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꿈꾼 시대 - 육성으로 듣는 열정의 20세기』

노동사회

『혁명을 꿈꾼 시대 - 육성으로 듣는 열정의 20세기』

편집국 0 3,569 2013.05.29 08:56
 

book.jpg21세기가 됐다고 바뀐 것은 없었다. 길거리에 나와 ‘Y2K’(1999년에서 2000년이 되면 컴퓨터의 오류로 세상이 크게 혼란해진다는 주장)나 ‘최후의 심판’ 같은 불길한 혼란을 예언했던 사람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2000년 0시 0분을 넘기고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극단의 시대’와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 화합의 새 세상이 올 거라고 예상했던, 혹은 그렇게 되길 막연하게 기대했던 희망들이 우리 삶의 현실에서 뚝 하고 실현되지도 않았다. 우리는 지금 막연한 기대와 불안으로 기다렸던 바로 그 21세기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21세기라는 사실을, 그 날의 떨림과 묘한 기대와 붙여놓고 생각하면 오히려 ‘21세기’라는 단어가 생소할 지경이다. 아직도 그냥 20세기인 것만 같은데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었다니!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던 그 순간은 인류의 달력에서 년 단위만 지워버린다면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고 흘려보냈을 바로 그런 순간이 아니던가. 지금은 그냥 지금일 뿐, 그리고 우리는 그저 우리의 시간을 ‘쭉~’ 살고 있을 뿐이 아니던가.

20세기의 자녀들, 연설로 20세기를 돌아보다

‘20세기’는 이렇게 시간의 연속성이란 면에서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다. 근대에 이르러 시계가 보편화되고 노동자들의 작업시간 통제가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지금과 같은 단절적 시간관이 만들어졌다는 어느 역사가의 분석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이 시간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달력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우리의 삶이 순식간에 바뀌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20세기가 남긴 유산에 얽매인 존재라는 점에서 여전히 ‘20세기에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20세기를 돌아보는 일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바로 이곳’은 ‘그때 바로 그곳’의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필자는 20세기가 핵무기, 환경오염, 빈곤 등의 채무를 남겼지만 그에 못지않은 ‘기대’와 ‘희망’이라는 채권도 함께 물려주었다고 진단한다. 그 부채를 청산하고 채권을 결제하는 것이 역사의 올바른 흐름이라면, “부채를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것을 청산하기 위해 필요한 우리의 자원과 가능성, 저력 역시 알아야만 하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20세기를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20세기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 이 책이 골라낸 것들은 ‘연설’이다. 방향과 주제는 다를지언정 하나같이 시대의 진보를 바랐던 사람들의 육성이 그대로 담긴 연설들을 읽는 것은 그들이 넘어서고자 했던 것들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에둘러 가지 않고 곧바로 질러 그들의 고민의 핵심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유진 뎁스, 레온 트로츠키, 살바도르 아옌데, 체 게바라, 안토니오 그람시, 로자 룩셈부르크 등 널리 알려진 좌파 지식인·활동가들뿐만 아니라 모한다스 간디, 버트런드 러셀, 말콤 엑스, 토니 벤, 베티 프리던, 돌로레스 이바루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주장하고 외치고 호소한다. 

진보의 수레는 절로 구르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감정이 격해질지도 모른다. 특히 아옌데의 마지막 라디오 연설, 그람시가 국회에서 벌였던 파시스트들과의 논쟁, 스페인 내전 발발 직후 이바루리가 “못 간다”고 외친 라디오 연설 등 극적인 사건들에서의 연설은 어떤 학술적인 글이나 문학에서도 담아낼 수 없는, 마음을 울리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건 아마도 ‘그때 그곳’에서 그 연설을 들으면서 결단하고 행동하며, 시대를 진보의 수레에 담아 굴렸던 민중들과 공명했던 바로 그 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얘기들은 대부분 아직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다. 23명이나 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연설들로 20세기를 담아내기 위해 필자는 20세기에 넘어서고자 했던 7가지의 주제에 따라 연설들을 배치했다. 그 7가지는 전쟁, 자본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파시즘, 남성 중심 사회, 자본의 세계화다. 모두 20세기가 남긴 지독한 ‘부채’이지만 그것을 넘어서려는 끊임없는 시도가 바로 우리가 물려받은 ‘채권’이다. 

가장 마지막에 우리에게 얘기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다. 이 책에 실린 유일한 21세기의 연설이기도 하다. 청산하기엔 너무 크게 느껴지는 부채에 짓눌리지 않고 물려받은 채권을 결제하기 위해 시도되고 있는 다양한 노력들의 일면이다. 그런 종류의 모든 고민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20세기와 21세기의 대화 중 한 부분을 소개한다. “모든 세대는 그 세대마다 보편성을 새롭게 발견해야만 하니까 말이야. 바로 말콤 X처럼 말이지.”

(장석준 쓰고 엮음 살림 냄 1만3천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