 프로세스의 맥락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동시에 북한이 한국, 미국과는 다른 정치·경제체제를 구성하고 있다는 특수성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다양한 맥락들을 함께 고려하면서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문제가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기본 관점을 미국노총과 공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FTA는 ‘양질의 일자리’를 잡아먹는다 

자동차와 개성공단 문제처럼 양국 노동자들이 처한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한미 FTA에 대한 태도 역시 부분적으로 이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다 중요하게 양국 노동자들은 현재 타결된 한미 FTA는 노동권과 공공·사회서비스, 식품안전, 의약품 공공성 등 보편타당한 권리를 침해하고, 다국적기업의 권리를 대폭 강화하는 대신 노동자·민중의 권리 그리고 국가의 역할을 침해한다는 지점에서 확고한 공통 인식을 갖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 조직으로서 양국 모두에서 노동기본권과 노동기준이 제대로 보호되고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임시직과 비정규직 고용으로 대체되고 있는 현실이라든가, 노동자들의 빈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한미 FTA가 고용에 미칠 영향 또한 비판적이다. 지난 2월27일 미 의회브리핑에 제출된, 경제정책연구소(EPI)의 로버트 스코트 연구원이 작성한 “나프타의 유산”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관리와 경제학자는 무역협정이 “미국 노동자에게 더 많은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실질적으로도 1994년 협정 발효 이후 멕시코·캐나다로의 수출 증가에 따라 941,459개의 일자리가 유지·창출되긴 했으나, 역으로 수입 증대로 인해 1,956,750개의 일자리가 사라짐으로써 1993년부터 2004년까지 1,015,29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중 56만여개는 대 멕시코 무역에서 기인하고, 45만 6천여개는 대 캐나다 무역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한 나프타에 의해 미국에서는 총량적인 측면에서 일자리가 축소됐을 뿐만 아니라, 고용의 질 또한 저하되었다. 즉, 무역관련 산업 노동자들에게 2004년 기준으로 주간 평균 800달러가 지불되었고, 나머지 경제부문은 주간 평균 683달러가 지불되었다. 이는 수출관련 일자리보다 16~19%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나프타로 인해 ‘고임금 일자리’에서 ‘무역과 상관없는 산업의 저임금 일자리’로 밀려난 1백만명 이상의 노동자들을 감안하면, 2004년에만 76억 달러에 달하는 임금지불이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차이를 넘어 연대로, 노동친화적 국제체제를 향하여!

양국 노동계는 위와 같은 공통 관점과 인식에 기반하여, 한미 FTA 체결 저지와 의회 비준 반대를 위해 공동 대응을 더욱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양국 노동계는 올해 노동절을 맞아 다시 한 번 공동 선언을 채택하였다. 공동 선언은 미 무역촉진법(TPA)의 시효 만료일을 맞추기 위해 양국 노동자들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비민주적인 협상이 진행되었고, 노동조합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의견이 협상 과정에서 철저히 무시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미 노동자들은 결론적으로 “양국 의원들이 한미 FTA에 반대할 것, 양국 노동자들은 한미 FTA 반대 투쟁에 나설 것, 서로의 실천을 강화하고, 노동자에게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서로의 투쟁을 지원하는 국제 연대에 함께 할 것” 등을 촉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6월 둘째 주에 워싱턴 D.C.,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에서 한미 FTA 반대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공동으로 펼치고, 민주노총 총궐기 투쟁에 맞춰 6월 마지막 주에도 대규모 공동 행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한미 FTA 저지를 위한 양국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은 양국 간을 넘어 국제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바로 다자간 무역틀인 WTO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이 위기에 처하면서 급증하고 있는 양자간 FTA 흐름, 나아가 최근 들어 다시 살아나고 있는 DDA 협상을 중단·역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한미 FTA를 저지시키는 것은 WTO와 FTA를 기본 축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 모델에 대한 국제노동계의 대응 전략과 전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 국제노동계의 수세적인 ‘무역과 노동·환경보호 연계’ 전략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대안 세계화와 공정하고 호혜로운 노동친화적 국제체제의 형성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실천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