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조합, 과연 노동‘운동’ 조직인가

노동사회

한국 노동조합, 과연 노동‘운동’ 조직인가

편집국 0 6,654 2013.05.29 09:06

지난 7월 한국노총이 주최한 ‘19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토론회’ 때 있었던 일이다. “노동조합은 사회운동 조직이다. 때문에 교육, 의료, 주택, 보험 등 주요한 사회의제에 대한 정책 및 실천을 뚜렷하게 강화해야 한다. 예컨대 거의 사기에 가까운 공제보험 방식의 한국 사회보험제도를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전면적으로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특히 생태적 전환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관심과 준비를 해야 된다.” 등등의 주장에 대해, 대학교수인 어느 발제자가 강하게 비판했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노동조합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이라는 게 그 요지였다. 이른바 선진국 노동조합의 혁신정책을 예로 들면서, 그런 본래의 업무를 중심으로 하면서 사회개혁 또는 사회운동의 성격을 가진 활동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시간이 없어 더 이상의 토론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학교수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노동조합의 본래 역할과 기능 나아가 노동조합운동의 목표가 무엇보다도 임금인상을 비롯한 근로조건 개선에 있다는 인식은 이제 상식을 넘어서 확고부동한 신념으로까지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지금 한국의 노동조합 간부들이나 노동조합과 관련을 맺고 있는 대학 및 연구소의 연구자들 가운데 노동조합의 본령이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본주의의 개선을 주장하건 또는 전면적인 혁명을 주장하건, 노동조합의 본래 기능이 임금 및 단체협상이라는 시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본래부터 노동조합은 임금 및 단체협약을 맺는 조직이었을까?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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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노동운동을 관통하고 있던 가치는 모두 '공동체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청계피복노조가 합법성을 인정받은 것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 ▶ 민중의길 ] 

노동자조직의 본령은 임금·단체협상만이 아니다!

다소 모순돼 보일지도 모르지만, 노동조합의 역사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그렇기도 하고, 또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을 웅변한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의 부산물이다. 따라서 당연히 자본주의가 먼저 발생한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에서 노동조합이 먼저 생겼다. 물론 각 나라와 지역마다 그 이념이나 역사, 문화, 활동방식들이 조금씩 다르고 편차가 있긴 하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 산업혁명 이전부터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조직을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중세 때 수공업 장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형성한 크라프트 길드(craft guild), 곧 직인조합 혹은 동업조합의 계승자로서 크라프트 유니온(craft union), 곧 직업별 조합이 결성돼 활동을 벌였다. 현재도 영국 노동조합에 직업별 노조 전통이 강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직업 및 직능별 조합만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조직을 만들어 자본가에 대항했다. 길드 해체 이후 직인들의 모임이기도 했던 우애협회와 우애조합을 비롯해, 통신협회, 비밀공제조합 등 노동자 조직들이 수도 없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조직들은 정치의식을 고양시키는 교육학습 활동을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과 전혀 다를 바 없이 파업도 벌였다. 

이렇듯 근대 초창기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외에도 협동조합운동 역시 강력하게 벌여나갔으며, 통신협회 같은 정치단체를 만들어 투쟁했다. 1539년 프랑스 리옹 인쇄공들은 우애협회의 주도 아래 5개월 동안이나 파업을 벌였고, 프랑스 정부는 우애조합을 금지시키는 포고령(프랑스 최초의 노동법)을 선포하기도 했다. 1801년 당시 우애협회와 공제조합은 영국에서만 7,200여 개나 되었다. 프랑스의 우애협회(우애조합)와 비밀공제조합은 말 그대로 친목과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었지만, 또한 노동자들의 투쟁조직이기도 했다. 이들 조직들은 근대 초기에는 사실상 노동조합과 그리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예컨대 1790년대 미국 노동자들의 조직은 대부분이 우애조합이었다. 

이러한 노동자 조직들 역시 지옥 같은 노동조건을 바로 잡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정치·사회적 권리 향상을 주목적으로 했음은 물론이다. 이 조직들은 사회제도로서 노동조합이 정착되었을 때 수행하는 임금 및 단체협상과 똑같은 일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자 조직들은 노동조건 개선 이전에, 노동자들의 우애와 단결을 강화하는 ‘공동체 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새로운 공동체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모든 관계를 분쇄하는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하여 

초창기 노동자 조직들이 목숨까지도 건 강력한 투쟁을 벌여나갈 수 있었던 근본 동력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이러한 조직들이 바로 노동자들이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공동체’였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은 우애협회에서 노동자 형제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공제조합을 통해 가장 믿을 수 있는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경험할 수 있었고, 노동조합을 통해 동일한 처지에서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해체해야만 존립 가능한 제도다. 때문에 자본주의 임노동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땅에 뿌리박은 농민공동체, 마을공동체를 가차 없이 때려 부수고, 공장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모래알 같은 임금노동자들이 있어야 했다. 부자들의 울타리치기(인클로저 운동) 때문에 양떼에 밀려서 쫓겨난 수많은 농민들은, 농토에서 ‘해방되어’ 공장에 ‘자유로운’ 노동자로 취업하였다. 이것이 사실은 임금노예의 길이었다는 점은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고 갈 데라고는 오로지 공장밖에 없는, 착취당할 자유밖에 없는 임금노예들이 있어야 자본주의는 굴러갈 수 있다. 착취 - 피착취 관계가 기본구조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공동체’, ‘회사공동체’, ‘공장공동체’란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혹시 일부 자본가나 정치가가 그런 말을 쓴다면, 이는 사기꾼의 달콤한 말장난이며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초기 영국 공장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열 살 남짓한 아동들이 탄광과 면방공장에서 하루 17~18시간씩 혹사당하고 있는 실태를 기술하면서 자본주의를 분석한 분노의 책이라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한국의 청계천 봉제공장의 실태 역시 바로 그러했다. 이런 자본주의 노예 생활 속에서 유일한 희망은 노동자들 스스로의 조직, 노동자들 스스로의 공동체를 만들어 지옥 같은 현실을 고치는 길뿐이었다. 그것이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조직들이었고 노동조합이었고, 하루 10시간으로 나아가 하루 8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자는 노동시간 단축운동, 노동운동이었다.

노동공동체 없는 노조는 노동운동의 무덤 

그러나 ‘노동공동체’가 전제되지 않는 노동조합은 사실 어쩌면 물거품과도 같은 한시 조직으로 그치기 십상이었다. 자본주의 초기 서구 노동자들은 국가와 자본의 노동조합 불인정, 노동조합 파괴, 단결금지법과 싸우며 성장해왔다. 그리고 무수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는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체제의 주요 사회조직으로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이 과정은 물론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과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희생의 대가로 얻은 노동조합의 현재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오늘날 서구의 노동조합 대부분은, 그 조직이 사회주의 지향을 지녔을지라도 자본주의의 개혁을 추구할 뿐 자본주의 자체의 폐지를 목표로 내걸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노동공동체 이념 또한 많이 퇴색되어 있는 상태이다. 심지어 미국의 노동조합은 말 그대로 일종의 ‘사업’이다. 자본과 거래를 하는 비즈니스 노조주의(business unionism)를 자신들의 주요 이념적 지표로 삼고 있는 지경이다. 노동공동체고 뭐고 사라진 폐허 위에 돈다발만 오고가는 순전한 이익단체로 전락해버린 것이 미국의 노동조합들이다. 이렇게 노동공동체가 퇴색되거나 사라져버린 서구의 노동조합은 그야말로 노동운동의 무덤일 뿐이다. 이것을 이른바 선진국의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따라야 할 모범으로 본다면, 이는 그야말로 근대의 마약에 중독된 극단의 서구 추종 정신병자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새로운 공동체로서 자유로운 인간들의 상호부조 사회로 바꾸는 근거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누리고 또 평등과 사회정의가 확립되는 새로운 사회의 맹아가 되지 못한다면, 사회구조를 배우고 사회를 바꾸기 위한 학교가 되지 못한다면, 그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결국 ‘노예의 노동조합’과 ‘노예노동자’일 뿐이다. 초기 노동조합의 공동체운동의 이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서구의 노동조합은 그저 운동경기 팀처럼 하나의 사업체, 눈앞의 임금과 노동조건만 챙기는 이익단체일 뿐이다. 
임금을 비롯한 근로조건 개선에 머무는 한 결국 노동조합도 성장지상주의 이데올로기의 포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성장하지 않으면 붕괴되고 죽음을 맞는 폭식 괴물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도 마구잡이로 착취하면서 끝없이 증식해가는 지구의 암세포다. 노동조합이 이 같은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자본의 축적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는 것은, 그럼으로 해서 자본의 착취를 인정한다는 것은, 자유로운 노동자들의 공동체 형성이라는 초기의 이상을 근원에서부터 배반하는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런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의 붕괴와 함께 붕괴되고 말 ‘마몬(Mammon, 신약성서에 나오는 탐욕의 화신)’의 구조물일 뿐이다. 

불편 포기한 서구 노조들의 배부른 공허를 보라

자본은 그런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떡고물을 나누어 줄 수 있다. 서구의 자본주의는 그렇게 성장의 과실 가운데 일부를 자국의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분배했다. 물론 그 과실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 노동자들의 피를 짜내 만든 것이었다. 그 결과 서구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심하게 말하면, 배부른 노동노예들, 배부른 가축들, 배부른 기계로 전락해버렸다. 1968년 유럽을 휩쓴 68혁명 당시, 혁명에 참여한 학생들과 풀뿌리 노동자들이 유럽 노동조합과 공산당에 대해 “권력의 부스러기에 취해 이미 제도화된 기득권자”로, “노동귀족들”로, 심지어 “흡혈귀들”로 묘사하면서 격렬하게 비판했던 것은 유럽 노동운동의 몰락을 말해주는 슬픈 삽화였다. 그 뒤에 활성화된 환경생태운동을 비롯한 수많은 서구 신사회운동 조직들은 철저히 노동조합을 무시하거나 경멸했다.      

자본은 절대로 단순하거나 무력하지 않다. 이미 자본은 국가도 무력화시킬 만큼 엄청나고도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리바이어던(Leviathan 구약성서에서 등장하는 죽지 않는 거대한 생물)으로 변신해 있다.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자 조직을, 새로운 공동체의 싹을 무자비하게 잘라버린다. 아마존 밀림의 몇 명 안 되는 부족조차도 이를 비껴갈 수가 없다. 지구상의 모든 공동체는 이미 해체되었거나 해체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자본에 대항해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작업은 사실 고통스럽고 지난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서구 노동조합이 포기하고 버린 것은 투쟁과 혁명뿐만이 아니라 고통과 불편함이기도 했다. 이미 서구 노동운동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와 함께 서구에서 새로운 공동체사회가 대두될 가능성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 노동하는 사람들이 서로 우애 속에서 협동하며 일하는 우애공동체는 착취와 수탈의 자본주의 제도 아래서는 전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를 뜯어고치고 노동을 해방시켜 자유와 평등의 사회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던 사회주의는 극심한 독재와 전제사회로 귀결되었을 뿐 전혀 대안사회가 아님이 증명되고 말았다. 현실 사회주의는 붕괴된 후 오히려 자본주의로 회귀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새로운 공동체운동은 어디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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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노동자대투쟁 역시 새로운 공동체 건설운동이었다. ▶ 민중의길 ]

한국 노조가 잃고 있는 그때 그 시절의 따뜻함  
   
한국에서도 19세기부터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해 ‘계’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부산에서는 부두노동자들이 이 계를 중심으로 파업을 벌여 임금인상을 쟁취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노동조합과 공제조합을 조직해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나서게 된다. 초기 한국의 노동자들도 노동조합과 함께 계나 공제조합 등 공동체를 조직해 자신들의 처지를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1970년, 한국 노동운동이 전태일로부터 재탄생했다. 한국전쟁 이후 극도의 반공 정신병동 사회에서는 노동운동이 아예 원천 봉쇄되었고 완전히 불가능했다. 당시 한국노총은 중앙정보부가 만든, 정부와 기업주들의 노무관리 부서에 지나지 않았다. 전태일은 이런 철벽을 깨뜨리고 노동자들도 인간임을 선언하면서 척박한 남한 땅에 노동운동의 소중한 새싹을 뿌려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노동운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 간난신고의 가시밭길과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한국 노동운동의 전투성과 놀라운 성장의 근본비결임을 알아야 한다. 1970년대 민주노조의 투쟁과 1980년대 전투적 노동운동,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1990년대 중반 민주노총의 출범에 이르기까지, 한국 노동운동을 관통하고 있던 가장 주요한 노동운동 이념은 모두 공동체이념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이 새로운 인간관계의 마당이자 새로운 공동체였다는 것이다.

매일 열 명에서 때로는 스무 명을 넘는 노동자들이 함께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다섯 가족은 안방을 내주고 작은 방을 썼는데 사람이 많을 때면 그나마도 내주고 이웃집에 건너가 잤지만 불만은 없었다. 조합원들은 혼자 있으면 의기소침해도 뭉쳐 놓으면 힘이 나고 행복해 했다. 새로 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을 창동집에 데리고 가서 전순옥이 차려준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이소선 어머니가 따듯하게 손을 어루만지며 위로해 주면 오랜 친구처럼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나이 어린 조합원들에게 창동집은 추억과 낭만이 서린 소중한 장소가 되었다. …… 창동집은 비록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오두막이었지만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마음의 고향이었다. 생각을 새롭게 하고 의지를 다지는, 청계노조와 노동운동의 요람이자 젖줄이었다. 전태일의 정신이 실현되던 또 하나의 소중한 공간이었다.

(……)

이숙희를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만든 계기는 이듬해 5월의 아카시아 첫 모임인 동구릉 야유회였다. 놀러가자는 정인숙의 권유를 받고도 쑥스러워 혼자 가지 못하고 친구 한 사람을 데리고 야유회에 참가했던 그녀는 이내 소모임 활동에 푹 빠져 버렸다. 공장에 다니는 사람끼리도 이처럼 다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서로서로 위로하며 다독여주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좋았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사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 박명옥은 …… 환갑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미싱을 타는 그녀는 옛 동지들과 만나는 시간처럼 즐거운 때는 없다고 말한다. “살기야 어렵지. 그런데 내가 어렵다고 말하면 친구들이고 옆집 아줌마고 나를 무시해. 겉으로는 들어주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업신여겨. 그렇지만 청계 사람들끼리는 아무리 어려워도, 잘살아도 못살아도 모두 한 식구야. 한 오누이 같아. 만나면 언니 왔냐고, 누나 오셨냐고 너무나 깍듯이 해대주고 손잡아 주고 얼싸안고, 청계 식구들이 아니면 누가 나를 이처럼 반갑게 진심으로 대해주겠어? 누구 잔치를 가건, 모임에 가건, 볼 때마다 반갑지. 눈물이 나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야. 청계에 있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지금처럼 행복하지 못할 거야.”

- 안재성, 『청계노조사』 초고 중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를 시간, 돈, 먹을 것, 놀러갈 장소 등 모든 것이 부족한 때였지만, 동시에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집집마다 다니며 먹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 문화, “불시에 쳐들어가도 뭐 그 부인들이 별로 미운 내색도 안하는” 문화, 직급이 낮더라도 나이가 많으면 선배로 대우하는 문화, 이웃의 정과 동료애가 살아 있던 시기로,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모여 ‘회사 다니는 맛’이 있었던 시기로 기억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반면에 그들의 구술에서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풍족한 지금은 그런 가치 있는 것들이 사라져 버린, 즉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많이 떠나버리고, “계마저도 많이 깨져버리고”, “핵가족화 이런 게 있어 가지고 손님 찾아오는 것도 싫어하고 또 찾아도 집에서 하는 것보다 간단간단 어디 식당에서 이렇게 해”버리는, 나이가 많은 선배도 “직급으로 눌러버리는” 각박한 세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 김준, 「잃어버린 공동체?: 울산 동구지역 노동자 주거지역 공동체의 형성과 해체」, 『경제와 사회』(2005년 겨울호)


청계피복노조뿐만이 아니라 동일방직, 원풍모방, 반도상사, 콘트롤데이타 등 대부분의 1970년대 민주노조 조합원들이 가장 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공동체정서다. 또한 1987년 이후 울산의 노동자들이 경험한 노동공동체야말로 바로 노동운동의 근본 동력이자 이념이었다. 산업선교회에 노동자들이 그렇게 몰려들었던 것도 역시 소모임이라는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조합은 그런 공동체정신을 잃어버렸다. 지금 한국의 노동조합은 ‘임금갈퀴조직’의 구렁텅이로 자꾸만 빠져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빨간 띠를 두르고 무수히 많은 깃발을 들고 북을 두드리며 집회를 하고 목이 터져라 단결투쟁을 외치지만, 참으로 민망스럽게도 노동조합은 또 다른 권력기관, 이익단체로 전락해버린 측면이 너무나 많다. 서구 노동조합들이 산업화의 풍요에 눈멀고 자본이 주는 떡고물에 현혹되어 그만 밥그릇에 쇠줄이 매인 주구(똥개)로 전락했듯, 위험천만하게도 한국 노동조합 또한 압축성장과 압축산업화의 풍요를 누리면서 그 떡고물에 개목걸이가 연결된 것은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의 “누런 피부 하얀 가면”

공동체의 관점에서 노동운동을 따져보지 않는 것은 비단 노동조합뿐만이 아니다. 노동운동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가운데 자본주의가 문제가 있다고 원칙적인 이야기를 하는 수준을 넘어서,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이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방책과 실천을 진지하게 연구하면서 노동자들과 이마를 맞대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이들 연구자들의 글을 조금만 들여다보라. 온통 서구 학자들 이름과 영어로 된 전문용어투성이일 뿐이다.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른바 전문가들의 학술용어, 전문용어란 자신이 쓴 글을 문외한들이 알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직업과 돈벌이를 유지하려고 하는 비열한 도피처다. 한국 노동운동은 이런 전문가들의 틀과 용어를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선진국)’이니 뭐니 하면서 서구 자본주의 국가가 앞서 있다고 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갖고 있는 뿌리 깊은 서구우월주의 의식, 열등의식이야말로 노예의 의식에 다름 아니다. 이런 태도는 학문의 종속성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운동의 서구 따라가기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른바 노동문제 전문가들의 “누런 피부 하얀 가면” 현상은 이제 그 정도를 넘어서서 너무나 뿌리가 깊어 치유 불가능할 지경이다. 참으로 어이없고도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네덜란드 모델이니 스웨덴 모델이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와 문화가 다른 서구의 한 사례일 뿐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아 공부하는 것이야 나쁠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배울 점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배우는 것과 따라가는 것은 다르다. 더구나 공동체의 관점에서 서구 노동운동에서 배울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전태일은 그 어떤 서구의 노동 관련 학자들 이름을 하나도 알고 있지 않았지만 한국 노동운동을 새롭게 부활시켰다는 점을 상기하자.

새로운 공동체를 추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과연 오늘날 한국 노동조합이 노동운동 조직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합원에서 배제하는 노동조합을 노동운동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임금 인상률 몇 퍼센트를 바겐세일 하듯 내걸고, 자판기처럼 활동하는 노동조합을 노동운동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노동운동의 재탄생은 공동체운동으로부터!

한국 노동조합이 노동운동 조직으로서 거듭나려면 무엇보다도 공동체운동을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들의 새로운 인간관계와 모임으로서 노동조합이 재정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협동조합이나 공제조합 등을 비롯해, 다양한 노동자 조직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 로버트 오언(Robert Owen)이 “자본은 노동의 하인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펼쳤던 협동조합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은 이런 부분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부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내부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해야 한다. 노사 파트너십을 확립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정치활동을 해야 한다. 국제연대를 해야 한다.” 등등, 공자님 말씀을 늘어놓는 전문가 진단이란 참으로 시간과 돈과 종이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런 진단과 해법을 말한다 해도 지금 한국의 노동운동 위기가 해결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밑에서부터 우애와 사랑의 정신이 우러나오지 않는 한,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해나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없는 한,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는 단언컨대 없다. 

노동조합의 본령이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이라고 천명하는 순간 노동조합은 그저 하나의 법정 조직으로서 제도화된 의제기구로 전락한다. 물론 제도화가 나쁜 것은 아니며 제도 자체를 탓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공동체운동 정신이 빠진 제도화는 자본의 하인 조직으로 가는 수순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노동조합이 임금노예 상태를 뿌리부터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상실하는 순간, 그 노동조합은 결국 임금노예의 조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제도화된 노동조합 간부들과 대학이라는 제도에 들어간 이른바 전문학자들은 노동조합의 본령은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이라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자본가들의 귀를 즐겁게 할 뿐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멍청하고도 눈먼 월급노예들의 그럴듯한 주장과 논리로 체제가 유지된다. 한국 노동조합이 진정 노동운동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이런 주장과 과감하게 맞설 수 있어야 하고 맞서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공동체의 회복, 공동체정신의 회복이다. 역사가 우리의 삶을 좀 더 성찰하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라면, 우리는 그 거울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할 때에 이르렀다. 새로운 공동체 건설운동이었던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과 1987년 6월 항쟁, 7~8월 노동자대투쟁의 역사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김 몬시뇰은 명동성당에서 열린 민주항쟁 20년 기념 미사 강론에서 가슴 속에 담아온 것들을 터뜨렸다. 먼저 분노는 청와대와 정부, 국회와 각종 사회단체에서 지도적 자리를 차지한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향했다. 그는 이들을 제도권 민주주의 인사라고 불렀다. 이들은 도덕적 정당성을 잃었다, 과거의 희생과 경력들을 박물관의 전시품이나 박제품처럼 언제까지나 자랑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 시민은 희망과 전망을 잃었다. 독재자의 억압에서 벗어났지만 시장의 지배를 받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무엇보다 김 몬시뇰을 불안케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어깨를 걸고 서로를 돕던 연대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공동체가 사라졌다. ‘우리’의 실종은 연대의 정신을 잃고 동반침몰하고 있는 노동운동에서도 드러난다.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6월 항쟁 때는 사무직 넥타이 부대들이 거리로 나와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어깨 걸고 싸웠는데, 지금은 노동자끼리도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계급이 갈렸다.”면서 “비정규직 보호에 앞장서야 할 민주노총이 정규직의 이해관계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 같은 조직이 됐다.”고 말했다. 

6월 항쟁 당시 현대해상화재보험 노조 부위원장으로 ‘넥타이 부대’를 이끌었던 홍순계 현대해상 전략채널본부장은 “무조건 임금을 올리면 그 피해는 협력업체의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을 알면서도 내 몫만을 늘리려는 풍토가 서글프다”고 말했다.

- “민주화 20년 공동체의 가치는 어디로 숨었을까”(『한국일보』 2007년 6월8일)


타이타닉 5분 전, 노동운동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늘날 자본주의 산업문명은 값싼 화석연료를 착취해서 이룩한 풍요, 석유문명이다. 그런데 인류는 단 1백 년 만에 지구의 석유 가운데 거의 절반을 불태워버렸다. 석유 정점과 함께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풍요도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이런 타이타닉 5분 전, 삼풍백화점 5분 전의 상황 속에서 노동운동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한국의 노동조합이 천박한 서구의 장사꾼 노조 이념에서 벗어나 여기 지금 이 땅의 노동공동체를 다시 만들어 나가는 창의와 희망의 노동운동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전태일 37주기를 앞두고 노동조합과 노동자 모두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