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영악하고 악랄한 이 거머리 좀 떼 주세요!

노동사회

노동운동, 영악하고 악랄한 이 거머리 좀 떼 주세요!

편집국 0 3,710 2013.05.29 08:49

“엄마! 또 밤에 올 거야? 맨날 맨날 밤중에 오고, 우리랑 놀아주지도 않고….”

주말 일을 하러가는 내게 딸아이는 불만이 가득한 소리를 한다.
할인점 일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일년이라는 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나는 할인점의 계산원이다. 식사가 제공되고, 23시 이후에 근무가 끝나면 교통비와 야간근로수당이 지급되고, 비교적 짧은(?) 근무시간에 퇴직금도 있고 한 달에 아홉 번은 쉬는, 할인점의 꽃이라고 불리는 계산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아침이 밝았다. 몽둥이로 맞은 듯한 무거운 몸으로 억지로 눈을 뜬다. 늦게 마치는 엄마 때문에 평균취침시간이 새벽 1시가 되어버린 내 보물들은 아직 잠들어 있다.

‘이 녀석들에게는 제발 이런 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더러운 세상은 물려주지 말아야 하는데….’

일어나지 못하는 두 녀석들을 달래고 윽박질러 깨워 어린이집으로 데려다 준다. 좀 더 자고 싶지만 집안일도 해놓아야 하고, 또 출근 준비도 미리미리 해두어야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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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17일 있었던 뉴코아 이랜드일반노조 공동파업결의대회 모습. 할인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가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이랜드일반노조 ]

피고름과 피눈물로 만들어지는 ‘고객 감동’ 

나는 보통 오후 3~10시 사이 앞뒤 고객이 많이 밀리는 시간에 근무하는지라 피로도가 높다. 차라리 비라도 억수로 내려서 조금은 한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기도 한다. 출근하자마자 미팅을 갖는다. 미팅이라고는 하지만 일방적인 지시를 받는 자리다. “더워도 부채질 하지마라, 활짝 웃어라, 친절히 고객을 맞아라”라는 지시를 받고 계산대로 들어간다. 

6시간을 꼼짝없이 서서 쉬지 않고 환한 미소와 함께 정해진 멘트로 고객을 맞이해야 한다. 근무하는 동안 화장실을 간다든지 간간이 물을 마신다든지 하는 기본적인 인권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고객 응대만을 위해 친절한 미소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할인점에서 일을 하고 나서부터 방광이 약해져 지속적으로 약을 먹고 있다. 다리에는 실핏줄이 터지기 시작하고 굵은 핏줄은 더욱 두드러지는 등 하지정맥류의 조짐도 보인다. 계산을 하기 위해 물건을 옮기다 보니 어깨, 손목. 팔꿈치는 늘 시큰거려 날씨가 궂은 날에는 통증이 심하다. 이런 이야기를 같이 일하는 언니들에게 해도 당연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고, 아직 증상이 경미할 때 병원으로 가라는 고마운(?) 조언도 있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정신적인 고단함도 말이 아니다. 고객이 욕을 해도 절대 얼굴을 붉혀서는 안 되며 부드러운 말투로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할인점들이 경쟁적으로 ‘고객 감동’을 내세우다 보니 고객의 요구수위도 점점 높아진다. 마치 ‘얼마나 나를 감동시키는지 두고 보자’는 맘인 것 같다. 조금이라도 계산대의 줄이 밀린다든지 하면 화를 내고 심지어는 욕설과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고객의 잘못이 있다 해도 우리는 무조건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어제 어떤 손님은 싼 가격으로 판매하기 위해 물품코드를 양말로 잡아 놓은 옷을 바코드로 찍어 계산했을 뿐이었는데, “내가 언제 양말을 샀어, XX. 뭐 이딴 년을 계산대에 세워 놨어? 책임자 나오라고 해!”라며 주먹을 들었다 놓았다 했었다. 관리자가 와서 가격을 저렴하게 판매하기 위해 바코드 품목만 바꿔 놓은 것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고객은 계속 화를 내며 “똑바로 해!”라는 말만 남기고 갈 뿐이었다.

정규직 시험 당근, 고용형태 무한분화 채찍

할인점에선 “감사합니다 고객님”, 혹은 “죄송합니다 고객님” 뿐이다. 더 이상 다른 말은 필요가 없다. 아주 단순하다. 너무도 단순한 탓인지, 잘못된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입바른 지적을 하는 ‘단순하지 않은’ 직원들의 운명 역시 매우 ‘간단하게’ 정해진다. 계약기간이 좀 남았으면 다른 부서로 전환배치를 시키고,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오는 직원이라면 (예상대로)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 그런 탓에 근무시간 이외의 연장근무를 매일 4시간 이상을 해도 연장근무 수당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야만 일년에 한 번 있는 ‘정규직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설령 떨어진다고 해도 보통 세 번 정도는 응시해야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믿고들 있기 때문이다. 이런 허무맹랑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비정규 남성 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은 27세 정도이고, 평균 급여는 80~90만원 사이다. 꽃다운 나이지만 모두들 너무도 열심히 일하는 탓에 휴무에 불려 나와도 아무런 군소리가 없다.

직접고용 비정규 남성 노동자들에게 회사는 업체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특권’(나는 그들의 업무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을 준다. 업체직원들은 직접고용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잘 보여야만 자신들의 물건 발주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피곤하지 않다. 이런 특권이 직접고용 비정규노동자들이 참 현실에 눈뜨지 못하게 하는 데에 크게 작용을 하고 있다.

또한 ‘업체직원’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은 분명 불법파견이 맞는데도 불구하고 ‘불공정거래’라는 새 이름을 달고 있다. 예를 들어 B우유업체의 직원이면 B업체 제품의 진열과 판매만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업체직원’들은 해당업체의 우유가 진열되어 있는 코너의 모든 제품을 진열, 관리해야 한다. 어쩌면 이런 행위들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업체직원’들은 면접에서부터 지휘, 감독, 관리까지도 할인점이 직접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다 본사에서 높은 사람들이 온다든지, 관련기관에서 누가 나온다든지, 해당 할인점의 행사가 있다든지 하면, 이들은 물건 진열이다 청소다 뭐다 해서 밤을 새고, 그 다음날 다시 또 일을 해야 하기에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근무시간 외의 수당은 없다.

이렇게 한 매장에서 같이 일해도 직원들의 종류가 가지가지이다 보니, 노?노 간의 갈등을 할인점 내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다. 직접고용 비정규직과 업체직원들 간의 갈등,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 영업직원과 관리직원 간의 갈등…, 어떤 지점은 휴게 공간이 있어도 직접고용 비정규직만 이용하고 업체직원은 매장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고 한다. 똑같이 일을 해도 어떤 노동자들에게는 쉬는 시간에 제대로 쉴 수 있는 공간조차 없다.

근무를 마치고 마감을 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하루 종일 서 있었던 탓에 무릎이 구부리는 기능을 잊고 있었는지 자리에 앉는 것이 더 힘들다.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참았던 갈증에 순식간에 물 한 컵을 들이킨다.
 
자정. 아이들은 잠들어 있다. 오늘도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새벽이 된다. 그나마 아이들이 아프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집안의 경조사나 혹은 아이들이 아픈 경우에는 참으로 곤란하다. 회사에서 정해 준 휴무일에만 쉴 수 있기에 급한 일이 생기면 조원들끼리 휴무를 조정하거나 남아 있는 휴무를 당겨서 쓸 수밖에 없다.

정규직화 좇으며 피똥 싸게 일하다가 일회용품처럼 버려지는 

지난 10년 사이에 할인점은 우리의 생활 속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도 한달 이내에 할인점을 방문한 경험이 한 번 이상은 있을 것이다. 할인점에서 생필품을 구입하고, 외식을 하고, 문화생활도 즐긴다.

하지만 할인점 노동자의 기본 인권과 처우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안이 시행되고 있지만, 실상 할인점들은 비정규직들을 가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생색을 내고 있고, 이랜드 일반노조의 가열찬 투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현장은 너무도 고요하다.

활동가 몇 명이 현장 속에서 커다란 파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무리일 수가 있다. 산업구조 자체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변화되고, 고용구조 자체도 간접고용이니 특수고용이니 하면서 다양하게 변질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현장의 노동자들은 자본의 속임수에 멍하니 넘어가고 자본의 착취를 느끼지도 못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일회용품이 되어 버려지고 있다. 

더 많은 활동가가 나와서 역할을 해야 한다. 조직화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는 있지만, 이제 이곳은 정말 상식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 구조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이 악다구니 같은 속에서 더 이상 노동자들이 기만당하게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언제나 열심히 일한다. 너무도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무기계약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새로운 차별 직군 속에서, 또 다시 ‘진짜 정규직’이 되기 위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아니 그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비정규직은 그런 무기계약직이라도 되기 위해 피똥 싸게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이곳의 현실이다.

노동운동, 영악하고 악랄한 이 거머리 좀 떼 주세요!

현장에서 어쩌다 한미FTA의 실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내어 보지만 먼 나라 이야기다. 이런 답답함 속에서도 나의 활동을 멈출 수 없는 건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한테 열심히 공부만 하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하지만 선배님들은 우리의 현실을 위해 무엇을 했나요?” 

얼마 멀지 않은 미래에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

자본은 거머리이다. 정규직화란 사탕발림으로 꽃같이 아름다운 젊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
자본은 악랄하다. 국내 제일을 목표로 전진하는 기업 이미지는 너무나도 멋스러우나 현장 노동자들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자본은 영악하다. 치밀한 준비로 무기계약직이라는 새로운 직군을 만들어내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투쟁의 진행상황을 지켜보며 또 다른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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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