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평가와 과제

노동사회

2007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평가와 과제

편집국 0 3,807 2013.05.2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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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7일 보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 타결 모습. ▶ 매일노동뉴스 ]

매년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및 투쟁은 노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병원사업장이라는 특수성과 우리나라 최초로 산별노조를 건설해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산별교섭구조의 선도적인 실험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처우개선 비용을 정규직이 일부 분담하기로 한 산별합의로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 외에도 작년 사용자단체 구성 노사합의에 이은 보건의료 사용자단체 정식 출범과 첫 교섭, 직권중재 회부 보류와 2004년 산별교섭 시작 이후 처음으로 전면파업 없이 자율교섭을 통한 타결 등이 올해 4년차 산별교섭에서 눈에 띄는 특징들이었다.

하지만 또 하나 놓쳐선 안 될 대목이 산별노조 법제도개선투쟁의 발전이다. 금속노조의 한미 FTA 정치파업이 언론의 집중주목을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지만, 보건의료노조도 ‘의료법 개악 저지’를 내건 간부대의원 정치파업을 최초로 전개했다. 이로써 산별노조의 또 하나의 영역인 법제도개선 투쟁 측면에서 새로운 진전을 이루어냈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올해가 1998년 산별노조 건설, 2004년 1만 명이 함께한 14일간의 산별총파업에 이어 또 하나의 큰 획이 그어지는 해로 평가되고 있다. 올해는 의료법투쟁과 비정규직 산별합의가 쌍끌이 역할을 하면서 4년차 산별교섭을 추동했다. ‘1987년 체제’는 가고 ‘산별시대’라는 새로운 체제는 본격 도래하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보건의료노조 2007 산별교섭을 되돌아보는 것은 새로운 산별체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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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사측은 5월8일 보건의료산업 사용자협의회를 출범시켰으나 사립대병원 대표 미선출 등으로 협상의 진전이 쉽지만은 않았다. 사진은 사용자단체가 구성된 이후 5월9일 처음으로 열린 교섭 장면. ▶ 매일노동뉴스 ]

1. 2007년 산별교섭 경과

1) 산별교섭


2006년 산별교섭은 “현장과 함께 준비된 산별투쟁”을 내걸고, △세종병원 산별집중투쟁 → △여름휴가를 넘기면서 장기화된 산별교섭 투쟁 → △사용자단체 구성 합의와 산별 5대 협약 쟁취 → △하반기 87명 간부 집단삭발투쟁과 비정규 법안 및 노사관계 로드맵 저지 투쟁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그리고 2007년 투쟁은 △한미 FTA 협상저지투쟁 및 의료법개악저지투쟁을 시작으로, △사용자단체 정식 구성, △비정규문제 해결을 앞당긴 연대주의 산별합의와 △현장에서 치열한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처우개선투쟁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9월17일까지 84개 지부에서 현장교섭이 타결되면서 전체 임단협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현재 산별교섭에서 임금을 타결하지 못한 대한적십자사 22개 지부가 준법투쟁을 하면서 막판 교섭을 벌이고 있는데, 여기가 마무리되면 정식으로 산별교섭 조인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제 올해 교섭과정을 구체적으로 돌아보자. 먼저 교섭준비 상황을 보면, 노사관계로드맵 저지투쟁이 작년 12월 말까지 진행되면서 일상활동을 할 여유조차 없이 해가 바뀌자마자 곧바로 사업계획 논의와 교섭준비에 들어가야 했다. 이후 3월8~9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2007년 사업계획과 예산을 확정했고, 17,700부의 현장 조합원설문조사와 현장토론에 이어, 4월13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산별 요구안 및 투쟁방침을 확정했다(자세한 내용은 『노동사회』 2007년 4월호 “2007년 보건의료노조 교섭의제 및 교섭투쟁 전략” 참고 바람). 이러한 준비기에는 4차례의 노사공동 실무위원회와 한차례 노사정 정책좌담회를 가졌다. 

4월18일 산별교섭 첫 상견례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사측이 사용자단체 미구성 등을 이유로 교섭 연기요청을 하면서 상견례는 4월23일 비로소 시작되었다. 상견례 이후 2달 반 동안 11차례 본 교섭과 10차례의 축조(실무)교섭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무사의 교섭 참가 문제로 초기 교섭이 파행을 겪다가, 5월15일 4차 교섭에서 비로소 교섭원칙을 합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사측이 사용자단체 미구성 핑계와 “선 산별교섭 후 지부교섭” 등을 주장하면서 교섭을 해태하여 실질적인 교섭 진전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6월9일 116개 지부 34,945명 조합원 명의로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했고, 6월18일부터 21일까지 의료법개악안 폐기와 산별요구안 쟁취를 위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이 투표는 재적 조합원 33,513명 중 26,794명이(투표율 80.0%) 투표에 참가해 20,873명(찬성률 77.90%)의 찬성을 기록하면서, 2007년 산별총파업이 압도적으로 가결되었음을 알렸다. 

6월25일,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숫자인 5,000여명의 조합원이 참가한 파업전야제에 이어, 26일 사상 처음으로 두 차례 조정기간 연장과 파업 연기를 결단하면서 막판 교섭을 진행했다. 하지만 사측 내부 입장 통일이 되지 않아 결국 조정결렬로 6월28일 파업에 돌입했다. 이후 7월3일 악질사업장 분리타격투쟁 방침 결의 등 막판 진통을 거듭하다가, 7월7일 새벽 2시 11차 교섭에서 최종 쟁점이었던 △비정규직 문제와 임금, △산별 5대 협약 등을 일괄 타결하면서 잠정합의에 이르렀다. 

2) 의료법투쟁

2월5일 보건복지부가 34년 만에 의료법개정안을 발표한 이후, 보건의료노조는 2월6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투쟁방침을 논의했다. 이를 시작으로 △성명서 발표, △보건복지부 규탄집회 및 장관 항의방문, △국회토론회, △대국민 서명운동 등 의료법 개악저지 및 의료 상업화 저지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4월부터 전국적으로 동시에 실시된 조합원 하루교육에서는 의료법 개악안과 의료산업화의 문제점을 다룬 <황금 거탑>이 공연돼 조합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5월4일에는 “돈 로비 의료법 전면 폐기 촉구 및 국무회의 상정 저지를 위한 노숙농성투쟁”에 돌입했다. 6월8일 총력투쟁 결의대회 등을 거치면서 아래로부터 의료법 개악저지를 위한 파업투쟁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6월12일에는 국회 앞에서 “의료상품화! 의료공공성 파괴! 건강보험제도 파탄! 의료비 상승! 돈 로비 의료법 폐기 보건의료노조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곧바로 국회 앞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또한 지역본부별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면담투쟁 및 의견서 전달을 실시했고, 현장에서는 △배지달기, △국회의원에게 엽서쓰기, △의료법폐기 국민청원 서명운동 등이 힘차게 진행되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법 개악안의 문제점을 많은 네티즌들에게 선전하기 위해 6월23일부터는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 플래시 배너광고를 게재했다. “맹장수술비 1000만원! 자연분만 700만원”으로 시작하는 광고는 의료법이 개정되면 병원비가 치솟는다는 내용으로, 언론과 시민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6월25일에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건강권과 올바른 의료법개정을 위한 의료법개정협의회를 국회 주도로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6월25일 산별파업 전야제 이후 26일부터 일주일간 국회 앞 집중투쟁을 전개했다. 이런 투쟁과 사회적 반대여론에 밀려 결국 국회는 결국 의료법개정안을 상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7월3일 임시국회가 폐회됨에 따라 보건의료노조는 22일째 국회 앞 천막노숙농성 해단식과 승리 자축연을 가졌다. 

2. 산별 의제들 과련 평가

1) 비정규직


 7월1일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현장마다 파행을 겪으면서 비정규직문제가 최대의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산별 비정규직 합의는 산별노조의 힘과 존재가치가 돋보이게 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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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별합의의 큰 골격은 임금과 비정규직문제 해결비용을 연동하면서, 보건의료노조 산하 병원은 특성별로 임금을 4.0~5.3% 인상하되, 이중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1.3~1.8%를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시정, 처우개선에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산별합의에 이어서 진행된 산별현장교섭은 이러한 “아름다운 산별합의”를 더욱 빛나게 하는 과정이었다. 산별합의가 노사 모두에게 상당한 강제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모든 지부가 산별합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본조 차원의 지침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시정 및 처우개선투쟁을 헌신적으로 전개했다.

그 결과 7월1일 비정규직 법 시행 이후 다른 산업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5가지 형태, 즉 ①은행권을 중심으로 직권분리를 통한 무기계약화, ②유통서비스를 중심으로 계약해지 및 외주용역화, ③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계약해지와 무기계약화, ④자동차사업장을 중심으로 외주전환 및 불법파견공정 전환배치, ⑤사무금융을 중심으로 분리직군제도 도입 및 하위직급 신설을 통한 정규직 전환 등과는 전혀 다르게, 여섯 번째 유형인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차별처우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9월17일 현재 현장교섭이 80% 진척된 상황에서 타결한 지부의 비정규직문제 해결비용으로 대략 280억원이 소요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직 합의되지 않은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대략 3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현장교섭을 통해 전체 13,553명의 비정규직(직접고용 비정규직 6,970명, 간접고용비정규직 6,583명, 전 직원 대비 20.39%) 중 직접고용 비정규직 2,079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대한적십자사본부지부 등의 교섭이 모두 끝날 경우, 최소 2,500여명 이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으로 판단된다.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대다수에게 정규직과 똑같은 임금과 대우를 하여 차별을 시정하기로 했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에게도 복리후생 혜택 확대, 임금인상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현장마다 비정규직과 인력관련 병원경영 현황자료 공개를 요구하고, 이를 기초로 다른 병원과 실태를 비교 조사하면서 교섭과 투쟁이 전개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노조의 경영참여가 이뤄졌고, 교섭대상이 확대되면서 내용적으로 질적 수준이 높은 산별교섭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번 합의는 중앙과 현장이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처우개선을 내걸고 가장 성과적으로 투쟁한 선별교섭이 되었다. 이제 하반기에는 이러한 비정규직투쟁의 성과가 조합원 가입 등 조직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후속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산별합의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비정규직문제 해결을 위해 산별차원에서 ‘비정규직대책 노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고용안정화 대책, 단계적 정규직화 방안 등에 관하여 공동으로 연구조사하고, 그 효과적인 시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또한 보건 노사는 비정규문제 관련 기업별 분쟁에 대해서 산별차원에서 대안을 가지고 조정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그리고 경비, 청소 등 병원 내 존재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법정 기준을 초과하는 선에서 산별 최저임금제 시행을 합의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산별합의는 산별노조로서 개별 기업,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단기이익을 뛰어넘어 사측의 고용형태에 따른 분열 의도를 깨고, 노동운동의 연대와 평등정신을 실현한 쾌거다. 이 모든 것은 ‘산별노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로 ‘산별정신’의 승리이다. 

7월7일 산별합의 이후 노사관계 전문가와 언론들은 현장의 반응에 대해 무척 궁금해 했다. “과연 그렇게 해도 지도부 입지가 괜찮나”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정규직의 임금을 무려 1.8%나 양보했는데 현장의 불만이 없냐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조합원들은 그런 우려를 넘어, 이번 타결내용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이런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산별노조의 조합원인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90% 가까운 찬성률을 보이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이번 비정규직 산별합의는 즉흥적 일회성 이벤트나 단순한 양보가 아니다. 지난 산별 10년 투쟁의 성과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가장 산별적인 합의이자 공세적 전략선택이었던 것이다.

또한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비정규직 합의의 성과를 바탕으로 8~9월에는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 과정에서 재정을 지원하고 매장봉쇄투쟁에 적극 결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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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32 → 20 → 17

이는 산별노조와 이번 산별합의의 성과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들이다. 56%는 통계청이 2007년 3월 실시한 ‘경제활동 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나타난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다. 숫자로는 879만명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한편, 32%는 통계청이 2006년 8월에 실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보건업 노동자(파견근로 및 용역근로자 2만 5천명 포함) 총 50만 8천명 중 비정규직 비율이다. 숫자로는 16만 3천명이다. 그리고 20%는 2007년 산별교섭 직전 보건의료노조가 조사한 산하 병원의 비정규직 비율이다. 다시 말해, 노조가 있는 병원에서의 비정규직 비율을 의미한다. 이 중 직접고용 비정규직 10.48%,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9.9%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노조가 있는 병원이 노조가 없는 병원에 비해 비정규직 비율이 12% 적다. 마지막으로, 17%는 올해 산별교섭 후 보건의료노조 산하 병원의 비정규직 비율이다. 산별교섭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각 병원별 현장교섭이 마무리되면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으로 인해 비정규직 비율이 3.13%로 축소된 이후 비정규직 비율이다. ‘56 - 32 - 20 - 17’,이것이 바로 산별노조의 힘이자 사회적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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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임금

노사 교섭에서 1차 관심사는 당연히 임금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산별교섭에서 아직 임금교섭을 하지 않는 금속노조를 비롯한 다른 산별노조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임금을 산별교섭에서 다루고 있다. 

산별교섭에서 임금교섭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높은 만큼, 초기부터 관련된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가장 많은 문제제기는 “산별운동의 원칙에 따라 교섭과정에서 격차해소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실현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4년 동안의 교섭 결과를 살펴보면, 당장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쟁취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런 조율기능이 없는 기업별교섭보다는 격차해소 등 산별적 목표달성에 보다 더 근접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현장에서 임금교섭을 하지 않으니 조합원의 관심과 현장조직력이 약화된다.”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현장강화를 위해서는 아예 현장을 뛰어넘는 산별교섭 자체가 필요 없다는 과도한 ‘현장중심론’에 빠질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지난 4년간 산별에서의 임금교섭 결과와 의미를 평가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분명한 것은 산별교섭에서 임금을 다루는 것이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큰 흐름에서는 노사 모두 과반 이상이 동의하는 교섭구조로 정착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교섭 비용절감과 효율성 제고, 현장교섭의 기준 제시 등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둘째, 중소병원과 조직력이 어려운 지부들이 전체 산별노조의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으면서 최소한의 임금 인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산별 임금교섭의 결과는 보건의료산업에 있어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하면서, 미조직 보건의료 노동자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이 산별노조의 힘이자 사회적 의미이다. 이상을 정리해보면 아래 [표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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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하지만 여전히 기업별 임금 편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04년 산별교섭 이후 지속적인 임금 인상률 하락, 타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수준 등으로 인해 산별교섭에서의 임금교섭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단순한 임금인상률 비교는 의미가 없고, 고용안정과 비정규직 비율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비교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상은 [표3]에 정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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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작년에는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 문제 때문에 지방의료원을 제외한 모든 공공병원이 산별교섭에서 임금을 타결하지 못했다. 때문에 올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타결시점을 늦추면서까지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와 보훈병원이 진통 끝에 결국 산별교섭에서 임금을 최종 마무리하지 못하고 현장교섭으로 넘겼다. 공공병원이 2년 연속 산별교섭에서 임금교섭을 함께 마무리하지 못한 문제 대해서 노사 모두 대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한다.   

마지막으로, 산별교섭에서 임금교섭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현재 수준의 특성별 임금 타결방안을 넘어 △차이에 따른 + @ 타결 보장, △산별 연대임금제도 도입 등 노사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합리적 타결 방안이 조속히 나와야 한다. 

하반기에는 상반기 산별교섭에서 어렵게 합의한 산별 최저임금제 관련 액수와 적용대상, 시기 등에 있어 구체적 교섭이 이어져야 한다. 또한 산별기획단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산업 횡단적 임금기준이라는 산별임금정책 대안과 구체적인 임금교섭 전략이 풍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3) 산별 5대 협약

올해 교섭에서는 작년에 합의했던 산별 5대 협약이 어떻게 자기 내용을 채워갈 것인가도 중요한 관심사였다. 작년에 △산별기본협약, △보건의료협약, △고용협약, △임금협약, △노동과정협약 등을 통해 산별협약의 뼈대를 세웠다면, 올해는 여기다가 살을 붙이는 과제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올해 교섭결과를 보면, 산별 5대 협약 요구 중에서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새롭게 합의되면서 내용이 풍부해진 부분도 있었지만, 여성, 노동안전, 병원 조직문화 개선, 직무 스트레스 해소 대책 등이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못했다. 앞으로는 매년 주력해야 되는 산별 5대 협약 요구를 2~3개로 집약하고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사측은 보건의료협약 등 의료공공성 요구와 산업정책 요구에 대해 처음에는 교섭의제가 아니라고 교섭 자체를 거부하다가, 이제는 산별차원 정책 논의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교섭에서의 합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3. 교섭구조를 둘러싼 평가

보건의료노조는 초기업적 교섭구조 확립을 위해 ‘산별중앙교섭 - 산별현장교섭’을 골간으로, △대정부교섭, △노사정교섭, △미조직 노동자교섭 등 중층적 교섭구조의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1) 산별중앙교섭의 교섭구조

첫째, 먼저 산별중앙교섭 추진 상황을 돌아보자. 보건의료노조는 올해가 산별교섭 4년차이자 사용자단체 구성 원년인 만큼, 사측의 보다 성숙된 교섭태도를 기대했다. 하지만 오히려 사측은 산별중앙교섭이란 거대한 장막 뒤에 숨어서 더 교묘한 불성실교섭으로 일관했다. 우리는 산별교섭에서 임금교섭의 비효율성과 구조적 문제점, 사측의 불성실교섭 태도가 어렵게 만들어온 산별교섭이란 틀 자체를 깨뜨릴 수 있다고 수차례 경고했다. 결국 올해 교섭에서 몇 차례 고비를 넘기면서, 사측은 노조의 분리타격투쟁을 경험한 후 기업별 회귀보다는 산별교섭으로의 발전에 힘을 실었다.

한편, 이번 교섭을 통해 그동안의 관행을 넘어 기업을 뛰어넘는 초기업적 논의구조를 대폭 확대했다. △산별중앙노사운영협의회, △비정규직대책 노사특별위원회, △의료 노사정위원회 등의 실질적인 가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을 계기로 기업을 뛰어넘어 산별차원의 노사 대화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 노사는 산별중앙협약의 체결 후 산별적 노사관계 발전과 보건의료산업 차원의 노사공동과제 논의를 위하여 ‘산별중앙노사운영협의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기로 했다. 이 협의회에서는 산별노사관계의 발전방안 및 정책과제, 보건의료산업의 발전을 통한 고용안정화 대책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그 산하에 ‘산별교섭준비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산별교섭 상견례 3개월 전부터 교섭의제와 안건, 절차와 방법 등 제반사항을 준비하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산하기구인 ‘고용안정 및 교육훈련소위원회’는 고용안정 및 산별임금체계에 관한 연구와 정책개발, 교육연수제도의 개선과 보건의료산업연수원 건립기금의 국회 청원, 고용기금활용을 통한 보건의료산업노동자 고용안정대책 강구, 사학연금제도 개선방안 마련 등을 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올해 또 다른 성과는 임금과 비정규문제 등 핵심의제를 가지고 긴 시간 동안 다양한 형태의 교섭과 대화를 진행하면서 질적 양적으로 풍부하게 축적되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몇 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온 중앙노동위원회의 산별적 조정 노력과, 올해 적극성을 보인 노동부의 역할도 새롭게 평가돼야 할 지점이다. 산별차원의 이런 실증적 경험 축적은 이후 새롭게 만들어지는 산별노조들이 산별교섭 발전경로와 방향을 찾아가는 데 소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2) 중층적 교섭구조 건설

둘째, 노사정교섭 추진 현황을 살펴보자. 올해는 2004년, 2006년 합의에 이어 보다 더 구체적으로 의료노사정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이로써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산별노조가 보건의료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단계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타결 이후 실질적인 위원회의 가동을 위해 실무추진단을 조속히 구성하고 관련부처와 협의를 갖기로 했다. 의제도 더 구체적으로 확정했다. 또한 이번 합의를 계기로 비로소 노동부와 복지부에서도 실무선에서 의료노사정 추진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산별노사관계가 이렇게 진전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이제 의료 노사정 대화구조 추진에 나서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정부차원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셋째, 작년 처음으로 시도했던 ‘미조직노동자 관련 교섭’은 4만 조합원을 넘어 50만 병의원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을 목표로, 병원협회, 의사협회에게 교섭 요청을 하면서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병의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실태조사와 표준노동조건 기준마련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여전히 미흡하고 걸음마 수준의 투쟁이지만, 관련 병의원노동자와 보건의료 언론들의 관심은 무척 뜨겁다. 미조직교섭과 투쟁은 산별교섭 마무리이후 하반기에도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넷째, 복지부와 노동부 등 대정부 요구와 교섭은 상대적으로 의료법투쟁과 산별중앙교섭투쟁에 밀려 전면화되지 못했다. 특히 기존의 요구를 강조점 없이 나열식으로 제기하다 보니 요구의 쟁점화와 차별화에 실패했다. 앞으로 각 해당 부처, 특히 공공병원의 경우에는 기획예산처 교섭이나 정당 면담 등에 있어 더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다섯째, 현장교섭과 관련하여, 그동안 산별중앙교섭에 집중하면서 산별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되어 올해부터는 본조와 지역본부, 타 지부 간부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각선교섭 방식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산별교섭에 이어 지부교섭에서조차 산별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해 불만감을 표시하면서 강력히 반발했다. 사측은 이제 산별교섭이 정착된 만큼 지부교섭은 보충교섭수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과도기적인 산별교섭-지부교섭 병행 추진에 대해서도 거부하면서, 산별교섭과 지부교섭 분리 의지를 노골화했다. 

그러나 대표성을 갖춘 명실상부한 사용자단체가 구성되면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사측이 성실한 교섭태도를 보여 산별중앙교섭이 안정적으로 정착되지 않는 한, 노조 입장에서는 대각선교섭을 통한 산별차원의 현장압박과 어느 정도 수준에서의 교섭비중 유지는 불가피하다. 이제 산별교섭은 “대각선교섭 강화를 통한 점진적 우회 발전이냐 아니면 산별중앙교섭 강화를 통한 지속적인 직선형 발전이냐” 갈림길에 서있다. 그 선택은 전적으로 사측이 산별교섭에 얼마나 제대로 힘을 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에 달려있다.

마지막으로, 올해 또 하나의 특징은 산별교섭단 구성을 보다 체계화, 전문화, 현장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교섭위원회 산하에 교섭지원단(자문단)을 구성하여 여기에 자문교수단, 변호사, 공인회계사, 노무사 등 전문가들을 참여시키고, 현장간부들도 특성별로 고루 결합시켜 현장의 의견수렴구조를 강화해나갔다.

3) 사용자단체 출범과 사용자측의 불성실 태도
 
보건의료노조는 그동안 완전한 사용자단체가 구성되지 않음으로 해서 산별노조임에도 제대로 된 산별교섭을 추진하는 데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하지만 2006년 교섭에서 2006년 말까지 사용자단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하면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사측은 올해 상견례까지도 구성을 미루다가, 결국 교섭 중반인 5월8일 사용자단체를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출범 이후에도 3인의 공동대표가 확정되지 않아 진통을 겪다가 6월1일 사립대병원 의료원장 회의에서 6명의 의료원장이 순번제로 참석하는 대표단을 구성했다. 순서는 병원 이름 가나다순으로 하기로 했는데, 이들은 실질적으로 ‘1주일 대표’에 불과했다. 이에 노조가 강력히 항의하자 결국 파업을 며칠 앞둔 6월22일, 중앙노동위원회 조정과정에서 사립대병원이 1인 대표를 자체 선출(제비뽑기를 통해) 함으로써, 기존의 김상형 전남대병원장, 이성식 소화아동병원장 2인에다가 남궁성은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무원장(사립대병원대표) 등 총 3인의 공동대표 체제가 완성되었다. 부대표는 총 8인, 평의회는 총 20인으로 구성했다. 한 개의 특성부문이 전체 의결권에 있어 과반을 넘지 않도록 했다. 평의회에는 경총과 병원협회 관계자도 함께 참가했지만 눈에 띄는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사측은 전경련 내에 사무실을 설치하고 산별교섭 비용을 총 2억 6천4백만원으로 책정하면서 회칙에 따라 각 병원별로 회비를 배정했다. 주요 항목은 노무사 자문비, 산별교섭 진행비, 지방병원 교통비용 등이다. 병원별 회비 배정 기준은, (직원 수 + 조합원 수) × 3,300원이다. 직원 수와 조합원 수 사이 편차가 많은 병원계 현실을 감안한 배정방식으로 보인다. 

이제 사용자단체가 구성된 만큼 산별교섭이 조속히 정착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산별중앙교섭과 산별현장교섭 간의 의제 구분과 역할분담 및 진행 방안 등이 본격적으로 검토되어야한다. 하지만 사측이 산별중앙교섭에서는 다른 특성부문 병원을 핑계로 제대로 힘을 싣지 않고, 지부에서는 “이중교섭 금지”를 내세우며 산별중앙교섭을 핑계로 힘을 싣지 않는 ‘핑퐁식 떠넘기기’ 불성실교섭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한 투쟁이 필요하다.

3. 산별투쟁을 둘러싼 평가

1) 의료법투쟁과 산별 법제도개선 투쟁 


의료법투쟁을 통해 산별노조가 기존의 임단협 수준의 투쟁을 훌쩍 뛰어넘어 전 사회적 또는 전 산업적 핵심의제를 가지고 파업투쟁을 조직한 것은 산별노조운동의 새로운 질적 발전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기업별 노사관계의 뿌리가 깊다하더라도 조합원 교육과 선전만 충분히 된다면, 이후에도 법제도개선을 내건 산별투쟁 및 산별총파업투쟁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의료법투쟁을 통해 확인했다. 

이번 의료법투쟁의 성과는 첫째, 의료법의 문제점을 사회여론화하고 반대여론을 확산시켰다는 점이다. 의료법 관련 논의의 무게중심을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하는 직능별 이해다툼에서, ‘국민건강권 사수’와 ‘의료 산업화’라는 것으로 분명히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둘째, 정부가 6월 임시국회에 회부한 의료법이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게 막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로써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미국식 의료체계로 전면 전환하는 큰 흐름을 막았다. 셋째, 보건의료노조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의료공공성 투쟁에 있어 대중조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점이다. 보건의료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은 이번 의료법투쟁을 계기로 법제도개선 투쟁에 상당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2) 산별투쟁전술 

지난 2004년 ‘1만 산별총파업투쟁’ 이후 내부적으로 투쟁력 편차 확대와 양극화 현상으로 집중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가 제기된 만큼, 올해 산별투쟁전술은 “4만이 함께하는 투쟁”에 초점을 맞추었다. 

올해 보건의료노조는 최근 몇 년간 계속되는 산별파업투쟁으로 인해 조직적 피로가 누적되어 현장조직화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상태였다. 또한 신경영전략의 침투로 인해 현장조직력이 약화됐고, 간부역량이 취약해져 있었다. 이런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80% 투표에 77.9%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쟁의행위 가결, △지부별 간부파업 + 조합원 10%의 투쟁 참가 등 산별적 집중투쟁력을 발휘함으로써 이후 투쟁의 자신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 특히 6월25일 5,000여명이 참가한 조합원 파업전야제투쟁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현장의 저력을 그대도 보여준 자랑스러운 투쟁이었다. 이날 결집된 힘이 의료법개악을 막아내고 산별교섭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또한 전술의 효율성, 현장조직 상황 등을 고려하여 올해 채택했던 △간부 및 대의원 파업, △악질사용자 분리타격전술 등도 주객관적 조건을 감안할 때 적절한 투쟁전술이었다는 평가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산별투쟁 이후 계속 제기되는 “결의와 실천의 괴리”와 “투쟁의 하향식 평준화로 인한 투쟁력 약화”, 그리고 “싸우는 지부만 싸운다는 피해의식” 등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 있다. 모두가 함께하는 산별투쟁을 위해 조직적 지혜를 모아 구체적 대안을 세워야한다.

5. 현장 및 조직 강화를 둘러싼 평가

산별교섭 본격화 이후 내부평가의 주요 화두는 ‘현장강화’ 문제였다. 최근 산별투쟁 평가과정에서 단골메뉴로 현장조합원 참여율 저하와 노조 전임자 중심의 활동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흐름이 산별노조 전환 이후 특수한 구조적 현상인지 아니면 최근 노동운동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연동된 문제인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최근 민주노총 사업장의 경우 비정규직투쟁과 고용문제가 걸린 구조조정투쟁 이외에는 일반 정규직의 파업투쟁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것은 1987년 이후 20년간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확보했고, 또 노사관계와 교섭도 안정적으로 제도화되면서 노조활동에 대한 ‘절실함’이 떨어져서는 아닌지 돌아봐야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병원도 다른 많은 현장과 비슷하게 파업을 할 만큼의 절실한 요구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산별교섭 실질 정착과 사용자단체 쟁취를 내걸고 이 정도 투쟁을 몇 년째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현재 상황은 노동계 전체에게 새로운 시대와 조건에 걸맞은 요구개발 및 노조활동 방식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상반기 임단협 체결이 계속 늦어지고, 하반기에는 법개정 문제로 정기국회 폐회 시점인 12월 말까지 총력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해서 1년 동안 단 1개월도 안정적인 현장 일상 사업을 할 겨를 없이 당위적으로 던져진 투쟁과 외부 일정을 따라가야 하는 현실이 현장조직사업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게다가 주5일제가 확산되면서 주말 일정과 집회가 어려워져, 1주일 내 조직사업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더욱 협소해졌다. 특히 청년노동자, 신규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조직화 접근법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6. 나가는 말

이제 짙은 안개가 걷히고 조금씩 앞이 보이기 시작한다. 구호성 산별운동, 일방통행식 산별교섭에서 이제는 상호작용을 통해 실질적인 요구와 내용을 만들면서 교섭의 효율성을 높이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산별을 외치며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온 9년 시절보다 지금부터가 더 힘들 것이다. 양극화 심화, 뿌리 깊은 기업별 노사관계라는 한국적 상황에서 실질적인 산별교섭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질문에 구체적 답을 준비해야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상반기 산별교섭을 성과적으로 마무리하면서 하반기에는 “다시 현장 속으로”를 전면에 내걸고, 한축으로는 민주노동당과 함께하는 대선투쟁과 2008년 산별교섭 준비를, 다른 한축으로는 지도부 전국순회 현장간담회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는 직권중재가 폐지되고 대체근로 및 필수업무유지가 도입되는 등, 노동법 개악에 따른 첫 임단협이 진행된다. 올해 하반기에는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또한 산별기획단과 교섭위원회, 전문가들과 합동으로 산별교섭 5년차로서 산별 의제개발과 교섭방식 개선에 집중하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산별임금체계와 산별기금 조성, △산별고용복지, △현장 노동 강도를 낮추고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교대근무제 개선과 인력충원, △공공 급식운동과 환자에게 안전한 친환경 먹거리 제공 등이 검토되고 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내년에 ‘산별노조 1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발맞춰 △10주년 백서와 화보집 발간, △무상의료 국제토론회, △산별운동 국내토론회, △산별 10년 10대뉴스, △진품명품을 찾아라 등 중앙과 현장에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10주년 기념사업이 단순한 1회성 행사가 아니라 지난 10년간 꾸준히 진행된 산별운동의 추진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척박한 한국현실에서 산별교섭이 자리 잡아가게 된 배경과 주체의 힘은 무엇인지를 집중연구하고, 미래의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대응전략을 제시하는 자리로 삼고자 한다. 

15만 금속이 산별교섭의 새로운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최근 산별교섭 의제연구를 마무리하고 산별특별위원회 활동을 서두르고 있다. 대선과 총선이 이어지는 역동적인 정치정세 속에서 노사관계와 정치, 경제적 조건의 변화도 상당하게 예상되고 있다. 이제 다시 한 번 우리 시대 산별노조의 의미를 되새기며, 산별교섭 관련 한국적 추진 경로가 구체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 같다. 기존 유럽 산별노조와는 역사와 조건이 너무 다르고, 그밖에 나라와는 비교할 만한 대상이 별로 없다. 더구나 산별교섭의 진전을 둘러싸고 노-사, 노-정은 물론 노-노, 사-사, 정-정 간의 복잡한 고차방정식과 정치공학이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산별교섭은 기존의 작은 하나를 버리고 새로운 더 큰 하나를 얻는 과정이다. 지금 시점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나갈 것인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굳어진 것은 모두 사라진다(All That is Solid Melt Into Air).” 칼 마르크스가 쓴 『공산당 선언』의 한 구절이다. 유연한 열린 사고와 현실에 뿌리박은 창조적 실천만이 역사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산별시대, 정책에 있어서는 더 구체적이고 창조적 고민을! 조직과 투쟁에 있어서는 현장에서부터 길을 찾는 낮은 자세를! 이것이 모든 활동가들에게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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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