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떨어진 ‘민생문제’, 지구온난화와 기후협약

노동사회

발등에 떨어진 ‘민생문제’, 지구온난화와 기후협약

편집국 0 4,384 2013.05.29 09:22

2007년 12월3일부터 15일까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제1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192개국 정부 대표자, 과학자,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 기업 등 모두 1만여 명 이상이 참가했다. 이번회의에서 가장 큰 쟁점은 “교토의정서에 의한 1차 의무감축기간이 끝난 2012년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이른바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명시한 교토체제를 기반으로 할 것인지, 그리고 개발도상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할지의 여부가 핵심이었다. 회의의 뚜껑을 열어보니 브라질과 중국은 기술이전을 전제로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 참여에 의외로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고, 미국은 교토의정서에도 비준할 수 없으며 의무감축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캐나다와 일본이 미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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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발리에서 열린 제13차 기후변화협약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1만여 명이 모여 2013년부터 시작되는 기후 변화 대응 체제를 놓고 열띤 격론을 벌였다. ▶ 이유진 ]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미국 당신들 빠져라”  

이번 회의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는 못했다. 다만 발리 로드맵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졌던 36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협상 테이블에 모두 참가해 2009년까지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 협약을 마련하기로 했다.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 총회까지 논의를 마무리한다는 협상 시한을 설정한 것이다. 굳이 성과라고 한다면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한 미국이 포스트 교토체제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것과, 중국, 인도, 브라질 등 개도국을 참여시키기 위한 협상틀을 마련한 것이다. 

유럽연합이 “선진국은 2020년까지 1990년 기준으로 온실가스를 25∼40% 감축하는 것을 고려한다”라는 문구를 합의문에 넣자고 주장한 데 대해 미국은 끝까지 ‘자율감축’을 주장하면서 반대했다. 결국 이 부분은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 보고서」를 인용하기로 합의를 했다. IPCC의 4차 종합보고서는 2050년까지 2000년 대비 50∼85%의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으면 지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번 회의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미국이 계속해서 협상의 걸림돌이 되자 12월15일 협상막바지에 파푸아뉴기니 대표가 “미국이 이번 회의에서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을 거면 협상에서 빠져라”라고 주장한 대목이다. 파푸아뉴기니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때문에 당장 피해를 입고 있는 국가이다. 협상장 밖에서도 가라앉는 남태평양의 섬나라뿐만 아니라 극지방의 이누이트들이 자신들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발리 회의가 끝나고 일부 언론에서 “우리나라가 2013년부터 의무감축 국가가 된다”고 보도하고 있으나, 이것은 옳지 않다. 우리나라가 의무감축국가군인 Annex I(부속서 I국가, 선진국)으로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도 아니고, 발리 로드맵을 통해 개도국 모두 “측정 가능한 감축목표”를 세우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만 특별한 것은 아니다. 특히 자발적 목표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의무감축도 아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한국은 이 논의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Post-2012 기후변화체제’는 장기협력행동 작업반을 통해 협상을 진행하는데, 선진국과 개도국이 협상을 나눠서 진행한다. 주요 협상분야는 △감축, △적응, △기술이전, △재원이다. 한국정부는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를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한 ‘유엔프로세스 중심세력’과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기후변화체제’ 간의 대결구도로 보고 있다. 유엔프로세스는 구속적 감축목표 설정, 의무부담을 통한 적극적 감축, 배출권거래 활성화를 강조하는 반면, 온실가스 다배출국가 회의를 주도하는 미국은 비구속적 국가목표 설정, 자발적 감축, 청정기술개발 등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정부는 에너지 다배출국가의 논의구조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인데, 미국을 위시해 이번 기후변화협약 회의에서 지탄의 대상이었던 일본, 캐나다와 공조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우려되는 부분이다.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으면서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량 6위, 배출량 증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에너지부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억 4,800만 CO2톤으로 세계 10위이며, 누적 배출량으로도 세계 23위로, 개도국이 이야기하는 “역사적 책임”으로 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정부는 12월17일 기후변화 제4차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2008년부터 시행되는 이번 대책은 교토의정서의 효력이 만료되는 2012년까지 향후 5년 동안 우리나라 기후변화대응 정책의 근간이 된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온실가스 국가감축목표를 2008년에 설정한다고 발표했다. 기후변화협상의 추이를 보고 감축 목표를 제시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차일피일 감축목표 설정을 미뤄서 본격적인 기후변화 대응 준비를 늦추게 되면 결국 우리 발등을 찍게 될 것이다. 한편, 정부가 제시한 4차 대책의 핵심은 ‘원자력 비중 확대’에 있다. 원자력을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 에너지원”으로 규정하고 국가전략 차원에서 확대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은 치명적 사고위험, 방사성폐기물 위험이 갖는 불확실성과 우라늄 가채연수 등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이다. 특히 우리는 아직도 고준위방사성폐기물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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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회의기간 동안 기후행동네트워크(CAN)은 기후 보호에 반하는 발언을 한 대표에게 매일 '오늘의 화석연료상'을 줬다. 12월4일은 일본 대표에게 이 상이 수여됐다. ▶ 이유진 ]

삶의 문제인 기후변화, 노동운동의 대응방향은?

2005년 우리나라의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5억 9,100만 톤이고, 그 중에서 에너지·산업공정부문이 95.3%를 차지한다. 따라서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와 감축은 산업계에 바로 영향을 주고, 그 파급력은 우리 경제와 사회 전반에 미치게 된다. 문제는 이미 우리가 그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유럽연합이 신규등록차량의 킬로미터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키로 결정했기 때문에 자동차업계는 당장 영향을 받는다. 현재 자동차 수출은 전체 유럽연합 수출액의 21%를 차지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9년까지 140g/km 이하로 감축하는 자발적 협약을 유럽연합 집행위와 체결한바 있다. 또한 향후 강화되는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에 대비하여 내년까지 2020년과 2050년까지의 중장기 감축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산업자원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자동차 연비기준을 강화한다는 발표를 했다. 산업계 전반이 기후변화 대응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에너지 다소비 산업인 석탄, 정유, 발전, 화학산업, 시멘트, 자동차 관련  산업과 거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는 협약서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의 삶이다. 환경 악화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은 이 땅의 가난한 노동자와 서민이다. 지난 여름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이 주룩주룩 내린 비로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은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폭염은 땡볕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였다. 또 준비가 안 된 중소기업들은 선진국의 준비된 기업들과 하루아침에 벌거벗은 상태로 경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후변화로 인해 당장 일자리가 영향을 받는다. 노동계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앞으로 2년이 우리 운명 결정한다

기후변화협약은 결국 우리 사회가 ‘저탄소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화석에너지를 적게 쓰고, 산업분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과정이 일자리와 노동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꼼꼼하게 검토해서 대응해야 한다. 4차 대책에서 정부가 제시한 감축 목표량은 산업계에서 5년 이내 180만 톤을 줄이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환경산업 부분의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당장 줄어들 일자리도 존재한다. 2007년 대선에서 유일하게 민주노동당이 기후변화에 대응해 “일자리의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정책을 제시한 바 있다. 녹색정치사업단에서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장해나가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선택된 정권은 공기업 민영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분야, 특히 발전부문과 한국수력원자력의 향방을 점검해야 한다. 

당장 2008년 1월 말 미국이 주도하는 배출국회의가 하와이에서 개최되고, 3월부터 공식적인 기후변화협상회의가 열리기 시작한다. 우리와 지구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 향후 2년은 너무나 중요하다. 기후변화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국내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더 이상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노동계는 기후변화 이슈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거나 대응해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의 소통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리의 준비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면, 지금부터 가장 기본적인 기후변화체제에 대한 이해와 공부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