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호텔, 우리가 너희를 청소해주마!

노동사회

르네상스 호텔, 우리가 너희를 청소해주마!

편집국 0 3,837 2013.05.29 08:50

2006년 1월, 우리는 18년 동안 일했던 직장을 올려다보며 호텔 안이 아닌 정문 밖에서 옷을 겹겹이 껴입고 바람막이 하나 없는 호텔 앞 인도에서 차별의 울분과 억울함을 세상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2004년 5월에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내고 다시 정규직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호텔의 인사부장이었던 RST(르네상스서비스팀, 룸메이드 노동자들을 용역으로 고용한 도급회사) 사장은 계약기간이 끝난 2005년 12월31일에 곧바로 해고를 통보했다. 2001년 12월31일 정규직에서 용역으로 전환된 지 딱 4년만이었다. 물론 호텔도 우리를 정규직으로 고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호텔 앞 길거리 농성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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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노조의 투쟁은 수많은 연대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작년 2월 서비스연맹의 장기투쟁사업장 순회투쟁 중에 르네상스 호텔 앞에서 열린 ‘불법파견 박살, 원직복직 쟁취 결의대회’ 모습. ▶ 서비스연맹 ]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때 호텔이 지어지자마자 일을 시작했던 첫 직장이었다. 입사 시험의 면접에서는 ‘영어책 읽기’도 있었다. 그렇게 들어와서 18년을 일했던 내 직장이었다. 하다  못해 동네 부녀회를 만들어도 창립멤버를 우대해주는데, 호텔은 ‘돈이 없다’며 호텔 창립멤버인 우리 룸메이드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언덕의 겨울바람은 칼바람 그 자체였다. 그 칼바람을 안고서 “정규직 원직복직!”, “불법파견 위장도급 철회!”, “노동부 시정명령 이행하라!” 등등 호텔이 저지른 온갖 잘못들을 플래카드와 피켓에 적어 길거리 가로수의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우리의 억울함을 알렸다. 오고가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의 얘기에 관심을 가지고 추운거리에서 왜 이렇게 외치고 있는지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분들은 “나이 많이 먹은 아줌마란 이유로 구조조정을 당해서 쫓겨났다.”고 말해주면 대부분 “그런데도 이렇게 싸우는 모습이 정말 용감하다. 꼭 이기기 바란다.”며 용기를 주시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이 싸움, 더욱더 열심히 해서 꼭 이겨야겠다는 다짐을 다질 수 있었다.

투쟁의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말로만 들었던 생활의 어려움이 정말로 현실로 닥쳤다. 작년 7월에 실업급여가 끊기면서 사정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관리비, 전화비를 못 내서 독촉장이 날아오는 건 보통이었다. 공과금을 못 내 단전·단수가 되는 일을 겪은 동지들도 많았다. 누군가 소리소문 없이 못 나올 때는 ‘교통비가 없어서 못 나왔구나’하고 생각하면 딱 맞았다. 이 어려움 중에도 2년 가까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말 그대로 주점 등을 통해 십시일반 도와주셨던 동지들의 연대의 힘 덕분이었다. 이 기회를 빌어 연대해준 동지들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생활고도 생활고지만, 더 힘들었던 건 투쟁의 결과가 안 좋은 방향으로 나올 때였다.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는데도 사건을 조사한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온 작년 11월엔, 나뿐만 아니라 모든 동지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호텔은 우리가 용역으로 전환된 뒤에도 누가 어디 객실을 청소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직접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청소가 끝난 뒤의 평가나 확인도 호텔 직원들이 직접 했었다. 그래서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건데도 검찰이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에, 그 날 하루는 정말 어깨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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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노조 조합원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끈질기게 투쟁해왔다. 호텔 앞 농성에서 작성한 각자의 소원을 적은 플래카드. ▶ 매일노동뉴스 ]

하지만 시간이 계속 흘러 그렇게 투쟁이 생활이 되어가고 있던 중에, 지난 7월19일 드디어 우리가 원했던 ‘정규직 원직 복직’이라는 승소판결이 났다는 소식을 받았다. 2004년 11월에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던 소송 판결이 나온 것이다. 그 판결에는 해고된 시점부터 르네상스 서울 호텔로 복귀되는 날까지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명령도 들어있다고 한다. 비록 1심이지만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고 거의 마지막 남은 기대였기에 정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힘든 속에서도 동지들의 흐트러짐 없는 단단한 의지와 서로 보듬고 챙겼던 따뜻한 마음이 오늘의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판결이 진실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세상에 알리게 되어서 우리와 같이 힘들게 투쟁하는 다른 동지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의 불씨를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다시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일자리를 돌려달라고 외치는 가슴 저린 원통의 목소리가 더 이상 대한민국 땅에서 들리지 않는 날까지 가열찬 함성을 더욱더 크게 외칩시다!

연대해 주신 모든 동지여러분!

오늘의 저희 투쟁을 가능하게 했던 존경스럽고 아름다운 연대동지들의 마음과 배려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