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새로운 복지국가』

노동사회

『21세기 새로운 복지국가』

편집국 0 4,168 2013.05.29 09:06

서구사회에서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확산되면서 ‘복지국가 위기’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었다. 보편주의에 기반을 둔 복지제도, 정부 재정에서 대부분 충당되었던 복지예산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논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상황을 간략히 언급하자면, 다양한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는 기존 복지체계를 재편하도록 만들고 있지만 그런 재편들이 ‘복지국가 축소’라는 한 방향만을 미래의 모습으로 결정짓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사회투자국가 전략은 복지국가 한국의 ‘구원투수’일까?

한국의 복지는 그동안 꾸준한 예산증가를 보여 왔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앞의 논쟁과 무관하게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원래부터 워낙 낮은 수준의 복지체계를 가졌던 터라 단순히 복지예산의 증감만으로 그 성격을 단정지을 수는 없다. 또한 새롭게 추진되는 복지제도 역시, 그 맥락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나라의 복지국가로서 성격이 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서비스 확충전략’은 한국사회의 복지국가 성격을 드러내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족한 사회서비스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서 일자리 창출을 이끌 수 있다는 한국정부의 전략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관심을 기울인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 개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심화되고 있는 빈곤과 불안정 노동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사회적 투자’가 중심적인 국가정책으로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전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어떤 지점들을 고려할 것인가를 자문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book.jpg복지정책을 풍성하게 할 생애과정 구조틀 

『21세기 새로운 복지국가』(원제: Why We Need a New Welfare State)는 현재 유럽사회가 겪고 있는 인구 및 가족형태 변화, 세계화된 경제질서 등에 복지국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유럽연합의회가 주관한 포럼의 「새로운 유럽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보고서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사회모형’ 개발을 중심으로 유럽의 서로 다른 복지체계들 간의 특성이 비교 분석되고 있다. 이 책에서 유럽의 복지체계들이 대응해야 할 변화요소들로서 제시되는 것들은 인구 및 가족형태의 변화, 산업특성의 변화 등 현재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와 비슷한 요소들이다. 비록 유럽이라는 한정된 지역 안의 복지체계들만을 다루고 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와 비슷한 변화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생애과정 구조틀(life course framework)은 사회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수립에 유용성을 제공한다. 에스핑 앤더슨은 생애과정 구조틀을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생애주기의 어떤 특정단계는 이전 시기에 발생한 사건과 직접 관련되어 있어 각 부분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다. 둘째, 일시적인 어려움과 영속적인 어려움에 대한 구분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한국정부의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생애주기 구조틀에 의거해서 살펴보면, 한국정부의 전략은 ‘부족한’ 사회서비스와 일자리를 ‘확대’시키겠다는, 너무나 단순한 모형이다. 물론 정부 역시 생애주기를 고려한 설계라고 말하고 있지만, “새로이 창출된 일자리에 고용된 사람과 그의 자녀는 누구인가”,  “그의 부모는 어떻게 노후생활을 맞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은 빠져있는 듯이 보인다. 또 보육지원만 보더라도 보육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일하러 나가는 부모를 위한 것이 아니고 서비스시장 확대를 위한 것이라면 일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어도 영속적 어려움에서는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생애주기적 관점’은 사회제도를 설계함에 있어 인간의 일생에 대한 고려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정태적으로 한정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우리 사회처럼 복지제도의 팽창기에 접어든 상황에는 이를 질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고민의 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새로운 복지전략을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그 고민과 관심을 확장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 믿는다.

고스타 에스핑 앤더슨 지음 | 유태균 옮김 | 나남출판 냄 | 1만5천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