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노사관계법 개악과 호주노총의 대응

노동사회

호주 노사관계법 개악과 호주노총의 대응

편집국 0 5,161 2013.05.2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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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호주 노사관계법 개악과 호주노총의 대응

시간: 2007년 12월12일 목요일 오후 2시~4시

장소: 전국공무원노조 7층 회의실

사회: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

발제: 리처드 와츠(Richard Watts) 호주노총 노사관계실장

토론: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통역: 배준범 전 민주노동당 국제국장

주최: 민주노총·한국노동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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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호주에서는 1996년 자유당 정권이 들어서서 약 10년간 상당히 많은 노사관계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50%대였던 노동조합 조직률이 20% 정도로 하락하는 등 노동조합운동 역시 어려움을 겪었죠. 또한 2005년 12월에는 ‘개별적 근로계약’에 대해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이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법 개정이 이뤄지는 등의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호주 노동조합은 이런 부분에 대응해 적극적인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을 전개해왔고, 1년 전부터 선거 국면에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해 얼마 전 노동당이 총선 승리하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한국에서도 올해 12월 대선과 내년 4월 총선이 예정돼 있습니다. 이런 상황과 관련해 노동당 승리를 이끌어낸 호주노총의 사례를 배워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발제자와 토론자를 소개드리겠습니다. 발제는 리처드 와츠 호주노총 노사관계실장님이 해주실 겁니다. 리처드 와츠 실장은 2000년부터 호주노총의 노사관계실장을 맡아왔고, 1980년대 중반부터 노동조합운동을 해 오셨던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학·법학·노사관계 전문가로서 정부의 노사관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인적자원위원회의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총선에서의 ‘노동기본권 쟁취 캠페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토론자로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유선 소장님과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님이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자료에 있지만 호주노총에 대해 잠시 소개드리면, 호주노총은 1927년에 창립됐고 가맹 산별 노동조합이 약 47개, 조합원은 약 180만 명 정도입니다. 지금 호주노총 위원장인 샤란 버로우는 호주 노동운동사상 두 번째 여성 위원장이고, 얼마 전에 통합된 세계노총(ITUC)의 위원장이기도 합니다. 호주는 1970년대 오일 쇼크가 오기 전에는 보호무역주의의 영항 속에서 세계최고 수준의 최저임금 등 ‘노동자의 천국’이라 할 정도의 환경을 자랑했지만, 최근에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노동자들이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에 맞춰 노동운동도 전략적 노동조합주의라든가 작업장 혁신 등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죠. 

또 정치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1980년대에는 노총 위원장 출신이 노동당 수상으로 취임해서 사회적 합의 같은 부분들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만 1990년대 중반 들어서는 보수세력인 자유당이 집권했죠. 자유당 정부가 자본과 결합해 추진한 노사관계법의 개악 등의 공세 속에서 노동조합은 무척 큰 어려움을 겪었죠. 그러다 말씀드린 것처럼 최근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노동당의 재집권을 이뤄냈습니다. 이제 이 정도를 기본정보로 하고 리처드 와츠 실장의 발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힘찬 박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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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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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um_02.jpg리처드 와츠: 감사합니다. 현재 호주노총은 51개의 산별노조와 200만 명 정도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보다 조금 늘었지요. 전문직 노조가 최근 가입을 했습니다. 호주노총은 호주에서 조직된 노동자의 거의 전부를 대표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에 가맹한 조직으로는 조종사노조가 있습니다. 조종사노조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노조와는 좀 다른 것 같긴 합니다만 어쨌든 최근에 노총에 가입을 마쳤습니다.

호주에서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변화는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됐습니다. 하나는 경제적인 것인데, 이는 노동 분야에서의 상당히 급격한 변화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세계화, 제조업의 쇠퇴, 이런 변화들이 보수세력의 정부 운영과 결합되면서 조직된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이죠. 그렇지만 이제는 조직된 노동운동이 최근 몇 년보다는 훨씬 더 견고한 조직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직률이 다시 상승하고 있으며 이런 상승세는 지난 몇 년 동안의 노동조합의 활동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이러한 조직률 증가 중 일부는 저희가 진행했던 ‘노동기본권 쟁취 캠페인’과 관련된 것이고, 또 상당부분은 새로운 조직화 전략, 즉 미조직 부분에서의 조직화운동의 성과입니다. 공공부분, 비정규직, 그리고 전문직 분야에서 특히 성과가 있었죠. 그것이 제조업 분야에서 호주노총이 잃은 조합원 수를 상쇄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제조업 노조들은 해외의 노조들에게 “조직률이 이전보다 더 높아졌다”고 얘길 하는데, 조직‘률’로 보면 사실입니다만, 전체 제조업 노동자 수가 줄어들고 있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저는 과거 섬유의류노조에 얼마 동안 재직했었는데, 제가 활동하던 당시의 노조들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노조의 규모가 이전보다 훨씬 작아졌죠. 그럼에도 섬유의류산업의 쇠퇴로 조직률은 이전보다 아마 훨씬 높을 겁니다.

보수정권 시기 고삐 풀린 해고의 자유

이제 호주 노사관계법에서 일어난 변화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개관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먼저 그런 변화의 맥락이나 배경을 조금 말씀드려야 하겠군요. 사회자의 소개에서도 언급이 됐지만 호주노총과 노동당은 이전 노동당 집권기엔 굉장히 긴밀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는 노동당 정부가 참여하는 노사정 협약을 통해서 협력관계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임금을 억제하는 대신에 사회복지 혹은 사회적 임금을 증가시키는 내용의 사회적 협약이었지요. 여기에는 또한 무상의료의 재도입과 연금의 점진적인 증가도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노동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렇게 노정 간의 중앙 집중화된 방식으로 얻어낸 사회적 협약이, 오히려 현장에서의 조직화 필요성을 떨어뜨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협약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배웠던 것은 그런 긴밀한 관계에 따르는 ‘비용’이 있더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비용은 보수세력이 집권하게 되자 더더욱 크게 느껴졌죠. 보수세력이 집권했을 당시 우리는 맞서 싸울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편 호주노총과 과거 노동당 정부와의 합의한 바에 따라, 집권 자유당 정부는 노사의 협상을 통해 임금을 점진적으로 올리도록 요구받았습니다. 호주노총과 노동당 정부의 합의는 제도화된 노동법상 최소기준에 기반해 노사가 협상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죠. 노동 측은 이러한 제도적 보호의 대가로서 생산력 증가를 요구받았고요. 그러나 보수 정권이 입안한 새로운 법안들이 이런 협약을 바꿔놓았습니다. 사실 보수세력은 집권한 다음에도 상원에서는 다수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005년에야 다수를 차지하게 됐는데, 그러고 나서 제일 처음 한 일이 바로 노사관계법을 건드리는 것이었죠. 그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직접투표도 없었습니다. 제기된 것들이 보수세력이 집권한 선거 이전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사항들임에도 말입니다. 이제 예상치 않게 상원 다수를 차지하면서 그들이 20년 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어떻게 실행했는지 간략하게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월별로 제한을 두었던 해고 조항을 없앴고, 노동자들은 100명 이하 사업장에서 일을 했을 때 해고로부터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해고를 할 수 있도록 법 조항을 개악했기 때문이죠. 물론 “임신을 이유로 한 해고 제한”과 같은 차별금지 조항들이 일부 남아있긴 했었습니다만 해고 시에 이유나 사유를 댈 필요가 없다는 것에 비춰보면 그런 차별금지 조항도 사실 무력화된 것이죠. 이러한 개정법이 시행되자마자 바로 수천 명이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냥 사장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조직 활동가들이나 대의원들도 많이 해고당했죠. 노조가 생길까봐 미래에 노조 지도자가 될 만한 싹수가 보이는 사람을 모조리 해고했다고 하는 말을 어느 사용자에게서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알고 보니 자른 놈들이 우리 회사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들이었다.”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저희는 이러한 부분을 선거운동 기간에 계속 강조했습니다. 보수정부 치하에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최저임금의 동결·후퇴만이 가능했던 ‘공정임금위원회’

다음으로 100명 이상 사업장에서는 ‘사업 운영상의 이유’로 해고를 당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업 운영상의 이유’라는 것에는 아무 거나 갖다 붙일 수 있죠. 그 결과 단체협약 조건하에서 일을 하다가 새로운 법체계 속에서 개별협약으로 재고용된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해고를 당했죠. 이전에도 개별협약은 가능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노사관계위원회가 설정한 법정 최소기준을 상회하는 경우에만 개인협약이 가능했었죠. 노사관계위원회는 호주 의회 다음에 호주 역사상 두 번째로 설립된 공식 정부기관입니다. 참고로 호주 헌법은 1901년에 만들어졌습니다. 

1890년대에 아주 격렬한 노사갈등을 바탕으로 호주 헌법에 대한 논의 속에서 노사관계위원회가 설립이 된 것이었죠. 노사관계위원회는 독립적인 기관이며 또한 독립적인 노동법원이 그 안에 속해 있습니다. 또한 노측이든 사측이든 노동법원에서 독립적인 판결을 얻을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1997년에는 처음으로 최저임금을 노사관계위원회에서 설정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노동과 관련해서, 즉 작업장의 노동과 관련해서는 최소한의 공평성이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인식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수 정권의 새로운 법안들이 호주 역사 100년 동안 이뤄왔던 원칙들을, 그리고 그 원칙들을 기반으로 이뤄왔던 성과들을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독립적인 최소기준을 무력화했고 노동자가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범위도 굉장히 축소됐습니다. 특히 작업장에서의 최소기준이 크게 축소됐고 사용자들이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을 훨씬 더 수월하게 만들었죠. 게다가 노동조합의 활동 범위를 상당히 제약했죠.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자유롭게 개별 사업장들을 출입할 권리가 제한되기 시작했고, 노사관계위원회도 최소기준들을 개선시킬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습니다. 노사관계위원회에게 남겨진 유일한 권한은 최소노동기준을 악화·축소시키는 것뿐이었습니다. 

제가 호주노총에서 예전에 맡은 일들 중에 하나가 최저임금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하려면 경제적인 논리들을 발굴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왜 최저임금이 올라야 하는지와 관련해서 개발한 논리를 노사관계위원회에서 제기하고 주장하면, 사용자들은 왜 줄이거나 동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논리를 얘기를 합니다. 아시다시피 사용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식이죠. 물론 정부는 주로 사용자들에게 동의를 했습니다만, 그런데 새로운 법안은 최저임금을 독립적인 기관에서 심의할 권한마저 없앴습니다. 

대신 ‘공정임금위원회(FPC, Fair Pay Commission)’를 설립했는데 거기에는 공정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임금을 올리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전제하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관의 설립과 관련된 법안 내용에 “일자리가 사라질 경우에는 최저임금을 올릴 수 없다”고 아예 못을 박았습니다. ‘오로지 낮추는 것만 가능한 기관’이 된 것이죠. 최저임금은 동결되도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임금저하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저하’만 할 수 있는 기관이 된 것입니다. 

노동의 위기에 대한 호주노총의 전략적 대응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러한 변화들은 우리들에게는 매우 큰 위기였습니다. 작은 변화가 아니라 홍수 같은 변화를 맞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된 후 실행되기 전까지 단지 24시간만이 주어졌습니다. 법안을 검토할 시간이 하루밖에 안 되었던 것이죠. 정부에서는 새 법안이 “더 공정하고 단순한 시스템”이라고 선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새 법전은 기존의 것보다 훨씬 두꺼웠지요. 어쨌든 우리는 밤을 새서 그 내용을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수도로 날아가 정부 사람들과 법안을 만든 변호사들을 만나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뭔가 실수가 있는 것 같아요. 잘못된 게 있습니다. 설마 이 권리들을 모두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겠죠?” 그 사람들이 대답했죠. “맞습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운동을 조직하고 선거가 가까워짐에 따라 그들이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여론이 안 좋았기 때문이었지만 이미 늦었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봤을 때 새 법안 자체를 정부가 소화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렇지만 사실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6개의 의석을 되찾아 와야 했는데, 그것은 노동당의 지지도가 아주 크게 올라야 가능한 수치였습니다. 

물론 노동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호주노총은 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죠. 노동조합은 법안을 바꾸기 위한, 다시 말해 보수 정권 시절 도입됐던 법안을 폐기하기 위해서, 또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지하고 지원할 수 있는 어떤 후보라도 지원하기 위해서 운동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노동당은 그러한 기준을 충족시킬 거란 예상은 했죠. 어쨌든 이러한 측면에서 이 운동은 끝난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노동당이 약속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게끔 말이죠.

호주노총의 집행위원회는 선거를 준비하면서 과거와 다른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선 이 선거를 이기지 못하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 혹은 그와 같은 수준으로 노동운동이 미래에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 모두가 동의했고, 이를 기반으로 선거에 큰 파급력을 가질 캠페인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캠페인을 준비하면서 약 3,000만 호주 달러(약 200억 원) 정도를 썼습니다. 미국 돈으로는 2,200만 달러 정도 되겠군요. 그리고 그 돈의 절반은 TV 광고를 집행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벽에 붙어 있는 저 포스터가 그 광고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만든 첫 TV 광고 중 한 장면이죠. 

100억 원 넘게 투여된 TV 광고, 역대 최대 규모의 집회

어느 여자가 사장에게 전화를 받고 있는 장면인데 그 여자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쉬는 날 사장이 전화를 해서 “누군가 출근을 안 했기 때문에 당신이 지금 당장 나와서 일을 해야 한다.”고 지시를 합니다. 그러나 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안 돼요. 오늘은 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시간이에요.”라고 대답하고, 사장은 “지금 당장 안 오면 당신은 해고야.”라고 얘길 하죠. 그래서 이 여성이 “아니, 그렇게 하실 수 없어요. 그러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면, 사장이 “새로운 법에 따르면 아무 문제없어!”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법안들이 이런 상황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것이 바로 이 광고의 메시지였죠. 

이 광고는 호주 노동자들에게 매우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처음에 전화를 받고 상대편이 사장이라고 말을 했을 때에는 굉장히 호의적으로 대했던 여성이, 전화를 끊을 때에는 울고 있는 모습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했던 거죠. 이러한 감정 변화는 이 광고가 일하는 사람들, 일하는 가정에 구체적인 상황과 고민을 정확하게 반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즉, 보수 정권이 노동자들의 영역이었던 가족, 안전, 집 등을 침범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노조활동과 노동운동이 가족, 안전, 고용안정, 주택과 같이 보편적이고 절실한 것과 함께 하겠다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 주효했던 거죠. TV 광고가 상투적으로 파업권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채워질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물론 파업은 중요한 문제입니다만, 조직되지 않은 75~80%의 노동자들은 그러한 주장의 보편성을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다수의 조직된 노동자들도 이해를 못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법안들이 통과된 직후 여론조사를 해보니 38%만이 새 노동법안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더군요. 거기다가 그 중의 30%만이 새 법안에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지역을 기반으로 직접적인 접촉을 중심으로 진행된 우리 캠페인이 완료된 다음에는 80%가 법안 내용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 중의 64%가 법안에 반대하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저도 여론조사에 관여했고 선거 날에도 일을 했습니다. 그때 경험한 것을 잠깐 말씀드리면, “노동당에 투표하기는 싫은데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서는 어디에 투표해야 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보수적인 성향의 유권자들, 여자가 우는 걸 원치 않는 유권자들이었죠. 

또 다른 광고 하나는 가족 3대가 같이 모여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은퇴했습니다. 은퇴했으니까 괜찮습니다. 어머니도 괜찮죠. 하지만 아들이 걱정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안전할지 몰라도 가족, 후세대, 자녀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했던 거죠. 이런 홍보뿐만 아니라 대규모 집회도 열었습니다. 자료집에 있는 사진은 멜버른에서 개최된 이번 캠페인의 집회 모습인데, 이는 호주에서 역대 최고 규모였습니다. 이 집회 이전 최대 규모는 베트남전쟁 관련 집회와 반핵 집회였죠. 이 집회의 조직화 과정에서도 제가 조금 관여했는데, 인상적인 내용을 조금 말씀드리면 1,000개의 유모차가 대오를 선두에서 이끌던 모습을 들 수 있겠네요. 

또 젊은 세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블로그 등 인터넷도 굉장히 많이 활용을 했습니다. 그 결과 조직되지 않았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블로그들을 통해서 저희 홈페이지에 가입을 하기도 했죠. 캠페인 동안 골치를 아프게 했던 문제 중 하나가 서버 과부하로 인한 홈페이지 다운일 정도였습니다. 친구들과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데 서버가 다운이라면서 복구해달라는 전화도 수천 통을 받았고, 이러한 내용들에 대해 동영상을 올리는 일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노조 활동가들만 사용을 했었는데 일반인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던 거죠. 사실 일부 우려스러운 대목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종의 ‘괴물’이 만들어진 건데, 어쨌든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노동당은 싫은데, 노동자 권리를 위해선 어디 투표해야 하죠?”

작년 11월에 대규모 집회들을 개최했습니다. 자료집의 이 사진은 멜버른 근처의 크리켓 구장입니다. 1956년에 올림픽이 개최된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집회를 계기로 해서 모토를 “당신은 작업장에서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싸울 권리가 있다.”에서, “당신의 일터에서의 권리는 투표를 통해 쟁취할 만하다.”로 전환했습니다. ‘캠페인’에서 ‘선거 국면’으로 전환한 것이죠. 그리고 전략적으로 24개 지역구를 선정해서 상근활동가들을 배치했습니다. 

이 상근활동가들은 지역공동체, 지역단체들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조는 물론이고 교회의 종교 지도자들, 여성 조직들, 다른 지역운동들, 그리고 많은 미조직 노동자들과 함께 했죠. 집회나 선전물 배포, 지역 시의원 구의원에 대한 압력, 선전활동 등 다양한 활동들이 활발하게 진행했습니다. 광고를 ‘고공전’에 비교할 수 있다면 이러한 활동들은 ‘현장에서의 전투’라고 할 수 있겠죠. 아무튼 수천 명의 활동가들이 현장에 침투해 우리가 갖고 있는 명단들을 통해서 투표 독려를 했죠. 

호주에서는 투표가 의무사항이었는데 보수 정부가 이 조항도 바꿨습니다. 선거인 명부를 확정하는 기간을 단축한 것이죠. 호주에서는 선거일을 정부에서 정할 수 있는데 보수 정부는 선거일이 공표되는 날 즉시 선거인 명부를 확정해 버렸고, 이것은 젊은 층을 투표에서 배제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우리에게 우호적인 시민들이 미리 선거인 등록을 하도록 계속 독려했죠. 그 과정에서 우리는 9만 3천 개의 문을 두드려, 3만 9천 명과 대화를 했고, 3백만 개의 선전물들을 우편함에 꽂았습니다. 

각 선거구에는 평균적으로 1만 5천여 명의 조합원이 있는데 이들 모두가 노동당을 지지하지는 않았죠.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약 30%는 노동당에 투표하고 30%는 자유당, 10%는 기타, 나머지 30%는 부동층이었습니다. 우리는 선거캠페인을 통해 이 30%의 부동층 노동자들과 최소 한 번씩은 직접 대화를 했습니다. 중앙에서는 개별 노조들을 독려해 아주 강력하게 부동층 노동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투표를 독려하고 설득을 하도록 요구했죠. 이러한 실천은 사실 현장 노조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죠. 그러나 선거 결과는 우리의 캠페인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투표일에는 전국에서, 특히 아까 말씀드렸던 24개의 전략 선거구에서, 보수자유동맹, 노동당, ‘일터에서의 권리 쟁취 캠페인’ 이렇게 세 개의 주요 세력들이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거구에서 우리 캠페인이 가장 규모가 있는 세력이었죠. 투표소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우리 캠페인의 상징 색깔이었던 오렌지색이 물결치는 모습을 어디에서든 볼 수가 있었습니다. 오렌지색 모자, 셔츠, 팔찌, 배지 등등, 그래서 전 이제는 오렌지색은 보기도 싫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한국에도 많은 곳에 오렌지색(민주노동당 선전물과 복장을 의미함)이 있더군요(웃음).

선거 결과를 검토해보니 전국적으로 5.3%가 보수 정당에서 노동당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전략적 표적으로 삼았던 24곳에서는 이렇게 움직인 표가 7.1%였습니다. 이것은 한 쪽에서 한 쪽으로 옮겨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굉장히 큰 변화입니다. 자유당의 하워드 총리도 본인이 갖고 있던 의석을 잃었습니다. 모든 선거 전문가들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핵심적 의제가 노사관계였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들이 2위로 꼽은 의제는 환경 문제였는데 1위와는 격차가 좀 크게 났었죠.

보편의제 선점-지역공동체의 목소리-일반 국민을 위한 활동

이번 선거를 통해서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요? 돈, 자원, 시간, 계획의 중요성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오렌지색과 메시지를 연동시키는 브랜딩(branding), △현장에서 바닥을 훑는 활동과 대중동원, △세밀하고 세련된 광고 전략, △지역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지역공동체에서 우리 캠페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언론 활용 등의 전략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호주는 땅덩어리가 워낙 넓기 때문에 서부에 있으면 동쪽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서부에서는 서부에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캠페인 과정에서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언론과 연결시켜서 스스로 얘기를 하게끔 동의를 구하고 설득했습니다. 실제로 해고 등을 당한 노동자들이 TV 광고에 나와서 직접 자기 얘기를 하도록 했죠. 이런 광고들은 광고상까지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캠페인을 벌이는 동안 정부에서도 하루에 100만 호주 달러(약 7억 원)를 매일 광고에 썼습니다. 그런데 이미 현장 밑바닥에서 우리가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그런 노력들은 점점 더 쟁점을 부각시키는 효과밖에 없었죠. 정부가 “괜찮을 거다. 이 법안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의 고용안정은 지켜질 거다.”라고 얘기하면, 우리는 현장에서 노동권이 박탈당하는 다른 사례들을 발굴해서 내보냈습니다. 이는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게 바로 일찍 시작한, ‘선점’한 측이 갖는 장점 혹은 혜택입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다 쓴 것 같아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호주 국민들의 다수가 미조직 노동자인 것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노동운동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 “긍정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대답들이 상대적으로 무척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약 88%의 조합원들과 60%의 일반 대중들이 “노동운동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긍정적인, 좋은 활동들을 해왔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이는 정부에서 국민에게 ‘두려움’을 심기 위한 캠페인, 즉 “노조 깡패들이 국가를 점령할 것”이라는 캠페인을 굉장히 오랫동안 많은 돈을 쏟아 부으면서 했음에도 나온 결과입니다. 

우리는 노조 홍보물이나 사진들을 내보낼 때도 굉장히 일상적인 조합원들의 모습, 즉 경직된 상황이 아니라 그냥 옆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노동자들의 사진들을 썼습니다. 또한 건설이나 금속 노동자들처럼 대표적인 노동자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선생님, 보건 노동자, 공무원 등등 다양한 노동자들을 더욱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선거운동 기간에도 매주 하루를 그런 노동자들의 날로 정하고, 그러한 노동자들에 관한 정치적 퍼포먼스를 했죠. 예를 들어 ‘안전의 날’로 정해진 당일에는 경찰, 소방수 같은 분야의 노동자들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는 식이죠. 전국적으로 수천 명의 경찰들, 구급차 운전수, 그리고 다른 긴급서비스 노동자들, 해안경비대 등 다양한 노동자들이 나와서 행진하면서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운동’에 지지를 표명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벌이는 식이었죠. 이는 일상 속에 노동이 있다는 것, 노동자들이 사실 우리 일상 속에 심어져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쇄도하는 노조가입 문의와 조직률의 반등

어쨌든 선거는 끝났지만 이 캠페인은 지속될 것입니다. 방식은 조금 달라지겠죠. 이제 노동당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될 텐데, 이전처럼 협약을 맺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따로, 독립적으로 생존할 방법을 장기적으로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노동당 정부와도 싸워야 할 것이고 압력도 가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다만 보수 정권이 후퇴시켰던 노동법안들은 굉장히 큰 폭으로 수정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노동당과 상당부분 합의를 했습니다. 아직 몇몇 부분에서는 합의되지 않은 쟁점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말이죠.

최근 호주노총에는 캠페인에 참여했지만 조합원이 아니었던 노동자들로부터 “노조에 어떻게 가입하냐”는 문의 전화가 매일 오고 있고, 그리고 실제로 가입을 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번 캠페인은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도 굉장히 흥미롭고 박진감 넘치는 경험들이었고 이를 한 번 경험한 노동자들이 앞으로도 그런 일들을 계속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운동을 형성하는 데 기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일부 통제를 못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통제를 못하는 사람들도 우리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앞으로 잘 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강하게 줬으면 하고 바랍니다. 이상으로 발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태현: 굉장히 흥미롭게 잘 들었습니다. 법 개정 이후에 노동자들의 권리가 어떻게 악화됐는지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2006년 말 이후 총선 투쟁을 전개하면서, 대중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광고나 직접 발로 뛴 현장에서의 활동들로 선거에서 승리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앞으로도 이 부분들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가 중요한 문제일 것이라는 말씀까지 해주셨습니다.

발제 과정에서 나온 ‘최소기준’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부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노사 간의 분쟁이 생겼을 때 관할하는 노동위원회가 상당히 친자본적이라서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호주에서는 우리의 노동위원회와 비슷한 노사관계위원회라는 곳에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판결들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보수 정권이 집권한 이후 노사관계위원회의 최저임금 결정권을 빼앗아서 공정임금위원회라는 곳에 돌리고 이곳에서는 최저임금을 삭감하거나 동결시키기만 했다는 것이죠. 이제 지정토론자들의 토론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님의 토론을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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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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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um_03.jpg김유선: 최근에 호주 상황과 관련해서 사전에 알고 있던 것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토론자로 참여해서 조금 막막했는데, 발표 말씀을 듣고 보니 상당히 흥미 있는 내용이 많네요. 특히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몇 가지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타적 지지’ 의존을 넘어서는 노조 정치활동 기획해야

노동자들이 개별노동자들의 고용형태 변경에 대해서 갖고 있는 태도와 정치적 분위기가 1997년 한국에서 정리해고제도 도입과 관련해 벌어졌던 분위기와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경우 일단 노동이 정부쪽에 후퇴 또는 양보를 했는데, 호주는 오늘 말씀을 들어보니 선거를 통해 승리를 해냈네요. 그런 측면을 잘 검토하면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갖고 있는 민주노총이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 호주노총이 배타적 지지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현안을 가지고 독자적인 활동을 통해 승리를 거뒀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최근 들어 호주에서 조직률이 증가하고 있다고 발제자가 말씀하셨는데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호주의 조직률은 1990년 49% 정도를 유지하다가 5년 전인 2002년에 23%까지 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최근의 조직률 상승이 종래부터 해왔던 조직화 모델의 성과로 봐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최근 선거 국면과 맞물려 진행된 일터에서의 권리 쟁취 캠페인 때문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또 오늘 발표에서는 없는 내용인데 제가 알기로는 호주노총은 1990년대 후반 ‘전략적 노동조합주의’를 운동 방침으로 채택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의 구체적인 공과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2000년 호주노총 총회에서 채택한 새로운 전략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forum_04.jpg이병훈: 오늘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부담됐었는데 오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선 호주 노동조합이 이번 선거를 통해서 정권교체도 이루고 조직률도 상승시킨 데 대해 축하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호주 국민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내고 함께 승리를 함께 쟁취했다는 것에 대해 축하를 드립니다. 그리고 리처드 와츠 실장이 민주노동당 대선 국면에서 많은 후원과 연대를 하기 위해서 일부러 시간 내서 오셨다고 들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명확한 목표를, 직접 현장활동을 통해, 국민과 함께

와츠 실장의 발표는 매우 흥미롭고 여기 계신 분들한테도 많은 감동을 줄 만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 승리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 그리고 우리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그 이유를 공부할 값어치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2000년부터 현재까지 호주 시드니 대학의 러셀 란즈베리 교수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면서 2005년과 2006년 호주를 4~5번 방문했습니다. 당시 호주 노조활동가들과 토론도 하고 노조도 방문해봤는데, 무척 침체된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노조 간부들은 “노동운동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권 교체가 필수적”이란 말을 했었는데요. 마침내 호주 노동운동이 현장 홍보와 현장 조직화, 정권교체 의지로 뭉쳐서 이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은 호주 국민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반길 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번 대선에서 보수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은데, 그 정부가 2008년 초에 호주의 개악된 노동법을 베껴오기 전에 호주노총과 노동당이 빨리 법 개정을 이뤄달라는 부탁도 드리고 싶네요. 

앞서 김유선 소장도 지적했듯이, 이번 호주 노동운동 승리는 우리에게 1997년의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상기시킵니다. 당시 우리는 파업투쟁을 통해서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 노동조합의 힘이 정부와 제도로까지는 확고히 정착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지속적으로 노동법이 개악됐고,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증가, 그리고 그러한 문제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노동운동의 침체 등의 조건에 놓이게 됐습니다. 이런 한국적인 상황 속에서 호주 노동운동의 승리 사례는 새로운 돌파구를 열기 위한 시사점과 실천적인 계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주 노동운동의 승리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으로는 세 가지 정도를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발제를 들은 모두가 느끼듯이 호주노총이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뛰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그 목표의 쟁취를 위해 조합원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게’ 호소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을 만들고 실행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그 전략을 ‘구체적인 현장투쟁’ 속에서 녹여냈다는 것이죠. 활동가들이 24개 지역구에서 무려 연인원 40만 명의 사람을 만나서 설득하고 몸이 움직이는 실천을 했다는 점이 저로서는 무엇보다 주목되는 지점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보면서 민주노총을 포함해서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요즘에는 목표도 분명치 않고, 전략 면에서도 조합원의 틀 내에 안주하면서 날로 반노조적 정서가 확산됨에도 국민에 다가서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고, 그러한 가운데 나날이 현장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됩니다. 호주노총이 승리할 수 있었던 세 가지 이유, 즉 목적의식, 국민과 함께 하는 전략, 그리고 현장에서 몸으로 움직이는 실천 등을 치밀하게 검토하고 우리의 현재를 뼈저리게 반성을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다음으로 와츠 실장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이번 승리는 한국의 1997년 투쟁과 비슷하게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시장 유연화 개악에 대한 저항인데, 이미 보수 정권은 지난 11년간 호주를 많이 망가뜨려놨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번 노동당 정부에서 다시 노동 주도적인 노동시장 개혁을 진행하려면, 즉 우리가 바라는 노동체제로 바꾸려면, 법도 새롭게 개정해야 하고 노동보호적인 정책도 만들어 시행해야 하고 할 텐데요. 저지투쟁에서도 구체적인 전략적 목표가 있었듯이 노동당 정권과 호주 노동조합운동이 이런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새롭고 구체적인 전략전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발제 과정에서 노동당 정권과도 싸운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노동체제를 다시 새로 정비하고 재발전시키기 위한 고민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태현: 두 지정 토론자 분들이 잘 지적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럼 와츠 실장의 답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