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 금속산별호에 첫 발을 담근 어느 기업노조 출신 활동가가

노동사회

15만 금속산별호에 첫 발을 담근 어느 기업노조 출신 활동가가

편집국 0 3,008 2013.05.29 08:55
 

“단위노조 한계를 벗자!” 
“노동자들의 더 굵은 단결과 투쟁이 담보되어야 일자리도 지켜지고 정부와 자본에게 맞짱 뜰 수 있다!”
“우리를 대표하는 정치가도 산별이란 희망 속에서 만들어야 한다!”


이런 내용으로 노동조합 2006년 소단위 전체 조합원교육을 진행했고, 집행부에서도 여러 차례 홍보물로 산별전환을 독려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속한 기업별노조 조합원들은 ‘산별노조’가 무엇인지 잘 잡히지 않는 듯 아리송해했지만, 정작 조직전환 투표에서는 단 한 번에 총원 대비 80%에 가까운 높은 찬성률로 산별전환을 가결시키는, 예상 밖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산별노조 중앙파견 요청, 그래 한 번 가보자!

통합금속 위원장 선거 기간 중에 현장에서 일을 하며 몇 후보와 손인사를 나눴다. 그래도 노동운동 물을 좀 먹었다고 후보들에 대해 몇몇 동지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나도 잘 모르는 후보에 대해서는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을 해줬다. 2교대 작업의 피곤함에 묻혀 실은 나도 후보들의 약력을 알리는 글을 많이 읽지 못해서 자세히 설명을 못 해줬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나니 누가 본조 상임집행부로 올라갈까 조합원들이 관심이 많을 줄 알았는데 별반 반응이 없다. 정작 조합원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산별 전환이 됐는데 왜 사용자들을 중앙교섭에 불러들이지 못했지?”
“한미 FTA 파업에 우리가 꼭 투쟁을 해야 되는 거야?”
 

산별전환 교육의 결과였을까? 아마 조합원들은 산별전환 이후 곧바로 뭔가 큰 변화가 있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다른 면으로는 “지도부 지들끼리 뭘 어떻게 해도 나와 무슨 큰 상관이 있으려고” 하는 분위기도 있는 듯하다.

그런 와중에 나에게 산별 중앙으로 파견을 가라는 통보가 왔다.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금속연맹 소속 시절 이후 통합 산별노조는 첫 경험이다. ‘가서 뭘 해야 하지? 본조에서는 무슨 생각을 갖고 업무를 할까? 그래도 단위가 크니까, 한번 가보자!’, 결국 마음을 굳혀먹었다.

두근두근 혼자서 ‘간’보고 있는 새내기 

본조에 올라와 있는 지금 기업별노조 경험만 있는 나는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마음이다. 대공장일지라도 단위노조는 지금 내가 산별노조에 와서 경험하는 것과 비교해서 결정과 결과를 보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또 간부들의 마음을 서로가 잘 알고 있는 터이고, 조합원과 간부 사이도 한 다리만 건너면 거의 알고 지내는 사이다. 물론 이는 간부들 대부분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산별노조 중앙은 지금까지 내 경험과는 전혀 다르다. 현재 나는 ‘15만 산별’에서 겨우 2개월 정도 밖에 보내지 않은 신참내기다. 그리고 요즘은 속된말로 ‘간’을 보고 있다. 솔직히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뭐부터 해야 할까, 고민의 연속이다. 기존 금속노조 시절부터 참여했던 상집 분들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연륜이 많이 묻어나온다. 

기업별노조에서 간부 경험이 조금 있었지만 산별노조 새내기가 된 지금 많은 것이 궁금하다. 술이라도 잘하면 고참들과 자리라도 만들어 볼까하는 맘도 있지만, 선뜻 나서기도 어렵다. 전체 회식 자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나마도 지도부의 수배 때문에 한 번도 하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아무래도 업무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맨 땅에 헤딩해가며, 실수를 해가면서 배워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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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면 한다”고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선배님들!

출근 첫날에 있었던 일이다. 상집회의에는 실장급 이상만 참석한단다. 규약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상집회의에 참석자들이 많으면 의견차이로 소란스러워서 그렇단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 1회 정도는 전체 회의를 했으면 좋겠다. 주간 업무 보고라도 들어야 다른 실, 부서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데 ‘15만 금속산별의 거함’이 출발하니까 각 정파조직들도 함께 출발하는 모양이다. 각종 회의가 너무 길어진다. 회의장에서 1박은 기본이다. 그렇게 되는 데는 (오해일 수도 있지만) 정파조직들의 세력 다툼이 약간은 섞여 있는 듯하다. 어떤 조직의 간부는 투쟁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데 정작 투쟁 대오에는 소속 인원이 안 보인다. 내가 상집으로 올라간다는 소식에 친한 현장활동가 한 분은 그곳에 가면 ‘말조심’하라고 당부를 했다. 본조 정파조직 중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나를 위한 말일 게다. 

지부, 지회와의 의견 조정도 녹록치 않다. 15만 직접 선출 대표의 권위를 우리 스스로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 체계가 덜 잡힌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한다면 한다.”는 금속노조는 시간이 갈수록 좋은 항로를 찾아 힘찬 항해를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희망을 챙겨본다. 그 동안 쌓인 경험이 있고 우리 모두가 뜻을 모아 산별을 선택했으니까 말이다.

금속노조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조직이 잘못 움직일 때 방향을 잡아주는 조합원들이 단결되게 관심을 쏟을 수 있도록, 방향과 길을 잘 닦아야 할 것 같다. 의견이 조금씩 달라도 일단 결정이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했으면 좋겠다. 

“야 고 국장! 너나 잘해!” 흘깃 보고 곁에서 나에게 웃으며 고함친다.

“아~ 네네, 잘 배우겠습니다. 잘 가르쳐 주세요. 선배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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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