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투쟁, 어디까지 왔나

노동사회

이랜드 투쟁, 어디까지 왔나

편집국 0 4,907 2013.05.29 08:49

어느 활동가의 말처럼 “근 10년 이렇게 여론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싶을 정도로 전 사회적 관심을 모으며 진행되고 있는 이랜드 투쟁. 그런데 이랜드노조와 까르푸노조가 통합해 이랜드일반노조로 출범한 것은 겨우 작년 12월이었다. 홍윤경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의 말대로 “뉴코아노조와 이랜드노조는 ‘공동’이란 이름 아래 이런 저런 행동들을 함께 해온 것이 3년이 넘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이런 조건 속에서 법인 수로 보면 3곳이 넘는 사업장들의 공동투쟁이 가능했던 적은 드물다. 게다가 투쟁의 중심 사안도, 그 힘들다는 ‘비정규직 투쟁’이다. 이런 이유들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랜드 투쟁이지만 여전히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홍윤경 직무대행은 “투쟁의 중반은 넘긴 것 같다”고 말했다. 남은 절반의 투쟁 역시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기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한 번 그간의 투쟁경과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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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11일 뉴코아 강남점에서 열린 민주노총 5차 집중투쟁. ]

해고, 또 해고… 비정규직법 회피 위한 칼바람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해 이름을 바꾼 홈에버의 경우, 지난 4월17일 처음으로 비정규직 조합원이 해고됐다. 홈에버 시흥점에서 21개월 동안 일해 왔던 호혜경 씨가 계약만료를 이유로 해고된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법 시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향후 이랜드 자본의 대응방향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후 홈에버에서는 비정규직법이 시행되기까지 4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당했다. 

홈에버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이랜드 자본인 뉴코아는 지난 5월2일 킴스클럽 계산원 전원을 외주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뉴코아는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1~3개월, 심지어 ‘0개월’ 근로계약서와 백지 근로계약서까지 서명을 강요하며, 6월 말까지 계약이 만료되도록 날짜를 맞춰왔다. 비정규직법 시행 이전까지 계약을 해지하고 용역으로 전환하겠다는 시나리오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외주화’라는 편법을 통해 비정규직법의 차별시정을 피해가기 위해서였다. 결국 7월1일 비정규직법이 시행되기까지 350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계산원들이 해고됐다. 

이에 이랜드일반노조·뉴코아노조는 6월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용역전환 중지를 요구하며 1차 공동파업에 돌입했다. 이후 6월17~18일, 23~24일 두 차례에 걸쳐 공동파업을 진행했으나 사측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이 와중에 홈에버는 6월12일 ‘비정규직 정규직화 방안’을 발표했는데, 그 핵심은 비정규직을 직무급제를 통해 정규직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직무급제는 노동자들의 직무에 따라 다른 급여체계를 적용하는 방식으로서, 비정규직 차별을 고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외주화와 더불어 비정규직법 적용을 회피하는 대표적인 허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게다가 홈에버의 방안은 모든 비정규직에 대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일부만을 ‘선별’해 전환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홈에버가 제시한대로 직무급제 정규직이 된다고 하더라도 비정규직 연봉인 1,050만원보다 겨우 50만원 오른 1,100만원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직무급제가 “단체협약보다 후퇴한 정규직화 방안”이란 얘기가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홈에버 단협은 근속 18개월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을 보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후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들과의 차별처우 시정을 요구해서 차별시정 명령을 받게 되면 정규직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홈에버 정규직 계산원의 연봉은 1,500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조합원들 가슴에 불지른 이랜드, 시민들의 연대에 주춤

이랜드 자본의 이런 태도는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양 노조의 투쟁의지에 불을 지폈을 뿐이다. 6월23~24일 3차 공동파업에서 뉴코아노조는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6월25~27일 뉴코아노조 투쟁에 결합해 분회별 순환파업을 벌였던 이랜드일반노조도 6월28일 4차 공동파업과 동시에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다. 

이후 상황은 잘 알려져 있다. 이랜드일반노조는 6월30일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했고 그 다음날인 7월1일 무기한 점거농성을 결의했다. 이어 뉴코아노조도 7월8일 뉴코아 강남점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모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부터였다. 박성수 이랜드 회장의 이른바 ‘130억 십일조’ 문제로 언론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투쟁은 여론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인터넷 댓글들은 상당수가 이랜드 자본의 이중성과 가식을 성토했다.

교섭이 시작됐다. 7월10일 양 노조는 노동부의 중재로 이랜드 사측의 대표이사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러나 “오늘은 교섭을 논의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는 사측의 태도에 3시간 만에 결렬됐다. 오히려 홈에버 사측은 같은 날 노조 지도부 및 농성 조합원 60여명을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후 7월16일부터 진행된 2차 교섭에서 홈에버 사측은 단협에 보장되어 있는 18개월 이상 근속 노동자 고용보장안과 이미 시행방침을 밝혔던 2년 이상 근속 노동자 선별적 직무급제 전환안을 제시하며 생색을 내다가, 노조가 3개월 이상 고용보장 요구를 철회하고 대신에 3~18개월 노동자 고용안정 방안을 내놓으라는 양보안을 냈음에도 무조건적인 ‘선 농성해제’를 요구하며 교섭 종료를 선언했다. 

이즈음 ‘바깥으로부터의 연대’가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시작부터 해당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나 지역단체들로부터의 연대가 공고했던 투쟁이었지만, 다른 시민사회단체들이 전국에서 이랜드 상품 불매운동을 선언하기 시작하며 노조 측에 힘을 보탰다. 7월13일에는 13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출범하며 불매운동을 선언했고, 7월16일에는 참여연대 등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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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랜드투쟁으로 비정규직법 재개정 국면이 열렸다는 평가도 있다. 8월18일 있었던 이랜드투쟁 승리 전국노동자대회 모습. ]

허술한 비정규직법 만들더니, 이제는 대놓고 자본 편?

그러나 겨우 2차례에 걸친 교섭이 타결되지 않자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7월20일 정부는 홈에버 상암점과 뉴코아 강남점에 공권력을 투입해 점거농성을 강제해산시키고 조합원들을 전원 연행했다. 이어 22일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위원장, 26일 이남신 수석부위원장과 이경옥 부위원장을 구속했다. 법원도 7월25일 이랜드일반노조, 31일 뉴코아노조에 각각 영업방해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림으로써 양 노조의 투쟁 제동에 동참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7월29일 새벽 2시에 뉴코아 강남점을 재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더 신속해졌다. 이랜드 사태는 노사 양측이 해결할 문제라던 정부는 재점거가 이뤄진 지 이틀 만인 7월31일, 다시 공권력을 투입해 200여명을 연행했다. 같은 날 공대위가 발표한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60.5%가 경찰의 농성장 투입을 반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공권력 투입으로 재점거 농성까지 끝나게 되자 이랜드 사측의 태도는 더욱 더 완강해졌다. 재점거 농성이 강제해산됐던 7월31일부터 3일간 지속된 3차 교섭에서 홈에버 사측은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줬던 ‘과장급 노동자의 조합원 인정’ 문제를 들고 나왔다. 3명의 간부가 구속돼 교섭에 참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섭에 참가한 박승권 쟁의국장이 “과장이기 때문에 조합원으로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교섭위원으로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난항 끝에 이번 교섭에 한해 과장급 교섭위원을 인정하겠다고 물러선 사측이 들고 나온 교섭안은 “6~18개월 사이의 근무자가 재계약 안 할 시 유급전직기간 한 달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2년 이상 노동자에 대한 직무급제 선별 적용안은 그대로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18개월이 되기 전에 계약해지해서 실질적으로는 ‘18개월 이상 고용보장’이라는 단협조항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었다. 

뉴코아의 경우 계속 쟁점이 된 것은 ‘외주용역의 철회 시점’이었다. 뉴코아노조는 해고된 비정규직 조합원들 대신 투입된 외주용역의 1개월 내 철회를 요구해왔고 사측은 이미 1년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용역계약 10개월 이전에 계약을 철회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며 버텨왔다. 그러나 노조 측에서 최근 입수한 용역 계약서에는 위약금 규정은 아예 있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뉴코아 교섭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3일간의 이 3차 교섭 기간 동안 양 노조는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홈에버 면목점과 시흥점에 대한 점거를 시도했으나, 어떻게 알았는지 경찰은 번번이 이를 미리 알고 매장을 봉쇄하고 있었다. 사측은 더 거칠 것이 없어보였다. 이후 8월6일 이루어졌던 4차 교섭에서 사측은 △중노위 사후조정, △상급단체 위임, △노사정위원회 중재 등 3가지 중재방안과 실무교섭을 제안했다. 얼핏 보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노조로서는 당사자가 배제된 협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양 노조는 제3자에게 맡기는 것이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실무교섭만을 받아들였다. 

변한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를 가능하게 했던 힘도 여전하다

그러나 8월11일에 재개된 5차 교섭에서도 사측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공세로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뉴코아 사측이 8월14일 강남점 등 6개 매장에 직장폐쇄 조치를 내린 것이다. 여기에 더해 뉴코아 사측은 14일 실무교섭 몇 시간 전에 “계약해지된 80명을 재고용하겠다.”고 언론에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재고용’이란 표현이 불명확하고 그나마도 ‘선발’하겠다는 내용이어서 신뢰하기 힘들다는 것이 노조 측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더군다나 “노조와의 교섭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교섭 석상에서 하지도 않은 얘기를 언론에 퍼뜨리는 것은 신뢰할 수 없는 태도”라는 게 노조의 판단이었다. 결국 양 노조는 8월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의 이런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며 이런 교섭이라면 당분간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매출제로투쟁’으로 이번 투쟁에 결합해왔던 민주노총은 계획했던 대로 8월16일 “이랜드 투쟁 승리를 위한 1천명 선봉대”를 발족하고 보름간 매일 2곳의 매장을 타격해 매출감소 투쟁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어 8월18일에는 전국 동시다발 노동자대회를 열어 서울역에서 집회를 열고 뉴코아 강남점과 홈에버 상암점에서 봉쇄투쟁을 진행했다. 또한 민주노총은 8월21일 이랜드 투쟁 단일 안건으로 임시 대의원 대회를 열어 조합원 생계비 지원 등을 안건으로 이랜드 투쟁을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여기까지가 간략하게 살펴본 그 동안의 투쟁 경과다. 그러나 이번 투쟁은 이렇게 투쟁 과정에서 있었던 사실만을 살펴보는 것으로는 그 큰 그림을 그려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투쟁이 있을 수 있었던 객관적인 조건들도 중요하지만, 그 조건들에 대비해오고 그 조건들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이뤄졌던 노력들을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그 열쇳말로 ‘연대’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과정에서도 보이듯이 가장 기본적인 연대는 이랜드일반노조와 뉴코아노조의 연대였으나, 그 밖에도 민주노동당·지역단체·시민사회단체·학생 등의 다양한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뿌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였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투쟁의 행복한 결말을 위해서라도 이 ‘연대’의 끈들이 끝까지 촘촘한 그물로 엮이게 되길 기대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