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시행 5개월, ‘차별시정’ 어디까지 왔나

노동사회

비정규직법 시행 5개월, ‘차별시정’ 어디까지 왔나

편집국 0 3,545 2013.05.29 09:09

 

jieso_02.jpg7월1일부터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지 5개월째 접어든다.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지만, 올 한해 노동 문제를 관통하는 열쇳말 1위가 ‘비정규직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큰 파장이 있었다. 법 시행 이전부터 상반기 내내 전사회적 관심사가 되었던 이랜드 사태와 그 뒤를 이은 코스콤 사태는 비정규직법 회피를 위한 기업들의 외주화에 따른 문제였고,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꼬리를 물고 이뤄졌던 무기계약직 전환은 애초 법안의 취지와는 다르게 완전한 정규직화가 아닌 ‘중규직화’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올해 굵직했던 많은 노동 이슈들이 비정규직법의 시행과 맞물려서 발생한 것들이었다.

어쩌면 예견됐던 일이었다. 비정규직법은 제정 과정에서부터 삐거덕거렸다. 노사정 3자 합의를 통해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합의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빠졌고, 경총을 비롯한 경영계 역시 법이 과도한 ‘보호법’이라며 불만을 표시해왔다. 제정 이후에도 법 시행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노사정은 각자 다른 전망을 내놓으면서 공방을 벌였다. 그리고 올해 7월1일 법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를 비롯한 많은 기업들에서 법 회피를 위한 대량해고와 외주화가 이뤄지면서 비정규직법은 그 한계를 스스로 드러냈다. 결국 비정규직법은 노사정 3자가 내놓았던 각각의 전망이 모두 틀리지는 않았지만 모두 맞은 것도 아닌,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어가는 모양새다.

동전의 양면, 하지만 결론은 하나

비정규직법의 큰 틀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기간제·파견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무기계약직화)’이고 다른 하나는 ‘차별시정제도’이다. 이 두 가지 수단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취해왔으나, 사실 양쪽의 주장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노동계는 두 가지 안전판의 구멍이 너무 많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법을 회피하기 위해 구멍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는 것이고, 경영계는 이 안전판이 너무 과도한 수준의 보호이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부담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는 것이다. 극단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양쪽의 주장을 종합하면 비정규직법의 ‘예정된 결말’이 보인다. 

법안이 과도한 수준의 보호라는 사용자들의 주장이 맞다면 길은 둘 중의 하나다. 기업이 망하거나, 아니면 탈법·위법 행위를 하거나. 하지만 기업이 망하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 당연히 법을 회피하기 위한 행위들이 광범위하게 이뤄질 것이다. 반대로 법안의 구멍이 너무 많다는 노동계의 주장이 맞다고 해도 길은 자연스럽게 ‘법안 회피 노력’으로 모아지게 된다. 그리고 법 시행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런 귀결이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법 시행에 대한 기업의 대응은 여러 가지로 나타났지만, 중요한 것은 법안의 취지에 맞게 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식으로 대응한 곳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은행식의 분리직군제나 이랜드식의 외주화나 크게 보면 비정규직법의 ‘정규직화’와 ‘차별시정’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회피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법의 한쪽 다리 ‘차별시정제도’ 제대로 움직이나

그렇다면 비정규직법의 안전판인 정규직화와 차별시정제도는 제대로 작동하고는 있을까? 사용한 지 2년이 지나서 계속 사용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로(기간제→무기계약), 혹은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파견→직접고용) 본다는 비정규직법의 내용상, 법안의 두 핵심 제도장치 중에서 정규직화에 대해서는 아직 섣불리 말하기는 이를 수도 있다. 비정규직법은 소급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 시행 이후 즉각적으로 활용이 가능했던 다른 하나의 안전판, 차별시정제도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노동부의 『차별시정안내서』에 따르면 차별시정제도란 “사용자가 비정규직근로자(기간제·단시간·파견근로자)를 비교대상근로자(무기계약근로자·통상근로자·직접고용근로자)에 비하여 임금 그 밖의 근로조건 등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이다. 불합리한 처우를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처우가 있은 지 3개월 안에 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을 신청할 수 있고, 이 때 차별시정 신청 영역은 “임금 및 그 밖의 근로조건”이다. 노사 양측 중 한 쪽이라도 판정에 불복하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물론 차별시정제도 역시 소급적용이 불가능하지만, 차별시정의 주요 영역이 ‘임금’이기 때문에 법 시행 이후 노동자들이 첫 월급을 받게 되는 7월 말 경부터는 차별시정 신청이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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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표2]는 11월28일 현재 차별시정 사건 처리 현황이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 사건은 잘 알려져 있는 철도공사와 농협 고령 축산물공판장 사건으로,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차별시정 판정을 받았으나 사용자측이 불복해 신청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지방노동위원회의 현황이다. 경기지노위의 현재까지 시정 신청 건수는 585건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두드러지게 많다. 중노위에 따르면 그 중에서 현재 진행 중인 575건 중 571건이 도로공사의 비정규직들이 신청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경기지노위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은 크게 경기도(비정규직 공무원), 철도공사, 도로공사인데 그 중 도로공사는 400여 명 정도 된다. 행정기관에서 건수 산정 방법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건수는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지노위의 현황에 따르더라도 400여 명은 다른 지노위들 중 가장 신청이 많은 서울지노위 전체 신청 건수의 7배에 이르는 수치다.

jieso_03.jpg“재계약해야 하는데 미운털 박히면 어쩌나…”

여러 가지 허점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차별시정제도의 가장 큰 허점으로 차별적 처우를 받은 노동자 ‘개인’만 차별시정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일반 노동자들보다 사용자의 압력을 더 크게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보복을 무릅쓰고 개인적으로 차별시정을 신청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농협 고령 축산물공판장의 차별시정 신청자 중 한 사람인 이윤호 씨는 10월16일 계약만료 후 계약갱신을 거부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차별시정 판정을 받은 철도공사의 경우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철도노조는 조합 차원에서 차별시정 신청서를 배부하고 각 지역별로 집단적으로 신청을 내는 등 차별시정에 적극 개입한 결과, 비록 철도공사가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하긴 했지만, 농협처럼 보복성 인사 등이 보고되고 있지는 않다.

400여 명이 집단으로 신청한 도로공사의 경우, 노조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아니었다. 도로공사노조의 강종호 홍보국장은 “조합원은 아니다. 배경도 잘 모르고, 알아도 책임있는 답변이 어렵다. 공사 노무팀에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도로공사 노무팀의 이정환 씨는 “노조에서 신청한 것은 아닌 걸로 안다. 11월19일에 차별시정이 신청됐다는 것 말고는 자세한 내용은 노동위원회로부터 듣지 못했다. 다음 주쯤 (경기지노위로부터) 자세한 내용이 올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도로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차별시정을 신청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한국노총 관계자로부터 흥미로운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차별시정을 신청한 노동자들이 “재계약이 거부될 걸로 예상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인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재계약이 어차피 안 될 테니 차별시정 신청을 통해 그동안 받은 차별적 처우를 보상받겠다.”는 노동자들과, “정규직이 되고 나면 차별시정을 신청할 수 없으니 정규직 되기 전에 그동안 받은 차별적 처우를 보상받겠다.”는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차별시정을 신청한 셈이다. 

이처럼 도로공사의 사례 역시 ‘불이익’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노동자들만이 차별시정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이런 허점에 대한 보완 없이는, 노동부가 비정규직법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얘기해왔던 차별시정제도가 계약해지나 정규직 전환을 앞둔 상황에서나 신청 가능한 ‘사후약방문’ 정도의 역할에만 머무를 가능성도 다분하다.

“난 차별시정 대상이 아니라고?”

경기 외에 눈길이 가는 현황이 한 군데 더 있다. 총 16건의 차별시정 신청을 받아 15건을 ‘기각’한 제주지노위다. 제주지노위의 김정환 조사관은 “조만간 판정문이 나올 것이라 자세한 내용은 얘기해줄 수 없다. (신청인이) 기간제였고, 임금 차별이라는 점까지만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제주지노위를 제외하고 기각·각하 결정이 내려진 곳은 경기지노위의 1건이 유일하다. 이 사건은 보안경비업체인 조은시스템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신청한 것이다. 이와 관련 경기지노위 관계자는 “무늬만 차별이었다. (‘임금’이 아니라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시정 신청이었는데) ‘근로조건’이 뭔지를 잘 몰랐다. 개인이 하다보니까 충분히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신청인이 자신이 받은 차별이 차별시정 영역에 해당하는 것인지 잘 모르고 차별시정을 신청했다는 얘기다. 차별을 시정해달라고 요청한 사안이 애초 차별시정제도에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라 신청 자체를 ‘각하’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제주지노위가 내린 15건의 ‘기각’ 결정은 차별시정을 신청할 수 있는 요건은 갖추고 있지만 조사를 해보니 시정해야 할 차별이라고 볼 수 없을 때 내려지는 것이므로 경기지노위의 사례와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역시 차별시정을 ‘개별적’으로 신청한 노동자가 조사과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됐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비정규직법은 차별시정을 신청한 신청인에 대해 이뤄졌던 처우를 “같은 사업 혹은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비교대상 노동자에 대한 처우와 비교해 차별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즉, 차별시정 신청인이 기간제 노동자라면 정규직, 신청인이 파견 노동자라면 직접고용 노동자 중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가 있어야,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 간의 처우에 차별이 있었는지를 확인해 차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만일 이 사건의 사용자가 비정규직법 회피 목적으로 분리직군제를 도입했고 신청인이 비정규직들로만 이뤄진 분리직군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그 직군 안에는 정규직이 없기 때문에 처우가 차별적으로 이뤄졌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민주 노무법인의 조제희 노무사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보장’이다. 노동자들이 계약갱신이나 무기계약 전환을 앞두고 신청하기는 힘들다.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건 노조가 뒷받침을 해주는 사업장의 노동자나 퇴직자뿐이다. (사용자의 보복 우려와 같은) 위협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재직자가 신청할 용기를 내기 힘들다.”며 차별시정의 ‘대리신청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차별시정제도의 보완이 노동부 차원에서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정형우 노동부 비정규직대책팀장은 “각국의 제도를 검토해 보완점을 연구할 계획은 있지만 그 외에 특별히 진행하고 있는 것은 없다. 아직 시기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차별시정의 비교적 강한 ‘스킨십’ 문제해결의 실마리 될까

그러나 차별시정제도가 비정규직법의 효력을 담보하기 위한 핵심수단인 것만은 틀림없다. 차별시정 처리 현황을 보더라도, 처리가 완료된 111건 중 신청 취하 42건을 제외한 69건 중 53건에서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77%에 이르는 수치다. 물론 제도 자체의 한계 때문에 정규직과의 차별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힘들지만, 이 정도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에 일정 정도 도움이 될 수 있고, 따라서 비정규직들의 피부에 와 닿도록 활용이 필요한 제도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는 노동조합들의 차별시정제도 활용이 점차 늘어나고 이에 따라 ‘대리신청권’ 문제를 비롯한 차별시정제도의 보완 요구가 더 크게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경영계와 정부의 태도다. 경총은 철도공사의 상여금이 정규직에게만 지급된 것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라는 경기지노위의 판정 이후 “어떠한 합리적인 격차와 차이도 없애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을 전적으로 반영한 편파적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정부 역시 비정규직법의 재개정이나 보완에 대한 요구가 한 해 내내 지속되고 있음에도 법안의 시행 결과를 좀 더 두고 보겠다는 입장이다. 선제적으로 차별시정제도의 ‘스킨십’을 활용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이익을 챙기면서, 비정규직법 문제 해결을 위한 전선을 형성해 나가는 노동계의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순히 “차별시정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비정규직들의 신청을 받아 정규직과의 완전한 차별시정을 이끌어냈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