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노동자대투쟁 20년과 노동운동 과제

노동사회

87년 노동자대투쟁 20년과 노동운동 과제

편집국 0 6,477 2013.05.29 08:52

*****************************************************************************************************
역사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낳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역사는 우리가 어떻게 오늘날의 우리가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지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한 열쇠다.

크리스 하먼
*****************************************************************************************************


현재 시점에서 돌아보면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은 오늘을 있게 한 역사다. 그렇게 인식할 때 위의 크리스 하먼 얘기를 떠올리게 된다. 1987년에서 꼬박 2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의 시점에서 노동자대투쟁이 노동운동 발전에서 갖는 역사적 위치를 짚어보고, 지난 20년 동안 전개된 노동운동의 침체와 고양, 패배와 승리의 변증법적 진행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바르게 파악하는 데 매우 긴요한 일로 여겨진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한 주요 과제들을 떠올려 함께 논의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역사가 된 1987년 노동자대투쟁

87년 노동자대투쟁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친 노동자계급의 잠재적 역량축적을 바탕으로 하여, 1980년대 전반기의 진통기 또는 준비기를 거쳐 진행된 노동운동 발전의 결과이자 성과였다. 노동자대투쟁은 우리나라에서 노동계급이 형성된 이래 최대 규모의 파업투쟁이었으며, 대중적 항쟁의 성격을 띠었다. 그런 점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은 우리 노동운동의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도표(道標)이자 획기적 계기라 할 수 있었다. 노동자대투쟁은 첫째, 광범한 노동자를 단련시키고 계급적 의식과 조직을 발전시킨 계기였다. 노동자 대중이 스스로 투쟁의 전면에 나섬으로써 자신들을 억압하는 체제와 각종 제도의 구조를 인식하게 되고, 투쟁과정에서 조직적 지도성의 중요성과 넓은 범위에 걸친 연대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둘째,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을 촉진했다. 신규 노조의 결성이 결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면서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본격적으로 형성·강화되었다. 셋째, 억압적 통제체제를 무너뜨리고 기본 권리의 확보를 위한 조직적 토대를 마련했다. 넷째, 사회적 민주주의 쟁취 투쟁의 첫걸음이 되었다. 노동자대투쟁은 6·29 선언으로 집약되는 절차적·정치적 민주주의 요구를 넘어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노동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실질적·사회적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시발이었다. 다섯째, 노동계급의 정치적 진출을 위한 대중적 토대를 마련했다. 여섯째, 사회개혁적 또는 사회변혁적 노동운동 이념과 노선을 모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87년 노동자대투쟁은 노동운동 발전을 위한 주요 계기들을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우선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조직과 투쟁의 측면에서 자연발생적 경향이 강했고 조직 지도력이 취약하여 매우 강고한 투쟁을 벌이고도 투쟁성과가 광범한 조직적 역량의 결집·강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투쟁방식의 측면에서는 사업장 단위에서 고립?분산적 형태를 취했으며, 연대투쟁이나 공동투쟁이 폭넓게 추진되지 못했다. 투쟁 목표의 설정에서도 투쟁이 사업장 차원의 요구사항에 집중된 채 계급적?제도적 요구 관철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런 한계는 당시 노동운동의 전반적인 발전 단계를 반영한 것이었다.
  
1987년에서 2007년까지, 고양과 침체의 변증법적 전개과정

● 조직 측면 

이제 1987년 이후 2007년까지, 노동운동 고양과 침체의 변증법적 전개과정을 조직, 투쟁, 운동 기조, 정치세력화 등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먼저 조직의 측면을 보겠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직후 노동운동은 노조 조직역량의 확대를 통해 고양의 흐름을 나타냈다. 실제로 노동자대투쟁 직전인 1987년 6월 말 당시의 노조 수는 2,742개, 조합원 수는 105만 명으로 조직률은 15.7%였는데,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운동이 활성화하면서 노조 수와 조합원 수가 급증해, 1989년에는 노조 수 7,883개, 조합원 수 193만 명, 조직률은 19.8%였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1989년 이후에 하락세로 반전하여 노조조직률은 1997~2001년 12%대, 2002~2003년 11%대, 2005년에는 10.3%로 저하되었다. 현재 조합원 수도 150만 명에 머무르고 있다.

노동자대투쟁 이후 조직 확대는 미조직 사업장의 조직화와 더불어 미조직 부문에서 노조 조직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나타났다. 특히 언론, 병원, 정부출연·투자기관, 대학, 경제단체, 유통부문 등과 재벌그룹 산하 계열기업, 사무직종 등에서 진행된 노조 조직화는 전체 노동운동의 판도를 크게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영역을 한층 더 확대시켰다. 1989년 결성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1999년 합법화되고, 2006년 공무원 노조법이 시행되면서 교수노조 말고는 거의 합법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편,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조 조직의 확대에 따른 노동운동의 전체적인 구도 변화와 함께, ‘민주노조운동’의 대두·발전 역시 노동운동의 지형 변화를 가져왔다. 민주노조운동은 한국노총 주도의 기존 노조운동과 구별되는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고, 노동운동의 주축으로까지 자기역할을 지향하게 되었다. 새로 결성된 노조와 조직 개편을 통해 한국노총에서 탈퇴한 노조들은 1987년 말부터 지역, 산업(업종), 재벌 그룹 별로 별도의 조직으로 결집하게 되었다. 지역노조협의회들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로 결합되고, 산업별 또는 업종별 협의체는 노조연맹체로 개편되었으며, 그룹협의체는 노동조합총연맹 결성과정에 합류하면서 해체되었다. 

이런 민주노조운동의 흐름은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출범으로 집약됐다. 민주노총 결성은 일제시대 때부터 이어진 자주적 노동운동의 계승이면서, 1987년 이후 새롭게 형성되고 발전한 민주노동운동의 집약된 성과였다. 또한 그것은 10여 년 동안에 걸친 투쟁의 결실이었고, 자본과 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교두보의 구축을 의미했다. 

이와 더불어 기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에서도 개혁시도가 이어졌다. 한국노총은 대투쟁이 발생한 1987년의 다음 해인 1988년 2월 정기 대의원대회 선언문에서 “지난날의 노동운동에 대한 냉철한 자기성찰과 겸허한 자기비판을 통하여 운동태세를 획기적으로 쇄신하고 전진적이고 창조적인 자기혁신과 발전을 적극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전환기적 시점에 처해 있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제2의 탄생’을 표방하면서 △국가권력의 부당한 지배·개입 거부, △여당 편향적인 정치활동 탈피, △공동투쟁 전개, △산별노조 건설 등을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운동 기조를 바꾸기도 하고 조직 강화와 조직형태 전환에 대한 논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노총은 1993년과 1994년에는 이른바 ‘노총―경총 중앙임금인상합의’를 체결함으로써 개혁시도의 허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1996년에는 노동관계법 개정에 항의하는 총파업을 전개하면서 민주노총과 공조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노총의 개혁은 지도부 개편 때마다 강조됐으며, 자기혁신을 위한 노력이 더디게나마 이어져왔다.

또한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조 조직형태 개편·발전을 위한 노동운동의 실천적 노력 역시 주목해야 한다. 1989년 법외노조로 출발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결성 때부터 산별노조 형태를 취했다가 1999년 합법성을 확보함으로써 조직의 체계정비와 산별노조 체제를 확립하게 되었다. 또 전국병원노조연맹은 1998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로 조직형태 전환을 단행했고, 전국대학노조연맹 역시 산별체계로 조직형태를 변경했다. 1999년에는 전국화물운송노조연맹이 전국화물운송하역노조로 조직체계를 바꾸었다. 2000년에는 전국언론노조연맹과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노조연맹이 산별체제로 조직형태를 변경했다. 그리고 2001년에는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소속의 114개 기업단위 노조가 결합해 전국금속노조를 창립했다. 2002년에는 법외노조로 출범한 전국공무원노조가 산별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한 노력들은 최근까지 이어져 2006년 자동차산업 완성차 4개 노조가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철도노조 등이 운수산별 건설을 결정하는 등 산별체계로 조직형태 개편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2005년 현재 전국규모의 산별노조는 51개이고, 그 가운데 대산별에 속하는 것은 8개이다. 조합원 수는 47만 8,38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편, 산별체계로의 개편은 아니지만, 초기업단위 노조형태인 지역업종노조와 직종노조도 꾸준히 확대되었다. 2005년 현재 단위노조 5,934개 노조 가운데 지역업종?직종노조는 374개에 달한다. 초기업단위 노조에 속한 조합원 수는 60만4,000명으로 전체 조직노동자의 40.1%를 차지하고 있었다. 2년이 지난 2007년 지금에는 그 비율이 절반을 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조 조직의 확대와 조직형태 발전을 통해 고양과 성장이 진행됐지만, 침체 또는 정체의 측면 역시 존재했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조직률의 저하와 조합원 수의 정체이다. 조직률은 10.3%까지 저하되었고, 앞으로도 조직 확대를 위한 특별한 활동이 전개되지 않는 한 조직률이 떨어질 공산은 커 보인다. 이에 따라 조합원 수도 150~160만 명 수준에서 등락현상을 되풀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것은 기업단위 노조형태가 갖는 조직 확대 시도의 한계,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대, 노조 상급조직과 지역조직의 조직 확대를 위한 활동의 취약성, 조직형태 발전의 지연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음으로 민주노조운동이 노동운동의 한 축을 형성한 것은 분명하나, 그 특성이라 할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연대성, 이념성을 지켜내고 발전시키는 데서는 일정한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어느 연구자의 진단처럼 민주노조운동을 포함한 전체 노동운동이 정체성 위기, 연대성 위기, 계급대표성 위기, 공공성 위기, 도덕성 위기, 조직민주주의 위기마저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주노조진영은 ‘전투적 노조운동’이라는 허울을 덮어쓴 채 노동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포기하다시피 함으로써 새로운 주체로서의 자기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한국노총은 1987년 이후 지속적인 ‘개혁전략’ 노력에도 불구하고 “냉철한 자기성찰”이나 “겸허한 자기비판”을 철저하게 수행하지 않은 채, 운동태세의  쇄신과 창조적인 자기혁신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전략을 펼치지 못했다. 그리하여 조직운영이나 활동방식 그리고 운동 기조의 정립에서 상당한 개선을 이룩하긴 했으나, 결코 종래의 낡은 틀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물론 노동자대투쟁 이후 산별노조 건설이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뚜렷한 추세를 형성하게 된 것은 노동운동 발전에서 매우 중대한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업별노조 체제에서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된 경우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산별노조 체제는 아직 보편적인 정착단계에 접어들지 못한 채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다. 산별노조 체제에서 집중성과 통일성이 관철되지 못하고 있고 대중성과 지도성의 원칙이 미처 실현되지 못한 채, 기업별 노조의 타성이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체교섭 방식에서도 산별교섭이 안정적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부조직의 기능과 지도역량이 산별체제를 이끌어갈 정도로 성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산별노조의 현주소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노동자대투쟁 이후 조직 측면에서 노조 민주주의와 각급조직의 지도역량, 노동전선의 통일 등에서 두드러진 진전을 이룩했으나, 아직도 뚜렷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양대 노총의 분열과 갈등은 노동운동의 정체 국면을 부추기고 있다.

● 투쟁 측면

1987년 이후 전개된 노동자투쟁의 전반적인 상황은 노동쟁의 추이를 통해 우선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1986년에는 쟁의행위 건수가 276건이던 것이 1987년에는 3,749건, 1988년 1,873건, 1989년 1,616건이었다. 이후 1990년에는 322건으로 크게 감소했고, 1993년부터 1999년까지는 100건대를 유지하다가 2000년 이후 200~300건대를 나타내고 있다(2004년의 경우 462건). 이렇듯 1987~1989년 시기 쟁의행위가 폭발적인 양상을 나타냈는데, 이것은 노사관계의 정상적인 구조에서 제기되었다기보다는 노동자의 요구와 불만이 일시에 분출된 ‘노동항쟁’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1987년 이후 전개된 노동자투쟁은 여러 측면에서 양태와 성격의 변화를 보였다. 이것은 투쟁의 질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노동운동의 투쟁은 기업이나 사업장 단위의 고립?분산적 투쟁에서 지역·산업별 및 전국적 연대조직을 기초로 한 연대·공동투쟁 및 통일투쟁으로, 즉 자연발생적 투쟁에서 조직적·계획적 투쟁으로 발전한다. 또한 경제투쟁 위주에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 형태로 진전되며, 정치투쟁도 자본과 군사력의 통제에 대항하는 수세적인 것에서 정책·제도 개선이나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공세적인 투쟁으로 발전한다. 1987년 이후 전개된 노동자투쟁의 각종 사례에서도 이런 노동자투쟁의 보편적 양상과 특징들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양상과 특징은 특히 1996년 12월의 총파업 투쟁을 통해 집약적으로 나타났다. 

1996년 12월 총파업은 정부·여당의 노동관계법 개정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여 결행되었고, 12월26일부터 2월28일까지에 걸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공동전선을 형성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당시의 공동파업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총파업이었고,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정치투쟁의 형태를 취했다. 또 특정 지역이나 특정 산업의 범위를 뛰어넘은 전산업·전국 규모의 파업이었고,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성격을 지닌 투쟁이었다. 그리고 총파업은 국민적인 지지와 국제노동운동과의 연대를 과시했다. 그런 점에서 1996년 12월 총파업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보다 한 단계 고양된 정치적·대중적 투쟁이었다. 

1997년 말 한국사회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면서 심대한 위기국면을 맞게 되었다. 국가권력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도 높게 시행하는 가운데 자본 측이 적극적인 경영합리화 방침을 추진함에 따라, 노동운동 역시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고 노동자투쟁도 침체국면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 노동운동은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한 대응, 노동·생활조건의 유지 개선,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보장, 사내하도급과 관련한 원청업체의 사용자 책임 요구, 특수고용직의 법적 노동자성 인정, 노동관련 정책·제도 개선 등을 위한 투쟁들을 다양한 형태로 전개해 나갔다.

이렇듯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을 비롯한 몇 년 동안의 수많은 건수에 이르는 파업투쟁과 1996년 12월 총파업을 정점으로 하는 투쟁의 획기적 고양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의 발전 과정에서는 한편으로 전략적 투쟁 목표의 설정을 비롯하여 노동운동이 부딪친 도전에 대한 대응 양상,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 투쟁전술 등의 측면에서 침체와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조직형태가 산별체제로 전환 추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노동조합이 추진하는 활동과 투쟁은 주로 기업 또는 사업장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투쟁은 분산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지역·산업·전국 차원의 공동투쟁이나 통일투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투쟁에서 제기된 요구도 주로 경제적 성격의 것이었고, 신자유주의 정책과 경영합리화 방침에 따른 공세에 수세적으로만 대응했다. 그리고 노동관계법 개정이나 한·미 FTA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으나, 제도와 정책 개혁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지는 못했으며, 민중적·국민적 요구를 폭넓게 대변하지 못했다.  

● 운동이념의 측면

노동운동의 전개에서 조직이 확대·강화되고 투쟁이 고양됨에 따라 운동이념이나 기조가 발전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 현상이다. 노동운동 이념의 발전은 운동의 방향과 전략 목표의 정립, 운동 기조의 설정 및 자본?권력의 이념 공세에 대한 대응에서 구체화한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한국노동운동의 이념 변화는 어떠했는지를 보자.

한국노총은 1991년 전국대의원대회에서 <90년대 한국노총의 운동기조와 활동방침>을 채택했다. 한국노총은 노동운동의 이념을 ‘민주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노동조합주의’로 설정했다.  이것은 “경제적 조합주의와 정치적 조합주의의 한계와 단점을 우리의 상황 속에서 극복해 나가는 것으로 노동자의 주체적 역량강화와 국민적 연대 속에서 통일민주복지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기본 이념”인 것으로 풀이되었다.
 
운동 기조로서는 △자주적·민주적 노동운동의 전개, △노동자와 일반국민 생존권 보호, △한국 자본주의 구조적 개혁 추진, △국가 정책결정 과정에 적극적 참여, △정치활동 전개, △노동조직의 통일 및 시민운동과 연대 등이 제시되었다. 이후 한국노총은 1995년 대의원대회에서 <2000년대를 대비한 노총의 운동기조와 활동방침>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념이나 기조에서 큰 변화는 없었다. 2001년에는 ‘인본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고 ‘반신자유주의적 연대’를 전략개념으로 하는 운동방향을 제시하고, △교육 강화, △산별 전환, △실질적 총파업 전개, △양대 노총 및 범진보세력 연대 강화,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 △자주 재정확보 등 주체적 역량 강화 6대 과제를 설정했다.
 
2006년에는 한국노총 설립 60주년을 맞아, 그 동안의 운동 역사에 대한 단절과 계승, 발전과 도약이라는 대명제 하에 운동이념으로서 ‘평등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참여와 사회연대적 노동조합주의’를 채택했다. 또한 노동운동의 사활이 걸린 △조직 강화와 확대 전략, △노동의 유연화에 대항하는 반신자유주의 연대투쟁이라는 두 가지의 운동 전략과, △산별노조 건설을 통한 조직 확대 및 강화, △사회개혁(공공성)투쟁 강화, △사회적 대화체제 구축 등을 3대 운동방향으로 설정했다. 2007년 들어서는 ‘참여와 연대의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를 운동 이념으로 내세우면서, △조직 강화, △노동운동 위상과 역할 강화, △사회연대와 사회개혁을 3대 운동의 목표로 설정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운동 이념 설정과 관련해 2000년도 사업보고서에 <노동운동발전전략 보고서 요지>를 자료로 실었다. 이 보고서는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가 약 1년 동안 진행한 작업의 결과였다. 이 보고서는 대의원대회에서 공식적으로 토의되지 않았고 채택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목적의식적으로 추진한 사업을 통해 얻어진 결과이므로 상당한 무게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민주노총은 이 보고서를 통해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되어 인간이 주인 되는 평등사회’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평등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평등을 실현하여 모두가 함께 인간다운 삶과 존엄성이 보장된 사회”라고 규정했다. 평등사회의 운영원리를 △공공적 소유가 지배적인 사회, △자원배분이 사회적으로 조절되는 사회, △민주적인 참여와 통제가 이루어지는 사회로 설명했다. 평등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정책으로서, △공공적 소유를 지향하는 사회화 정책을 비롯해, △시장적 조절의 제한과 국가적 조절의 확대·강화, △자본가적 통제를 제한하는 민주적 노동자 통제, △대외 종속적 자본주의의 청산과 개방적 자립경제로의 전환 등을 강조했다. 이 밖에도 보고서에는 정치·연대·통일전략, 정책 및 제도개선 방향, 조직발전 전략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의 노동운동은 21세기를 맞는 전환기에도 미래에 대한 전략을 세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 시점에서도 노동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평등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참여와 사회연대적 노동조합주의’ 또는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참여’와 ‘사회연대’에 대한 기본 개념도 확립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와 실천계획도 제시하지 못한 채, 조직적 논의를 추진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운동 이념의 시안으로 제시된 바 있는 ‘사회변혁적 노동조합주의’를 2001년 이후 지금까지 더 이상 논의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민주노총이 노동운동의 이념이나 노선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노동운동이 지향하는 전략목표가 아직 정립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노동운동 침체 양상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현상인 듯하다. 

● 정치세력화의 측면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의 정치적 역량은 크게 증대되었고, 노동자 또는 노조의 정치세력화는 여러 측면에서 확대되고 강화되었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요구가 높아졌음을 반영하는 것이고, 조직역량과 투쟁역량의 발전 결과로도 볼 수 있다. 한국 노동운동이 추진해온 정치세력화는 정당 건설을 비롯하여 선거활동 그리고 다른 선거운동이나 시민운동과의 연대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한국노총은 1991년 이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줄곧 정치방침들을 결의했다. 특히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21세기 정치활동 플랜>을 발표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책연합의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 친노동자 후보 지지, △2000년 총선에서 노동계 및 친노동계 후보 20개 의석 확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당 제휴를 통한 정권참여, △2004년 총선에서 독자정당 건설과 원내 교섭단체 구성, △2007년 대선에서 독자후보 추대를 통한 수권 가능 세력으로 부상, △2008년 총선에서 제1야당 지위 확보 등이 그 내용이었다. 이 플랜은 야심찬 것이었으나 제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후에는 독자적인 정당건설과 선거참여가 실천되었다. 한국노총은 2002년 10월, (가칭) 민주사회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11월3일 민주사회당 창당대회를 열어 독자적인 정당을 건설했다. “오늘 우리는 자유·평등·연대·평화통일을 갈구하는 모든 국민대중의 열망을 한데 모아 민주사회당 창당을 선언한다.”면서, “민주사회당은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청년, 양심적 지식인과 종교인, 서민층을 포괄하는 대중정당”이라고 밝혔다. 2003년 3월 정기 전당대회에서는 당명을 녹색사민당으로 개칭했다. 녹색사민당은 2004년 4월15일 실시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28개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여 실패하였고, 5월에는 정당 해산을 단행했다.

한편, 한국노총은 1991년 이후부터 본격적인 선거활동을 추진하여 지방선거에서 기초의회와 광역의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들 당선자의 대부분은 기존 정당의 공천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한국노총은 사회시민단체들과의 연대활동을 전개해왔는데, 사회양극화 해소, 농민투쟁 연대, 과거사·민족문제 관련 연대사업, 통일단체와의 연대활동 등을 추진했다.

다음으로, 민주노총은 1995년 결성 당시 강령에서 “우리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 제 민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며 ……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를 토대로 하여 2000년 1월30일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다. 우리 진보정당의 역사에서 노동자 대중이 주축이 되고 노동조직의 결의를 통해 정당이 결성되기는 민주노동당의 경우가 처음이다. 민주노동당은 “인류사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공동체를 구현할 것”을 목표로 하는 이념정당이고, 노동자 중심의 민중정당 성격을 지닌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결성 이전부터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지방선거에 노동계 후보를 내세워 참가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10명이 국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는 81명(광역 비례 10명, 광역의원 5명, 기초비례 14명, 기초의원 52명)이 당선되었다. 한편으로 민주노총은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활동 역시 폭넓게 전개해왔는데, 민중연대사업, 파병반대 국민행동,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통일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 신자유주의 세계화반대민중행동,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등을 통한 활동이 그것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이 전개한 정치세력화 운동은 이전과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전진의 양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한국노총은 독자적인 정당 활동 추진에서 실패한 뒤 현재 ‘정책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정책연대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나 방침도 설정되지 않은 채, 특정 대선 후보와 연대해서 임기 내에 정책을 수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매우 소극적이며, 심대한 우려마저 자아낸다. 정치세력화 노선마저 정립하지 못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지방선거에서 기존 보수정당의 공천으로 지방의회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여지가 커 보인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창당에서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으나, 민주노총이 스스로 강조한 ‘노동자 주도성’과 ‘계급연합 정당’을 실현하는 데서 일정한 한계를 보였다. 우선 전체 민주노총 조합원 가운데 민주노동당 당원의 비중이 5% 미만이고, 노동조직과 정당 사이에 기본원칙으로 강조되는 ‘자율적 대등과 독자성을 바탕으로 한 상호협력과 지지’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활동 전개에서 폭넓은 참가는 이루어지나 노동계가 실질적으로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직역량, 투쟁여량, 정치역량의 한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한 전략목표 세워야

노동운동은 침체와 고양, 패배와 승리, 정체와 도약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며, 또한 그 과정에서 급격한 발전 시기와 완만한 발전 시기가 교차한다. 그것이 노동운동 발전의 자기논리라 할 수 있다. 급격한 발전 시기에는 조직이 확대되고 정치조직과 정치활동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 뿐 아니라 이념이나 노선을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이 강화된다. 반면에 완만한 발전 시기에는 조직률 저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내부분열이 드러나는가 하면, 활동과 투쟁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념과 노선의 혼돈을 겪게 되는 것이 일반적 양상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 노동운동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 ‘87년 체제’는 가고 ‘새로운 체제’는 오지 않은 그 빈자리에서,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미래를 열기 위한 몸부림이 세차게 일고 있는 형국이다. 더 이상 침체와 추락 그리고 위기의 양상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노동운동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발전방향과 전력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한 위원회’나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 아니면 ‘노동운동혁신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조직 내외의 간부와 전문가들로 구성해 설치하고, 전 조직에 걸친 현장토론을 광범하게 조직하여 노동자의 불만과 요구 그리고 노동운동의 비전에 대한 의견들을 집약해야 한다. 동시에 노동운동 발전에 관한 연구활동과 각계각층과의 토론을 통해 노동운동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비전, 전략목표, 총노선(조직, 투쟁, 정치, 조직혁신 등)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전략목표들은 그 실행을 위한 방도를 구체적으로 강구해야만 비로소 운동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운동이 현재 겪고 있는 침체를 딛고 돌파구를 뚫고 나가 고양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중요하게 제기된다.

● 산별노조 체제의 정착

한국 노동운동이 산별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은 단순히 조직형태의 변화를 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큰 계기를 창출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노조 조직형태는 구체적으로 조직률을 결정짓는 기본 요건으로 작용하고 조직적 결집과 통일의 정도를 결정하며 활동과 투쟁의 폭과 성격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운동 이념의 실현과 정치적 역량 발휘와 직접 관련되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산별노조 체제 전환은 초보적 시동단계라고 할 수 있다. 조직노선의 설정을 통한 목적의식적이고도 본격적인 운동이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산별노조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발전전략에서는, 첫 번째 단계가 기업별 노조체제의 극복이 될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조직체계와 운영의 정비·강화가 될 것이며, 세 번째 단계는 산별노조 체제 확립이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산별노조 체제 구축을 위한 현단계적 과제로서는, △조직형태 발전을 위한 조직노선의 설정, △상급 조직의 기능과 지도력 강화, △조직운영의 민주적 개편, △기업단위 조직의 정비·강화와 초기업 단위노조의 조직운영 체계 개선, △공동투쟁과 통일투쟁의 확대 등이 제기된다. 산별노조 체제의 구축은 중소사업장과 하청업체에 속한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노조 민주주의 실현과 지도역량을 강화하고 노동전선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활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정책?제도 개혁투쟁 강화

노동운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자본의 경영합리화 전략에서 비롯되는 크고 작은 도전에 대응하여 투쟁을 전개기 위해서는 올바른 투쟁전략과 투쟁역량의 확대·강화를 필요로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운동이 새로운 고양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 정책과 제도개혁을 위한 활동과 투쟁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정책·제도 개혁을 위한 활동과 투쟁은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정치운동이며 계급운동이다. 각종 제도나 정책 개선은 노동·생활조건과 기본 권리의 보장을 위한 불가피한 요건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위한 역량 증대라는 점에서 ‘예비적 조직화’의 의의를 지닌다. 

그런데 제도·정책 개선은 자본 측이나 국가권력의 일정한 양보를 전제로 한 것이고, 그것은 개량적인 성격을 갖는다. 양보와 개량은 노동자들을 체제 내로 편입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본질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양보와 개량이 노동계급의 육체적?정신적 퇴화를 막고, 투쟁의 성과로서 더 큰 단결과 폭넓은 활동을 촉진하고 체제개혁에 대한 목표에 다가가도록 할 수 있다면, 이러한 개량은 노동운동의 맥락에서도 적극적인 의의를 갖게 된다.

노동운동이 정책·제도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책참가 또는 정책개입이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물론 노조의 정책참가가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형태의 참가가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정책이나 제도결정 기구에 노조대표가 참가하는 것은 국가나 자본의 이해나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라는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의 정책참가는 목표와 원칙을 올바르게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음으로 기구운영의 민주화와 다양한 참가 방식의 활용이 요구되며, 조직과 투쟁이 병행 추진되어야 하고, 노조의 정책역량 향상이 긴요하다. 또한, 제도와 정책의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세력화의 강화 역시 필수적이다.

● 노동운동 이념 정립

노동운동을 둘러싼 상황의 변화와 도전의 중대성, 그리고 노동자의 요구 변화 등은 노동운동의 올바른 이념 정립을 절실하게 촉구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운동이념과 노선을 확립하지 못한 채 모색의 단계에 있다. 말하자면 전략목표 또는 총노선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노총은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를 더욱 충실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민주노총은 2000년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가 마련한 안을 중심으로 이념을 설정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식을 통해 이념과 노선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운동 기조를 정립하는 일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과정에서 노동운동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완전한 실현과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개혁이 전략목표로 설정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국내외 독점자본과 국가권력의 자본 중심적 정책을 규제하고, 경제를 전체 국민의 이익에 합치되는 방향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목표를 기본내용으로 한다. 

현 단계에서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전략 목표는 △경제구조의 민주적 개혁, △재벌 해체와 독점자본에 대한 규제 강화, △사회적 공공성 강화, △노동시장 유연화 반대와 고용보장, △제반 정책과 제도의 개혁, △국가정책 결정과 기업경영에 대한 실질적 참여 보장, △국민의 자유와 기본 권리의 보장 등이 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 명제(anti-these)가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노동운동이 강조해왔던 민족 자주권 쟁취와 민족의 평화적 통일, 민중연대 전선 구축과 제 민주세력의 연대 강화 등이 전략목표로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 정치세력화의 적극적 추진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의 ‘사회세력화’와 ‘정당조직화’를 기본 토대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세력화는 노동운동의 발전을 비롯하여 계급으로서 정체성과 사회적 영향력 확보, 다른 민중운동 및 사회세력과의 정치적 연대와 동맹 강화를 의미한다. 노동자 정당은 노동자조직의 최고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 정당은 자본주의제도의 전면적 개혁을 지향한다. 이런 정당조직화는 노동자의 사회세력화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사실상 자기 사명과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어렵다.

현 단계에서 노동운동이 정치세력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방침이 요구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노동자 주도성’과 ‘계급연합 정당’을 실현하고 강화하는 일이다. 현재 유일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조합원이 전체 조직 노동자의 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자 주도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당원 확대를 위한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노동자들의 배타적 방식으로 추진될 수는 없기 때문에 노동세력을 주축으로 하고 민중세력과 사회운동 진영을 주도세력으로 하여, 광범위한 참여와 지지를 끌어내 주체역량을 확대 강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둘째, 정당활동과 대중투쟁의 유기적 결합이 중요하다.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는 정당의 의회활동만으로 실현되기는 어려운 조건이므로 대중투쟁과 의회 공간 활용의 결합은 필수적인 요건이다. 특히,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노동현장에서의 정치활동 강화가 강조된다. 민주노총은 정치활동에 대한 자체 평가에서 현장 정치사업의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이를 위해 당원 확대사업을 비롯하여 정치실천단 조직, 정치교육과 선전활동 등이 필요하다고 제기하고 있다.

셋째, 정당 내부의 정파 또는 각종 분파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브라질의 노동자당(PT)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노동자당은 1987년에 열린 5차 전당대회에서 당내 정파의 기능에 대한 결의를 했는데, “전당대회는 분파의 권리를 승인하며 …… 당은 이러한 권리가 PT의 강령을 채택하지 않거나 PT의 민주주의와 규율을 받아들이지 않는 집단에게는 허용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분파의 권리는 PT 이외의 정당에서의 활동을 허용하는 것도 아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당내 정파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아르띠꿀라사옹(articulao, 연결, 통합)’의 활동이 당내에서 크게 주목을 끌었다. 이 조직에는 정파 가운데 최대 그룹이었던 ABCD 지역의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지식인과 가톨릭 활동가들이 참여했으며, 그 활동이 비교적 일관되게 당의 목표와 위상을 제시함으로써 당의 지도력을 공고히 하는 데 중심을 두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