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기에 강한 노동운동의 밑거름이 되길

노동사회

부드럽기에 강한 노동운동의 밑거름이 되길

편집국 0 2,848 2013.05.29 08:29

일반적으로 조직의 분화는 진화를 의미한다. 하나의 덩어리가 여럿으로 나뉘는 것, 나뉘어 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조직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역량이 확장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니 새로운 조직인 민주노총교육원 설립은 민주노조 역량강화의 차원에서 무조건 축하할 일이다. 

참 반가운 소식, 민주노총교육원 설립!

분화의 영역이 교육이라는 사실은 더욱 반갑다. 어떤 실천영역이건 제도화되면 경직되기 마련이고, 그 경직을 풀어낼 수 있는 기제를 갖지 않으면 조직은 사멸하기 십상이다. 관료화되지 않은 교육은 이런 경직을 유연함으로 바꿔낸다. 배움은 외부세계의 유입이자 노동대중의 진정한 동의를 창출하는 일이며, 가르침은 가르치는 자들이 노동자 개개인의 일상으로 내려가는 일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이 있는 곳에는 경직이 사라진다. 

민주노총교육원은 제대로 된 교육, 학교와는 패러다임이 다른 노동교육을 전면에 내거는 그런 기관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반갑다. 교육원의 탄생에는 그간의 교육활동의 성과와 실패를 통한 교훈이 축적되어 있고, 따라서 새로운 교육과 과거의 교육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학교에서 시작된 과거의 교육패턴을 파악하여 그것과 단절하고 새로운 교육양식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아마도 강령이나 방침 중심의 상명하달식 교육을 지양하고 노동대중의 경험에서 시작되는 상향식 수렴형 교육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일일 것이다. 

‘급진적’이라는 수식어는 근본의 수준에서 패턴을 바꾸는 일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이런 점에서 하나의 강의를 다른 강의로 주제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강의를 수다로 바꾸는 일과 같은 전환이 교육원에서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기대는 그러나, 현재의 주소를 진단하는 일과 같은 진부한 일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런 흐름과 한계 속에서 교육원 설립이 갖는 의미를 짚어보고, 향후 교육원이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지난 10여년 민주노총 교육사업의 흐름

1995년 민주노총 건설 이후 지금까지 10년 동안의 교육사업의 흐름을 구분하면, 크게 △설립기(1995~97), △모색기(1998~99), △발전기(2000~03), △침체기(2004~05) 등을 거쳐 2006년 이후 ‘재도약기’에 들어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설립기를 보자. 1995년 11월 민주노총 결성 이후 교육활동은 민주노총의 교육사업의 방향과 기틀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전노협 때부터 이어 온 교안제작 및 교육선전지 발간 등의 ‘실무교육’과, 정세와 투쟁방침으로 요약되는 ‘방침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교육의 결과물이 1997년 5월 『교안모음집』(Ⅰ·Ⅱ)의 발간이라 할 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노동조합 일상활동, 단체교섭과 단체행동,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노동법과 사회개혁, 신경영전략과 고용문제, 정세와 투쟁방향, 노동운동사, 철학·정치·경제, 각종(부서별) 실무교육 등이다. 이는 노조활동에 관한 가장 광범하고 실질적인 노동교육 교안이었다.

두 번째 시기인 모색기의 특징은 교육의 활성화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 그 동안의 강의식, 방침전달 중심의 교육사업을 진행해 왔던 점을 스스로 반성하면서, 1998년부터는 새로운 교육과정 개발·보급과 더불어 연맹별 노동교육이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부터 민주노총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등 외부단체와 함께 교육연구팀을 구성하면서 ‘참여형’ 교육방법과 같은 다양한 교육방법 및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초보적인 형태지만 대상별, 단계별 교육프로그램의 기본틀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8~99년 2년에 걸쳐 간부교육 1·2, 위원장교육 1·2, 교육활동가 양성교육 등 새로운 교육과정이 운영되어 노동조합의 기본교육과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이를 토대로 연맹별 교육활동도 활발해졌는데, 규모와 역량을 갖춘 연맹은 조합원교육, 부서별교육, 간부교육 등 기본적 교육과정을 연맹차원에서 기획·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가운데 병원연맹의 합동조합원교육과 단계별 간부교육, 민주금속연맹의 노동교실과 금속산업연맹의 산별노조 건설 조합원기획교육, 민주화학연맹의 단계별 현장활동가 훈련과정 등이 조합원·간부교육의 모범사례로서 나타났다.

발전기라 할 수 있는 2000년부터는 교육이 보다 본격화된다. 노동조합의 기본교육과정을 연맹이나 지역단위로 이관하고, 노동자학교가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노동대학이라는 보다 심화된 형태의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진행하는 등 총연맹, 연맹, 지역 차원에서 모두 노동교육의 빠른 성장을 보이게 된다. 또한 교육과정 연구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교육활동가 양성교육이 매년 2회 정도 진행되면서 교육활동가의 역량이 확충되기도 하였으며, 단위노조 교육실태 조사를 통해 보다 체계적인 노동교육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외국 교육시설을 방문하는 등 노동교육 전반에 큰 진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4년에 들어서서부터는 노동대학이 잠정적으로 중단되고 노동자학교의 경우 현장탐방과 역사기행 수련회 등이 지역의 조건과 참여조직화의 한계로 인해 축소 진행되는 한편, 연맹의 교육사업 또한 축소되는 등 침체기를 겪게 되었다. 이런 침체상태는 2005년 9월 교육실 개편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교육에 대한 위기감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2005년 9월부터 시작되어, 2006년 6월 민주노동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각 연맹과 지역본부에 교육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결정하였고, 각 교육위원회의 장(위원회가 없는 곳은 교육담당자)이 민주노총교육원 준비위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결정, 10월 말에 비합숙교육시설 설치, 11월부터 겨울강좌를 시작하게 된다. 이는 2007년 3월 민주노총교육원의 봄 강좌로 연결되어 교육사업의 안정화로 이어졌으며, 프로그램 개발팀을 구성해서 중단되었던 노동대학을 4기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하였다. 민주노총교육원은 그간의 노동교육성과를 응축하여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구축된 노동교육의 핵심조직인 셈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총교육원의 출발선, 즉 지금까지 교육사업에서 축적해 놓은 바는 어떻게 정리될 수 있는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참여형 교육방법의 개발 및 보급

지난 10여년간 노동교육에 있어서의 가장 큰 성과는 기존의 방침전달을 중심으로 하는 강의식 교육방법에서 벗어나 참여자 중심의 체험식 교육방법을 노동자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개발하고 보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참여형 교육방법이란 삶의 경험, 현장과 노조에서의 활동경험을 나누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함께 참여하고 실천하는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교육방법이다. 이는 노동조합의 조직발전과 조합원의 조직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주어지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과정을 통해 구성원에서 시작하는 조직화의 단초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에서는 지난 1997~99년에 걸쳐 간부교육과정, 위원장 교육과정을 참여형 교육방법으로 구성하고 이후 교육과정과 함께 그 교육방법도 각 연맹과 지역으로 보급하였다. 구체적으로 노동교육으로서의 참여형 교육프로그램으로, △각 노조의 조직현황을 공유하고 과제와 전망을 토론하는 “노조 활동 이렇게 합니다”, △간부들의 발표력과 자신감을 키우기 위한 “발표력 훈련”, △토론의 중요성과 의미를 되새기고 훈련하는 “토론 이렇게 합시다” 등을 들 수 있다. 

노동자의식 수립을 위한 기초교양과정의 개발 및 보급 

노조간부로서 필요로 하게 되는 기본적인 실무력 향상, 노조활동 일반론 이외에도 노동자로서 가져야 할 철학과 세계관 확보의 문제가 2000년 이후 교육담당자 회의에서 중대한 관심사로 등장하였다. 이에 교육담당자 내부 회의를 통해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철학과 자세, 관점을 정립하기 위한 의식향상교육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었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초로 하여 2000년 노동운동을 이끌어갈 활동가 양성을 위한 1기 노동대학을 역사, 철학, 경제, 여성, 통일 등 주제별 강의에 기초한 토론중심 교육방식으로 정리하여 1년여 과정으로 진행했다. 

이후 이에 대한 평가를 통해 노동대학은 강의식 교육과 함께 직접 교육생 스스로 책을 읽고 발제하여 토론하는 토론식 교육, 체험식 교육을 함께 결합하는 교육방식으로 재편하여, 2004년 상반기까지 3기가 진행됐다. 이를 통해 노동대학은 약 80여명의 졸업생과 15명의 개근생을 배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철학교재 『노동자의 삶과 철학』을 제작하여 이에 기초한 학습을 하고, 교육생 스스로 책을 읽고 발제를 하여 토론하는 토론식 교육의 조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지역으로 널리 확산되기도 했고, 교육생 스스로 내린 평가를 봐도 책을 읽고 토론하는 토론식 교육에 대한 평가와 반응이 강의식 교육보다 높았다. 이러한 토론을 통해 교육생 간에 현장활동과 노조활동의 경험을 상호교류하고, 나아가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상호 배움의 기회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노동자학교는 노동대학보다 기초적인 노동자의식 함양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2001년 1기 노동자학교 과정을 공동교재와 강사진, 강의와 반별토론, 담임제 등 기본교재와 교육내용, 교육과정을 통일하여 각 지역·지구협의회와 함께 조직적으로 집행한 사업이다. 1기 노동자학교는 9개 지역·지구협의회에서 360명이 졸업하였고, 3기 노동자학교는 14개 지역·지구협의회로 확산되어 339명이 졸업하는 등 4기까지 약 1,2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노동자학교의 강점은 중앙과 지역이 공동으로 교재를 준비하고 강사단 내부 토론과 리허설 등을 통해 교육의 내용과 질을 통일시키려고 노력하며, 지역별 진행지침서를 제작하여 교육과정의 통일성을 높이려 했다는 점이다. 특히나 강사별로 다를 수 있는 교육내용과 질을 최대한 통일시키고, 교육진행에 있어서도 강의 후 토론과 토론주제 예시, 현장탐방, 역사기행 등을 시도했던 점은 지금 상황에서도 발전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 노동자학교를 통해 각 지역별로는 열심히 활동하는 간부층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고, 특히 지역연대 활성화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전국 교육담당자 네트워크 구축

또 하나의 성과는 교육사업의 위상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구축해나갈 기본 틀을 정비하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연맹의 경우, 연맹별 임단협투쟁과 산별노조 건설 등 연맹의 직접적 현안과 투쟁관련과 관련된 교육과 함께 노동조합 간부로서 필요로 하는 기초간부 소양교육 등에 집중하는 반면, 지역의 경우에는 노동자학교 사업을 중심으로 해서 통일, 정치 교육사업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 

또한 전국 교육담당자 간의 정기·비정기적 회의를 통해 일상적인 교육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민주노총은 각 연맹 및 지역 교육담당자의 교육전문역량 강화를 위한 재훈련과, 새로운 교육방법의 보급을 위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방법, 강의기법, 인성교육 등을 연맹·지역 교육담당자 교육을 통해 실시해 왔다. 사안별 민주노총 조직투쟁 현안 및 쟁점에 대한 일상적인 교육자료, 교안제작 사업과 함께 그 동안의 교안을 수집하여 ‘교안모음집’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런 사업을 기초로 하여 일상적 교육네트워크를 구성할 경우, 각 조직 간 교육프로그램과 일정, 교안 등 각종 정보를 교류하고 상호지원할 수 있는 틀이 생겨나게 된다. 민주노총 교육사업은 중앙만이 아니라 각 연맹과 지역의 적극적인 결합 속에서 교육체계와 과정을 정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민주노총-연맹-지역 교육담당자 간의 사업적 결합력과 지원·협조 관계의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육사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확산

민주노총 사업에서 조직 내 우선 사업은 대개 당면 현안 투쟁사업이었다. 일상적인 교육사업이 있어도 조직 내 투쟁과제가 언제나 1순위였고 따라서 조직의 일정에 따라 교육사업은 연기되거나 변경되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는 한국의 노사관계의 특징, 즉 유럽식의 안정적 노사관계가 아니라 연맹, 지역, 투쟁사업장별 집회와 투쟁이 일상화되어있는 한국 노동운동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87년 전후에 활성화되었던 학습소모임과 이러한 학습을 통해서 배출된 현장활동가들은 이런 사업관행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노동대중을 아우를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교육과 더불어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노동자적 세계관과 운동의 대의에 복무하는 간부 활동가 육성의 중요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이는 어떤 투쟁보다도 중요한 현장 조직강화의 기초라는 것이다. 즉, 교육사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조직 내 과제로 제기되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점차 민주노총의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조직의 역량을 모아낸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민주노총 교육원 건립의 필요성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축적된 성과 위에서 민주노총교육원이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제 좀 더 깊이 있게 전망해보자. 그렇다면 그 동안의 경험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민주노총교육원이 뚫고 가야 할 한계와 과제는 무엇일까?  

조직적으로 면밀하게 체계화되지 못한 교육사업

우선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연맹, 지역본부의 기본적인 교육체계가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연맹과 지역본부의 교육내용·일정의 중복 등으로 인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노정되어 왔고,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단위노조 간부들이 교육을 받고 싶어도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일부조직의 경우에는 교육이 중복되는 반면, 다른 노조의 간부들은 교육받을 기회가 부족한 상황과 같은 비체계성으로 인한 교육기회 편중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이러한 문제가 나타나게 된 원인은 현재 민주노총 조직현실이 처하고 있는 객관적 조건, 즉 연맹은 산별노조로의 이행과정에 있고, 민주노총 전체 조직체계 내에서 연맹과 지역의 역할과 위상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못한 과도기 상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는 교육사업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다른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교육사업의 조직적 체계화는 큰 틀에서는 민주노총 조직체계의 정비과정에서 함께 풀어야 할 문제이다. 예컨대 이미 일정 정도 역할 구분되어 있듯이, 연맹이 임단협투쟁과 관련된 교육사업과 간부소양교육 등 기본 교육과정을 담당하고, 지역이 노동자학교, 정치, 통일 등의 지역사업에 좀 더 주력하는 등의 역할구분에 기초하여 보다 세분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교육전담 주체의 절대적 부족

다른 모든 업무도 그렇지만 교육사업은 전문적인 경험과 역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교육담당자가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단위노조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연맹, 지역본부 교육담당자도 2~3년 만에 한 번씩 바뀌고 있다. 특히 연맹의 경우 최근 2~3년 사이에 보건의료노조를 제외하고는 거의 새 교육담당자로 바뀌었다. 또한 연맹·지역 전체적으로 교육만 전담하는 담당자는 한명도 없는 실정이다. 과거 전노협 시절에는 평균 3~4명이 교육사업을 전담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민주노총의 교육역량은 양적인 측면으로만 한정하더라도 오히려 감소되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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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과 지역의 교육담당이 자주 바뀐다는 것은 민주노총 교육전문 역량의 교체를 의미하며, 그 동안 각 조직에서 해온 교육사업이 안정적으로 전수되기보다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됨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맹에서 지속적인 기본간부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진행하여 간부를 양성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각 조직별로 진행되는 교육과정들이 조직의 조건과 역량에 따라 제각각의 형태로 이뤄지는가 하면, 그나마 조건이 안 되는 조직에서는 아예 실시하지도 못하는 등 조직들 사이 편차가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교육원 건립 이후에도 기본적 활동역량의 문제로 제기될 수 있는 사안이라 보인다. 

질적 변화를 제약하는 열악한 교육재정

다음으로 어쩌면 가장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예산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교육예산은 2000년 1,500만원으로 총예산의 0.5%였다가 2003년에는 0.3%로 축소되었다. 2005년에는 다시 0.5%로 확대되었다(2005년 예산 중 1,500만원은 교육원 관련 예산임). 이 정도 예산으로는 예정된 교육사업을 집행하는 것 이외에는 자체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이나 교재를 연구하고 개발할 여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교육예산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006년에는 1%로 인상하고 2년에 한번씩 2%씩 단계적으로 예산을 늘려갈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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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민주노총의 교육과정 연구개발사업은 네덜란드노총(FNV)이나 에베르트재단(FES) 같은 비영리재단의 재정 지원 프로젝트사업에 의존했으며, 금속, 화섬, 건설, 전교조 등 연맹의 경우에도 외국 노조들의 지원을 받았다. 지역본부의 경우 지자체 예산으로 교육사업을 추진한다. 이처럼 분산적이고 비체계적인 물적 자원들을 교육원 건립을 계기로 보다 집중하고 효과적으로 운용해야 할 뿐 아니라, 더 적극적인 교육재정의 편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활동가 육성과 재교육의 부족

민주노총 산하에는 길게는 10년, 짧게는 2~3년씩 노조활동을 해온 간부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민주노총과 산하조직에서 실시하는 각종 간부교육, 노동자학교, 노동대학 또는 민주노조운동 진영 그 어디에서 실시하는 교육일지라도 -일회성 교육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간과 교육과정을 포함한-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는 물론 바쁜 조직사업 및 투쟁일정으로 인해 안정적으로 교육받기 어려운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을 반영한다. 즉, 이러한 교육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과 운동의 원칙을 정리하며 성장하지 못했고, 대부분은 현장에서의 실천과 투쟁경험을 바탕으로 ‘알아서’ 성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대의와 전망, 우리가 왜 운동을 하며 어떤 자세와 원칙을 가지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민할 만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교육의 부재, 특히 노조(지부, 분회), 지역, 연맹, 민주노총에서 간부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지 못하는 현실은, 건강한 활동가의 부재로 인해 민주노조운동이 정체에 빠지지는 않을까 우려를 하게 만든다.

또한 대부분의 노조에서 조직력과 투쟁력 강화 그리고 현안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심을 두고 교육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이제 조합원들은 “교육이 식상하다”, “매번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그 내용이 그 내용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 건설 이후 10여년이 흘렀고 산별노조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교육패턴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제 노동교육은 조직력과 투쟁력의 강화라는 단기적 효과 위주에서 교육의 목적의식적인 기능, 다시 말해 조직을 강화할 수 있는 투쟁을 만들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방향으로 한 축을 이루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현장단위의 교육 요청이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라도 보다 체계적이고 일상적인 교육사업을 배치하여 진행할 수 있도록 목적의식적인 실천적 노력이 요구된다. 물론 교육이 ‘만능해결사’는 아니다. 다만 교육을 통해서 간부, 활동가의 의식과 활동력을 배가시키고, 때론 현실에서 지치고 퇴색해버린 운동의 원칙과 대의를 돌아보고, 노동자 삶 속에서의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 확대의 기회가 되며, 운동가들 간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교육은 평생토록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육매뉴얼·데이터베이스·외부네트워크 구축의 미흡

그 동안 진행했던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에 대한 교육매뉴얼 및 자료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그동안 진행했던 민주노총 각종 교육과정, 다양한 체험식, 참여식 교육에 대한 교육매뉴얼 제작을 통해 교육내용과 방법을 대중적으로 보급하고 교육활동가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체계적인 DB작업은 이후 교육과정을 정비하고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 연맹과 지역의 교육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교육생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로 후속작업을 도모하는 한편, 전문적 교육인력, 즉 영역별 교육전문가를 발굴하고 관리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노동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노동단체와 전문성과 체계성을 갖춘 대학교 부설 노동대학원,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지역사회(당, 지역시민사회단체 포함)의 평생교육기관 등과의 상호교류를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서로의 역량을 교류하고 사업의 전문성과 체계성을 확립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폭넓은 교육·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비정규노동자, 외국인노동자들처럼 노동자 내부에서도 가장 소외받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이후 조직화의 계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도 중요하다. 이들이 총연맹이나 연맹·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교육을 받는 데 제한이 많은 상황을 고려한다면, 지역단위 노동교육 네트워크 구축이 실질적으로 더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재는 노동자 가족들에 대한 노동운동진영의 교육·훈련에 대한 고민도 서서히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사회의 시민학교나 평생교육기관의 적극적 활용은 노동자 가족들에 대한 다양한 교육기회 제공과 올바른 시민으로서 역할 증대를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추진해야할 사업영역 중 하나다. 

‘믿음직한 노동자’ 양성을 기대하며

아버지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하며 사이클동호회 회장이기도 하고 울산시민이기도 한 노동자가 있다고 치자. 이 속에서 과거의 계급성 혹은 당파성은 다른 모든 규정을 떠나 ‘노동자’에 주목하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현재의 변화된 상황은 노동자들이 여러 다른 정체성과의 경쟁 속에서 ‘노동자’로 살아나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노동자의 헤게모니란 “내가 노동자다”라거나 “나는 노조간부다”라는 사실로 인해 생겨나는 불변의 힘이 아니다. 끊임없는 하루하루의 실천 속에서 관철되는 구성적인 힘이다.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우선적이려면 노동자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관료가 세상을 보는 시각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월해야 하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어떤 진보적인 세력도 제도화되는 순간 경직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민주노총 역시 10여년 동안 제도화되는 과정을 통해 원래적 운동성을 일부 잃어버렸을 수 있다. 운동성은 구성원의 지속적이고 철저한 성찰에서 온다. 자기 입장을 대상화시켜 볼 수 있는 눈, 전향적 관점에서 관계를 조망할 수 있는 능력, 철저한 검증을 거친 올바름에 대한 신념 등은 이런 성찰력이 변형된 방식이다. 민주노총교육원의 사업은 ‘노동자의 시각’으로 세계를 보는 일을 정련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이다. 충분히 개방적이기 때문에 강고히 유지되는 헤게모니. 그것이 교육원사업을 통해 구축될 수 있길 바란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