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노동자, 87년에게 길을 묻다

노동사회

2007년 노동자, 87년에게 길을 묻다

편집국 0 3,539 2013.05.29 08:57

# 1.
2007년 3월7일 울산과학대의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이 집단으로 해고당하고 농성장에서 강제로 끌려나오는 처참한 상황이 벌어졌다. 나이 50이 넘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것이 탄압을 받은 유일한 이유였다. 그 뒤 학교 본관 앞에 천막농성장이 세워지고 지역연대 집회가 매주 열렸는데, 그 집회에서의 발언과 구호에 공통적으로 등장했던 단어가 있다. 바로 ‘87년’이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 된다.”던 고 정주영 회장의 혼을 빼놨던 20년 전 사건과, 그의 아들 정몽준이 이사장으로 있는 울산과학대가 비정규직노조를 인정하지 않아서 발생한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저항은 그 본질이 똑같은 것이었다.

# 2.
6월14일 현대중공업의 민주 활동가들이 ‘현중87사업추진위’를 발족시켰다. 주지하다시피 1987년 노동자대투쟁과 1988~89년의 128일 투쟁, 그리고 1990년 골리앗 투쟁으로 이어지는 현대중공업 민주노조운동은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전설과도 같다. 그러나 현중노조는 2004년 박일수 열사투쟁 당시 회사측 대변인을 자처했고, 열사가 영면해 있는 영안실을 수차례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금속연맹에서 제명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 울산 동구에서 어용노조의 기세는 여전하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중공업 200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여 결성한 현중87사업추진위는 이번 87 사업을 현대중공업에서 ‘민주노조’를 의미를 새롭게 각인하는 계기로 삼자고 결의했다.

# 3.
9월14~15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계승 행사가 열렸다. 이날의 주인공은 20년 전 투쟁의 주역들만이 아니었다. 삼성 SDI 비정규직, 이랜드노조 울산분회 홈에버 조합원, 효정재활병원 비정규직 간병사 동지들 등등. 대부분 여성이자 비정규직인 노동자들로서, 2007년 현재 울산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이었다. 무대 배경 영상막에 비춰진 20년 전의 모습은 남목고개를 넘어 끝이 보이지 않는 대행진의 물결로 가득했다. 그 수만 명이 외치는 함성은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였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오늘, 무대에 올라서는 동지들도 외친다. “비정규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박제되지 않은 87년 기념사업을 만들자

울산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사업은 아주 오래 전인 1988년부터 있어 왔다. 지금의 틀을 갖게 된 것은 IMF 이후 자본의 공세가 거침없던 2000년이었다. 그 후 크고 작은 문화제를 통해 87 행사를 진행해 왔다. 이렇게 쌓인 그간의 경험들은 작년 말부터 지역의 활동가들을 자연스럽게 모아내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87년 20주년 사업을 2007년 2대 핵심사업의 첫머리에 올리면서 판을 넓혔다.

처음 시작할 때 동기는 단순했다. “울산에서 먼저 시작해보자.” 알다시피 민주노총과 진보운동 세력은 2006년 씁쓸한 패배를 거듭했다. 비정규직 악법, 한미 FTA, 노사관계로드맵으로 벌어진 총파업투쟁이 무너지는 과정은 모두에게 무력감을 안겨주었다. 그 쓴맛은 작년에 처음으로 맛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해를 거듭해온 패배이기 때문에 패배감마저 무감각해지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을 다시 떠올리고 새롭게 의미를 재확인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금의 현실을 뛰어넘는 변화를 꿈꾸기 때문이다. 혹자는 ‘87 시대의 단절’을 말하지만 우리는 계승과 발전의 전망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87 계승 사업을 4만5천명 규모의 조합원 숫자를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10만 조직화’ 사업과 짝을 지어 2007년 2대 핵심목표로 내걸었다. 노조를 생각하는 순간 해고를 각오해야 하는 절대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연결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는 87년 기념사업이 현실의 실천 투쟁과 만날 때 박제된 전시행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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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87년’인가? 

울산의 87 사업 추진위의 주체는 소위 모든 ‘의견그룹’ 또는 대다수 ‘정파’의 합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민주노동당’, ‘사회당’, ‘노동자의 힘’ 등 울산지역의 다양한 정치조직 구성원들이 한 테이블에 앉았고, 이제는 고유명사처럼 불리는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가 모두 섞여서 사업을 논의하고 의사를 결정했다. 너무 당연한 조합임에도 최근 들어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이런 87사업 추진위의 너른 스펙트럼이 가지는 장점만큼 단점도 따라왔다. 각 의견그룹 또는 개인이 지닌 생각과 사업 방식의 차이가 사업 초기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위기는 함께 겪어도 그 해결방식은 천차만별이듯이. 결국 87 계승의 중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을 걷어내는 게 중요했다.

87노동자대투쟁의 출발은 노동자 인간선언이다. 그리고 노동자 중심성(민주노조)이다. 
87노동자대투쟁의 현재는 비정규직투쟁으로 상징되는 차별철폐의 실천이다. 
나아가 사회양극화의 자본에 맞선 노동자 계급 전체의 확장된 인간선언이다.
 

6월 민주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면서 작금의 불안한 주류 386 세력은 ‘통일’을 주요 테마로 제출했다. 통일은 6월항쟁의 적자를 자임하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공통된 의제이며 그만큼 오랫동안 유지해온 캠페인이자 정체성이다. 반면 노동운동 진영은 전통적으로 ‘노동해방’을 중심 슬로건이자 의제로 외쳐왔다.

하지만 노동조합 안팎의 공격과 운동 내부의 자책골이 쌓이면서 ‘노동해방’은 핵심 구호에서 밀려나게 됐고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양극화’ 구조에도 불구하고 그 모양새는 더욱 더 왜소해졌다. 신자유주의 주창자와 보수언론, 그리고 이에 세뇌된 동조자들은 양극화의 주범으로 오히려 정규직 노동자를 지목해 몰아댔고 또 이게 일반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먹혀 들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따라서 우리 노동운동의 역사 100년 중 가장 큰 획을 그었던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역사적 의미를 정확히 해야 했다. 그리고 87년 20주년인 올해는 노동해방의 실천이 오롯이 담긴 87정신을 확인해야 할 때다. 그런 의지가 구체화된 방향이 바로 비정규직 투쟁,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이다. 아울러 고용불안을 느끼면서도 잔업 특근에 목을 매달고 살아가는 많은 정규직의 굴절된 삶을 바로 잡는 부단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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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사업이 본격적으로 대중과 만난 것은 지난 5월10일 열린 “87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발족식이었다. 모두 1987명의 추진위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 과정에서 1,200명의 추진위원이 모였다. 정년퇴직한 늙은 노동자에서부터 청소년인권운동모임의 고등학생까지, 목표치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지역에 너른 반향을 일으켰다. 이어서 7월 기념식을 시작으로 9월까지 총 3개월간 다양한 사업을 통해 현장조합원을 만나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아래로부터의 참여’였다.

87사업의 얼개를 짜면서 ‘역사’, ‘학술’, ‘문화·부문’, ‘현장실천’으로 사업의 영역을 나누었다. 그리고 각 영역별 위원회의 운영은 현장의 주체들과 소통하고 함께 기획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각 집행위원을 조직해나갔다.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았다.

어려웠지만 ‘현장’ 중심으로 이루어진 현장실천위원회

제일 어려운 것은 현장실천이었다. 5~6월을 지나 단위 노조의 임단투 시기로 접어들면서 87사업과 현장을 연계시키기가 난망해졌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관성이 남아 문화제나 기념식을 하는 행사에 단위노조 집행부나 활동가를 몇 명 보내면 되는 정도로 이해되기도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택한 것이 두 가지 방식의 현장순회였다. 첫 번째는 단위 지부(지회), 지역단체를 순회하는 지속적인 토론회와 간담회였다. 총 100여 차례의 크고 작은 만남이 이어졌다. 두 번째는 출퇴근 사업장 선전활동과 점심, 휴게시간을 이용해 조합원을 직접 대면하는 현장순회 및 현장전시였다. 그 중 가장 모범적이었던 곳은 민주노총에서 제명된 현대중공업이었다. 100여 명으로 축소된 민주 활동가들이 어용노조와 회사의 눈총에 아랑곳 않고 단체교섭 기간 중 최대치의 선전활동을 진행했다. 더구나 이 선전활동은 원·하청 노동자가 함께 해 출근 선전전, 중식시간 식당 순회 선전전을 이루어냈다는 데에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또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의 2대 핵심사업을 하나로 묶어 ‘87정신 계승 비정규직 철폐 2007 울산노동자대회’가 모든 대중사업의 맨 마지막 날인 9월16일 동천체육관에서 진행되었다. 이랜드노조를 비롯하여 울산의 모든 비정규직 투쟁단위가 한 자리에 모였고, 10만 조직화 사업의 결과로 새롭게 결성된 노동조합들 역시 그 자리에 함께 했다.

사업홍보 역시 투쟁의 거점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비정규직 투쟁의 현장에 “87정신의 계승은 비정규직 철폐”라는 내용의 펼침막을 내걸고, 울산 노동운동역사 전시를 진행했다. 소식지를 제작해 비정규직투쟁과 87계승 투쟁이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맞닿아 있는 설명했다. 더불어 지역 방송에 스폿광고를 만들어 이랜드를 비롯한 비정규직 투쟁의 연대가 바로 87정신의 계승임을 알려나갔다. 

노동운동의 기억을 바로세우기 위한 역사위원회

역사위원회의 가장 주요한 활동은 이번 사업을 계기로 만들어진 ‘울산 노동역사자료실’을 중심으로 지난 20년 동안의 노동운동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분류·보관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87년 울산 노동자대투쟁의 역사자료와 구술사료를 묶어 백서를 만들고자 했다.

울산 노동운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구술 채집은 이미 여러 차례 진행된 적이 있었지만 이는 대부분 대학 등에서 진행한 학술진흥재단 지원 프로젝트였고, 더구나 87년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었다. 결국 기존 구술자료를 수집하는 것과 새롭게 구술인터뷰를 진행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인터뷰 대상자들을 명망가에 한정하지 않고 당시 여성 활동가와 중소 공장의 활동가등을 찾는 작업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 작업은 계속해서 진행 중이며 연말이 지나면 역사구술백서의 형태로 정리될 계획이다.

한편, 권용목을 비롯한 과거 87년 당시의 명망가들이 변절했거나 87년 민주노조운동의 도화선이었던 현대중공업 노조가 어용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노동운동 역사의 왜곡을 막아야 한다는 필요성 또한 강하게 요구되었다. 이런 문제제기는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울산지역의 역사를 바로 보는 『골리앗은 말한다』라는 제호로 묶여진 현중노조 선전물 자료집 출간으로 결실을 맺었다. 또 ‘노동시(詩)를 통해 보는 울산지역 노동운동사’라는 기획 아래 『남목고개가 우릴 부른다』는 제호의 노동역사 시집이 출간되었다.

100년 전 노동운동의 역사를 되짚는 ‘역사기행’도 작지만 소중한 성과로 남았다. 경성 트로이카의 일원이며 일제시대 남한 내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지도자 중 한 분인 학암 이관술에 대한 조명이었다. 이는 87년 기념사업이 지난 20년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평 이전 일제시대의 노동운동까지 시야를 확장하고자 기획된 사업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10월 말로 예정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가족 역사기행에 이관술 생가 방문이 중심테마로 놓일 수 있었다. 역사기행 사업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노동자 가족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새로운 20년의 최대치를 기획한 학술위원회

학술사업은 지난 20년간의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20년에 대한 전망을 세워보자는 큰 포부에서 출발했다. 초기의 목표보다는 줄었으나 모두 9가지 주제에 이르는 토론회가 열렸고, 2개의 조사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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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사업으로는 현중 87추진위에서 진행한 ‘현중 원하청 노동자 의식조사’, 대토론회의 주제를 겸하기도 했던 ‘지역노조 재조직화 전략을 위한 조사’가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학술토론회의 발표글들은 학술대토론회자료집 『87정신 계승의 길을 묻다』로 묶여 발간되었다.
현장과 지역 진보진영의 집중된 연구역량이 투여된 학술위원회 사업은 대토론회로 종합되었다. 개별 주제에 대한 릴레이 토론회를 진행하기도 버거운 지역상황에서 몇 달에 걸친 토론회 준비와 조사사업을 한꺼번에 이룬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때문에 여성노동자와 노동문화 등 몇 가지 주제는 향후 과제로 돌려야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한편 두 차례의 대중강연이 7월과 9월에 진행되었다. 『소금꽃나무』의 저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진중권 교수의 초청 강연은 활동가 중심의 토론회를 탈피하는 대중 참여 사업이 되었다.

노동자들 스스로 말하게 하는 문화? 부문위원회

문화 및 부문사업은 현장 노동자문예의 역량을 집중하는 공연물 기획과 다양한 대중 문화공연, 전시마당 그리고 부문 주제별 참여마당으로 채워졌다. 87 계승주간의 마지막이었던 9월14~15일 양일에 걸친 노동문화제를 예년과 다른 질과 양으로 준비한 것이다.

노동문화제 첫날의 중심 프로그램이었던 울산지역 노동자문예패·문화예술노조 시립문화예술회관 동지들이 함께 만든 연합공연 ‘노래하라 그날을’은 노동문화의 새로운 힘을 보여주었다. 80여명의 연희진과 스탭이 참가한 규모도 방대했지만 극의 짜임새와 내용 측면에서도 큰 박수를 받았다.

또 현장노동자들의 기금 마련과 준비로 6개월에 걸쳐 창작된 노동뮤지컬 <…하여도>는 노동문화제 둘째날 상연되었다. 1시간 반이라는 장편의 뮤지컬 속에 노동자의 현실이 가감 없이 응축되어 드러났다. 노래와 춤 그리고 연극 모든 장르가 한 데 묶여지는 뮤지컬을 흔히 자본주의 문화상품의 꽃이라 한다. 이를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로 채우면서 드러낸 감동과 무게는 비할 바 없이 훌륭한 것이었다.

그리고 87 계승주간 동안 초청된 공연은 비정규직 투쟁의 한복판에서 진행되었다. 울산시청 앞 삼성SDI 하이비트 노숙농성장에서 열린 <공장문학의 밤>과 현대차비정규직지회에서 주관한 코믹뮤지컬 <팔칠전>이 그것이다. 그 밖에도 노동시화전과 민중미술 판화전, 노동열사와 노동역사 전시 등 풍성하게 차려진 밥상처럼 단순한 볼거리를 넘는 전시행사도 함께 진행했다.

하지만 청소년, 여성, 환경, 먹거리, 어린이로 구분되어 이어진 부문마당의 경우 올해도 양념의 역할에 머물렀다. 각 주제가 모두 노동자가 살아가는 삶과 묶여지는 운동의 영역이지만 아직은 짧은 체험이거나 관심 있는 몇몇 노동자로 한정지어진다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지속가능한 87 계승사업의 현재화를 위하여

다음은 처음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87년 대투쟁 20주년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에서 정리한 중심축이다. 무엇보다 올해 한번 홍역을 치르듯 잔치를 벌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설계도를 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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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사회 통합력과 계급연대성의 회복
- 노동운동의 메카라는 자부심을 넘어서는 실천과 투쟁으로 위상회복 
-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노동운동: 사회양극화 신자유주의 맞선 지역연대

● 지속가능한 87노동자대투쟁 정신계승사업 
- 87정신 계승사업회 발족
- 87정신 계승 노동상: 노동자 정체성 확립

● 노동운동의 전망을 세우는 87 사업
- 노동운동 역사자료실
- 학술사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책네트워크: 울산지역 노동운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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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사업이 지역사회의 통합력을 발휘한 기제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통합력이 구심력으로 작용하도록 만드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지속적인 과제이다. 특히 노동자 계급연대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올해 사업에서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참여는 활동가 또는 준활동가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비정규직노조 역시 투쟁(또는 준비)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확연히 구분됐다. 따라서 올해 사업의 성과와 한계는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의 철저한 반영이다.

향후 87 사업의 마무리 과정에서 가장 역점에 두는 것은 1,200여 명의 추진위원을 중심으로 가칭 ‘87노동자대투쟁정신 계승사업회’를 만드는 일이다. 여기에는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적극 참여하지만 그 구성과 운영은 독립성을 갖는 틀로 가져갈 계획이다. 이 계승사업회를 통해 노동운동의 정체성을 지켜가며 더욱 낮은 곳을 향하는 실천을 펼칠 각오다. 울산 노동역사자료실과 학술네트워크 등 올해 사업이 남긴 결과물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심이 될 것이다.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망은 어디에 또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작년 연말부터 시작한다면 현재까지 10개월이다. 우리는 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이 되는 올해, 새로운 전망을 찾고자 했다. 민주노조운동이 서있는 좌표를 확인하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결코 새롭지 않다. 역설적으로 들려도 새로운 전망이란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노동운동의 ‘위기’가 화두가 되었던 때마다 나왔던 ‘전망’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걸어갈 미래는 결국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장선에서 시작된다. 

현장노동자의 체온은 몇 도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초반의 가졌던 설레임보다 앞으로 닥쳐올, 그리고 준비할 일들을 떠올리며 버거워한 적이 많다. 본격적으로 사업구상이 구체화되면서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과연 몇 명이나 참가할까?’란 저급한 고민의 지점을 넘어서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거창한 의미를 붙여도 소수의 활동가와 의무감으로 동원된 노동조합 상집간부의 참여로 앙상해졌던 모습이 망령처럼 떠돈다. 그래서 직접 물어야만 했다. 과연 현장노동자의 체온이 몇 도인지 느껴야만 한다. 

다들 말한다. 현장과 투쟁을…, 그래서 되묻는다. 2007 노동자의 길찾기를. 민주노총을 가운데에 놓고 울산지역의 진보진영을 전체를 망라해 20주년기념사업추진위가 꾸려지면서 기본 틀을 잡은 것은 출발부터 힘이 되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제시되어 왔지만 마지막 집행까지 현장에서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냉소 섞인 목소리도 때때로 들려왔다. 87년이란 과거에 돈과 시간을 낭비 말고, 벌어지는 현실 투쟁이나 잘 하라는 말이 제일 가슴 아픈 충고였다. 하지만 그런 말을 직접 들을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다들 현장을 말합니다.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 87년의 현재형을 확인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찾는 87년의 현재적 계승입니다. 
우리가 올해 역사기행과 87계승 대행진을 위해 두 번 남목고개를 걸어 넘으면서 확인했듯이,
과거의 규모와 영광에 연연하지 않고 다시 처음 그 마음으로 현장을 재조직하자 약속했듯,
87년 노동자대투쟁정신 계승은 
바로 동지와 함께 시작하는 2007년 노동자의 길찾기입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