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교섭을 둘러싼 금속노조의 딜레마

노동사회

중앙교섭을 둘러싼 금속노조의 딜레마

편집국 0 4,716 2013.05.2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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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중앙교섭을 둘러싼 금속노조의 딜레마
시간: 2007년 7월25일 (수)요일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사회: 이병훈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발제: 김승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토론: 조건준 금속노조 단체교섭실장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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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um_02.jpg이병훈: 제56차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사회를 맡게 된 연구소 부소장 이병훈입니다. 먼저 발제와 토론을 맡아주실 분들을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오늘 발제는 우리 연구소의 김승호 연구위원이 하시게 될 거고, 토론은 당초 조건준, 조성재 두 분을 모시기로 했습니다만 상황이 조금 여의치가 않습니다. 금속노조 중앙교섭이 급작스럽게 타결되면서 현재 그것에 대한 조직내부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이라 금속노조 조건준 단체교섭실장은 자리를 비울 수 없어 포럼에 참석 못하고 계십니다. 대신 수 년 동안 금속노조 교섭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신 노동연구원의 조성재 박사께서 좋은 토론을 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언론에 드러나는 표면상으로는 잘 감지돼지 않았는데, 사실은 저도 어제 우연케 내부 사람들에게서 금속노조와 금속사용자협의회, 그리고 주요 완성차 사측의 교섭이 활발하게 진척을 이루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루 만에 이렇게 협약체결까지 이뤄지게 될 줄은 몰랐네요. 당초 이 토론회의 기획 의도는 금속노조의 교섭 진행이 불투명한 가운데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과정을 점검하고 여러 제언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때가 좀 이르지만 교섭 결과에 대한 평가를 하는 자리로 대신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제 김승호 위원이 준비하신 발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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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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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사회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2007년 금속노조의 중앙교섭이 끝났습니다. 완성차공장에서도 합의안을 가지고 여름휴가 이후에 조합원 찬반투표를 하게 될 텐데, 이번 합의를 부결시켜본들 다른 대책이 없기 때문에 아마 무난하게 가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번 교섭과정에서 금속노조 집행부가 내부조율능력, 통제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지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략 수립에도 실패했고, 전략 실행 문제에 있어서도 기존보다 현저하게 역량이 저하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이번 교섭에서 완성차 4사를 포함하는 중앙교섭판을 만드는 데 실패하게 된 주된 이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forum_03.jpg노동조합 손에 있는 노사관계체제 전환 주도권 

이제 올 교섭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내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점검해보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중앙교섭이 휴가를 넘겨서까지 진행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해서 이런 자리를 빌려 노동조합 내부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이 좀 더 풍부해질 수 있도록 거들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교섭이 끝났네요. 어쨌든 저는 노동조합의 내년 교섭 준비를 위한 점검이라는 쪽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조금 특수하지만 금융노조 등은 한국 노사관계의 산별체제 이행을 주도하는 조직들입니다. 정부기관인 노동연구원의 보고서들도 새로운 노사관계모델, 즉 산별체제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형편인데, 그러한 변화의 주도권을 노동조합이 쥐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이 조직구조 변화를 통해서 교섭구조, 나아가 노사관계 지형 자체의 변화를 촉발하고 있는 거죠. 그러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는 하지만, 노동조합이 그러한 권리를 행사하는 역량을 얼마만큼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은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 15만 금속노조 조합원 중에서 중앙교섭에 참여하는 인원이 2만밖에 안 됩니다. 중앙교섭에 참여하는 사업장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고, 적용받는 인원 숫자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건의료노조와의 가장 큰 차이점인데, 보건의료노조는 조직범위에 있는 사용자들이 모두 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반면 금속노조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 주된 이유가 노동조합의 현장조직력 취약입니다. 완성차공장을 포함해서 사용자가 중앙교섭에 나오도록 노조가 강제하지 못하는 사업장들이 다수 존재하는 겁니다. 또한 이러한 취약한 현장조직력은 원대한 목표에 비해 노동조합이 전략과 전술을 실제 수립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취약해지는 현실로 악순환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산별노사관계 진전을 위해서라도 노동조합 내부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FTA 저지파업과 금속노조 ‘단결’ 전통 훼손

이제 2007년 교섭진행 국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한미 FTA 저지 총파업이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서 “하면 안 되는 파업이었다.”는 평가를 하는 분들도 있었고,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지도부를 중심으로 이 파업이 “교섭국면에서 대단한 돌발변수로 작용할 것이다.”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왕에 하려면 제대로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금속노조 웹사이트 게시판에서는, 일부에서는 조작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파업에 대한 현장조합원들의 노골적인 저항이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완성차 4사는 파업에 결합한다고 선언했지만 마지막 날 현대자동차지부가 파업에 돌입한 것 외에는 실질적으로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한미FTA 저지 파업 이후 중앙교섭을 둘러싸고 본격적으로 노사 간 대립이 만들어졌을 때, 노조가 쟁점을 첨예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역량이 없다는 점을 사용자에게 미리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파업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가 아니라 단결된 모습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한미FTA 저지 파업 과정에서 산하조직이 금속노조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복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이후에 교섭국면에서 회사가 버틸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준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기존 4만 금속노조 시절 중앙교섭을 확대할 수 있던 데에는, 물론 정도 차이는 있지만, 금속노조 산하조직들은 “결정한 것은 예외 없이 따른다.”는 점을 사용자들에게 각인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학습효과가 15만 금속노조의 첫 파업에서 붕괴됐다는 점은 정말로 가장 뼈아픈 부분입니다.      

완성차 4사 교섭과 중앙교섭, 멀고도 가까운 거리

다음으로, 완성차 4사 교섭의 개별화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007년 금속노조 중앙교섭은 5월 말까지 전혀 진행이 안 됐습니다. 초점은 완성차 4사를 중앙교섭판으로 어떻게 끌어 들이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노조가 완성차 4사 사용자들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사용자단체에게 너희들이 왜 완성차 사용자들을 끌어오지 못하느냐고 항의하는 수준에서 사실상 교섭을 방치했던 거죠. 그런데 이는 지난 4년의 중앙교섭 진행 경향과 일치합니다. 기존 패턴도 5월 말까지 전혀 진전이 없다가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게 되면 일정하게 진행되고, 이후 여름휴가를 일주일 정도 남겨 놓고 매일 교섭을 해서 휴가 직전에 타결하는 식이었죠. 파업 시간도 매년 7일에서 10일 정도로 고정돼 있었습니다. 물론 노조 입장에서는 이것이 발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대치의 전략전술 유형일 수 있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대응전술을 펼칠 여지를 만들어주는 패턴이었죠.  

이러한 고정된 패턴은 올해 교섭에서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15만으로 확대된 금속노조의 교섭은 전략적으로 통제되고 조정되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중앙교섭 중심의 쟁점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금속노조가 완성차 4사의 교섭마저도 거의 통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금속노조 내부에서조차 기존 중앙교섭에 무게를 싣지 않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는 오늘 타결된 중앙교섭보다는 기아자동차 사용자가 써준 ‘확약서’(올 하반기 노사 및 경총 등이 내년도 산별교섭을 논의하기 위해 산별준비위원회를 꾸린다는 내용)인지 뭔지가 조직에서 쟁점이 되는 상황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렇듯 완성차 4사의 교섭이 중앙교섭과 분리돼버리고 금속노조가 조율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 더 나아가 중앙교섭이 형해화되고 기업지부 교섭이 완전히 개별화돼버린 사실, 중앙교섭이 현장에서 쟁점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전술을 봐도 그렇습니다. 올해 금속노조는 가장 큰 지부인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몰려가 집회를 벌이는 전술을 펼쳤는데, 이거 이미 1998년 금속연맹 시절에 간부대오 7천명 모아놓고 3박4일 동안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실패했죠. 연맹 시절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몸짓’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전술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겁니다. 또, 현대 계열사 12개 지부장, 지회장들이 모여서 “현대그룹은 중앙교섭에 참여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이 역시 별로 효과없는 전술이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현장에서 쟁점을 만들어내고 어떤 형태로든 조합원들의 몸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그런 작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성명서나 발표하면서 외곽 때리기를 하는데 현대자동차그룹이 중앙교섭에 참여할 리가 없죠. 

금속노조, 현장동력과 전략적 조율능력을 회복하라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 봤을 때 올해 교섭과정은 오히려 기존 금속노조가 보여줬던 것보다도 후퇴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교섭이 이렇게 진행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무엇보다도 현장동력의 부족입니다. 금속노조 산하 조합원이 1천명 이상 되는 사업장들 중에서 현장 내부에서 사용자를 압박할 수 있는 조직은 만도기계를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또 완성차 4사 같은 경우에도 그동안의 파업 경향을 보면 최대치 열흘 정도의, 거의 판에 박힌 파업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다가 기존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최근 설문조사를 봐도, 노사협조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 좀 “노사가 원만하게 관계를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입장이 50%에 육박합니다. 지쳐 있는 겁니다. 이렇듯 지금 금속노조는 조직 내부의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 합류한 대공장조합원들의 이해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비정규직 문제해결 등 기존 금속노조에게 요구됐던 사회적 책임 역시도 충족시켜야 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조건이 매우 안 좋았죠. 쌍용이나 대우차 같은 경우 사측은 “중앙교섭은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노조는 그런 부분에 대해 끌려 다녔습니다. 이와 달리 현대차와 기아차 같은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노조의 동력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현대·기아만 두들겨 패서 끌어들이면 쌍용과 대우도 중앙교섭에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상징성으로 인해 현대자동차그룹이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중앙교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경총 등의 압력도 존재했죠. 때문에 현대자동차 사측은 내년 중앙교섭 참가에 대한 확약서를 쓰면 파업을 않겠다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노조가 내년에 어떤 요구를 들고 나올지도 모르는데, 무섭지도 않은 파업, 차라리 올해 잔매 몇 대 맞고 말겠다는 생각일 겁니다.

한편, 금속노조가 올해 명시적으로 내세운 목표는 “15만이 함께하는 교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모든 간부들이 공감대를 갖고 있는 바였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성사되지 않았죠. 이를 두고서 교섭을 앞두고 현대자동차지부 집행부가 교체되면서 전체 중앙교섭 일정에 무리가 따랐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무리한 지점이 있긴 했지만 중앙교섭을 8월 이후로 미뤄놓고 방치할 만큼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기아나 대우의 조건도 마찬가지로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고요. 물론 이는 나중에 조직내부에서 다시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할 부분입니다. 

어쨌든 그러한 명시적 목표가 어그러졌을 때 현실적으로 쟁취해야할 목표는 과연 무엇이었는가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만, 조직내부에서도 명확하게 공유된 내용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혼란 속에서 결국에는 15만이 함께하는 중앙교섭은 고사하고 완성차 4사 사측이 내년 교섭에 참여하겠다는 제대로 된 확약서를 받는 것도 어려운 지경, “교섭을 위한 교섭”으로 평가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책임소재 공방 넘어 한국 노사관계 발전방향 논의 장 열어야  

이러한 상황에서, 제가 이전에도 주장했던 바입니다만, 완성차 4사의 교섭을 별도의 틀로 묶어서 가져가는 방안을 노조 내부에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물론 완성차 4사가 교섭을 따로 할 경우 금속노조가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근거 있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안감이 상당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 노조가 교섭형태에서 유연성을 보이는 전술을 활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내부가 취약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부분에 착목하고 문제를 해결하여 전술의 폭을 넓힌 상태에서 내년을 임단투를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아자동차에서 제시됐다는 확약서가 대우, 쌍용, 현대 등에서도 똑같이 제시될 텐데, 이에 대해 지부가 합의하는 것을 중앙에서 승인하고, 이를 오히려 내년 교섭판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현재 금속노조 임원 구성을 보면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처장은 전국회의가 장악한 가운데, 부위원장들은 각 정파들이 한두 명씩을 배출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정파 중심적으로 배치된 임원들 중에 금속노조의 기존 관행 등을 제대로 아는 이가 거의 없다는 현실, 노동조합의 공식 의결기구에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파조직들을 통제할 장치가 전혀 없다는 현실과 그로 인한 갈등, 그래서 노조의 집행부가 실제 전략적 지도부로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적극적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올해 교섭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아마 엄청나게 치고받는 과정, 책임소재 공방이 벌어질 수 있을 텐데, 그러다가 잘못하면 내년 교섭도 물 건너가게 될 겁니다. 올해 대선에서 어떤 국면이 열릴지, 특히 2009년 이후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갖고 실행하지 못한다면 자칫 금속노조의 전망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까지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올해 중앙교섭은 이미 끝났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얻어진 결과를 제대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경총 및 완성차사용자와 사용자협의회 등 사측, 그리고 정부까지 포함하는 공개적인 다자 협의구조를 형성해서 적극적으로 올해 교섭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마지막으로, 발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병훈: 한미FTA 저지 파업에서부터 중앙교섭 및 완성차지부들의 교섭까지의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여러 한계들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많은 아쉬움을 담은 시각과 제안들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이런 발제 내용을 받아서 금속노조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조성재 박사의 토론 말씀 듣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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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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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재: 목소리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아쉬움을 담아서 김승호 연구위원이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이병훈 부소장을 비롯해 여기 있는 분들 중 상당수가 지난해 6월 말 완성차노조들이 산별노조로 조직전환을 했을 때 환호성을 질렀을 텐데, 겨우 1년 남짓이 지난 지금 그 기쁨이 너무 빨리 사그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forum_05.jpg산별준비위원회 경총 참여 허용은 노조의 실수

이번 기아차 노사합의 내용은 이후 자세히 봐야겠지만, 일단 김승호 위원이 지적하셨던 것처럼 노조가 받아낸 것은 내년 중앙교섭 참여 약속이 아니고 ‘확약서 비슷한 것’ 정도처럼 보입니다. 확약서가 약속하는 것은 내년 산별교섭 참가가 아니라 산별교섭 논의를 위한 산별준비위원회 참가니까요. 더 중요한 것은 그 준비위원회에 완성차 4사 사측과 함께 경총이 당사자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점입니다. 저는 이렇게 경총이 산별협의에 직접 끼어드는 것에 대해 유보적인 판단을 갖고 있습니다. 차라리 노동부는 산별체제 전환에 전향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노동부는 최근 1~2년 사이에 입장이 많이 바뀌었고, 예를 들어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에서는 노동부가 산별교섭을 해태하는 사용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기도 하고,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제어하여 타결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금속에서도 새롭게 판을 짤 때 노동부는 최소한 노동조합의 적은 아니다, 오히려 활용하기에 따라 산별체제 정착을 위한 촉진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총은 산별교섭 진전에 있어 매우 우려스러운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확약서’에 산별준비위원회 참가자로 경총을 집어넣은 것은 노조 입장에서는 큰 실수라고 봅니다. 만약 여름휴가 이후 진행될 현대자동차의 지부교섭에서 기아차에서 합의한 내용을 뒤집을 수 있다면 경총을 빼라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경총은 조건상 평균적인 사용자들을 대표해서 이데올로기적인 지침을 내릴 수밖에 없는, ‘화석화된 조직’이 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 내부 지분 구조상 무노조기업인 삼성이나 포스코 등의 목소리도 반영해야 하는 등 상당기간 산별교섭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산별준비위원회에 경총이 포함되는 것보다는 완성차 4사 노사를 중심으로 협의가 진행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금속노조의 중앙교섭과 관련해서, 김승호 연구위원이 지적한 것처럼 노조가 방치한 측면이 있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성급하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올해 그 중요한 교섭을 앞두고도 뭔가 새로운 전략전술이 없었고, 현대자동차 집행부 선거 등에 끌려 다녔던 면이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지난해 말 대의원대회를 봐도 핵심적인 사항은 잘 논의되지 않았고, 과거보다 금속노조의 정책역량이 전체적으로 떨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금속노조의 중앙조율능력이 떨어지니까, 교섭이 끝나도 기존 금속노조 중앙교섭에 가입해 있던 89개 사업장은 도대체 뭘 했는지를 모르는 상황이 돼버린 거죠. 

종합하자면 작년 15만 금속노조로의 전환 이후 거의 1년이 지났고 그동안 뭔가 틀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해왔는데, 그 방향이 잘못됐었거나 아니면 내부적으로 정파들 간 주도권다툼에 발목이 붙들렸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발제자께서도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의 교섭을 비교하셨는데, 제가 보기에는 보건의료노조 교섭이 상대적으로 잘 되는 이유에는 ‘단일정파 구성’이라는 점도 무시 못 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금속의 경우에는 3개 이상의 계파가 경합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조건은 올해 교섭에서도 ‘융통성 없는 한미FTA 저지 파업안’을 밀어붙여서, 결과적으로 지도부가 수배되게 하는 등 조직에 상당한 부담을 지웠습니다. 이렇게 지도부가 수배돼 있는 상황에서 이후 평가는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아니 평가를 둘러싸고 제대로 싸움이라도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는 비관적인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성사 가능한 유의미한 교섭’에 배치되는 대산별주의

다음으로 현안을 넘어서 금속산별에 관련된 좀 더 근본적인 생각들을 몇 가지 짚어보겠습니다. 단일 업종, 소수 직종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금융노조나 보건의료노조에 비해, 금속산별노조는 규모나 지역, 업종의 편차가 매우 크고 거기에다가 정파문제까지 해서 너무나 복잡한 조직입니다. 저는 사실 이러한 대오를 중앙교섭을 구심점으로 하는 단일조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듭니다. 냉정하게 ‘대산별주의’를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내년 상반기까지 금속 노사는 교섭단위와 조직단위의 문제, 교섭체계의 문제를 얘기하게 될 텐데, 이제 ‘성사 가능한 교섭’을 중심에 두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노사 양측 모두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제기된 대산별주의와 관련된 논의를 제가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한미FTA 반대 파업 등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보면 우리 대산별운동은 정치운동 또는 계급운동으로서 산별노조운동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즉, 규모의 힘을 보여주고 그것을 지렛대로 해서 근로조건 개선이나 고용안정 등을 쟁취하는 구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과연 1980년대와 달리 지식정보화, 서비스화, 글로벌 경쟁 등이 일반화된 현재의 노동시장 및 노동정치 지형 속에서, 그러한 전략이 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지 되새겨봐야 합니다. 또, 서구에서도 대산별노조의 형성은 광범한 반숙련노동자의 증가를 전제로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조건은 그것과는 너무 다르죠.  

또한 대산별로 뭉쳐 있더라도 과거 연맹 수준에서 했던 역할과 활동을 산별중앙이 하는 것은 지향해야 할 바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기존 금속노조 중앙이 했던 역할을 보면 여기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산업공동화, 손해배상·가압류 등과 관련된 중앙교섭 요구사항은 총연맹인 민주노총의 요구와 별로 다르지 않고, 산별 최저임금 합의 역시 일부 외국인노동자에게는 혜택이 돌아갔지만 다수 조합원들에게는 거의 영향이 없었습니다. 아까 조합원들이 중앙교섭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발제자가 지적하셨는데, 이러한 조건, 즉 임금처럼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교섭에서 다루지 않는 여건에서는 사실 당연한 겁니다. 결국 조합원들은 “중앙교섭은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지만 “내가 휴가 가는 문제보다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이러한 부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발제자께서 올해 교섭평가와 관련하여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논의가 필요다고 제안하셨는데, 저는 그와 더불어 금속노조 내부에서도 전면적인 재검토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금속노조의 조직구조와 교섭전략이 서로 부합하는가에 대해서 내부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검토를 통해 중앙에서는 지금과 같이 추상적인 합의를 중심으로 하더라도, 이와는 별도로 교섭단위를 더 작게 쪼개 현실적으로 정말 유의미한 합의, 이를 테면 올해 보건의료노조에서 비정규직과 관련해 쟁취한 합의 같은 것을 이뤄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며칠씩 밤을 샜던 작년 대의원대회 때처럼, 교섭권, 파업권, 조직구조, 인적자원의 배치 문제 등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전략을 짜내야, 내년부터는 제대로 된 교섭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조합원 핵심요구인 ‘산별 고용안정 보장’에 모든 것 맞춰야 

이러한 재검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조합원과 함께’라는 노동조합의 기본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올해 교섭 결과는 이미 어느 정도 예고됐던 바였습니다. 작년 완성차 4사 산별전환 투표 당시, 조합원들에게 산별노조로 갔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까지 솔직하게 교육했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는 거죠. 산별노조로 가면 무조건 힘을 키워서 고용안정 등을 따낼 수 있다는 식이 아니라, 산별노조가 되더라도 대공장조합원들은 기득권을 일부 내놓아야 한다는 점, 예를 들어 임금 같은 경제적 문제에서는 손해를 감수하는 대신에 고용안정이나 노동의 인간화 등을 쟁취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얻을 것과 잃을 것을 정확하게 조합원들에게 알려줬어야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실제 이뤄진 교육은 막연한 ‘산별 만능주의’ 식이었고, 나쁘게 얘기하면 조합원들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보수언론이 저렇게까지 나서서 안 된다고 하니 우리에게 유리한 것인가 보다.”하는 정도의 태도였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원들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러한 부분을 인정한다면 이제 조합원들에게 새롭게 산별노조의 장단점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노동운동의 지향점으로서 산별노조의 모습을 갖춰가기 위해서, 과도기에 처해 있는 우리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부분은 어디인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합간부들부터 새롭게, 내부토론뿐만 아니라 전문가 등 외부의 얘기와 시각을 교육받고 토론하고, 거기서 나온 결론을 갖고 조합원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야지 산별 차원의 현장동력이 유지되면서 작은 것 하나라도 따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생각했을 때 지금 조합원들이 기업별노조체제에서 산별체제로의 이행을 선택했던 최대 이유는 일자리, 그것도 괜찮은 일자리의 보장에 대한 요구였습니다. 그렇다면 금속노조는 산별 차원의 고용안정에 초점을 두고 임금체계나 노동시간 등을 바꿔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대공장정규직 조합원에게서 전체 산별 차원의 고용안정 보장 쟁취를 전제로, ‘임금인상 자제 결의’까지도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산별 차원의 고용안정은 사실 사내하청, 아웃소싱, 모듈화 잇단 해외공장 건설 등으로 불안을 느끼고 있는 완성차대공장 조합원들에게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조합원의 절실한 요구를 중심으로 조직과 교섭 단위를 고민해야 합니다. 산별 차원의 고용안정기금을 만들어 운영했던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 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이것저것 얘기해봤는데, 어쨌든 안에서 하는 사람이나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이나 참 답답한 상황입니다. 내년에 좀 더 좋아질 것 같으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쉽게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현대자동차지부의 교섭이 남아 있는 상황이니,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을지 남은 기간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병훈: 조성재 박사가 무척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해주셨습니다. 올해 한미FTA 저지 파업과 중앙교섭에 대한 검토에서 더 나아가, 현재 금속 산별노조의 조직과 교섭체계에 대한 근원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었습니다. 대산별주의가 재검토되어야 하며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가동 가능한 교섭 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는데요. 이후 흥미 있는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침 참석이 어려워보였던 조건준 실장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중앙교섭과 완성차 지부교섭들이 실제 어떻게 진행됐는지 굉장히 궁금한데, 올해 교섭의 실무를 이끌어 오셨던 담당자로서 교섭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의 소회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산별교섭 시작에서 중앙교섭 잠정합의까지  

forum_04.jpg조건준:
 우선 늦게 와서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중앙쟁의대책위원회에서 기아자동차와 GM대우에서 합의한 확약서를 승인할 것인가 하는 논의가 치열하게 진행됐는데, 생각보다 일찍 정리돼서 그나마 맞춰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중앙교섭에는 2만여 조합원과 89개 사업장이 참가했는데, 현재 금속노조 산하 사업장들은 금속노조 시스템에 얼마나 결합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세 가지 구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중앙교섭에 참여하는 89개의 사업장, 다음으로 두산인프라코어나 삼호중공업처럼 기존 금속산별노조 안에는 들어와 있었지만 지부집단교섭 등에는 참여하지 않는 조직력이 취약한 사업장, 마지막으로 이번에 신규 가입한 대공장들입니다. 올해 교섭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구조적 차이들이 과연 얼마나 통일성을 갖추게 되었는가가 평가 기준이 될 텐데,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 결과적으로 봤을 때 통일성을 갖추지 못하고 교섭 마무리 시점을 맞고 있습니다.     
                       
이번 산별 중앙교섭 초기의 가장 큰 딜레마는 금속사용자협의회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완성차 사측이 가입하지 않은 금속사용자협의회는 2만명밖에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서 올해 중앙교섭 의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기 4차 교섭, 한미FTA 저지 파업 전까지는 만나도 안건을 논의하지 않고 불참한 대공장을 왜 참여 못시키느냐며 압박을 가했습니다. 사실 대공장 사측의 불참을 금속사용자협의회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갑갑한 부분이긴 했습니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6월 말 불가피하게 한미FTA 저지 파업이 있었습니다. 제가 전에도 “달리는 열차 앞 철도 위에 굴러 떨어진 바위덩어리”라고 표현한 적이 있기도 했는데, 임단협을 고려하여 그 시기를 전술적으로 판단할 수 없도록 결정된 한미FTA 저지 파업은, 중앙교섭 안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굉장히 곤혹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한편, 7월로 넘어가면서 좀 더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과연 올해 완성차공장을 중앙교섭에 참가시켜 일괄 합의를 받아내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것이었죠. 결국 교섭을 분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존 조합원들은 중앙교섭으로 가고, 새로 합류한 완성차대공장에 대해서는 일단 내년에는 중앙교섭에 참여하겠다는 ‘확약서’를 받기로 한 것입니다. 당초 우리가 생각하기에 대공장사측에게 요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은 올해 초반 제시했던 추가요구, 즉 총고용 보장이나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문제 등이고, 두 번째는 기존의 다양한 협약들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 세 번째가 산별기본협약 수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완성차대공장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그것보다도 더 낮은 ‘2008년 중앙교섭 참여 확약서 쟁취’를 목표로 하는 입장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러한 방침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기아차와 대우차에서 확약서를 못 받아내면 2만의 중앙교섭은 타결해야 하는 것이냐 말아야 하는 것이냐, 혹은 그 역의 경우에는 어떡해야 하는 것이냐.”, “7월 말 교섭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기아, GM대우에서 확약서 쟁취가 만만치 않은데 그럴 바엔 사측에게 몰리지 않게 합의시점을 8월로 넘겨서 여유 있게 가야 한다.”, “아니다 8월로 간다고 제대로 투쟁이 된다는 보장이 있나, 7월 말 타결을 목표로 해야 한다” 등의 다양한 문제제기와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아시다시피 오늘 잠정합의를 이뤘습니다. 지금 막 끝내고 와서 저도 사실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질 않고 있습니다만, 이제 쟁점을 중심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앙교섭 및 완성차 확약서를 둘러싼 노조내부 논의들

먼저 2만 중앙교섭을 살펴보겠습니다. 교섭과정에서 금속사용자협의회가 핵심적으로 주장했던 바는 원하청 불공정 거래 개선, 총고용 보장 등의 요구는 자신들이 아니라 완성차대공장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고, 이는 매우 타당한 반응이었죠. 사실 이 요구안 자체가 완성차대공장이 중앙교섭에 들어오는 것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2만 중앙교섭에서 실질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핵심요구는 산별최저임금뿐이었고, 이는 아시는 대로 월급 90만원에 합의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이번 2만 중앙교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역지부 내에서 논란이 많이 있었습니다. 기존 금속노조는 “중앙교섭 타결 없이 지부·지회교섭 타결 없다.”는 원칙을 가져 왔습니다. 그런데 모범지부로 꼽히던 어떤 지부에서 중앙교섭 타결 전 임금협상이 타결돼 중앙으로 승인 요구가 올라온 것입니다. 반면 대구지부 같은 곳에서는 투쟁력을 기반으로 사용자들에게 올해 중앙교섭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완벽하게 받아냈고, 8월 이후까지 투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중앙에서 실무를 진행한 입장에서 이렇듯 지역별로 조건과 역량이 차이가 나는 상황들, 그로 인한 이견들을 조율하여 어떻게 중앙교섭을 타결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올해 금속노조 교섭의 핵심사항은 완성차대공장을 중앙교섭장에 어떻게 앉힐 것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완성차지부들의 조건이 애초부터 그런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현대자동차지부에서 박유기 집행부 사퇴 후 이상욱 지부장이 4월에 당선되고 교섭을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하면서 벌어진, 중앙교섭과의 시간적 간극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시다시피 현대자동차그룹, 즉 현대-기아는 금속의 핵심 동력입니다. 그 중에서도 현대자동차의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죠. 그런데 이렇게 일정 조정 실패로 인해 형님 격인 현대자동차는 뒤로 빠져 있고 동생 격인 기아자동차가 먼저 싸워야 하는 상황, 즉 싸워야 하는 자본은 실질적으로 하나인데 노동조합의 조건은 분화되어 있는 상황이 악조건으로 작용했던 겁니다. 선봉으로 나선 기아자동차 같은 경우 회사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GM대우나 쌍용자동차 등도 어렵긴 마찬가지였고요. 게다가 아시다시피 대공장조합원들은 중앙교섭에 대한 밀착도가 매우 낮았습니다. 

이렇듯 완성차대공장이 산별노조로 들어오면서 커진 15만 금속노조에 대한 기대심리와 완성차대공장지부들이 통일적으로 임단협을 집행하고 투쟁력을 발휘할 수 없는 조건이 부딪히면서, 그동안 잘 싸워오던 지역지부들의 조합원들도 지난 6년간 쌓인 피로도를 더욱 크게 느끼게 됐습니다. 완성차가 들어왔는데 왜 이 모양이냐,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한 거죠. 어쨌든 이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핵심은 결국 현대-기아일 수밖에 없었고, 해서 앞서 말했던 ‘자본은 하난데 노동조합은 분할된 조건’이라는 딜레마와 줄곧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중앙교섭 일정에 현대자동차를 끌어들이는 것이 안 돼서, 결국 목표로 삼은 7월 말 타결까지 제반 임단협 전략전술에서 현대자동차는 제외하는 것으로 노조 내부에서 결정하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아자동차 사측이 제시하는 안은 현대자동차그룹 차원에서 조정된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아자동차에서 확약서를 받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압박을 가했습니다.   

“2008년 산별교섭에 참여한다.”는 명확한 약속을 받으면 좋은데,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인지라 요구 수준을 좀 낮췄습니다. 해서 실제 기아자동차 사측에서 받아낸 입장은 “노사는 2008년 금속노조를 대상으로 하는 중앙교섭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사 공동으로 추천하는 노사 산별준비위원회를 2007년 10월 중으로 구성하여 교섭에 제반절차 등에 관한 협약을 마련한다.” “노사 산별준비위원회를 구성 시 경총 및 완성차 4사가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노사 공동으로 노력한다.”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엄밀하게 말해 회사의 2008년 중앙교섭을 참가하는 강제하는 것이 아니죠. GM대우의 경우 이보다도 내용이 더 열악합니다. GM대우 확약서의 내용은 “금속노조와 GM대우는 2007년 임금교섭 이후  노사 산별준비위원회 구성 및 노사 공동으로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많은 논란 끝에, “미흡한 내용이지만 승인한다. 단, 하반기부터 바로 각 지부들은 내년 사측을 중앙교섭에 참여시키기 위한 투쟁을 조직한다.”는 의견을 중심으로 금속노조 중앙쟁의대책위원회에서 승인됐습니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들이 논쟁을 거쳤습니다. 먼저 “우리가 판단하지 말자.”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확약서’라고는 하지만 인정하기에는 내용이 부족하고 이를 승인했다가는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그렇다고 돌려보내자니 각 지부가 최선을 다해 쟁취해낸 결과라는 점을 무시할 수도 없으니, 아예 우리가 판단하지 말자는 얘기였습니다. 한편에서 소수 의견으로 중앙쟁의대책위원회에서 다루지 말고 위원장에게 판단을 위임하자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나머지 다수는 승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중앙에서 승인을 하지 않더라도 각 지부에서는 합의안 찬반투표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럴 경우 “중앙교섭 타결 없이 지부·지회 교섭 타결 없다.”는 금속노조의 원칙도 훼손 되고 기아자동차나 GM대우도 ‘사고지부’로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기아자동차지부 같은 경우 적자 사업장이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92시간씩이나 파업을 하면서 얻어낸 결과인데, 이러한 노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상황에서 노사 산별준비위원회든 뭐든 어떻게든 끈을 만들어놔야 내년 교섭을 좀 더 준비된 상태에서 맞이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교섭을 어떻게 할 것인가’ 준비 덜 됐던 점 부정 못해 

이제 이렇게 결론이 나기까지 올해 교섭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금속노조는 작년 출범한 이후 상당기간 동안 조직형태 논쟁에만 매달려왔습니다. 그나마도 조합원들에게 얼마나 파고든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논쟁에만 매달리면서 정작 15만 금속노조가 실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중앙교섭과 산별교섭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던 거죠. 때문에 올해 중앙교섭에서 우여곡절이 많이 생긴 겁니다. 금속노조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즉 산별교섭 의제를 무엇으로 삼을 것이냐 어떻게 교섭을 할 것이냐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가 돼있지 못한 점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올해 하반기 작년의 조직구조 논란 이상으로 더 치열하게 교섭의제와 틀을 두고, 아니 조직구조까지 포함해서 대안을 찾기 위한 논의에 돌입해야 할 것입니다. 현대자동차지부의 교섭이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일정대로 간다면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한미FTA 저지 파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파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중앙교섭의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들었고, 그로 인한 내외적 논란 및 탄압으로 조직에 타격을 줬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금속노조 입장에서는 이 파업의 성패 여부에 존망까지도 달려 있었기 때문에 어떡하든지 핵심 동력인 현대자동차지부가 파업에 돌입하도록 요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중앙교섭에 더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는 교섭실장임에도 현대자동차에 가서 파업에 돌입하라고 협박 비슷한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가 어느 정도 결합을 했기 때문에 내부 분위기는 우려됐던 것보다는 훨씬 좋게 정리된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파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15만 금속노조의 현실과 산별노조의 역할, 정치파업 속에서 조합원의 중요성 등에 대한 학습효과가 컸다고 평가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교섭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말씀드린다면, 15만 산별노조에 대해서는 모두가 그렇겠지만, 저도 단체교섭실장으로서 학습이 더 필요한 ‘초보운전자’였다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지역지부나 기존 금속노조에서 활동해 오신 분들에게 많이 배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불가피하게 조건상 이런 식으로 중앙교섭을 타결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원칙적이기만 한 주장’이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비록 총알을 많이 맞을지라도, 실무를 진행해 본 결과 할 수밖에 없더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한계와 어려움을 우리가 떠안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합니다. 금속노조 간부들이 폭넓게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아자동차가 92시간이나 파업했는데 왜 요구 조건을 쟁취하지 못했는지, 거기에 작동하는 힘을 빨리 이해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점을 마지막으로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이병훈: 조건준 실장이 올해 교섭과 관련하여 조직 밖에서 평가보고를 하는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내외의 복잡한 사정, 교섭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을 들었고, 앞으로 금속 산별노조가 부딪히게 될 문제들에 대한 솔직한 고민들을 들었습니다. 먼저 조건준 실장의 보고에 대해서 김승호 연구위원과 조성재 박사의 의견을 간단하게 들은 후, 자유롭게, 격식 차리지 말고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15만 금속노조의 가능성과 전망을 누가 부정하랴

김승호: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경총 이야기인데요. 산별준비위원회에 경총이 참가하면 당연히 딴지를 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산별 자체에 대해 반대해왔던 경총이 어떤 형태로든 이 판에 들어온다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입장의 변화라고 봅니다. 그만큼 이는 산별체제의 전망이 밝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발제하는 과정에서 한탄스런 감정이 묻어나왔다고 하셨는데, 그렇지만 저 역시 금속노조는 여전히 전망이 있으며 밑바닥까지 가는 것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건준 실장이 지적하신 조건과 한계들 속에서 올해는 제대로 된 전략과 전술을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어쨌든 GM대우와 기아차 사측이 금속노조와의 확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금속노조라는 구조가 아무리 걸개그림처럼 가벼워 보여도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년 교섭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대산별주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성재 박사가 말씀하신 대산별주의를 포기하고 조직을 쪼개자는 주장이 조직구조에 관한 것이라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덩치를 더 불릴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아무리 형식적이더라도 조직이 쪼개져 있을 때와 뭉쳐 있을 때 인적·물적 자원이 넘나들고 방침이 공유되고 선거가 집행되는 수준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금속이 현총련, 금속연맹, 자동차노련으로 쪼개져 있을 때하고, 통합된 이후를 비교해보더라도 계급적이든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를 담보하는 지점이든 후자가 훨씬 더 좋은 조건을 만들어냈습니다.

다만 15만 금속노조로 확대된 이후에도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기존의 이념적 제약성이나 조합원들의 피로도 등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사실인데, 이러한 지점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들은 조직 내에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활용해 한편으로는 집중하면서 한편으로는 분산할 수 있는 조직적 역량은 아직 갖춰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완성차 4사가 따로 교섭하더라도 금속노조가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현대자동차지부가 금속노조의 방침에 따라 때로는 전진하고 때로는 후진할 수 있는 정도의 조직역량을 어떻게 갖출 수 있는가가 문제라는 거죠. 조합원의 실리주의적 경향, 상층부의 과도한 정파적 구조라는 구조적 한계를 뚫고 그러한 역량을 쌓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조성재: 제가 아까 대산별주의와 관련해 너무 강하게 이야기했나 봅니다. 저도 물론 현존하는 금속노조를 깨자는 것은 아니고, 조직적 측면에서 민주노총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화학이나 경공업을 포괄하는 제조대산별로까지 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교섭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보건의료노조나 금융노조가 상대적으로 잘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업종과 직종의 동질성, 교섭단위와 조직단위의 일치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노동운동이 현 단계에서 쟁취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산별 고용안정과 괜찮은 일자리의 보장이라고 보는데, 그런 부분들이 기존 금속노조 중앙교섭을 통해서 달성될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노동운동이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복지와 이해에 복무하기 위해서는 아주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지금 보다는 더 노골적인 이야기들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교섭구조를 쪼개자는 문제제기였습니다. 금속노조를 깨야 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기아자동차가 92시간 동안 파업을 했다고 했는데, 확약서 외에 지부 합의내용이 뭔지 궁금합니다. 기존 대공장의 전투적 실리주의를 답습했던 건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조건준: 아실지 모르겠는데 기아차 사측에서는 유연성이나 고용안정 등과 관련하여 우리 입장에서 볼 때 개악안을 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막판에 정리할 때 힘들게 만드는 문제들이었죠. 어찌됐든 전투적 실리주의가 산별로 간다고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 교섭에서 제가 의아해했던 게 적자 상태임에도 회사에서도 계속 임금인상안을 제시했다는 겁니다. 기본급 7만5천원, 생계비 부족분 보충… 도대체 고용과 관련해서는 개악안을 내면서 임금인상안을 동시에 낼 수 있는 건지 좀 의아했습니다.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 제 판단으로는 회사측이 중앙교섭이나 고용안정 등 장기적인 협의과제는 밀어내고 돈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즉 노조에 실리주의적 경향이 존재하고 있지만, 회사에서도 이를 굉장히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게 노조뿐 아니라 회사에게도 유리한지는 판단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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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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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이제 객석에서도 참여해서, 새로운 정보도 좋고, 쟁점이 될 수 있는 논의도 좋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총은 어떻게 산별준비위원회에 끼어들 수 있었는가 

참가자: 질문이 있습니다. 발제자와 토론자가 경총에 대한 평가가 상반되게 갈리는데, 경총이 산별준비위원회에 어떻게 들어가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하반기에 교섭의제와 틀을 가지고 논의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그 안에 교섭단위 조정문제까지 포괄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조건준: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먼저, 하반기 논의될 제반사항에는 절차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지만 문구 자체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손해배상·가압류, 업종 및 규모별 편차의 문제, 부품사 및 비정규직에 대한 지원 등 다양한 의제들이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10월에 준비위원회를 시작해야 하는데 촉박한 시간에 비해 굉장히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외국 사례를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전투를 진행해 가면서 필드매뉴얼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첫 번째 질문은 조금 답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제 판단으로는 경총이 들어가게 된 핵심적인 이유는 현대자동차그룹의 부담 때문입니다. 자본 전체에서 보자면 현대자동차그룹도 꼭대기에 있는 게 아닌 상황에서, 현실 조건상 산별노조를 인정하든 깨든 현대-기아 자본이 총대를 메야 하는데 그렇게 혼자 총대 메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겁니다. 이건 엄살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금속노조로서도, 두산인프라코어라든지 중앙교섭에 참여하지 않는 회사들이 모두 경총과 관계돼 있기 때문에 경총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우리 내부에서 경총은 산별 반대의 선봉대로 찍혀 있죠. 기아자동차지부에서도 확약서 문안에 경총이 들어갔다고 하니까 한숨이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상대해 보니까 경총이 노사관계를 과연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조직인지도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우리는 경총을 포함한 사용자들에 대해서 구체적인 전략적 판단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금속사용자협의회는 리모델링 돼야 하고, 또 경총도, 이게 노동조합의 민주노총과 같은 역할을 사용자들 사이에서 할 수 있을 것인지 등에 대한 판단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부분도 올해 하반기 논의될 제반사항에 포함될 수 있을 겁니다.

조성재: 현대자동차그룹이 혼자만 공격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경총을 끌어 들이려고 하는 게 현실적인 지형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만, 경총이 들어가서 중앙교섭이 진전될지는 무척 회의적입니다.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고 화석화된 경총사무국의 이데올로기적 입장 뒤로 숨어버리는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거죠. 

사용자들이 산별교섭문제에 스스로 구체적인 목소리를 내고 그들 사이에서 이해관계와 입장을 서로 조율할 수 있어야 풍부한 내용의 노사관계가 가능할 겁니다. 그러나 경총은 자신의 회원사들인 무노조기업과, 두산인프라코어 같은 기업, 그리고 현대자동차그룹 같은 기업들의 목소리를 기계적으로 평균해서 고정된 주장을 할 뿐입니다. 이런 입장과 상대해서는 금속노조가 원하는 산별노사관계의 발전이 어려워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김승호: 경총이 산별교섭 관련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대응해왔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경총이 이 산별교섭 판에 발을 담그는 것 자체가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어떤 형태로든 깨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총이든 누가 들어오든 가장 핵심은 금속노조의 내부 동력이 얼마나 준비돼 있나 하는 것입니다. 조성재 박사가 우려하는 여러 지점에 대해 모두 동의하지만, 조직 입장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진 판에서 어떤 부분에 집중할 것인지 어떻게 현장을 흔들 것인지에 고민이 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속노조가 외부에서 경총을 압박하는 전술은 이미 과거에 써먹었다가 철저하게 실패했던 바입니다. 경총을 밖에다 두고 우리끼리 얘기해하면 여기 가서는 저기 이야기하고 저기 가서는 여기 이야기하는 경총의 이데올로기적 방침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한편, 증권노조 교섭에 김영배 경총이 부회장이 교섭 당사자로 들어갔던 데서 알 수 있듯, 경총도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산별교섭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 속에서, 경총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고착화돼 있는 동안 산하 사용자단체들이 산별교섭에서 주도권을 발휘하게 되면 자신들이 껍데기가 될 거라는 점을 깨닫게 되리라 봅니다. 금속노조는 이러한 지형을 자신의 입장에서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금속노조 조직역량과 중앙 리더십은 발전하고 있나

참가자: 조건준 실장께서 아까 ‘초보운전’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물론 대공장이 들어왔다는 새로운 조건이 있었지만, 기존 6년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올해 금속노조가 초보운전자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보건이나 금융 등 다른 산별노조들의 역사를 보면 지금 금속노조가 하고 있는 수준 이상의 집약된 교섭을 산별노조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금속노조의 지금 상태는 상당히 열악한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두산 같은 대공장들이 기존 중앙교섭에 참여하지 않았던 과정에서 금속노조가 다양한 전략과 전술로 대응해왔을 텐데, 그러한 부분들이 조직적으로 학습되거나 축적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6년 이상의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을 함께 한 사람들이 남아 있는데, 집행부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뀌는 식으로 이렇게 단절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염려됩니다.  

이병훈: 덧붙여서 질문을 추가하고자 합니다. 내년 완성차공장의 중앙교섭 참여 유도 외에 올해 교섭의 조직 내적인 성과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금 교섭을 거의 완료해가는 시점인데, 조직 내부 리더십을 강화해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파문제 등으로 인해 균열이 더 커지고 있는 건지, 조직력이 강화되고 있는 건지 아닌지, 그러한 부분에 대한 조직 내부의 평가가 궁금합니다.    

조건준: 교섭 과정에서 워낙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저도 질문하신 부분들에 대해 저도 정확하게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두서없이 말씀드리면, 우선 초보운전이라고 표현했던 것은 기업과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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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