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대투쟁 20주년을 맞이하는 결산과 희망

노동사회

노동자대투쟁 20주년을 맞이하는 결산과 희망

편집국 0 3,022 2013.05.29 08:39

6월 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 행사로 처음 치러진 지난 달, 스무 돌을 맞는 깊은 감회 속에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초점은 민주화는 어디까지 와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에 모아졌다. 지난 20년, 나아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성찰과 발전전망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때가 때인지라 연말 대통령선거와 내년 총선거를 앞두고 수구 보수세력들이 권토중래의 호기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 비하면, 민주화·개혁·진보로 불리는 세력들이 저마다 각자의 진단과 처방을 내세워 백가쟁명을 연출하는 모습에는 위기감과 위축됨이 배어 있는 듯했다. 

그런데 이런 논의에서마저 노동운동에 대한 관심은 많이 낮아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민주항쟁과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구분해서 설명하려는 종래 경향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노동운동의 추락한 위상을 반영한 것은 아닌가, 안타까움이 적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87년 노동자대투쟁이 시작된 7월에 들어서서도 노동계에서는 별다른 반향이 없는 것 같다. 노동운동은 무엇을 해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동문제의 심각성과 자본의 공세가 높아지는 가운데 노동운동의 진통과 혼란이 두드러지면서 이 물음은 한층 절박성을 띠고 다가왔다.

설움이 ‘노동해방’의 외침으로 폭발했던 그날들

1987년 6월29일 오전, 전두환 정권이 민주대항쟁에 굴복하여 항복을 선언한 시간은 온 세상이 숨을 멈춘 듯 조용했다. 전날까지 전국 곳곳을 뒤덮었던 최루탄의 독한 내음이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온 나라는 군부독재 타도의 환호와 승리감으로 가득해 보였다. 경제상황도 단군 이래 최대라는 3저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6월 들어 거듭 고조됐던 격렬한 혁명적 분위기에 비해 8개 항의 ‘항복 선언’ 내용은 매우 빈약한 것이었다. 어떤 이는 그래서 미완의 혁명이라 했고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이후 제기된 사회변혁의 완결은 먼 훗날의 몫으로 남겨졌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6·29선언 속에는 독재권력에 가장 심하게 탄압받았던 노동자들의 권리 회복에 관해서는 단 한 조항도 없었다. 억지로 넓혀서 본다면 “국민기본권의 신장”에 포함되는 정도였다. 군부독재권력의 정점이 물러간 것이었을 뿐 노동자들에게는 한 세기 내내 억눌려진 절박한 과제 해결의 구체적인 계기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노동자의 힘이 보잘 것 없던 것으로 보인 데 기인하며, 실제 대통령 직선제 쟁취 뒤켠에 노동자 요구는 늘상 묻혀왔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노동자가 나설 차례임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또한 민주화투쟁이 형식민주주의 개혁을 위한 것이라면 노동 상황의 변화는 노동자 스스로 떨쳐 일어나 쟁취할 수밖에 없다는 노동운동사의 교훈을 재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나, 정적 속에 민주화 세력들이 항쟁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그리고 권력쟁탈을 위한 분열과 갈등이 소용돌이칠 것으로 예상되기 시작한 바로 그 무렵, 노동자들이 독재정치의 공백을 뒤흔들며 거세게 일어났다. 바로 1987년 여름 노동자대투쟁의 폭발이었다. 그 위력은 7, 8, 9월 단 석 달 사이에 전개된 3,400여건의 파업으로 집약되었다. 노동자들은 질풍노도와 같이 요구를 분출시키고 ‘선 파업 후 협상’이라는 공격적 투쟁방식으로 요구를 관철시켰다. 노동자들은 현대사 굴절과정에 맺힌 설움과 울분의 응어리들을 함성으로 토해냈다. 노동자들은 이 투쟁의 요구를 ‘노동해방’이라는 구호와 깃발로 내세웠다.  

노동자대투쟁은 한국 노동자계급이 등장한 이후 가장 큰 노동쟁의이며 대중적 항거였다. 노동자들은 생존권 보장과 노동현장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강인한 파업투쟁을 통해, 자신의 어깨를 찍어눌러온 권위주의와 악법절차를 무너뜨렸다. 중화학공업 분야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가 주도한 투쟁은 지역, 그룹, 산업별 연대를 시도하면서 6월 민주항쟁의 역동성을 계승하였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힘과 단결의 위력을 확인하고 패배주의와 좌절감에서 벗어나,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 강화하고, 사회적 민주주의 쟁취투쟁과 노동자계급의 정치역량 강화를 위한 계기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아울러 일방적 노사협조주의를 뛰어넘어 자주성과 민주성에 입각한 사회개혁적 노동운동의 이념을 세워나갔다. 

이후 노동자들은 1987년 대투쟁의 열기를 용광로의 에너지로 삼아 스스로의 권익을 개선 확장하였다. 자주성, 민주성, 연대성, 투쟁성, 이념성을 특성으로 하는 ‘민주노조운동’이라는 독특한 흐름을 형성하여, 노사 간 힘의 균형관계를 확립하고 억압적 노동정책의 청산을 강제하고자 했다. 노동운동의 지형은 1990년 전노협 결성-1995년 민주노총의 출범과 한국노총의 개혁 추진으로 새롭게 구축되었고, 노동자계급은 비로소 시민권을 확보하면서 사회변동의 중심축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갖게 되었다. 

민주노동운동의 급격한 성장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자본 세계화의 파도와 부딪치며 1996년 말 97년 초 전국적인 총파업투쟁으로 분출하였고, 오만한 문민정부의 노동법 개악책동을 저지했다. 그러나 1년도 채 안 돼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폭풍우를 만나 엄청난 혼란과 시련에 봉착하였다.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요에 밀려 이전 10년 동안 쌓아올린 성과를 여지없이 삭감 당하고, 나아가 노동조합운동의 기반마저 위협하는 자본의 총공세 앞에 험한 고초를 겪으며 새로운 활로를 찾아 분주히 움직여 왔던 것이, 지난 10년간의 궤적이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노동운동 20년의 결산서

벌써 1987년으로부터 20년, 당시 태어난 사람은 이제 어엿한 스무 살의 청년이 되었고 치열한 노동항쟁에 앞장섰던 주인공들은 장년을 넘어 회갑, 칠순을 맞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오늘의 노동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노동운동은 얼마나 발전했다고 평가할까? 투쟁의 선봉장으로서의 보람이나 열정은 과연 얼마나 지니고 있을까? 1987년으로부터 20년, 97년 외환위기로부터 10년, 노동운동의 결산서는 어떤가? 그토록 열띠게 외쳤던 노동해방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있는가? 

우선 느낌상으로 노동자들의 기본 생활조건인 임금, 노동시간, 노동복지, 작업환경, 노무관리는 크게 개선되었다. 사회복지제도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노동기본권은 정치 민주화와 아울러 확장되었고, 인권신장, 양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초보적이지만 마련되었다. 

민족통일을 가로막아 왔던 냉전반공주의는 후퇴하고 남북화해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특히 2000년 6·15 공동선언은 민족화해와 통일로 향하는 획기적인 성과였다. 최소한 통일문제와 절차민주화에 관한 한 민주화 20년 사이에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려울 만큼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도 민주노동당이 지방자치단체 진출을 늘려가는 한편에 2004년 총선에서는 국회의원 10명의 의회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둠으로써, 진보진영의 성장에 대한 많은 기대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가진 자, 기득권 중심의 법률?제도?관행이 광범하게 남아있고 비틀린 과거사의 청산도 미결의 과제들로 산적해 있다. 노동기본권 역시 제약의 틀이 완강하게 남아 노동운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다시 3년이나 미루어진 복수노조 허용, 교원?공무원노조에 대한 숱한 제약, 남용 방지라는 취지에 크게 미흡해 보이는 비정규노동자 보호제도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거니와 내년부터 시행될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필수업무유지의무도 단체행동권 자체를 봉쇄할 위험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노동대중 전체 삶의 조건이 여전히 많은 모순들을 안은 채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주의가 압도하는 국민경제는 국내외 거대 독점자본의 사냥터로 변했고, 양극화는 경제와 사회 전반을 질곡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저성장-고실업, 기술혁신-정보화의 패턴이 정착되고 구조조정, 노동유연화가 확산되면서 노동자의 삶은 지옥과 같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대량실업의 위험이 상존한 가운데 정규직 노동자는 구조조정 위협과 노동강도의 강화로 위축되고,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중소영세기업, 이주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보호막에서 소외된 채 극심한 고용불안과 빈곤, 차별로 삶의 한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나름대로 절차민주주의는 진전되었지만 실질민주화는 오히려 후퇴했다는 많은 연구자들의 평가는 최근 급속히 악화한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해법이 나오기 어려운 노동자 상황에 근거하고 있다.  

87년 이후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조합을 조직하여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사수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그것은 정치민주화가 진전되는 동안 노동자 스스로 실질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 투쟁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희생된 해고?수배?구속 노동자 그리고 자결 노동자상황이 잘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은 사회발전의 중심축으로서의 위치를 확실히 하지 못했고 거침없이 밀려오는 유연화의 파고를 타고 넘을 수가 없었다. 노동운동은 조직률의 하락, 현장조직의 무력화, 지도력의 약화가 두드러지면서 대중투쟁 위력을 상실했고, 통일성, 연대성, 도덕성에도 심각한 취약성을 드러냈다. 결국 노동운동 20년의 결산서는 결코 화려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때문에 노동운동의 ‘위기론’이 조직 안팎에서 제기되었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들이 ‘노동운동의 혁신’이라는 목표 아래 경주되었다. 노동운동의 혁신과제는 기업별노조 체계의 타파와 산별노조의 건설, 노동운동 이념의 재정립, 노동자 정치세력화, 노조운영의 개혁 등으로 집약되었다. 그러나 혁신의 진도는 더디기만 하고 권력과 자본의 채찍질은 숨 쉴 틈도 없이 노동자의 희생과 노동운동의 항복을 몰아세우고 있다. 

노동자대투쟁이 뭐냐고 되묻는 막막한 시대

오늘의 노동운동 상황은 실업, 고용불안, 각종 차별과 억압으로 이어지는 노동자의 팍팍한 삶과 맞닿아 있다. 나라 안팎의 자본의 공격은 가히 전면적이다. 노동운동은 여전히 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고, 현장노동자들의 관심과 참여가 약해지면서 조직내부의 이견과 갈등이 심해지고 혼란과 시행착오가 이어진다. 그리고 언제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의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지난 20년 간 노동운동은 사회변혁의 또 다른 이름으로서 노동해방에 가까이 다가가기보다는 자본화 20년과의 치열한 싸움 속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만 고통을 겪고 있지는 않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 노동조합들은 조직률 하락과 사회복지 축소, 그리고 자본의 빠른 변화와 구조조정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응할 수 있는 근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각개격파 식으로 대응하는 것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지난 20년을 그렇게 전전긍긍해 왔다. 다만 우리는 노동운동의 역사가 매우 짧은데도 급성장했던 데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상황 변화를 타개하지 못한 데 대한 실망도 크다는 점이 비교되는 지점일 것이다. 

1987년의 환희와 열망을 기억하고 즐거워하는 노동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한때는 노동운동의 출발점이 언제냐고 물으면 많은 노동자들은 1987년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 어떤 것이냐고 되묻는 노동자가 많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고 상황은 변화했다. 신자유주의를 대치할 변혁의 대안이 보편의 원리로 제시되어 있지 않은 현시점에서, 노동운동의 장래 전망의 막막함을 부인할 수는 없다. 워낙 빨리 변하는 자본축적 방식과 기술혁신, 그에 따르는 고용형태의 변화를 노동조합이 따라잡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목표를 세우고 당면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 또한 노동운동의 책무다. 1987년 그 때는 대투쟁의 감격과 환희에 뒤따라 역사적 임무가 주어졌듯이, 지금은 지금대로 힘겨운 상황을 뚫고 쓰디 쓴 과제를 풀어야 할 사명이 노동운동에게 주어져 있다. 

노동운동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과 경로에 대한 진단은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논리로 제시되어 있는 듯하다. 노동운동 위기론과 관련한 숱한 논의들이 그 예이다. 현상타개의 방법 또한 다채롭고 두루 긴박하다. 그 가운데 빈번하게 제기되는 화두가 노동운동의 변화다.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라는 것이고 제각기 처지에 따라 강조점을 달리한다. 이런 논의는 노동운동 내부에도 다양하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검증된 노동운동의 원리나 원칙을 토대로 한 개혁의 관점에서 패러다임 변화를 보기보다는 상황변화에 초점을 맞추라는 요구들이 적지 않다. 당연히 조건 변화는 무시할 수 없는 환경요인이다. 그러나 조건에 대응하는 실천은 주체가 하는 것이므로 상황 변화에 대한 상응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자칫 실리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고, 자본의 논리와 혼동되거나 매몰될 위험에 부딪치게 된다. 

노동운동의 전망은 지난 역사의 경험에서 먼저 찾는다고 한다. 그것은 곧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관성의 한 예가 모든 상황을 투쟁으로 돌파하려한 나머지 ‘지그재그운동’으로 귀결되는 방식이다. 노동조합진영은 과거의 사업, 투쟁방식을 깨기 위한 여러 시도들을 보이고 있지만 관성의 법칙은 여전히 완강해 보인다. 

노동운동의 전략목표는 사회개혁 또는 변혁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전략목표는 노동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과학적이며 확고하게 설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전술은 지나치게 협소하고 단조로웠던 경험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유연해야 한다. 정공법이 간단명료하고 시원스레 보일지 모르나, 전력이 취약한 경우 자칫 헛되이 역량을 소진하여 큰 싸움을 그르치는 예를 역사는 수없이 가르쳐 준다. 전략과 전술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다잡으면서 우선순위를 찾아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의미다. 

노동운동, 시지프스의 돌을 던져버려라!

지금 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을 맞는 노동운동의 상황은 매우 엄중해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쉽사리 상황 타개의 전망이 서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나 희망을 향한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또 노동대중의 노동운동 혁신에 대한 동의와 인식은 광범하게 퍼져 있다. 혁신의 핵심 고리로서의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계속 확산되고 있으며, 올해 보건의료노조의 임금단체협상투쟁 경험에서 보듯 산별노조의 내용이 착실하게 채워져 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의 투쟁도 전례 없이 확대되고 있다. 

노동운동은 성공과 패배, 도약과 침체를 거듭하면서 발전한다고 했다. 변화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 주체가 스스로의 상황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부단히 자기혁신을 펴나감으로써만이 새로운 도약이 가능하다. 이제 노동운동은 꼭 같은 일을 운명처럼 되풀이 하는, 시지프스의 신화와 같은 악순환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