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 항공모함은 조각배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노동사회

15만 항공모함은 조각배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편집국 0 3,591 2013.05.29 08:47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올해 임금단체협상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사실 섣부르다. 기아차지부 잠정합의가 부결되었고 현대차의 임단협이 시작단계에 있으며, 지역지부 및 지회단위의 임단협이 종결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교섭이 잠정합의에 이르렀고 올해 교섭의 핵심 관심사였던 대공장의 중앙교섭 확약서 제출수준이 결정된 상황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러한 섣부름에도 대강의 가닥이 결정된 점을 고려하여 평가를 진행하고자 한다. 이 평가는 조직내부의 공식논의를 거친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개인 차원의 평가임을 분명히 한다.

개인적으로 특히 ‘15만 산별교섭의 초보운전자’라는 자세로 겸허하게 되돌아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금속노조에 새로 결합한 대공장들은 2007년 임단투에서 산별시스템을 첫 경험하는 명실상부한 초보운전자였다. 기존 4만 금속노조 출신의 지부·지회들 역시 그간 산별노조를 경험해왔다고 하지만, 15만 산별이라는 새로운 조건에서는 충분한 경험자일 수 없었다. 15만의 첫 산별교섭 평가가 객관적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면서도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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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25일 있었던 금속노조 임시 대의원대회 모습. 이날 금속노조는 "산별중앙교섭 쟁취"를 임단협 목표로 결정했다. ▶ 금속노조 ]

2007년 금속노조 임단투의 의미와 초기목표

2007년은 금속노조가 과거 4만 시대에서 15만 시대를 맞는 첫해였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조합원 숫자만이 아닌 영향력의 크기를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금속노조는 커다란 기대와 다양한 우려 속에서 올해 임단협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2007년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는, 밖으로는 한국 노사관계가 산별노조 중심으로 재편되는 속도와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였다. 또한 조직 내부적으로는 오랜 기업별 노조체제의 중심에 있던 대공장들이 과거와 전혀 다른 산별노조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조직 전체가 얼마나 빠르게 어떤 방식으로 변화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판가름하게 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금속노조는 4월25일 대의원대회를 통해 “15만이 하나 되는 투쟁을 통해서 산별중앙교섭을 쟁취하자.”는 임단협 목표를 결정하였으며, “7월 말 임단협 종료”를 목표로 하는 일정을 확정했다. 

다양한 변수들이 돌출했던 15만 금속노조의 첫 임단투

통상적으로 했던 것처럼 올해 금속노조의 교섭도 4월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는 2007년 3월1일에야 5기 지도부 당선이 확정된 것을 고려하면 무척 여유가 없는 일정이었다. 여기에 현대차지부의 보궐선거, 대의원선거가 늦어짐에 따라 임시대의원대회도 늦춰진 과정이 있었다. 4월25일 대의원대회에서는 “처음 시작인만큼 과도한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당초 의견과 달리, 조합원을 모아낼 추가의제가 필요하다는 제기를 비롯하여 임단협 기조에 대한 논란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제시됐다. 또한 대의원대회는 첫 임단협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에다가 ‘6월 말로 못 박힌 한미FTA 저지 총파업’을 얹어 놓았다. 변수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5월4일 요구안 발송 이후 5월22일 첫 중앙교섭이 열리면서 임단협이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완성차 등 대공장이 참가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2만명만을 대표하는 금속사용자협의회와 교섭을 한다는 것은 결코 균형이 맞지 않은 것이었다. 이에 따라 중앙교섭장에서는 불참사업장의 참가를 반복적으로 촉구하는 것 외에 별다른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으로 불참사업장의 현장에서도 중앙교섭 참가를 압박하는 투쟁을 병행하기로 했으나, 이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불참 대공장들에서 중앙교섭에 대해 확고한 이해를 함께 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 기간에도 한미FTA 저지파업과 임단협의 결합 여부와 총회투표 여부를 둘러싼 논쟁들이 지속되었다. 

6월 말 총파업이 다가오면서, 한미FTA에 대하여 찬성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언론의 마녀사냥식 총공세가 지속됐다. 그런 와중에 현대차지부를 비롯하여 조합원들의 정치파업에 대한 피해의식이 유례없이 강하게 표출되고, 파업 찬반투표를 둘러싼 방침의 불안정성이 겹쳐지면서, 15만 금속노조는 첫 위기를 맞았다. 특히 주요 대공장이 순환파업에 불참하면서 위기감이 더욱 높아졌다. 정부 또한 총공세를 폈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6월28과 29일 주요 대공장을 포함하는 파업을 성공시키면서, 자칫하면 최악의 상황으로 빠질 뻔했던 위기 상황을 극복해냈다.

7월 들어 총파업에 따른 정부의 총공세로 임원 및 지부장들에게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는 교착상태에 놓인 중앙교섭의 돌파를 위해 방침을 변경하였다. 7월 말 타결 목표 속에서 2만 중심의 중앙교섭을 별도로 재개하고, 중앙교섭 불참 대공장의 경우에는 2008년 참가확약서 수용을 최저선으로 하여 개별 교섭을 진행하도록 전술을 바꾼 것이다. 이에 따라 지부 선거 일정으로 임단협이 매우 늦게 시작된 현대차는 예외가 된 상황에서, 기아차지부가 7월 초부터 강력하게 파업에 돌입했다. 기아는 GM대우지부와 함께 확약서 쟁취의 선두에 섰고, 2만 중앙교섭은 7월11일 재개되면서 요구안을 실질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7월18일부터 20일까지 총파업을 전개함으로서 요구 쟁취를 위한 총력을 기울였으나, 파업의 파고는 충분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또한 7월 말 타결이 가능한 것인지를 최종 판단해야 하는 7월23일 교섭에서도 진전이 없었다. 축소교섭이 진행하면서 지속된 끝에, 7월25일 산별최저임금을 둘러싼 막판 줄다리를 마지막으로 중앙교섭 타결에 이르렀다. 곧이어 기아차지부와 대우차지부가 2008년 중앙교섭과 관련해 제출한 확약서 내용을 심의, 승인함으로써 7월 말 타결을 목표로 한 임단협 교섭이 일단락되었다. 

산별교섭의 발목을 잡은 낡은 것들과 새로운 것들 

15만 산별노조가 출범하면서 조직안팎의 기대감이 상당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실제 임단협에 돌입하자 매복해 있던 다양한 어려움들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7년 임단협에서 드러난 교섭의 악조건들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15만 금속노조는 “산별노조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확인됐다. 2006년에는 ‘산별전환’ 자체가 중대한 문제였고, 전환 직후엔 ‘조직형태’를 둘러싼 논의가 중심이었다. 정작 산별노조의 역할과 사업에 대한 논의, 교섭의제와 틀에 대한 논의와 고민이 취약한 상황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 결과 임단협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중앙집행위원회의는 내부 성원 사이에서 경험 및 이해의 편차를 드러내며 거듭 심야까지 이어졌다.

둘째, 산별 중앙교섭의 중요성에 대한 현장조합원들의 공유가 취약하다는 점은 여전했다. 간부들도 여전히 자기사업장 임단협 중심 관성을 넘어서지 못한 상황에서, 조합원에게는 더더욱 중앙교섭의 중요성이 공유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중앙교섭은 그 자체로 투쟁동력을 모아내지 못했고, 지부 및 지회의 임단투 동력과 결합해서 투쟁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대공장의 경우에는 해당지부의 요구안에 대한 관심에 비해 중앙교섭에 대한 관심은 훨씬 멀리 떨어져 있었다. 

셋째, 한미FTA 저지 총파업의 영향이다. 정치총파업을 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 없이 산별노조로서 금속노조의 임무다. 금속노조는 불리한 여론, 임단협과 파업 찬반투표를 둘러싼 내부혼란, 일부 조합원의 정치파업에 대한 피해의식 등에도 불구하고 6월28과 29일 파업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투쟁과정에서의 내부혼란과 상처, 임원 및 지부장을 포한한 지도부의 행동제약 등은 산별교섭에 어려운 조건으로 작동하였다. 

넷째, 지도력의 불안정성이다. 임원 내부의 통일적 리더십이 발휘되지 못했고, 하이닉스 문제에 대한 논란으로 15만 산별노조의 첫 지도부의 힘이 크지 않다는 신호를 외부에 내보내고 말았다. 이는 자본측의 산별교섭 참가를 강제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다섯째, 대공장들의 투쟁시기를 일치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4만 금속노조를 이끌어온 중심조직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대공장들의 투쟁시기를 일치시켜야 금속노조의 투쟁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때문에 이를 성사시키기 위한 수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현대차의 경우 보궐선거로 인해 지부집행부 출범이 늦어지고 임단투도 늦어지는 객관적 조건을 뛰어넘을 수 없음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산별노조를 일찍 경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4만 금속노조의 전투부대였던 지역지부 및 지회들도, 15만 산별노조라는 변화된 환경 속에서 예전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힘든 과정을 맞게 됐다. 결국에는 지역지부들에서도 “중앙교섭 타결 없이 지부교섭 타결 없다는 기존 방침도 지켜질지 의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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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저지 총파업은 산별노조로서의 금속노조의 임무임에 틀림없지만, 투쟁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산별교섭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지난 5월1일 노동자대회에서 금속노조가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행진하는 모습. ▶ 금속노조 ]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중앙교섭과 완성차교섭의 분리 

위와 같이 진행과정에서 드러난 악조건은 15만 조직이 산술적 결합을 넘어 15만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아직 채 준비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중앙집행위원회는 결국 주어진 현실 속에서 불가피하게 방침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한미FTA 저지 파업 직후 중앙교섭 참가사업장과 불참사업장의 교섭을 분리했으며, 가장 핵심적인 지부임에도 불구하고 임단투가 가장 늦어버린 현대차를 7월 말 타결계획에서 제외하기로 인정했다. 즉, ‘사고지부’를 제외하고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도, △2만의 중앙교섭참가 사업장, △기아차와 GM대우, △현대차로 각각 3분된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15만이 하나의 조직으로서 통합되었지만, 그 역량을 총결집하지 못하고 조직내부의 조건과 상태를 반영하여 부분화됨을 의미했다. 이에 15만이 하나 되는 투쟁을 통해 쟁취하려던 목표 역시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중앙교섭 불참 사업장들에 대해서는 ‘2008년 중앙교섭 참가확약서 쟁취’가 마지노선으로 결정됐다. 마찬가지로 15만이 아닌 2만이 참가하는 중앙교섭이 진행됨에 따라, 완성차가 참가할 것을 염두에 둔 중앙교섭의 요구들, 이를 테면 원하청 불공정거래 금지 등의 사안들도 애초보다 더 낮은 수준에서 타결될 수밖에 없었다. 중앙집행위원회는 이를 현실로 인정하여 타결을 승인했다. 

2007년 임단투를 통해 드러난 개선해야 할 문제들

이제 2007년 임단협을 통해 확인하게 된 개선해야 할 금속노조의 문제점과 한계들을 살펴보자. 첫째, 교섭요구 결정과정의 취약성이다. 교섭 준비기간 동안의 핵심적 논쟁 중 하나가 “중앙교섭 의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였다. 또한 요구수준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8개 영역 13개 추가의제가 제출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임금을 중앙교섭 의제로 다룰 것인가를 비롯하여, 총고용과 신규채용 시 조합원 우선 채용 등 고용안정에 관한 사항, 비정규직에 관한 사항, 산별노조로서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기 위한 사회양극화 해소기금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추가의제들 또한 충분한 논의나 대중적 논의를 거칠 기회가 없이 간부중심으로 제안된 수준이었다. 그나마 조합원 설문조사를 통해서 확인된 현장정서를 요구안으로 온전하게 반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결국 단체협상위원회의 요구안 논의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뒤집어지고, 또 상임집행위원회-중앙집행위원회-중앙위원회라는 위계적인 논의구조를 거치는 과정에서 똑같은 논의가 되풀이되기도 했다. 그나마도 대의원대회에서는 전혀 다른 결론이 나기도 했다. 대중적인 요구안 확립과정은 민주주의의 문제이자, 15만의 동력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처럼 혼란스런 교섭요구 수준의 결정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산별노조 교섭권 실행에 있어서의 문제다. 확약서를 제출하고 본조 승인을 위해서 지부교섭 조인식을 연기하는 등 뒤늦게 본조의 방침을 수용했던 쌍용차지부를 비롯하여, 기업지부들은 일찍부터 교섭권과 관련하여 예외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다. 또한 소산별을 제기하는 현대제철, 하이스코 등 철강업종과, ‘1사1조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비정규직지회 등 조직편제가 완료되지 않은 단위들의 경우 교섭권 역시 그 편제가 정리될 수 없었으며 불가피하게 본조가 교섭을 직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듯 기업지부와 미편제 조직단위에 대해서 본조 임원이 역할분담을 통해 교섭대표를 맡아야 했지만, 실제 교섭에 돌입한 상황에서는 임원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일부 기업단위 교섭에는 교섭대표를 파견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러한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산별노조 교섭권 실행 문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셋째, 2만 중앙교섭과 13만 불참사업장 교섭의 통합과 분리 문제다. 6년간 2만이 확보한 중앙교섭의 성과는, ‘금속사용자협의회를 구성하여 중앙교섭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5만이 되면서 금속 산별노조는 완성차가 빠진 금속사용자협의회를 교섭대상으로 인정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문제에 부딪쳤다. 6월까지는 인정하지 않았기에 교섭장에서 대공장의 불참을 이유로 요구안 설명도 하지 않았으며, 이를 근거로 조정신청을 했다. 그러나 7월에는 결국 금속사용자협의회를 대상으로 중앙교섭을 진행하여 최종 타결하였다. 불참 대공장의 참가를 통해 교섭체계를 정비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내년에 또 다시 발생할 것이다.  

현실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간 원칙을 위한 복잡한 방정식
 
넷째, 교섭진행 및 타결의 원칙을 둘러싼 문제다. “중앙교섭 타결 없이 지부지회교섭 타결 없다.”는 원칙은 단순히 4만 금속노조만의 원칙이거나 문구상의 원칙이 아니다. 산별노조의 원리를 유지하는 일반적인 원칙이다. 올해 교섭에서는 7월 말에 중앙교섭이 타결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 다수의 지부, 지회에서 이 원칙이 무력화될 위기에 놓였었다. 중앙교섭을 중심으로 조합원의 동의와 힘 결집을 분명히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이 원칙은 언제든지 공격받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산별 중앙교섭의 명확한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는 특히 ‘중앙의 교섭통제권’이 확고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공장들의 경우에는 현장에서 중앙교섭의 투쟁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임단협 교섭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또 임단협을 열어도 중앙교섭 타결 전에 지부·지회에서 노사 의견이 합의될 우려는 없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기업지부의 교섭 진행 과정에서 지부 요구가 중앙교섭 요구를 압도했던 점을 분명히 평가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타결 시점의 혼란 문제다. 즉, 7월 말 타결을 목표하자는 주장과 8월 또는 내년으로 이월하자는 주장의 충돌 문제였다. ‘7월 말 타결’을 결정한 이후에도 그것이 적절하며 가능한가라는 문제제기가 지속되었고, 8월로 투쟁을 넘기자는 주장이 있었다. 7월 말 타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난 다음에도 안 되면 불가피하게 8월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선의 노력 없이 미리 8월로 넘길 경우 상당수 지부·지회 임단협이 거의 의견접근에 이른 상황에서 ‘사고지부·지회’가 부지기수로 발생할 것이 뻔했다. 또 지부지회 임단협은 타결하고 중앙교섭만 하반기로 넘겨서 투쟁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조합원들이 중앙교섭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 상황에서 임단협 동력 없이 중앙교섭 요구만으로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선택되지 않았다. 

한편으로 하반기에 임단투가 본격화되는 현대차지부의 전선에 맞춰 전체 동력을 싣자고 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 역시 현대차의 임단협이 사실상 8월 말이나 9월에 가야 피크가 될 상황에서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한 이야기였다. 심지어 최저임금만 타결하고 나머지는 내년으로 넘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는 사실상 올해 산별 중앙교섭을 포기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는 심각한 상황을 의미하기 때문에 수용되지 않았다.

여섯째, 기업지부 확약서 승인논란이다. “2008년에 중앙교섭에 참가한다.”는 명확한 약속이 우리가 원했던 확약서의 내용이다. 기아차지부, GM대우차지부, 쌍용차지부 등에서 제출한 확약서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확약서 수준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문제다. 때문에 기준에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문구가 아니라 조직력과 투쟁력 수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조직력과 투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 없이 문구 수준만을 높이기 원한다면 이는 관념일 뿐이다. 

7월26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기아차와 GM대우차의 확약서 승인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승인, 조건부 승인, 판단 유보, 승인 불가 등의 다양한 입장들에 대한 검토가 있었다. 그러나 기아차의 경우 기업지부의 일반적 현상인 ‘중앙교섭에 대한 조합원의 일체감 취약성’만이 아니라, 적자경영상태, 현대-기아 자본은 동일하지만 노조는 시기 불일치로 인해 힘이 분산되는 상황 등의 악조건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92시간의 파업을 거친 결과가 그 확약서였다는 점에서, 누구도 그 성취 노력을 부정할 순 없었다. 또한 이 확약서들을 승인하지 않거나 혹은 판단을 하지 않을 경우, 중앙교섭 타결 없이 지부 교섭만 타결하게 됨으로써 기아차와 GM대우를 비롯하여 조직 다수에 의해 금속노조의 타결원칙이 위반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 있었다. 따라서 더 진척된 확약서 쟁취와 2008년 중앙교섭 참가를 반드시 이루기 위한 투쟁을 지속한다는 전제 속에서 승인 결정이 내려졌다. 

일곱째, 15만 산별노조의 첫 임단협의 진행과정을 더 심층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면, 한미FTA 저지파업 찬반투표 여부를 둘러싼 문제와 관련하여 사실상 규약위반 논란을 2006년 찬반투표를 근거로 돌파한 점 등을 비롯하여 더 많은 영역들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역지부-기업지부 간 산별교섭의 경험의 차이로 인한 이해의 편차가 드러난 상황에서 조직 내 다양한 의견그룹들의 주장까지,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 금속노조의 내부논의를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사실 확인 및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 외의 심화 평가지점들에 대해서는 이후 본격적인 평가의 과제로 남긴다.

악조건 속에서도 확보한 내년 중앙교섭 교두보 

이러한 문제점과 한계들뿐만 아니라, 15만 금속노조의 첫 임단투 과정에서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 할 성과들 역시 소중하게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산별노조의 조직 시스템이 주는 장점이 있음을 명확하게 공유해야 한다. 쌍용차의 경우 초기에 금속노조의 임단투에서 예외지대에 있었으나, 징계논란을 거쳐 지부교섭 조인식을 미루면서 확약서를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또한 동종사 수준에 버금가는 안을 확보했다. 이는 기업별노조에 기초한 연맹시절에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기업지부 역시 산별노조라는 단일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는 조건에서는 어떤 수준에서든 이 시스템의 강제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결정한 15만 산별노조의 질서와 규율에 따라서, 대공장 기업지부는 과거 금속연맹 시절과는 달리 수많은 사안에 대하여 본조의 판단과 승인을 요구한다. 조직편제가 미해결된 일부 조직은 여전히 금속노조 방침의 외부에 있으나, 이를 산별시스템 안에 통합해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2007년 임단협은 소중한 학습의 과정이었다. 초기 15만 산별노조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악조건을 헤쳐 오는 것 자체가 학습과정이었다. 기업지부와 지역지부의 조건 및 경험 차이, 기업별 교섭과 산별교섭을 둘러싼 충돌로 인한 논쟁은, 서로가 서로에게 선생이며 제자인 평등한 관계 속의 학습과정이었다. 물론 15만 조합원 전체가 이러한 학습에 동일하게 참여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학습의 결과를 모두가 공유하는 과정은 미흡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15만으로 학습을 확대하기 위한 과정이 이후의 실천 속에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한미FTA 저지파업을 둘러싸고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면서 마녀사냥식 폭격을 받았지만, 금속노조는 이를 극복했다. 물론 조합원 내부의 동요와 이견 또한 만만치 않은 상처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뚫고 임단협 전선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금속노조의 투쟁력과 조직력의 뿌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이러한 점이 금속노조의 최고의 자산이자 최후의 무기인 것이다.

넷째, 15만 산별노조의 첫해에 부딪친 제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실질적 성과를 확보하였다. “7월 말 타결이 가능한 것인가.”, “이 상태에서는 확약서 절대 못 받는다.”, “차라리 내년으로 넘기자.” 등등의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의 타결원칙을 지켜냈다. 또한 만족할 순 없지만 완성차 사측들로부터 노사 공동의 ‘산별교섭준비위원회’라는 2008년 중앙교섭 참가를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또한 기존 산별협약을 수용한 지회를 비롯하여 8월16일 현재 총 30개 지부·지회에서 중앙교섭 확약서를 제출한 생태다. 현재로도 조합원 수로는 약 5만 2천여명을 포괄하나, 이후에 현대차지부에서 확약서를 얻어낸다면 약 10만 이상을 포괄하는 범위에서 확약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사들의 확약서를 확보할 것을 가정한다면, 기존 중앙교섭 참가 사업장의 2만과 중앙교섭참가 수순에 돌입한 10만을 포함, 15만 산별중앙교섭을 조만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

산별교섭 준비위원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약간의 내용적 편차들이 있으나 주요 완성차 대공장들에서 2008년 산별중앙교섭에 참가를 위한 과정으로서 노사공동의 산별교섭준비위원회 구성을 확약받았다. 산별교섭준비위가 무슨 필요가 있냐며, 어차피 내년에는 시기부터 일치시키고 힘을 모아서 붙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내년에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순 없다. 어렵게 쟁취한 산별교섭에 대하여 구체적인 쟁점화의 소중한 공간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내년 산별교섭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 완성차 대공장을 비롯한 중앙교섭 불참 사업장들이 모여서 산별교섭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절반은 산별교섭에 발을 내딛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공장의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강제함으로써 그간 불참 재벌사들의 참가를 압박할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사측은 산별준비위를 또 다른 핑계를 만드는 근거로 삼으려는 의도를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2008년에도 15만 조직력과 투쟁력을 모아 ‘교섭성사’를 위해서 힘을 쏟을 수밖에 없음 역시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산별 전환과정에서 산별노조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히 논의하는 대신, 전환 자체가 시급했고 전환 직후는 조직형태에 대한 논쟁에 집중했다. 그 결과 올해 임단투에서는 조직형태와 교섭구조가 분리되어 교섭 의제 및 방식을 꼼꼼하게 준비할 수 없었는데, 그러한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산별교섭준비위의 구성과 운영에 대하여 발 빠르게 준비해야 한다. 또한 이를 계기로 하반기에 15만 금속노조 전체가 ‘산별노조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교섭의제와 교섭체계 논의를 전면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금속 노사만이 아닌 주변의 다양한 인프라를 이 논의에 흡수함으로써, 논의를 최대한 넓고 뜨겁게 조직해야 한다. 기존 조직형태 논쟁을 넘어서는 대중적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노동조합 내부의 의사소통과 의견을 통합하는 능력이다. 산별노조의 역할과 상을 전략적으로 더 심화하는 논의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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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20일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금속노조 현대, 기아, 쌍용차지부 1,000여명의 간부들은 중앙산별교섭을 거부하고 있는 현대-기아차 자본에 대한 규탄투쟁을 진행했다. ▶ 금속노조 ]

거대 산별노조에 걸맞은 거시 전략적 인식을 위하여 

2007년 상반기의 투쟁을 통해 학습한 결과에서 보듯, 15만의 거대 항공모함은 결코 조각배처럼 움직일 수 없다. 15만 산별노조는 4만의 금속노조, 단일 노사관계 속의 대공장지부와는 ‘다른 세계’다. 

한국사회의 노사관계 지형을 고려할 때, 우리는 지금 단지 금속관계 사업장의 자본과 대결하는 것만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11%의 노조 조직률이 의미하는 바를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소속사업장의 자본만을 상대로 한 투쟁을 할 경우, 금속관계 사용자들만이 항상적이고 일방적인 노조의 공격을 받는다. 문제는 삼성을 비롯한 무노조 재벌군단은 안전한 ‘노조 무풍지대’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조를 공격함으로써 사업장 노사 모두에게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는 산별교섭과 관련해서도 중앙교섭을 인정하지 않는 일부 재벌사들과 삼성, 포스코 등의 반노조 배후자본의 연합전선이, 경총 등의 장막 뒤에 숨어 금속노조에 대한 적대행위를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현대-기아재벌만 두들겨 패면 된다.”는 인식으로는 결코 금속노조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15만 금속노조라는 거대 산별노조의 정착은 한국 노사관계 지형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에 걸맞게 제반 사회세력과 정부-자본의 역학관계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대응하는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인식을 요구한다.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학습한 과정에서 보듯, 15만 산별노조는 금융이나 보건의료와 같은 산별노조와 달리 내부 구성의 다양성, 경험과 인식의 편차들이 존재한다. 과거의 대공장 기업별 노조의 경험, 4만 금속노조의 경험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으며 15만에 걸맞은 시스템과 운영력을 확보해야 한다. 즉 ‘거대 항공모함’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내부통합을 위한 조직시스템, 교섭체계 등을 비롯한 제반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이를 보지 못하고 조각배 항해하듯이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우리는 기업별노조나 소수산별노조가 아니라, 노동자의 거대 진지이자 태산을 움직여야 한다. 

15만 금속노조는 결코 덩치만 큰 ‘공룡’이 아니다. 이제 첫해의 학습과정을 통해 다시 깨어나 비상할 ‘와룡’(臥龍)이다. 제 견해그룹들의 모든 주장과 활동도 우선은 15만이라고 하는 용을 깨어나도록 하는 것, 15만의 거대 노동자 항공모함의 시스템을 갖추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15만의 거대한 용이 아직은 누워있다면, 첫해의 학습을 지나 서서히 깨어나 노동자들의 강력한 무기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