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의 의미와 한반도 정세 전망

노동사회

남북정상회담의 의미와 한반도 정세 전망

편집국 0 4,158 2013.05.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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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남북정상회담의 의미와 한반도 정세 전망
시간: 2007년 10월10일 (수)요일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사회: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발표: 김연철 고려대학고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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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문 원문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홈페이지(www.klsi.org)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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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의 합의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다.

방문기간 중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들이 있었다.

상봉과 회담에서는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남북관계발전과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과 통일을 실현하는데 따른 제반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협의하였다.

쌍방은 우리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치면 민족번영의 시대,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 나갈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남북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
남과 북은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중시하고 모든 것을 이에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변함없이 이행해 나가려는 의지를 반영하여 6월 15일을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 확대와 발전을 위한 문제들을 민족의 염원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양측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 간 회담을 금년 11월 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를 장려하고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개발을 적극 추진하며 민족내부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을 빠른 시일 안에 완공하고 2단계 개발에 착수하며 문산-봉동간 철도화물수송을 시작하고, 통행·통신·통관 문제를 비롯한 제반 제도적 보장조치들을 조속히 완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보수 문제를 협의·추진해 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며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사업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현재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하기로 하였다.

6. 남과 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백두산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백두산-서울 직항로를 개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2008년 북경 올림픽경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처음으로 이용하여 참가하기로 하였다.

7. 남과 북은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의 상봉을 확대하며 영상 편지 교환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금강산면회소가 완공되는 데 따라 쌍방 대표를 상주시키고 흩어진 가족과 친척의 상봉을 상시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자연재해를 비롯하여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 따라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8.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이 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제1차 회의를 금년 11월 중 서울에서 갖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

2007년 10월 4일 평양
대 한 민 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 통 령                국 방 위 원 장
노 무 현                김 정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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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선: 얼마 전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가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이 상당히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급히 포럼을 잡았습니다. 급히 잡다보니 참여 인원이 평소보다 더 적은 것 같지만 인원에 구애될 것 없이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발표는 아세아문제연구소 김연철 박사께서 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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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

김연철: 김연철입니다. 짧게 몇 가지만 말씀드리고 질문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forum_03.jpg정세적으로 보면 일단 핵문제가 풀려가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10월3일 베이징 6자회담에서 연내 핵 불능화를 하겠다는 합의가 도출됐고, 미국은 그에 맞춰서 테러지원국을 해제하겠다고 했었습니다. 2월13일 베이징 합의가 1단계 조치라면, 10월3일 6자회담 합의문은 2단계 조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핵문제가 풀려가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변화하면서 남북정상회담도 나름대로 가능할 수 있었고, 그런 환경 속에서 열린 정상회담의 합의문에 ‘들어가야 할 내용’이 어느 정도 들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합의문에 나와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인 것 같습니다. 벌써 언론에서 많이 접하셨겠지만 종전선언이 과연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노무현 정부 임기 내에 가능할 것인지와 관련해서는 정부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미국의 입장도 있기 때문에 복잡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일단 개념부터 정리해보면, 종전선언은 말 그대로 전쟁을 종료한다는 정치적 선언입니다. 평화협정하고는 다르지요. 평화협정은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와 관련된 내용을 제도적으로 합의한 것이고, 종전선언은 그야말로 정치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반도 평화체’로의 길 위에 깔려 있는 난관들

그동안 종전선언과 관련해서 여러 논의가 있었습니다. 종전선언을 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과제들이 있다는 내용인데 예를 들어 ‘종전’은 전쟁이 종료된 상태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해 같은 경우는 여전히 군사충돌 가능성이 남아있고, 경계선 문제를 둘러싸고 남북 간 입장 차이가 있고, 그런 문제들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전쟁을 종료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게 개념적으로 맞나 이런 부분들입니다. 

또 미국의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유엔사령부 문제입니다. 유엔사령부는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이자,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주체지요. 그리고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유엔사령부가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 사령관이 일본과 달리 별이 네 갭니다. 그래서 사실 종전선언 논란이 불거지며 제일 반발한 것이 벨 사령관이었습니다.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이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유엔사령부가 설치됐는데,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을 하게 되면 당연히 유엔 안보리 결의의 법적근거가 의문시 되는 것이고 유엔사가 존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약해지는 것이지요. 그런 차원에서 주한미군도 반발하고 국방부도 굉장히 강력하게 반발을 한 상태였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정상회담 전에 종전선언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평화선언이라는 개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게 바로 종전선언을 하기에는 현재 여러 가지 과제들과 상충되는 측면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부담이 덜한 평화선언이 적합한 게 아닌가 이런 내용들이 정부 내에서 논의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번 합의문에 “종전선언을 위한 3자 내지 4자 정상회담을 한반도 지역 내에서 추진한다.”는 내용이 들어가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는데요, “3자 내지 4자” 문제는 이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2006년 11월 하노이, 2007년 9월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가 완료되면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과 평화협정에 서명하겠다.”고 얘기했었습니다. 그 때 부시 대통령이 얘기한 건 ‘평화협정’이고, 그 전제조건은 비핵화가 끝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이 말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과 서명하겠다.”는 것이 앞뒤가 잘 안 맞습니다. 이 얘기는 조금 뒤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든 비핵화가 끝나야한다는 전제조건에 대해서 보자면 우선 연내에 불능화가 끝나야 그 다음 단계인 핵무기 폐기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 부시 행정부는 임기 안에 핵무기 폐기까지 마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무리 빨리 진행하더라도 1년 조금 더 남은 시간 동안 그게 가능하겠는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봤을 때, 사실 노무현 정부 임기 내, 즉 연내에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일단 거의 없는 거지요. 미국은 불능화가 끝나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불능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설사 12월까지 불능화가 끝난다고 해도 남아 있는 시간은 1월과 2월인데, 그 두 달 안에 종전선언을 추진하면서 기존 주한미군과 유엔사 역할과 상충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가 의문시됩니다. 또 그렇게 된다고 했을 때도 당연히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적성국 교역법이나 테러지원국 정도는 최소한 해제가 되어야 적대관계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정책선언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런 부분들이 두 달 내로 가능할 것인가, 제 생각에는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은 평화협정의 엄연한 ‘당사자’

그러나 아까 말씀드렸던 평화협정 문제와 관련해 말씀드리면, 그동안 평화체제 문제를 둘러싸고 당사자 논란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된 논문이나 글 등에서 대부분의 한국 연구자들이 제기한 건 ‘당사자’ 문제였습니다. 그 핵심은 “한국이 정전협정 서명자가 아닌데 평화협정 서명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이것과 관련된 논의들이 지금까지 한국 내의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주류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당사자 문제는 제가 봤을 때는 이제 좀 옛날 얘기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1997년부터 1999년까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이 있었고, 그 때도 북한은 미국과 주로 얘기하기는 했지만 한국의 당사자 역할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최근에 1차 정상회담 이후에 남북 장성급회담을 6번 했는데 이것 또한 실제적인 군사적 신뢰 구축을 논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경계선 문제를 둘러싸고 남북 입장 차가 크다고 얘기하지만 장성급회담이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크게 보면 6번의 장성급회담에서는 두 가지 정도의 성과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2002년부터 DMZ에서 비방방송을 중단하고 선전물을 철거한 것입니다. 작다면 작은 것이지만 사실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방송중단은 그렇다 쳐도, 북한 입장에서는 정치구호가 있었고, 우리도 철거를 할 때 그와 관련해 여러 가지 내부적인 반발이 있어서 1∼2년 걸려서 철거를 했습니다. 또한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조치’라고 해서 2002년 서해 충돌 이후 재발을 막기 위해 2002년 장성급회담에서 남북 간 함정이 근접했을 때 통신을 통해 서로의 위치를 알려주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아직 여전히 불안정하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처럼 꽃게 잡으러 갔다가 충돌할 가능성은 많이 줄인 거죠. 장성급회담의 성과라면 크게 보면 이렇게 두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 북한이 장성급회담에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장성급회담에서 북한이 경계선 문제를 제기하며 말하는 주된 논리가 바로 “한국은 평화체제 논의 당사자라면서 왜 그리 소극적이냐.”라는 겁니다. 이미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별도 포럼 형식으로 집어넣은 “관련 당사자국들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시작한다.”는 문구부터가 한국이 주도적으로 집어넣은 것이고, 4자회담이나 남북 군사대화에서 북한의 태도 등을 보면 ‘당사자’ 문제는 현재 상태에서는 더 이상 논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히 한국은 현실적으로 평화체제 논의의 당사자가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평화체제 논의를 남북한이 주도적, 적극적으로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고, 아까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종전선언의 가능성은 연내 불능화가 될지, 미국 입장은 어떤지, 내년 초의 외교적 일정이 어떻게 될지 등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막히면 돌아가라 - NLL을 우회해 서해평화협력지대로

남북관계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해평화협력지대 부분입니다. 우리가 2006년에 4차 장성급회담을 했고 2007년에 5, 6차 장성급회담을 했습니다. 장성급회담의 핵심적인 쟁점중 하나가 경제협력 분야에서 군사적 보장이었습니다. 지난 번 열차 시험운행 때의 쟁점도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기차에 대해 북한 군부가 출입 관련 군사보장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도로출입 같은 경우는 임시적으로 군사보장을 해주고 있지만 철도는 북한이 군사보장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한강 하구 공동개발도 마찬가집니다. 한강 하구를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미 2005년의 일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실천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로 군사접경 지역이어서 반드시 군사적 보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 북한은 장성급회담에서 경계선 문제로 접근했습니다. 해상 경계선 문제가 진전되지 않으면 군사적 보장도 못해주겠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경협에 있어서도 그동안의 금강산, 개성공단, 철도·도로 등의 성과를 뛰어넘는 열차운행이나 한강 하구 공동개발 같은 진전들이 장성급회담에서 서해 경계선 문제로 막혀 있었던 것입니다. 신문에서 많이 보셨겠지만 그게 바로 북방한계선(NLL) 문제입니다. NLL은 정전협정에서 합의되지 않은 선이고, 그러다보니 분쟁의 소지가 제기됩니다. 1999년과 2002년 서해 충돌 때도 어선들이 NLL을 넘어가고 넘어오고 하다가 함정이 뒤쫓아 오고 근접하게 되고 해서 충돌이 발생했던 겁니다.

결국 NLL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 부속 합의서라는 게 있습니다. 여기 10조에 보면 “해상경계선 문제는 남과 북이 계속 논의한다.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는 남북한이 서로 관할 수역을 유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일단 경계선을 논의는 하되 재확정하는 것은 군사적 신뢰 구축, 즉 불가침 부속 합의서의 다른 부분들이 진전되면 같이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합의서에도 경계선 문제는 추후과제로 남겨뒀습니다.

일단은 경제적으로 서해에서 어떻게 서로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거기에 관한 내용들이 합의문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걸 묶어서 ‘서해평화협력지대’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첫 번째는 해주항을 개발하고 경제특구로 만들겠다는 것이 있습니다. 해주는 서울에서 120km, 개성에서 75km, 강화도에서 60km 정도 떨어져 있는 아주 가까운 지역입니다. 그동안 북한 입장에서는 해주에 해군기지가 있기 때문에 무역항보다는 군항의 의미가 컸고, 경제적 가치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단 서해에 평화협력지대가 만들어져서 인천에서 해주까지 항로를 활성화시키고, 해주항을 개설하고 해주 근처에 경제특구를 만들면, 해주의 경제적 가치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안보적 가치라고 했다면 앞으로는 경제적 가치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다음으로 임진강 위에 보면 개성으로 올라가는 예성강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무역항으로 유명했던 벽란도가 바로 예성강 하구에 있습니다. 당시에도 벽란도는 개성에서 20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개성이 국제적인 상업도시로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예성강 하구에 포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예성강에서 남으로 모래를 실어오고 있습니다. 해주산 바닷모래와 예성강 모래를 싣고 오고 있는데, 이 예성강 개발과 지난 번에 합의했다가 실천하지 못했던 한강 하구 개발까지 앞으로는 같이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한강 하구는 환경단체에서 관심이 많습니다. 천연기념물인 저어새가 살고 있는 등 생태적인 보존가치가 굉장히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앞으로 한강 하구를 개발할 때에도 경제적 개발과 환경 보전이 조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항상 주장하는 것도 배가 다니면 준설을 해야 하는데 그럴 때 환경영향평가 같은 것을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기존의 환경단체들이 주장해왔던 지역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전을 하면서 서해에서 서울까지 배가 올 수 있도록 적절하게 조화할 필요성이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서해평화협력지대의 두 축, 공동어로와 해양평화공원

바다에서는 크게 보면 두 가집니다. 하나는 공동어로, 다른 하나는 해양평화공원입니다. 그간 장성급회담에서 남북 간 입장차이가 가장 컸던 부분이 공동어로수역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국방부는 NLL을 기준으로 해서 남북 동일지역으로 공동어로수역을 정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북한은 NLL 밑에 ‘서해5도 통항질서’라고 해서 북한 나름대로 그어놓은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선을 기준으로 공동어로수역을 NLL 한참 밑으로 정하자고 주장해왔습니다. 입장 차이가 이렇게 컸기 때문에 공동어로가 실현이 되지 못했는데, 제 생각엔 그렇기 때문에 공동어로수역을 처음부터 크게 정하는 것은 현재 시점에서는 합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일단 작은 어장이라도 시범수역을 설정해서 추진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죠. 그 후에 서해평화협력지대의 진전과 군사적 신뢰 구축의 진전, 남북관계 발전을 반영해나가면서 시범수역의 규모를 점차적으로 확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11월에 있을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그 정도로 타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연평도 등의 우리 주민들도 공동어로수역이 어떻게 정해지든 간에 아마 찬성할 겁니다. 이미 1999년과 2002년에 군사충돌을 겪고 나서 NLL 한참 밑에 어로한계선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NLL 근처에 가면 충돌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로한계선을 한참 밑에 그어놓고 그 위로 배가 못 다니도록 어업지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동어로수역은 어떻게 정해지든 간에 어로한계선 위에 정해질 겁니다. 어민들 입장에서는 지금 고기 잡는 어장보다 한 뼘이라도 늘어나지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상회담 전에는 “NLL 팔아먹는……”이라는 플래카드가 붙고 그랬는데, 정상회담 끝나고 나서는 대부분 찬성하는 여론입니다.

또 해양평화공원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백령도 인근 지역에는 물범 같이 생태적 가치가 높은 희귀 해양동물이 많습니다. 환경단체들도 그런 부분에 대해 남북이 공동으로 보존하고 관리하고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입장입니다. 이와 관련해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옆의 홍해에는 홍해해양평화공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994년 이스라엘·이집트 간의 평화협정인 ‘캠프 데이비드 2’라는 중동 평화협정의 산물입니다. 이 공원을 만들면서 주변에 있던 군사기지를 뒤로 빼고, 산호를 공동으로 보존하기 위해 협력하고 관광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관광단지를 만드는 등의 노력이 이뤄졌습니다. 이 사례가 사실 서해평화협력지대와 거의 유사합니다. 아마 우리에게도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이라는 면에서 큰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비무장지대를 ‘비무장’지대로 만들자

서해가 그동안 경제협력발전을 가로막고 있었고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면서 남북관계 역시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군사적 신뢰 구축, 평화체제 문제도 사실은 서해 문제가 막혀 있었기 때문에 다른 군사적 신뢰 구축 문제를 논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장성급회담을 열어도 계속 그 문제로 싸웠기 때문입니다. 정상회담 합의도 약간 불안정하긴 하지만, 경제적인 주제로 경계선 문제를 우회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합의대로만 실현이 된다면 일단 열차운행이나 한강 하구 개발 등은 실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까 제가 비무장지대(DMZ)의 선전물 철거를 말씀드렸는데 그 이후의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과제가 많습니다. ‘DMZ의 평화지대화’를 위해 DMZ의 환경생태적 보존가치가 높은 것들을 남북한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보존하자고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하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그건 추후 논의하자고 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육상에서 군사적 신뢰 구축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DMZ의 DMZ화’입니다. 무슨 얘기냐면, DMZ는 남북으로 각각 2km 안의 ‘비무장’지대인데 지금은 비무장이 아닙니다. 북한도 전방초소가 2km 안에 들어와 있고, 야포·장사정포도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도 그에 대응하기 위해 전방초소가 전진배치되어 있습니다. ‘비무장’지대가 사실은 ‘중무장’되어 있는 것이죠.

육상에서 가장 중요한 군사적 신뢰 구축은 말 그대로 DMZ를 DMZ로 만드는 겁니다. 그게 되면 DMZ의 평화적 이용이 가능해집니다. DMZ에는 환경적으로 보호해야 할 늪, 국내성과 같은 역사적인 유적지, 고성군이나 철원군 같은 평야지대 등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하게 존재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쪽에서도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이 굉장히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에 민통선이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긴 했습니다. 동해안 같은 경우도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통일전망대도 많이 올라왔습니다. 또한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실현되어 출입소를 만들면서 민통선이 더욱 많이 올라가 있습니다. DMZ 평화적 이용방안이 구체화되면 민간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부분들이 훨씬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겁니다. 

철마는 달린다, 베이징까지 쭉∼

그 다음으로 경제협력 분야는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지금까지 논의되어 왔던 것을 합의문에 담았습니다. 개성공단의 통행·통관·통신의 3통 문제도 그동안 우리 기업인들이 많이 요구해왔던 것들입니다. 개성에 우리은행 지점이 있는데 인터넷이 안 되다 보니 환율 같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지 못합니다. 최근 남측 은행들은 작은 지점들도 국제적인 거래를 하고 있는데, 우리은행 개성지점은 인터넷이 안 되니까 은행이라기보다는 그냥 금고 역할을 하는 정돕니다. 기업들도 인터넷이 안 되니까 기술지도나 주문이나 여러 가지 애로사항을 많이 느낍니다. 통관도 물자가 들고 나는 것이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앞으로 좀 더 자유로워지고 전반적인 환경이 많이 나아질 것 같습니다.

경제협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물류 측면입니다. 이번에 문산에서 봉동까지 화물열차를 운행하기로 했는데, 지금 철도 24km가 공사가 끝났고 지난번 임시운행에서 달릴 수 있다는 걸 확인을 했습니다. 그럼 이걸 과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일단 화물열차부터 운행이 되면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원자재, 기계, 설비나 개성공단에서 만든 제품들을 기차를 통해 운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또 이번 정상회담 때 육로로 갔다 왔는데 도로사정이 조금 안 좋다고 하더라도 일단 승용차가 시속 100km로 달릴 수 있다는 거니까요. 앞으로는 육로가 방북 등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철도도 마찬가지로 일단 24km 구간에서 화물열차 운행이 시작되면 당연히 평양 신의주까지 기술적으로는 달릴 수가 있는 거죠. 제일 중요한 건 북한쪽 철로를 개보수해야 하는데, 그것도 점차적으로 가능한 부분부터 하면 됩니다. 개성에서 평산까지만 먼저 하게 되면 속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개성에서 평양·신의주까지도 가능한 거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중국횡단철도(TCR)나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도 연결이 가능한 거죠. 이철 코레일 사장은 “올해 연말이면 기차 다니기에는 문제없다. 속도는 40km, 50km 나오면 어떠냐. 여기서 신의주까지 420km 정도 되는데 화물로 보면 시속 20∼30km 차이 나는 건 크게 문제가 아니다.”고 말하더군요. 또 내년에 베이징올림픽에 공동응원단이 기차 타고 가는 걸로 합의를 해놨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겁니다. 그게 남북 경제협력에서는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조선도 중요합니다. 인력난이 있을 수도 있지만 조선의 많은 부분이 용접 같은 공정이고 북한의 손재주도 상당하기 때문에, 조선사업은 북한에 진출하는 것이 전망이 좋다는 예상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얘기된 곳은 서해의 남포, 동해의 안변 두 군데인데 서해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서해 갑문 때문에 5만 톤 이상의 배가 들어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쪽 조선은 대부분 대형화되어 있으니까 말이죠. 반면 동해 안변은 수심이 깊은 편이기 때문에 대기업들은 동해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대우해양조선은 벌써 투자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더불어 백두산 직항로, 관광운영 이런 부분들도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회담체계 격상… 희망 걸 만한 남북관계 앞길

마지막으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남북회담 체계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1차 정상회담이 끝나고 나서는 장성급회담을 운영했습니다. 통일부장관을 대표로 해서 21번 장성급회담을 했는데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앞으로는 총리급 회담이 열리게 됩니다. 회담체계가 격상이 된 것이죠. 또 지금까지는 재경부차관이 단장을 맡았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도 앞으로는 재경부총리가 단장을 맡는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시키기로 했습니다. 총리급회담이 열리면 해주항 개발 문제, 개성공단 문제, 항만·도로·철도 등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합의를 했기 때문에 후속적으로 과연 이행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는 사실 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나 앞으로 두세 달 동안 남북관계의 향방 등 여러 가지 변수에 달려 있을 겁니다. 국방장관회담보다는 총리회담에서 경제협력을 비롯한 내용으로 큰 틀을 잡아가고, 국방장관회담은 그에 필요한 세부적인 내용들을 담으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NLL 문제 같은 것들이 불거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면서 단계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럼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객석토론

김유선: 요즘 하도 여기저기 많이 부르는 곳이 많으시다보니까 얘기할 것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들이 있으면 자유롭게 질문해 주십시오.

참가자: 대선 후의 과정이 제일 궁금합니다.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경우, 8개 조항의 합의가 바뀌거나 후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부에서 합의한 그대로 갈 것으로 보시는지, 아니면 다시 검토되거나 없었던 일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시는지요?

남북관계 최악이었던 ‘공백의 5년’, 김영삼 정부

김연철: 제가 한나라당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만, 크게 보면 정상회담의 흐름 자체가 남북관계 차원이라기보다는 6자회담이 진전되면서 조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바꾸면서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북한 핵문제의 구조라는 것이 한나라당이 얘기하고 있는 ‘선핵 폐기론’과는 차이가 큽니다. 6자회담도 그렇고 부시 행정부의 정책도 그렇고 포괄적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계적으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건 받겠다는 것입니다. 줘야지 다음 단계로 계속 넘어갈 수 있습니다. 연내 불능화 하려면 테러지원국을 해제해야 할 거고, 내년에 핵무기 폐기 단계로 넘어가려면 경수로 문제, 외교관계 정상화 문제, 경제 관련 후속 조치 등이 필요할 것이고, 이런 조치들은 미국이 당연히 다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전망을 보자면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가능성도 얘기되고 있고,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큰 틀에서 진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것이 한국 정부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큰 틀을 벗어나긴 어렵다고 봅니다. 다만 경제협력 현안들이나 평화정착 부분들은 한나라당이냐 다른 당이냐에 따라 조정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건 역시 의지 문제입니다. 노태우 정부 때부터 남북관계를 역사적으로 비교해보면 최악은 김영삼 정부였습니다.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봤을 때 김영삼 정부 때를 ‘공백의 5년’이라 부릅니다. 노태우 정부 때는 기본합의서도 채택하고 고위급회담도 하고 이것저것 많이 했습니다. 전두환 정부 때도 경제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같은 걸 했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전두환 정부와 비교해 봐도 남북대화 횟수 이런 걸 보면 굉장히 적습니다. 장관급회담 한 번도 못하고, 1995년 쌀 회담을 결정적으로 실패하면서 차관급회담도 없었고……. 그런데 그 때가 바로 1994년 클린턴 정부가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한국 정부가 대북정책을 어떻게 풀어나갔느냐에 따라 지금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만들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 부분을 정확하게 말씀드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참가자: 북한이 경제발전전략을 앞으로 어떻게 가져갈 것이라고 보십니까?

김연철: 이번에 대통령이 “개혁·개방은 북한이 알아서 할 일이다. 개혁·개방이란 단어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고 하고, 오늘 통일부가 홈페이지의 개성공단사업 소개코너에서 ‘개혁·개방’ 표현을 삭제했다고 합니다만 저는 입장이 조금 다릅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상해에 갔다 오고 올해 초에는 심천에 갔다 오고 하면서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해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고, 북한 내에서도 중국의 경험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하는 흐름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한 건 북한 사람들은 “우리는 우리 제도의 특성이 있다. 그래서 중국의 경험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거다.”고 하면서도 사실 그동안 북한의 중간관료들 같은 사람들이 국제금융 문제에 대한 학습이나 EU 국가 등으로의 학습 투어들을 많이 해왔다는 겁니다. 개성공단만 하더라도 초기에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한 관료들이 중국 심천, 상해 가서 노동, 경영, 환율 같은 것들을 배우고 그랬습니다. 북한도 어차피 경제특구를 하려면 경제특구를 운영하는 방식이나 금융 같은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고, 실제로도 그런 움직임이 많이 증가했다고 봅니다.

윈 - 윈 될 수 있는 남북경협 확대

물론 그럼에도 북한이 정치적인 면에서 자신들과 상충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큰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혁·개방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히 구분해서 “정치적으로 시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김대중 정부 때부터 공공연하고 분명하게 얘기를 해왔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북한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경제정책의 변화 부분에 관해서는 우리가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1단계, 2단계, 3단계 가면서 결국은 기업들이 참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과도하게 정치적인 변화와 경제적인 개혁·개방을 동일시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에 중앙일보 경제시찰단에 참가할 기회가 있어서 공장부터 시작해서 한 6군데를 돌아 봤습니다. 이번에 가보고 느낀 것은 일단 놀고 있는 공장이 굉장히 많다는 겁니다. 공장을 돌려야 생산도 하고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공장을 돌리려고 보니까 에너지 부족과 설비노후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북경협은 개성공단은 말할 것도 없고 평양이나 남포의 위탁가공하는 곳도, 정확히 말하자면 ‘설비제공형 위탁가공’이 대다수입니다. 섬유, 봉제, 신발 모두 설비를 거의 남측에서 100% 갖고 가서 설치를 한 다음에, 여기서 원자재를 보내서 북측 공장에서 생산해서 가지고 오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입장에서는 공장을 돌리려면 어차피 남북경협 해야 합니다. 중국 업체들이 들어오는 건 주로 옷, 신발, 가전제품 등을 파는 유통 쪽입니다. 중국도 어차피 아직 인건비가 싼 데가 많기 때문에 북한까지 들어가서 생산할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결국 남북경협이 설비제공형 위탁가공으로 진행되면서, 큰 규모는 아니지만 공장가동률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년에 우리가 경공업 원자재를 제공했었습니다. 북한이 신발·옷 만드는 재료를 달라고 해서 준 건데, 그 대신에 북한의 광물을 달라고 해서 경공업 원자재를 주고 광물을 받는 내용의 ‘신경협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때 북한이 가장 강조했던 부분이 바로 그겁니다. “우리도 공장을 돌리고 싶다.” 지방 공장이 다 놀고 있다는 거죠. 북한 인민들한테 옷이나 신발을 제공한다기보다는 공장을 돌림으로 해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일하게 해달라는 겁니다.

북한도 결국 개혁·개방 방향으로 갈 것

북한이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얘기를 한다고 해도 경제적으로는 남북경협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성공단에서도 계속 말들이 많았지만 이제 조금씩 남측 요구사항들을 북한이 들어주면서 적응을 해 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금강산에 가보시면 느낄 수 있듯이,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정치적 신뢰가 뒷받침되면서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정상회담을 계기로 해서 또 한 차원 도약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전략적 측면에서 본다면 저는 북한으로서는 개방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그에 필요한 개혁조치들 역시 북한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2002년 10월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만들 때 법조문을 한 번 보십시오. 깜짝 놀랄 만합니다. 거의 중국의 홍콩처럼, 아예 신의주 특별장관으로 양빈이란 외국인을 임명하고 특별장관이 가질 수 있는 권한도 굉장히 많이 줬습니다. 만일 그 때 양빈이 중국 정부에 구속되지 않고 신의주 특구가 시작됐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게 아마 개성공단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중국 내에서 여러 가지 금융사고가 나면서 양빈이 구속되고 신의주가 중단되어 있는 상태죠. 만일 환경이 조금만 좋아지면 신의주와 최소한 나진·선봉은 많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성공단도 2, 3단계까지 하면 2,000만 평인데 해주까지 묶으면, 개성에서 해주까지 75km 정도 되니까 그 쪽을 광역특구화하는 건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금강산도 조금씩 올라가고 있습니다. 금강산 골프장 만들면서 통천 비행장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그런 방향으로 갈 겁니다. 그러면 안변, 원산까지는 특구가 확대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가자: 개성공단 임금지불 방식이 남북한이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경협이 확대되면 임금지불 방식이나 노동권 문제 같은 경우 어떻게 진행될 걸로 보십니까?

김연철: 저는 남쪽에서 공부하면서도 공장에 가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북한 연구를 하면서 북한사람들 데리고 해외에 있는 공장을 굉장히 많이 갔습니다. 삼성의 중국 공장들을 14박15일 동안 돌기도 했고, 말레이시아 셀렘방 공단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개성에 가서 중소기업들과 얘기해보면 확실히 공부한 사람하고 현장하고 입장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작년 말에 임금을 인상해 달라고 해서 5% 인상을 했는데, 보험료까지 다 합해서 한 달에 60달러 정돕니다. 우리 돈으로 6만원 조금 안 되는 거지요. 60달러를 북한 당국에 지불합니다. 그러면 북한 당국, 개성공단 관리총국이 받아서 북한 원화로 환전을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북한의 환율이 공식적으론 1달러가 140∼150원 쯤 됩니다. 방북해서 평양 공항에 내리면 1달러에 144∼145원 왔다 갔다 합니다. 

임금 문제는 북한의 특수성 이해해야

문제는 암시장에서는 1달러가 2,500원에서 3,000원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한 20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개성공단 관리총국은 공식환율로 환전을 하는데 60달러면 북한 원화로 9,000원 정도 됩니다. 그걸 3등분해서 3,000원 정도는 개성공단 노동자에게 현금으로 지급하고 3,000원 정도는 사회보장비로 갑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라서 교육, 주택 등을 국가가 제공하기 때문에 사회보장비를 많이 떼는 것이지요. 나머지는 3,000원은 쿠폰으로 줍니다. 북한은 아직까지도 배급제를 일부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쿠폰을 갖고 가면 개성공단 근로자들만 살 수 있는 상점이 있습니다. 거기서 쌀, 기름, 고기, 일부 소비재를 쿠폰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체계에 대한 미국의 비판은, 실질적으로 기업이 지불하는 돈의 가치와 노동자가 받는 가치 차가 너무 크다, 차액을 국가가 떼먹는다는 거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개성공단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다른 지역은 배급을 제대로 못 받는데 쿠폰으로 쌀이나 기본 생필품 조달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개성공단은 보통 점심 같은 경우는 공장에서 제공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락으로 밥만 싸 오면 국과 반찬을 공장에서 제공하는 식입니다. 반찬의 질도 좋은 편입니다. 그래서 개성공단에 2∼3개월 근무하면 얼굴빛이 달라진다고들 얘기합니다. 또 야근을 할 때 야식도 제공되기 때문에 북한의 다른 노동자와 비교해보면 굉장히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논문 쓸 때는 “임금 직불제 돼야 한다.”, “환율정책도 최소한 20배 차이는 너무 심하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중국도 개혁·개방 처음 시작 할 때는 7배 정도 차이가 났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변에 세미나를 가면 연변대학 교수 부인이 와서 환전하라고 했었습니다.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이 차이가 컸기 때문이죠. 우리도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대문에 ‘달러상인’이 있었잖습니까. 그런데 20배는 너무 크다는 겁니다. 북한 원화 가치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 원화 가치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점차적으로 환차를 줄여나가야 하는 거죠.

중소영세업체의 숨통을 틔워주긴 했지만…

제가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 개성 중소업체의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공장을 직접 운영하는 분은 여긴 천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남쪽과 비교를 합니다. 2004년 12월에 개성공단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것이 ‘리빙아트’라는 냄비공장입니다. 그래서 공장 준공식에 갔더랬는데, 사장이 울더군요. 남한에서는 고급주방용품은 프랑스에서 수입하고, 라면 끓여먹는 냄비는 중국에서 들어오고……. 냄비 만드는 공장 보니까 소리도 굉장히 시끄럽고 먼지도 많이 납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중국으로 가지 않는 이상 국내에서는 더 이상 생산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여기 와서 계속 기업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봉제업체 사장들은 남한에서 외국인 노동자들 쓰면 못해도 70∼80만원, 100만원 이상 줘야 하는데 이게 굉장히 불안정하다는 거죠. 3달 다니다 그만두고, 어느 날 갑자기 잡혀가고, 옆 공장으로 옮기고……. 그러니까 남쪽에서는 노동집약적이고 영세한 공장을 운영하는 게 굉장히 괴롭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오니까, 북한측 작업반장들이 다 있어서 노동자들 작업 지시는 북한측 작업반장이 다 하고, 임금 60달러는 남쪽 10분의 1도 안되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 거죠. 기업환경에 대해 상대비교를 많이 합니다. 남쪽에선 너무 힘들었다는 거죠. 남쪽과 비교하면 여긴 굉장히 좋다는 거고……. 하지만 앞으로 대기업은 요구기준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2단계, 3단계로 넘어가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가자: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노동자는 어떻게 뽑는지, 또 그 사람들의 신분은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또 개성공단의 임금규모가 30%로 따져서 3천 원 정도면 일반 노동자들과 격차는 어느 정도 되는지, 그리고 노는 공장이 있다는 얘기는 ‘실업’이란 얘긴데 그런 사람들 관리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김연철: 굉장히 구체적인 질문인데 거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전문가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분야가 제 전공입니다. 원래 논문을 북한의 노동정책에 관해서 썼습니다. 개성공단 노무관리 등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업체들 인터뷰를 해보면 인력 수급에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는 개성공단 관리총국에 우리 공장에서 필요한 인력의 규모, 원하는 연령대, 기술수준 등을 얘기해서 요청합니다. 그럼 그 쪽에서 대충 뽑아서 보내줍니다. 하지만 2배수, 3배수를 보내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선택의 여지는 크지 않습니다. 그 중엔 해당사항이 없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개성 주위의 ‘젊은 여성노동자’는 이미 고갈 상태

가장 큰 문제는 개성공단에서 이미 1만8천 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1단계 분양이 끝나고 분양받은 업체들이 공장을 짓고 있는데 그게 끝나면 7만여 명이 일하게 됩니다. 여기서 벌써 문제가 발생하는 게, 대부분 봉제공장이다보니 재봉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업체는 여성노동자를 원합니다. 또 일을 가르쳐서 오래 근무하도록 하기 위해 약간 젊은 여성노동자를 요구하는데 벌써 젊은 여성노동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1단계의 마지막으로 들어간 업체들은 예를 들어 “20대, 재봉틀이 가능한 여자 직공 50명이 필요하다.” 그렇게 얘기하면 실제로 온 사람들은 40대 아줌마들이 대부분입니다. 벌써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여공들이 1만8천 명인데 개성 인근에 젊은 여공들이 있어봤자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나이가 30대 40대 다 그렇습니다.

기술수준도 재봉틀 처음 하는 사람이 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 한 봉제업체를 갔는데 자기가 요구했던 젊은 여공이 아니라 3, 40대 재봉틀 잘 못하는 아줌마들이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참 대단하더라고 얘기를 합니다. 자기들이 한 3개월 교육시켰는데 첫째 시간은 “옷이란 무엇인가”, “옷은 어떻게 만드는가”, 그런 교육을 하고 나서 재봉틀 연습을 시켰답니다. 처음에는 종이 갖다 시키고 못 쓰는 천 갖다 시키고 그렇게 3개월 되니까 어느 정도 기본적인 옷을 만들더라는 겁니다. 그게 대단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인도나 인도네시아는 그 시간으론 턱도 없다는 거죠. 어느 정도 교육수준이 되고, 말이 같고, 손재주가 있고 그러다보니 다른 건 몰라도 봉제 같은 건 가능하다는 겁니다. 신발 같은 것도 여러분들 아시지만 현장에 가보면 굉장히 수작업입니다.

그러나 사실 지금부터가 좀 문젭니다. 업종이 다양해지고 거기에 맞는 인력을, 기업이 자기에 맞는 인력을 뽑기가 쉽지 않습니다. 격차가 있습니다. 대충 보내주는 걸로 소화를 하는 건데, 거기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기술센터를 짓고 있는데 그것이 완공되면 대표적 업종에 대한 기본 실무교육을 시키고 교육을 마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현장에 배치하는 식으로 진행이 될 것 같습니다. 

임금에 관해서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북한은 기본 배급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시장도 있긴 합니다. 그래서 임금이 한 달에 얼마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현금 임금보단 현물 임금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개성공단에 갔을 때 어떤 공장은 한 달에 3만 원 받는다고 하고 다른 곳은 한 달에 1만 원을 받는 대신 쌀을 30kg 받는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후자가 훨씬 낫죠. 현물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현금 임금이 1만 원 2만 원 차이 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은 쿠폰의 양과 종류를 늘려달라는 게 노동자들의 공통적인 요구입니다. 서서히 바뀌어나가긴 하겠지만, 이런 현상은 북한이 유통 같은 부분을 개혁하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을 겁니다.

공장은 하나의 생활단위, 북한에도 실업이 있다

북한의 실업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젭니다. 공식적으로는 실업이 없죠. 하지만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공장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먹여 살리느냐 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지요. 그리고 북한의 공장은 우리 식 공장과는 다릅니다. 북한 공장 하나의 넓이가 100만 평씩 됩니다. 예를 들어 대동강 텔레비전 공장이라고 하면 그게 100만 평 정도 됩니다. 왜 그렇게 크냐면, 그 안에 논, 밭, 집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지만 공장이 하나의 생활단위입니다. 노동자지구 같은 경우는 행정단위를 대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장이 돌아가는 건 적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먹여 살려야 하니까 최근에는 부업도 많이 합니다. 대동강 텔레비전 공장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맥주공장에서 인형 만들고, 이런 것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독립채산제가 많이 확산됐습니다. 예전에 계획경제에서는 그 공장이 중앙에서 지원을 받거나 또 생산하는 것들에 대해 중앙에서 통제를 하는 것들이 많았는데, 2002년에 ‘7일조치’라는 것을 통해 기업에 권한을 많이 부여해줬습니다. 일정한 부분만 중앙에 내고 나머지는 임금으로 처리하든 기계를 사든 상관없다는 겁니다. 기업의 처분권을 많이 강화해 준 것이지요. 북한은 공장 사장을 지배인이라고 하는데, 지배인들을 만나보면 젊고 전문성 있고 자기 공장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열의가 있습니다. 이들이 열심히 활동하기 위해서는 남쪽 기업의 주문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설비도 바꿔주고 생산하면서 버는 돈으로 설비도 더 살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의 동원정책이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서해갑문에 갔던 길을 닦는다든지, 평양 시내를 대청소한다든지 하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공공근로사업 같은 것들을 하는데 이런 것들로 실업을 완화시키는 겁니다. 마치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그랬듯이 말이지요. 피라미드 지은 게 공공근로사업이거든요. 홍수로 농토가 사라지니까 농민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다가 피라미드를 짓게 하고 임금을 준 것이죠. 그런 식으로 정치적 건축물을 짓고 공공근로사업 등을 하면서 실업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온 측면들이 있는데 아마 한계는 있을 겁니다. 

참가자: 말씀을 듣다보니 우리나라가 1960년대 70년대에 산업화할 때와 비슷한 것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우리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임금은 한계치에 달하는 임금을 주고 나머진 기업들이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북한이 사회보장비로 떼어 가는 비율과 비교해보면 어느 쪽이 더 많습니까?

후진적 노무관리 반복할까 가장 걱정

김연철: 그건 계산하기가 좀 어려울 것 같고, 이런 건 있습니다. 제가 2004년 7월부터 1년 반 정도 통일부에서 정책보좌관으로 일을 했었는데, 그해 말 12월 리빙아트 준공식이 있기도 했던 개성공단 초기였습니다. 그 때 가장 고민됐던 게 중소기업들이었습니다. 삼성 같은 큰 기업도 중국공장에서 여공들을 제식훈련 시키는 걸 보고 기겁을 했었거든요. 요즘 같은 세상에 노사관리를 저렇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그건 양반입니다. 동남아에서 우리 기업들이 하는 노무관리가 우리 60년대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남북 경협이란 게 단순히 경제 관점은 아닙니다. 아직까지 정책적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개성공단에서 동남아에서 하듯이 북한 노동자들을 대하면, 그 기업주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 남북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에서 말 잘못했다가 억류된 일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개성공단에 입주한 업주들을 교육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 많이 했습니다. 가서 조인트 까고 그러면 큰일난다고……. 남북 경협이라는 게 사적인 기업활동이면서도 남북관계에서는 공적인 면이 큽니다. 그래서 지금도 남쪽 정부가 노사관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인격적으로나 노동자들 대하는 부분에 있어서 북한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직까지도 직원들이 전부 출퇴근하고, 정치적으로 물드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하는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초기이긴 하지만 동남아나 다른 곳에서 보여줬던 후진적인 면은 많지 않습니다.

참가자: 남북한의 현 정세에선 북한의 핵 문제가 중요한데 핵 문제가 풀린다는 건 미국이 북한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김정일 위원장이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해서 핵을 최후 카드로 쓸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 부시 대통령은 지금 이 상태를 바라는 거고 남북은 그렇지 않고 그런 차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4개 공동선언문도 너무 급하게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연철: 만만치 않습니다. 6자회담 구조는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입니다. 지금까지 그걸 맞춰서 한 단계 한 단계 온 겁니다. 작은 산, 쉬운 것부터 넘는 거고 그 다음 산은 좀 더 높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뒤로 빼놨기 때문에 진행이 되면 될수록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어 있는 거지요.

넘을수록 높아지는 산, 비핵화 과정

‘핵시설 폐쇄’는 그냥 전기 스위치만 내리는 겁니다. 즉 영변의 5메가와트(mw) 원자로, 재처리 시설, 연료봉을 폐쇄한다는 건 전기 스위치를 끄고 가동을 중단하는 걸 말합니다. 12월까지 하게 될 불능화라는 건 못 쓰게 하는 겁니다.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핸들을 뽑든지 엔진을 뽑든지 바퀴를 뽑든지, 못 쓰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불능화의 수준은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 낮은 단계인지 높은 단계인지가 결정된다는 겁니다. 엔진을 없애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고 키만 빼면 회복이 금방 되겠지요.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도 불능화를 높은 수준에서 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원자로 부품을 제거하는 많은 방법 중에 연내에 완료할 수 있는 방법은 핵심부품을 제거해서 특별 관리하는 겁니다. 이 방법으로 하면 불능화 작업은 금방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자로 안의 흑연 감속로 같은 걸 콘크리트를 붓는다든가 해서 못 쓰게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3∼4개월 사전작업도 해야 하고 제염작업이라 해서 방사능 오염된 걸 제거하고 그 안에 들어가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우리 입장은 일단은 낮은 수준이라도 불능화를 진행하고 그 동력으로 미국 내 여론도 바뀌고 하면 테러지원국을 해제하고 그걸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겁니다. 그 다음 단계가 핵무기 폐기입니다. 불능화 작업은 지금부터 계속 진행이 됩니다. 결국 완전히 해체될 때까지 7∼8년 이상 걸릴 겁니다. 그러면 언제 핵무기 폐기를 시행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아마 불능화가 완료된 다음에 하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불능화와 핵무기 폐기가 같이 진행될 겁니다. 

그런데 지금 남아 있는 건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핵무기와 플루토늄 4∼50kg, 농축우라늄을 만든 원심분리기 이렇게 3가지입니다. 북한은 연내에 플루토늄 생산량을 신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2002년 10월의 2차 핵위기의 원인이 됐던 우라늄도 신고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그 때 논란이 됐던 고농축 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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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