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그러나 여전한 ‘노조의 정치활동 자유’라는 쟁점

노동사회

진부한, 그러나 여전한 ‘노조의 정치활동 자유’라는 쟁점

편집국 0 4,265 2013.05.29 08:41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의 자유, 이 주제는 매우 진부하다. 민주노총이 주요한 역할을 해서 민주노동당을 창당까지 한 마당에, 노동운동과 정치활동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은 시의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얼마 전 있었던 민주노총 사무총장의 체포는 다시 한 번 어쩔 수 없이 이 진부한 주제를 떠올리게 한다. 1996~97년 총파업의 소중한 성과로 얻어낸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의 자유는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다시 한 번 후퇴하였고, 민주노총 사무총장의 체포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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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이용식 사무총장 강제연행과 관련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7월6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민주노총 사무총장 강제연행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

노동자 돈으로는 선거 하지 말라는 ‘오세훈법’

2004년 개정된 선거법, 정치자금법은 이른바 ‘오세훈법’으로 불린다. 지금은 서울시장이 된 오세훈 당시 국회의원이 주도하였다고 그렇게 불리는데, 강력한 정치자금법으로 깨끗한 선거에 기여하게 되었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이다. 그러나 정치자금법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법안에는 정치적 부패와 전혀 관계없는 조항이 몇 가지 들어가 있었고, 이는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보자면 치명적인 것이었다.

첫째,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기부가 금지된 것이다. 원래 노동조합의 경우 산업별 노동조합은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에는 회사 또는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가 금지되었다. 이 단체에 법 해석상 노동조합도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자금법 개정과정에서 이 법이 노동조합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당시 여야 의원들과 선관위 관계자는 모두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런 경우가 있느냐는 어느 의원의 질문에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에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답변까지 나오기도 했었다. 

어떻게 회사가 정치자금을 주는 것과 노동조합이 정치자금을 주는 것을 동렬에 놓고 이를 금지시키는 발상이 나왔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단순하게 양쪽 모두 금지시키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본가들이야 법과 무관하게 유형, 무형으로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이른바 ‘차떼기’나 양도성 예금증서를 준 일 등은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일 뿐이고, 그들이 자신의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나 정당을 물질적으로 지원하기는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나마 노동자들의 피 같은 자금을 힘겹게 결의하고 걷어 들여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조직된 힘의 대표체인 노동조합이 지원하지 못한다면 과연 현대사회에서 누가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후보와 정당을 지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

둘째, 정당 중앙당의 후원회가 없어진 것이다. 이것이 노동조합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조합원 개개인의 후원 또한 중요하다. 문제는 선거시기가 아닌 일상적 시기에 조합원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후원하기 위해서는 당원에 가입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현역 국회의원에게 지원하는 방법도 있으나, 국회의원의 후원회는 한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의원 수가 줄어들거나 아예 의원이 없는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일상 시기에 지원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혹자는 당원으로 가입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아직도 노동자가 자신의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에 가입한 것이 알려질 경우 유무형의 불이익이 있다는 것이다. 집중적인 감시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모 신문사에서는 사규를 들어 부당전보와 유사한 조치를 취하는 등 우무형의 불이익이 상존하고 있다. 특히 직장에 민주노조가 없거나 힘이 약할 경우 이러한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해 일시 탈당하는 사례가 있을 정도다. 노동자가 계급전체의 이익을 위해 지지하는 정당을 위해 후원하기 위해서 반드시 당원으로 가입하여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난센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FTA 아니면 산별노조가 뭐 갖고 파업하나 

이른바 오세훈 정치관계법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은 사실 노동자계급 입장에서는 그 장점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노동자에게 유력한 무기를 박탈한 상황에서 단지 ‘깨끗한 선거’를 한다는 것은 기존의 권력관계를 그대로 유지시킬 뿐이다.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은 자본가 집단과 그 충실한 하수인인 국가기구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한미FTA 의견광고 하나 허용하지 않고, 모 재벌에 대한 비판 광고 하나 실어주지 않는 것에서 보듯이 언론조차 오로지 가진 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유일무이한 수단을 박탈하고 나면, 과연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의 유지 발전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만약 오세훈법이 2002년도 경에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내 생각에는 아마도 민주노동당은 원내로 진출하는 데 지금보다 갑절은 힘들었을 것이고, 과연 의원을 10명이나 당선시킬 수 있었을지도 미지수다. 민주노동당은 정치자금을 모으는 데 엄청난 곤란을 겪었을 것이고, 당세도 지금보다 매우 약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 사회당이 겪는 곤란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사회당의 경우 당원 수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세훈법이 아니었다면 재정적으로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동일한 사안에서 정치파업의 문제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의 노동관계법의 경직성은 심지어 사용자가 임금을 체불한 경우에도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물며 한미FTA 반대와 같은 정치파업의 경우야 당연히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노동조합의 선택사항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지지의사 표명을 위해 정당에 가입하느냐 단지 후원금을 주느냐를 택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노동조건의 악화가 예견되는 제도의 도입에 대해서 쟁의행위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왜 금지되어야 하는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한국의 노동조합이 산별노동조합을 중심에 놓는 구조로 변해간다고 할 때, 과연 산별노동조합이 노동자 계급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에 대해서 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지 제대로 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대체 FTA와 같은 사안에 대해서 산별노조에서 파업하지 않으면 무슨 사안으로 산별노조에서 파업을 한다는 말인가? 자동차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보건, 의료, 서비스 등 공공분야의 축소가 객관적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산별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기초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비타협적으로 옹호돼야 할 노조 정치활동 자유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의 자유는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이것 없이는 무엇 하나 이룰 수 없다.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자유는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계급 전체의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유력한 수단이며 이것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을 경우, 그렇지 않아도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오는 차이와 자본가계급이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 인해 불공정한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계급은, 더더욱 불공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노동조합 총연맹과 이에 기초한 노동자 정당의 발전이라는 ‘양 날개’ 없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복지국가’라는 너무 당연한 개량과 타협조차 달성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경제개발기구(OECD) 국가 중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복지지출이 낮은 거의 유일무이한 예가 한국이다.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국제경제 환경에 국내 상황이 좌우되기 때문에 복지수요가 높다는 의미임에도 말이다. 그나마 유럽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도 복지지출이 낮은 나라가 아일랜드다. 지금 아일랜드는 한국과 유사하게 보수 양당이 정치를 지배하고 있고 아일랜드 노동당은 15% 정도의 지지밖에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너무나 진부하지만, 이것이 바로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의 자유가 비타협적으로 옹호되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