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노동자로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 가르치는 노동인권교육

노동사회

아이들에게 노동자로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 가르치는 노동인권교육

편집국 0 3,834 2013.05.29 09:01

졸업을 하고 나면 아무리 친하던 놈들이라도 만남이 뜸해지기 마련인데,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연봉을 얼마 받기로 하고 계약을 했는데, 한 달이 지나 월급을 받고 보니 그 액수가 연봉을 12달로 나눈 것보다 적더라는 겁니다. 사용자에게 물어보니 연봉액에는 퇴직금이 포함되어 있고 연봉액의 13분할액이 월급이라고 하더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계약서에는 12분할인지를 명시하지 않고 있었으니 당연히 12분할액이 월급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통상 연봉은 12분할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13분할을 명시하지 않았다면 입증할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고 볼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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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29일 있었던 강사단 모임 워크숍 모습 ]

노동자로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 배우기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스스로는 정규직으로 채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하다 보니 친구는 채용 시에 계약서를 한 장 썼는데 그 계약서상에 명시된 “1년”의 기간이 1년 동안의 근로계약을 뜻하는 건지 아니면 단지 연봉산정을 위해 명시됐었던 것인지 불분명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고 권리가 침해될 수 있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알고 있어야 공정한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것인데, 한 번도 그러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계약을 맺고도 불안정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죠. 친구는 학교 때 노동법상의 권리가 무엇인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이렇게 어이없이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씁쓸히 말했습니다. 

노동인권교육사업은 이렇게 술잔에 뒤섞인 누군가의 친구들이 보내는 한탄과 분노에서부터 처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학교를 벗어나면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발 들여 놓는 곳, 그 곳에서 자신이 직면하게 되는 일들이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당한 나의 권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법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단지 자본주의의 부속품으로 충실히 기능하는 방법만을 열심히 숙달해왔을 뿐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배우지 못하였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노동인권교육은 다름 아닌 ‘노동자의 이름으로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니까요.

“무료교육 참 좋은데, ‘노동인권’은 좀……”

취업을 앞둔 예비노동자에 대한 노동인권교육은 거창하게 시작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뜻을 같이 하는 여러 노무법인들이 <실업계 고등학교 무료교육사업>을 공동으로 기획하고 원하면 무료로 교육을 해주겠다고 학교들에 제안서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단체로부터 제안 받은 “노동인권”이라는 단어가 거부감을 준 모양이었는지, 교육을 하겠다는 학교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인권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가능한 많은 학교들을 섭외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노동인권교육사업의 첫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참여를 유도하려면 공인된 국가기관을 통한 사업으로 추진함으로써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2006년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의 사업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단체 협력사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 제7조 및 교육인적자원부훈령 제620호에는 실업계 고등학교가 현장실습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각급학교현장실습운영에 관한 규칙에 따라 현장실습 시행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장실습 세부지침에 따라 각 학교는 현장실습 파견 전에 반드시 노동법과 노동안전에 대한 교육을 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인적자원부 과학실업정책과에 저희의 사업이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수행하는 사업임을 알리면서 현장실습 세부지침의 이행을 위해 노동인권교육사업에 참가할 수 있도록 일선 학교에 협조공문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2006년도에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교육사업을 제안하고 교육 참여를 섭외하는 안정적인 방법을 확보하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실제 교육은 약 25개 학교에서 6,700여명의 학생들에게 이뤄지는 것으로 우선 만족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50여분의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강의방식으로 노동법의 핵심내용들을 전달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또한 아이들과 정서적인 교감과 신뢰를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사회에서 ‘낙오자’, 혹은 ‘이류인간’으로 대접받는 일에 익숙해져버린 실업계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권리찾기’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 자신에 대한 애정을 심어준다는 것은 힘든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진정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확인할 때 타인의 권리 주장에 대해 여유 있는 관용과 연대의 시선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이렇게 권리찾기의 의미는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에게 친숙해질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노동인권교육이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지겨운 수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높일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의 개발이 절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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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영상교안으로 진행된 올해 노동인권교육 모습 ]

고등학생 시선에 맞춘 영상교육, ‘출루타’ 날리다 

작년의 이런 경험들을 통해 올해 노동인권교육사업은 아이들에게 친숙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영상교안’을 개발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익숙한 쇼프로그램의 형식을 빌려 노동자가 되었을 때 경험하게 되는 몇 가지 상황들을 보여주고 문제가 발생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시청각교안(『노동인권세상으로 가는 노동이의 권리찾기 여행기』)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또 영상교안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노동법적 정보들은 좀 더 자세히 다룬 소책자를 발간하기로 하고, 목차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관련 질문들을 찾아 볼 수 있는 매뉴얼 형식의 책자(『노동인권세상으로 가는 길 찾기 가이드북』)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이번 영상교안과 소책자는 송곡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만화과 학생들이 그린 삽화들로 꾸며졌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교육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노동인권에 대한 자신들의 상상력을 직접 담아내는 작업은 무척 즐겁고 의미 있는 과정이었죠.

기존에는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용 교안이 아닌 영상물과 교안이 결합된 교육자료가 만들어진 적이 없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작업인 만큼 올해 이 영상교안을 들고 아이들을 만나는 과정은 무척 긴장되고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우리 교육 현실은 백여 명의 학생들을 앉혀놓고 일회적인 강의를 해야 하는 상황에 머물러 있습니다. 때문에 몇몇 아이들이 영상물을 틀 때에만 반짝 일어났다가 정작 중요한 내용을 이야기할 때는 엎드려 자버리는 건 작년이나 올해나 여전합니다. 하지만 두 시간 동안 열심히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 교육이 끝난 후에 제각각의 고민들을 상담해오는 일이 예년에 비해 훨씬 많아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고민의 깊이가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이 깊어졌고, 또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응방법을 물어보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조금은 아이들과 일정한 신뢰가 형성된 것은 아닌지, 영상교안을 통해 그나마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닌지 하고 조금은 뿌듯한 반문을 던져보게 되었습니다. 

“수업다운 수업 만들어준 노동인권교육, 아자아자입니다!”

사실 교육을 하고 돌아오면 상담을 해주기 위해 연락하게 된 학생들을 제외하면, 특별히 그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어떤 고민을 갖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지켜볼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노동인권교육을 잠깐이나마 기억이나 할런지, 우리가 잠시 제자리걸음을 하다 일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닌지 회의적인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얼마 전 강의를 마치고 난 후 담당선생님으로부터 날아온 한 통의 편지를 보면서 언젠가 아이들의 손에 의해 조금은 나아진 세상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아니 적어도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우리의 친구들이 그러는 것처럼 어른이 되어 술잔에 섞인 한탄만을 반복하지는 않게 되리라는 희망 섞인 위로를 다시 한 번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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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매너로 천천히 또박또박 흘러간 수업 좋았습니다.
그런데 녀석들이 다 자고, 딴 짓을 하는 통해 뒷좌석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어찌나 죄송하던지…… 녀석들은 어느새 학교에서 진행하는 거라고 하면 다들 일단 재미없고 쓸데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오늘 6교시 제 수업시간에 아름다운 파장이 있었습니다. 

모처럼 하늘이 예쁘다며 녀석들이 수업시작을 방해하더라고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정말 모처럼 고3 교실에서 딴 이야기로 빠졌는데 “인생이 뭡니까?”라는 질문으로 삼천포 길을 내던 녀석들의 얘기가, 저도 의도하지 않았고 그들도 예상하지 않았던 오늘 노동인권교육 내용으로 흘러간 거예요. 덕분에 “시급 10,000원짜리 가게에서 일주일 일하면 얼마인가?”라는 내용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 저 1년 반 동안 ○○에서 일했는데 이제까지 한 번도 일요일 돈 받아본 적 없어요.”
그러자 오늘 열심히 듣던 학생이 “너 1년 이상 일했으면 퇴직금 한 달 월급으로 받을 수 있어!”라고 얘길 하더군요. 또 한 아이가 “선생님 그래도 우리 사장님은 좋은 분이셔서 원래는 시간당 4,000원인데 일요일에 일하면 5,000원 주세요.”라고 하니까 아까 강의를 잘 듣던 또 다른 학생이 “바보야, 원래는 1.5배 받아야 하니까 6,000원이야.”하고 면박을 줬습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재밌게 웃고, 정말 많은 경험담이 나오고, 두 녀석은 책 남은 것 있냐며 달라고 하고……. 현실적으로 “너 그러면 짤려!”란 얘기도 나오고 “그럼 어때? 고소하고 다른 알바 구하면 되지!” 등등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거기다 누군가 “그럼 해결책이 뭐예요?” 라고?물으면 자연스럽게 전태일 열사 이야기, 정치를 희망으로 만들어야 한다, 노동법을 읽을 수 있는 ‘글’의 아름다움, ‘내 권리를 알고 말하고 세상 바꾸기’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끝없는 이야기들이 엮여 나옵니다. 과연 녀석들이 앞으로 어떤 일들을 펼치게 될지 기대됩니다. 
노무사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모처럼 수업다운 수업을 녀석들과 했습니다. 혹 앞으로 재밌는 일이 생기면 다시 편지할게요. 아, 국가인권위가 살맛나는 세상 소식을 전하더니, 이제 또 하나 감사한 희망모임을 만나 기쁩니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아자아자입니다. 진심으로 거듭 감사합니다.

- 일산정보고, 최소영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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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