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은폐라는 ‘범죄’에 어떻게 대응할까

노동사회

산재 은폐라는 ‘범죄’에 어떻게 대응할까

편집국 0 4,126 2013.05.29 09:20

2006년 5월부터 현재까지 약 1년여에 걸쳐 15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이 있다. 바로 한국타이어다. 이 기업의 공장 노동자는 모두 해 봐야 3천 명이 약간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은 일반 인구보다 건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한 사람들이 공장에서 노동하게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타이어의 이 기간 사망률은 일반 인구 집단과 비교해도 매우 높다. 2006년 통계상 40대 일반 인구의 사망률이 천 명당 2~3명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이는 일반 인구 집단에 비해 적어도 2~3배 이상 높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장 노동자의 평균 연령이 아무리 높아도 30대인 것을 고려하면, 실제 사망률은 일반 인구보다 평균 5배 이상 더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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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타이어는 가족들의 죽음의 원인이라도 제대로 알고 싶은 유가족들의 분노에 답해야만 한다. ▶ 매일노동뉴스 ]

노조도 외면… 방송 보도 이후 공론화

그러나 사망 노동자의 유족들이 2007년 7월에 문제제기를 하기 전까지 이런 끔찍한 사실은 전혀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노동자의 유족들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의혹을 제기했으나, 2007년 11월 한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이 이와 관련된 방송을 하기 전까지 이 사안은 지역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시사 프로그램의 보도가 있은 이후에야 비로소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된 한국타이어 사건의 경과는 사실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이런 문제가 있었고 그 기업에 노동조합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노동조합이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의혹 규명을 위한 활동을 벌이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한국타이어에는 노동조합이 있었음에도 이 사안이 공론화되지 못했다. 유족들의 외로운 싸움에 연대한 조직은 민주노동당 대전시당과 민주노동당 한국타이어 직장 분회가 유일했다. 사건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오랜 기간 사회적 반향이 적었던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데,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노동조합의 ‘책임 방기’가 가장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합원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할 책임을 가진 노동조합이 이 사건의 문제를 근본으로부터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는 것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어쨌든 초기 유족들의 문제제기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인 2007년 11월이 되어서야 이 사건은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다양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이번 노동자 집단사망 사태는 한국타이어 경영진의 책임인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 사건의 원인에 대해 공식적으로 조사를 진행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지난 11월28일 역학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사건이 ‘집단발병’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는 노동자들의 죽음의 원인이 공장에 있다는 것을 강력히 추정하게 하는 결과이다.

계열사까지 이어진 비상식적 노무관리 실태

이 사건으로 인해 알려진 한국타이어의 노무 및 안전보건 관리 실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2007년 12월에 발표한 대전지방노동청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따르면 한국타이어는 최근 3년 동안 공장과 연구소에서 발생한 183건의 산업재해를 은폐한 것으로 밝혀졌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도 1,394건이나 되었다. 이는 이번 노동자 집단사망 사태가 한국타이어의 은폐된 수많은 산업재해 중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한국타이어 경영진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법을 아예 법으로 취급도 안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더불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주)ASA(에이에스에이) 사태는 한국타이어가 노동안전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함에 있어서도 전반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진 기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ASA는 한국타이어가 100% 투자지분을 가지고 있는 한국타이어 계열사이다. 이 회사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단체교섭을 요구하자 교섭자체를 거부하는 상식 이하의 작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 회사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된 직접적 계기는 3년간의 임금동결도 모자라 올해 상여금 400%를 삭감한 데 있었다. 이 공장은 노동환경 역시 열악하기 짝이 없다. 기본적인 환기장치나 안전장치도 미비한 것은 물론, 원가절감을 이유로 장갑이나 분진마스크, 작업복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열악함에도 ASA 사측은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에 성실히 응하기는커녕 노조간부들에게 8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등,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상식 밖의 행위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결국 사측은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간 지 하루 만에 아예 직장폐쇄를 단행하였다. 현재 ASA 경영진이 되풀이 하는 말은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한국타이어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말뿐이다. 한국타이어 측의 비상식적인 행위는 한국타이어 공장뿐 아니라 자회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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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측의 직장폐쇄로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는 ASA지회 노조는 12월10일부터 서울 강남 역삼동의 한국타이어 본사에서 상경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 금속노조 ]

노동권에 대한 천박한 인식이 부른 참화

한국타이어 측 역시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집단사망이 발생한 노동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여 산재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노동자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극단적인 노동 강도와 작업장의 유해물질 문제 등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타이어 공장은 노동공정상 건강과 안전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노동자 건강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조건에 있다. 그러나 한국타이어 경영진은 주의 의무를 다하기는커녕, ‘무재해 인센티브제’ 등을 통해 문제를 은폐하는 경영을 해왔다. 문제를 밝혀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드러나지 않게 하고 억누르는 경영을 해왔던 것이다. 그 결과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 터지게 되어 이번과 같은 끔찍한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타이어 측의 최근 태도는 여전히 우려스럽다. 한국타이어 사측은 아직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사태의 초점을 흐리려 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최근 노동자들의 ‘건강관리대책’에 문제가 있었다면서 질병자의 관리대책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질병이 발생하는 것은 그대로 두고, 발생한 환자만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동조건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집단 사망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집단사망 사태의 피해자인 노동자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타이어 측은 노동자 유가족들의 사실 인정과 사과 요구에 대해 상식 밖의 대응으로 일관했다. 유가족들과 사측의 면담은 단 한 번 형식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오히려 사측은 유족들의 가족 상황을 파악하여 약점을 잡으려 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타이어 사측은 지금이라도 유족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더불어 한국타이어는 ASA 사태 해결에도 나서야 한다. 노동조합 결성은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이다. 한국타이어는 헝가리에서도 노동조합을 결성한 노동자들을 탄압하여 국제적인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국제화학노조에서 이 문제가 정식으로 논의되었고 헝가리에서 한국타이어는 노동탄압 기업으로 비난받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한국의 ASA와 헝가리의 자회사에서 노동자들의 합법적 권리를 존중하여야 한다. 자신들로 인해 꼬이고 있는 노사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면피에 급급한 정부, 노동안전을 위해 메스를 들어라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한국타이어 사측은 이 문제를 덮어버리려 하고 있고, 정부는 자신의 직무 유기에 대한 면피를 하기에 급급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정부는 한국타이어 경영진을 처벌하고 집단사망사태를 초래한 산업재해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06년에만 4명의 노동자가 심장질환으로 사망했음에도 정부는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다. 정부는 2007년 들어 3명의 노동자가 더 죽고 유족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그때서야 늑장 대응을 했으며 그조차 형식적인 특별근로감독을 하는 데 그쳤다. 

지금까지 밝혀진 일부 사안들만 보더라도 한국타이어 경영진의 무책임과 과실은 명백하다. 정부는 노동자를 집단사망에 이르게 한 한국타이어 경영진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선진 외국의 경우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면, 회사의 경영진은 당장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이러한 경우 회사의 최고경영진을 ‘살인죄’에 준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도 한국타이어 경영진에게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중하게 물어야 한다. 정부가 다른 사안처럼 이번 사안도 솜방망이 처벌로 면피하려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차제에 한국의 장시간 노동과 높은 노동 강도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은 아직까지도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국가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과로사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노동자 삶의 질을 파괴하고 노동자 가정에서 노동자를 소외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해 아무런 논의가 없는 것 자체가 사회병리 현상이다. 그러므로 이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시급하다.

또한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법체계 개혁이 필요하다. 법이 사고 예방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법을 어겨 처벌을 받는 것보다 법을 준수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법을 위반해도 처벌 수준을 높이는 데에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법적 억지력을 갖기가 어렵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의 최고 형량은 낮은 편이 아니지만, 법원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은 기본적으로 예방법으로 취급되어 형량이 낮게 선고되는 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고로 인한 사망 등 중대재해의 경우는 사업주에게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법의 체계상 규모가 큰 사업장의 사업주나 법인에게는 이 죄를 적용하기 힘든 상황이다.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것은 안전보건의 중대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법체계상의 문제를 개혁하고자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법제도 보완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잊을 만하면… 근본적 해결이 필요하다

이러한 서구 선진국의 예를 적극 참고하고, 환경범죄의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입법례를 참조하여 심각한 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사업주를 형사 처벌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처벌 대상이 되는 재해에는 미필적 고의로 분류될 수 있는 사망재해, 죄질이 나쁜 사망 재해, 반복적 사망 재해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특별법에 의한 처벌은 산업안전보건법과 같이 예방법에 의한 처벌이 아니라 살인죄에 버금하는 죄의 결과에 대한 처벌이므로, 처벌이 ‘징벌적 성격’을 띠도록 무거워야 한다. 심한 경우 고위 임원을 금고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벌금형의 경우도 기업 규모에 따라 벌금액의 규모를 다르게 판시할 수 있도록 하여 실제적 징벌이 되도록 해야 한다.

한국타이어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목숨과 권리가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국타이어는 예방할 수 있는 사망을 막지 못했음에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러한 범죄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을 주저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 문제, 이제는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타이어 문제를 올바로 푸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