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정당은 비정규직의 마음을 움직일 준비가 됐는가

노동사회

노동자정당은 비정규직의 마음을 움직일 준비가 됐는가

편집국 0 3,432 2013.05.29 09:04

1987년 6월 민주화 투쟁이 6·29 선언으로 급격하게 수그러들 무렵, 노동자들의 투쟁이 본격화됐다. 당시 전국적으로 3,458건의 투쟁이 전개됐으며, 여기에는 122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극악한 탄압의 동토에 갇혀 있던 노동운동은 이렇듯 1987년 7~9월 대투쟁을 거치면서 민주노조운동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민주노조운동은 억눌렸던 생존권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와 자본의 탄압으로 빼앗겼던 노동기본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고, 그 투쟁의 거점으로서 민주노조를 폭발적으로 건설해 나갔다.

jhkim_01.jpgIMF 경제위기 이후, 비정규직의 덫이 일상화되기까지

이렇게 분출하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열기를 잠재우기 위하여 정부와 자본은 고전적인 탄압방식 외에도 새로운 통제 시스템을 필요로 하게 됐다. 그리하여 김영삼 정부는 이를 소위 ‘신노사문화’라는 이름으로 제도화하고자 1996년 말 노동법 날치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대중적 폭발의 도화선을 당긴 꼴이 되고 말았다. 노동법 날치기에 맞서 1996년 말에 돌입해 97년 초까지 이어진 총파업투쟁은 노동자들이 공장 울타리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영역에서도 주요한 세력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곧이어 1997년 말에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한국사회는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노동운동 역시 혼란 속에서 투쟁의 고삐를 놓쳐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15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노동법 개악저지 총파업투쟁을 통해 시민권을 획득한 민주노총은 ‘국민승리 21’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대선정국에서 정치적 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초라했다. 김대중이 “원조보수”라고 일컬어지던 김종필과의 정치야합을 통하여 대권 도전 4수만에 청와대에 입성했던 이 선거에서, 국민승리 21은 30만 6,026표(지지도 1.2%)를 얻는 데 그쳤다. 1998년 초까지 전개됐던 총파업투쟁의 기세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결과였다.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모호한 구호로 상징되는 내부의 정치적 혼란은, 총파업투쟁의 에너지를 정치투쟁으로 이어가지 못한 노동운동의 총체적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멈추고 정치적 진출에 실패하자, 자본과 보수정치 세력은 놓치지 않고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다. 국민의 승리를 쟁취하고자 했으나 그 지지는 얻지 못한 계급에 대하여, ‘국민의 정부’는 국민의 이름으로 굴종을 강요했다. 국민의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의 테두리로 포위하고서 정리해고제도와 파견법을 법제화시킴으로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제도적 기반들을 관철시켜 나갔다. 노동운동의 뒤늦은 반격은 투쟁을 되살리지 못한 채 민주노총을 휩쓴 내부갈등의 폭풍으로 마무리됐다. 

패배의 후과는 바로 들이닥쳤다. 자본은 정리해고를 포함한 강도 높은 공격으로 고삐를 죄었다. 이에 맞서 현장에서는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었으나 결국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투쟁의 패배를 고비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일상화됐다. 자본의 협박 속에 현장은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들었고, 정리해고 등으로 만들어진 빈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자기 일자리를 지키는 데도 급급했던 조직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오히려 비정규직을 정규직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해주는 ‘안전판’으로 여겼다. IMF 이후 실질임금의 하향세가 지속되는 속에서 자신의 임금을 지키기 위하여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은 불가피한 것으로 묵인됐다. 

거꾸로 가는 비정규직법의 등장

IMF 이후 10년이 흘렀다. 비정규직문제는 사회 빈곤화의 핵심구조로서 한국사회의 핵심의제가 됐다. 줄곧 확대되어온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는 이제 874만 4천명에 이르러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지 오래고, 차별도 역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비정규 노동』 6월호 참조). 또한 정규직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기존 노동조합 역시 비정규직들을 포괄하지 못하고 배제 또는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분출한 비정규직들의 치열한 투쟁들은 비정규직들의 절박한 생존권과 아울러 노동기본권에서도 배제되어 있는 현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실제 2002년 이후 주요한 투쟁은 모두 비정규직과 관련한 것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구속된 노동자 대다수 역시 비정규들이다. 

결국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사회제도적인 대책 요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던 노무현 정부가 제출한 비정규직법안은 실효성 없는 차별시정절차로 포장된 ‘비정규직 확대 법안’이었다. 그럼에도 3년여에 걸친 논란 끝에 주체인 비정규직은 물론 민주노총과 진보진영의 반대에도 보수정치 세력은 이를 강행처리했다. 결국 “비정규직에게도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비정규 주체들의 요구는 제도적 차원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가운데 ‘거꾸로 가는 비정규직 법’만 남게 됐다. 

대선을 앞두고 바라보는 비정규직투쟁들의 살찬 풍경

2007년 6월로 예정된 비정규직법의 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자본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특히 자본은 비정규악법조차도 한층 더 악용할 수 있는 방안을 끝내 찾아냈다. 『비정규 법 대응 실무지침』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해 노골적으로 차별시정 및 무기계약 전환 회피방법을 알려주고 이를 부추긴 것이다. 정부가 “사용주로서 모범을 보이겠다.”며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 역시 고용보장을 빌미로 한 차별 고착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도 무기계약화는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를 계기로 해고만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은행의 분리직군제도 시행 등을 두고서 비정규직법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던 가운데, 이랜드 자본이 비정규노동자들을 대량해고 및 외주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렇듯 비정규악법을 악용하는 이랜드 자본에 맞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에 나섰고, 유통부문 여성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은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몰고 왔다. 최근 유례없는 사회적인 지지와 지원 속에 전개된 이랜드투쟁은 비정규직법 시행의 효과를 둘러싼 판단의 시금석이 되었다. 사회단체들과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그리고 비정규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연대는 더 나아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어졌으며, 이랜드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은 정부와 자본의 전횡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정규직법이 무력화되는 것을 우려한 정부의 지원 속에, 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은 구사대뿐만 아니라 상대적 약자인 입점 업주들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탄압으로 이랜드투쟁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그런 속에서도 이랜드 노동자들은 감옥에 갇히고 수차례의 연행과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넉 달이 넘도록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회가 뒤늦게 박성수 회장을 국정감사에 소환했으나 그는 이미 해외로 도피한 상태였다. 이에 이랜드 노동자들은 박성수 회장의 구속을 촉구하며 40미터가 넘는 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전개하기도 했다.

한편 “금융산업의 꽃”이라는 금융 1번가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에서는 코스콤 비정규노동자들이 두 달이 넘도록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코스콤은 불법파견을 통해 비정규직을 고용불안과 차별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 사우회를 통하여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비정규직의 임금을 갈취하는 사회적 패륜을 저질러왔다. 그럼에도 코스콤 사측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교섭요구를 외면한 채 정규직 노조와의 담합을 통해 탄압에만 몰두하고 있다. 또한 중앙노동위원회는 행정지도를 통하여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코스콤 경영진을 엄호하고 나섰다. 결국 증권노조 코스콤 비정규직지부의 목숨을 건 고공단식 농성마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지난 10월 말에는 인천에서 20년을 전기공으로 현장에서 묵묵히 살아오던 어느 건설노동자가 분신하여 결국 숨을 거두는 일이 발생했다. 고(2) 정해진 열사는 근로기준법상의 주40시간 노동을 제대로 지켜달라고 요구한 것뿐이었다. 2만2천 볼트가 흐르는 전선 옆에서, 자칫하다 언제 팔다리가 잘려 나갈지 모르는 목숨을 건 노동을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강요받아온 건설 일용노동자의 절박한 요구는, 결국 자본에 의하여 무참하게 짓밟혀졌다. 열사는 자본에 대한 분노를 몸을 살라 외쳤고 가장 낮은 곳에서 추슬러 왔던 고된 비정규노동의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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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주체의 연대체인 전국비정규연대회의는 이번 대선에서 비정규직문제와 관련한 5대 요구를 내걸고 있다. ▶ 전비연 ]

눈물 닦아 준다던 정부에게 뒤통수 맞은 비정규직에게 대선이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50%를 넘는 지지율로 독주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내 경선을 마친 통합신당의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은 10%를 갓 넘고 있고, CEO 출신의 문국현 후보가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반면에 결선 투표까지 마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지지율은 바닥을 헤매면서 좀처럼 반전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밖에 있는 제 정치조직들 역시 아직 대선과 관련하여 명확한 계획이나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대선까지는 한 달여가 이 남았다. 몇 차례의 요동은 예상되나 대다수는 낮은 관심 속에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투쟁하고 있는, 혹은 차별과 고용불안에 숨죽이며 일하고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은 다가오는 대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자신의 사회적 처지와 결부해 대선을 바라보기 어렵지 않을까? 비정규 노동문제가 주요 이슈가 되면서 몇 가지 공약이 도마에 오르고는 있으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쟁점은 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악법 강행처리를 주도했던 보수정당의 후보들은 비정규문제에 대한 관심을 애써 강조하지만, 결국 “비정규직 고용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전제위에 “정규직의 양보”라는 조건을 달아서 시혜적 수준의 보호 방안을 되뇔 뿐이다. 

이러한 보수정치판의 권력다툼에 대하여 소위 “88만원 세대”, 즉 예비 비정규직 청년실업자들은 “차라리 경부 운하 공사장에 땅이나 파러 가자”며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며 들어선 노무현 정부하에서 오히려 비정규직이 100만 명 이상 늘었는데, 보수정치 세력이 어떤 사탕발림을 하더라도 척박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하여 뼛골이 휘고 있는 비정규직에게는 조롱으로 들릴 뿐이다. 비정규직법의 시행을 계기로 거리로 내몰려 싸우고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잔치는 분노의 대상일 뿐이다.

민주노동당은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러나 비정규직문제를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제기하고 있는 민주노동당도 비정규직의 밑바닥 마음을 움직이고 있지 못하다. 비정규직문제를 핵심적인 대선 공약으로 제기했으나 반향과 지지를 모으고 있지 못한 민주노동당은 이에 대한 돌파구로 ‘100만 민중대회’를 준비하고 있고, 이와 더불어 민주노총은 ‘행복 8010’ 실천(80만 조합원이 10명씩 지지자를 모아 800만의 힘으로 대선에서 승리하자는 의미)을 결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의가 현실화된다고 하더라도 현장의 비정규직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부족해 보인다. 

민주노동당의 비정규노동 정책과 방침은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노조운동에 기초한 과거와, 유력한 정치적 지분을 갖추지 못한 현재에 가려져 있다. 이러한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당의 ‘진정성’이 요구되는데, 그 진정성이 채 빛을 발하기도 전에 의심을 받는다면 가장 낮은 곳 비정규노동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 오늘의 과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돌려 말할 것도 없이, 한국노총 사과 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정책연대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의 ‘공개적인 사과’가 필요하다.”는 한국노총의 요구를 수용했다. 한국노총은 민주노동당이 비정규법과 노사관계 로드맵 처리과정에서 한국노총을 비판하고 민주노총을 지지한 것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고 있으나, 당의 사무총장은 애써 핵심을 비껴간 내용의 공문을 들고 한국노총에 찾아가 사과했다. 아직도 한국노총의 비정규직법 처리에 항의하다 구속된 노동자가 감옥에 갇혀 있다. 또한 사과가 있기 전 고 정해진 열사가 속해 있기도 했던, 전기원 농성장은 한국노총 조끼를 입은 무리들의 폭력 침탈을 받았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에 대하여 사과해야 하는가? 동료들을 가족 품으로 보내 놓고 정해진 열사가 추석 명절에 홀로 지켰던 농성장을 폭력으로 침탈한 노조의 위원장과 사무국장은, 열사가 화염 속에서도 구속하라고 외쳤던 유해성 사장의 사촌과 친형이었고, 열사가 분신한 곳은 바로 유해성이 사장으로 있는 영진전업 앞마당이었다. 동지를 뜨거운 화염 속에서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전기분과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조문을 받는 심정은 누가 헤아릴 것인가?

경찰들의 침탈 위협 속에 이랜드 비정규노동자들과 밤을 지새워 농성장을 지켰던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투쟁을 처음부터 함께하고 있는 당원들의 진정성을 의심치 않는다. 단지 그러한 진정성이 일관되기를 바랄 뿐이다. 비록 한국노총의 배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더라도, 비정규직투쟁을 폭력으로 짓밟는 것에 대한 항의와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피해가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반대로 흘렀고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진정성은 퇴색되고 있다. 

‘계급투표’가 이뤄지기 위한 전제조건

진보정당 최초의 원내진출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던 민주노동당은 지난 총선에 이어 오는 대선에서도 ‘계급투표’를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계급투표를 위해서는 계급이 구성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계급운동이 필요하고, 그 핵심에 바로 비정규직문제가 있다. 이미 전체 노동자들의 절반이 넘어 버린 비정규직을 배제하고서는 한국사회에서 노동계급의 존재를 말할 수는 없기에 계급투표는 이 과제를 비켜갈 수 없다. 

이미 비정규직법의 문제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를 바로 잡는 것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2001년 여의도에서 레미콘 노동자들이 도끼를 든 경찰폭력에 처참하게 당할 때에도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노동3권 보장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정부는 지금 노동권도 아닌 유사 2권을 들고 나와 받을래 말래 하고 협박하고 있다. 갈수록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늘어만 가는데 불법파견조차 무협의 처리하는 사법당국의 전횡 속에 원청사용자의 사용자책임 인정은 요원하다. 소규모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급증하는 여성노동은 온통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보장받고 있지 못한 가운데 불법단속에 쫒기고 있다. 

이러한 비정규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과 관련하여, 비정규직 주체의 연대체인 전국비정규연대회의(전비연)는 △기간제 사용사유 엄격 제한, △파견법·기간제법 철폐,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 △원청사용자 사용자책임 인정, △이주노동자의 노동허가제 쟁취 등을 ‘비정규직 5대 요구’로 제출했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전환 특별법’ 등과 아울러 노동법의 개정 등을 대선 요구로 제출했다. 민주노동당이 이러한 요구들을 반영하여 다양한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비정규직의 밑바닥 마음을 움직이고 있지는 못하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총선에서 울산시의 선거 패배를 곱씹어야 한다. 비정규직에게 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 비정규직 스스로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할 때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밑바닥의 비정규직을 향하여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투쟁하는 비정규직들의 밑바닥 마음을 움직여라!

척박한 노동현실, 자본과 정부의 탄압에도 치열한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조직화가 진전되고 있다. 통계상으로는 26만 명 이상이 조직되어 있으며 독자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비정규직만 해도 10만이 넘고 있다. 비록 전체 비정규직의 3%에 불과한 조직률이지만 이는 198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일구어 냈던 전노협에 비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밑으로부터의 조직화와 투쟁이 일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지난 투쟁들의 과정 속에서 미완의 계급으로서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은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않는다면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비정규직 조직화의 기초는 만들어졌으며 이제는 대중적인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비정규직의 대중적 조직화를 통한 계급의 재구성만이,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서는 투쟁부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비정규직의 대중적 조직화와 투쟁으로 가는 디딤돌을 확보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비록 대선까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계급투표에는 우회로가 없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비정규직들의 투쟁을 확장하고, 이 투쟁을 통하여 계급의 진정성을 확보하는 것만이 계급투표에 다다를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그 길은 또한 대선을 지나 총선을 넘어 신자유주의 보수정치판에 파열을 내는 위력적인 계급정치로 가는 길이다. 계급투표를 요구하기 전에 계급으로서 밑바닥의 비정규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운동을 만들어 내야 한다. 

민주노총이 제출한 정규직 전환 특별법이 제기하는 것처럼, 100대 기업에서 이익분담금과 비정규직 고용 분담금을 걷고 부족분을 정부출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힘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의 보장과 각종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도 역시 정치적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힘은 비정규직이 스스로 나서지 않을 때는 결코 만들어지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비정규직을 조직하기 위한 진정한 태도와 결의가 전제되지 않은 정책은 그냥 공약 일 뿐이다. 

진정으로 자본으로부터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자원을 걷고자 한다면, 그리고 정부예산을 쓰고자 한다면 먼저 나서야 한다.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기 이전에, 조합원들에게 비정규직의 조직화와 투쟁을 위하여 나설 것을 호소하여야 한다. 정책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현장의 비정규직은 보고 있으며, 그 시선에 답했을 때 냉소와 무관심을 넘어 스스로 계급투표를 조직할 것이다. 

2007년 대선, 자식들 미래 위해 싸우는 장 

다가오는 2007년 대선은 밑바닥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지지를 요구하기에 앞서 비정규직 스스로가 자신과 자식들의 미래를 위하여 함께 싸울 것을 호소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비정규노동자 스스로가 거수기가 아닌 운동의 주체로 서기 위해서는 주어진 선거판에 기웃거리기보다는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자신의 언어와 방식으로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공간에서 비정규직으로서 고통과 분노를 나누고, 만일 내가 대통령이라면 무엇을 할까를 상상하고, 그러한 대통령을 만들이 위하여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소통할 수 있다면, 스스로 계급투표로 나아갈 것이다. 최소한 진보정치를 원한다면, 만약 계급투표를 통하여 선거를 하고자 한다면, 비정규직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승리는 불가능하다. 비록 그 마음을 얻지 않고도 얻어진 승리가 있다면 그것은 허무한 사기일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