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 사무금융연맹은 산별노조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인가

노동사회

2008년 가을, 사무금융연맹은 산별노조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인가

편집국 0 4,016 2013.05.29 09:15

사무금융연맹은 1987년 6월 항쟁의 열기 속에 금융노련에서 분리되어 나온 한국자유금융노련이 모태가 되었다. 수개월 동안의 투쟁을 통해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하지 않는 최초의 연맹으로 합법성을 쟁취한 이후, 보험노련과의 통합(1995년), 민주금융연맹과의 통합(1997년)을 거쳐 현재의 연맹이 되었다. 한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무금융연맹 소속 단위노조는 급격한 퇴출과 상시적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이른바 ‘업종노조’ 결성을 급속히 추진했다. 그 결과 상호저축은행노조, 생명보험노조, 증권산업노조, 손해보험노조, 새마을금고노조, 전국축협노조, 전국농협노조, 외국금융기관노조, 전국수협노조가 속속 결성됐다. 현재 연맹은 9개의 업종노조와 1개의 직종노조(보험모집인노조), 1개의 지역노조(서사노), 그리고 93개의 기업별노조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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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금융연맹은 10월1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대산별노조 건설 방침과 일정, 하반기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 사무금융연맹 ]

21세기 들어 세 번째 산별노조 전환 추진, 이번에는!

연맹은 이미 지난 2001년 대산별노조 건설을 추진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는 2002년 9월 산별전환을 결의한 단위노조가 6개 노조 5,813명(조합원 대비 8.1%)에 머물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통합연맹의 2대 집행부가 2년 동안 대산별 전환을 추진했으나 투쟁을 통한 조직적 구심을 형성해내지 못했고, 구체적인 쟁점도 만들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소산별노조의 지도부가 대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위한 결단을 내리지 않았고, 건설시기가 집행부 임기와 맞물려 집행력을 확보할 수 없었던 것도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2005년에는 다시, 교섭권, 재정, 인력의 집중을 “느슨하게 규정한 산별노조”의 기획안이 검토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느슨할수록 더욱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만을 확인한 채 폐기됐고, 이후 대산별노조 건설사업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그런데 2006년 들어 4대 집행부가 산별노조 기획단을 거쳐 대의원대회에서 방침을 확정하고 다시 한 번 대산별노조 건설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2007년 10월 연맹의 임시대의원대회는 △연맹 산하 모든 단위노조는 2008년 2월까지 산별전환을 위한 총회(혹은 대의원대회)를 실시하고, △(전환결의 사업장 수에 상관없이) 2008년 2월 창립발기인대회를 개최하며, △연맹은 2008년 10월까지 추가 전환사업과 대산별노조 조직강화를 위한 사업을 최우선적으로 집행하고, △2008년 10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연맹 해산의 건을 상정한다고 결의했다.

이러한 결의와 추진의 과정을 거쳐 2007년 11월 현재, 전국상호저축은행노조, 증권산업노조 등 2개 업종노조와 9개 기업별노조에서 약 8,255명의 전환결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내년 2월 이전까지 전환결의 일정을 수립한 노조는 농협노조, 생명보험노조, 새마을금고노조 등 9개 노조로, 최소한 2만 5천여 명 규모의 산별전환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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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시한폭탄! 조직결성자유 대 대산별통합의 대립

이제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 부딪치는 몇 가지 쟁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첫째, ‘조직결성의 자유냐 차이의 극복과 단결이냐’라는 질문을 두고 이뤄지는 상황들이다. 연맹에 소속해 있던 증권업종 5개 기업별노조가 작년 8월에 민주금융노조를 설립했다. 민주금융노조는 규약상 증권업종뿐 아니라 은행, 보험 등 금융산업의 대부분을 모두 조직대상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연맹이 추진하는 것과는 별도로 또 다른 대산별노조를 추진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으며, 현재 민주금융노조는 장기간의 의무금 미납에 따른 의무 불이행으로 무기한 정권상태에 있는 상태다. 

민주금융노조 출범은 지난 2000년에 설립된 증권산업노조와 조직대상이 중복되는 2개의 업종노조 간의 문제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본조와 지부 간에 조직갈등을 겪고 있었던 다른 업종노조들은 이 경험을 보면서 ‘우리 내부에서도 이런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긴장감을 갖기도 했다. 또한 산별노조 내에서 지도부의 입장과 이견이 발생했을 때 탈퇴나 제명 등 폭력적인 해결이 아닌 방식으로 조직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준 경험이었다. 

어쨌든 연맹에 대산별 추진 기획단이 구성돼 있는 상태에서 논의도 없이 별도의 산별노조를 결성한 것은, 산별노조의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연맹의 산별추진논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터다. 그럼에도 민주금융노조는 연맹의 대산별노조 건설에 적극 개입하려 하지도, 별도의 조직건설을 택한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쟁점화하려 하지도 않고 있다. 또한 연맹 역시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노동조합운동의 원칙과 해결방향에 대해 조직적인 토론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증권산업노조뿐만 아니라 축협노조의 경우에도 본조와 지부 지도부의 노조활동에 대한 관점이나 견해의 차이에 따라 발생한 갈등문제로 인해 탈퇴나 제명 등의 조치를 경험한 바 있다. 이는 대산별의 경우 더욱 빈번히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좀 더 주의 깊은 대책이 요구된다. 또한 기업별노조의 관성을 유지한 채 진행될 수밖에 없는 ‘조직전환 조합원 결의방식’의 산별노조 건설 과정은, 조합원 결의방식으로 조직갈등을 ‘해결’해 버릴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기업별 노조와는 또 다른 조직운용에 대한 고민이 요청된다.

업종 소산별노조들은 ‘관성’ 뛰어 넘을 수 있을 것인가

둘째, 소업종산별 강화냐 대산별로의 통합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쟁점이다. 연맹 산하의 9개 업종노조는 1999년과 2000년 사이에 결성되었다. 업종노조들은 지난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기도 했으나, 초기 2~3년 사이의 역동적 시기를 경과한 이후에는 대부분 조직확대를 멈추고 정체되어 있다. 또한 조직갈등이나 기업합병에 따라 탈퇴하는 기업지부가 지속적으로 생겨나 조직적인 위기의식이 높아가고 있다. 

손해보험노조는 해당 업종의 조직노동자를 모두 포괄하고 있지만, 재정이나 인력의 집중도가 매우 낮고 대각선교섭 수준에 머무르는 한계를 안고 있다. 반면 증권산업노조와 축협노조는 통일교섭과 통일협약의 쟁취에도 불구하고 조직노동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로 인해 끊임없이 대표성 시비에 시달려 왔다. 또한 대부분의 업종노조들이 금융공공성 사업이나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 등 ‘산별노조다운 사업’을 거의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뼈아프다. 따라서 연맹의 대산별노조 건설사업은 업종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종노조는 ‘업종노조의 한계’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를 ‘업종노조의 강화’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 관성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생명보험노조는 대형 기업별노조와 단일노조를 건설하거나 공동으로 업종본부를 구성하여 우선 생명보험업종의 총결집을 이루는 것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농협노조와 축협노조는 최근 들어 농협중앙회와 경총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지역적 투쟁에서 과거와 같은 우위를 보여주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협동조합산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완전히 접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난 4월 노조간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업종노조 결성 이후 업종 내부의 단결은 강화되었지만 업종을 넘어선 연대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대부분의 업종노조는 대산별노조 건설의 대의에는 공감하지만, 대산별노조 건설이 업종노조를 강화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상태의 업종노조들 9개에 전체 조합원의 50% 이상이 소속되어 있어, 사실상 이들이 대산별노조 전환의 키를 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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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14일 있었던 사무금융연맹 산별노조 준비위원회 1차 전원회의 모습 ▶ 사무금융연맹 ]

조직체계 설계, 지역보다 업종에 무게가 실리긴 하나…

셋째, 업종 중심이냐 지역 중심이냐 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지난 2002년 최초로 통합산별노조 건설을 시도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쟁점사항이다. 우리 연맹에는 수십에서 수백 개의 지점을 가진 생명보험, 손해보험, 증권, 신용카드 등 전국사업장 형태의 업종 조합원이 3만 3천여 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 업종들에서 노동조합은 지난 20여 년 이상 업종협의회와 업종본부, 그리고 업종 소산별노조 활동을 통해서 연대사업과 공동교섭을 진행해왔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반면 이들은 지역본부나 지역사업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더 나아가 부정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업종에 소속된 해당 기업들의 모든 문제가 본사 중심,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노조활동이 집행부 중심의 상층활동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동일 업종의 연합회, 중앙회, 협회나 감독기구, 해당 정부부처 등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모두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 연대사업이나 정책사업, 투쟁사업 역시 중앙(서울)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등 때문에 업종 중심의 연대사업이 자연스럽게 단결의 구심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협, 축협, 수협, 상호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 지역별로 독립채산적인 형태로 운영되는 서민금융기관들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이 업종에 해당하는 조합원은 1만 8천여 명에 이르며 연맹 소속 전체 조합원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들은 지역별로 독립적인 소규모 사업장들로 이루어져 있어, 지역 내에서 교섭과 투쟁이 모두 이루어진다. 때문에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한 연대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존의 조직체계 역시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업종들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는 사무금융 대산별노조는 ‘업종 중심의 조직’과 ‘지역 중심의 조직’을 함께 충족시킬 수 있는 조직시스템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2002년 첫 번째 산별노조 건설 시도 때는 협동조합은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정서가 매우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전국축협노조와 전국농협노조는 각각 지역에서 기업별노조로서의 활동 이력을 가지고 있으나,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 전국조직을 건설하여 8~9년간 단일조직으로서 활동을 축적해 왔고, 공동활동과 조직통합 논의를 계속해 왔다. 따라서 협동조합 노조들에게도 업종본부로의 통합은 사실상 당면한 과제를 더 자연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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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직체계를 ‘본조-업종본부-지부-분회’로만 가져가는 것은 조직 강화와 확대, 조합원들의 폭넓은 단결과 집중투쟁, 기업별 의식 타파 등에 있어서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서구의 산별노조나 국내의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전교조 등의 사례들만 보더라도 분명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지역활동 강화는 능동적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기업별 노조활동의 근간이 임단협이라고 볼 때, 보험, 증권, 은행, 신용카드 등의 업종에 속한 노조의 활동은 임단협 교섭, 분기별 노사협의회, 그리고 ‘1~2개월에 걸친 지역(지부 혹은 분회) 순방’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사는 조합원의 입장에서 보면, 단체행동이 아닌 한 1년 중 한두 차례 있는 분회순방과 간담회를 통해 본조 간부를 만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노조활동인 셈이다. 따라서 이들 전국사업장의 경우 산별다운 산별노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생활단위를 거점으로 하는 지역적 노조활동의 매뉴얼을 작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지역사업 주체가 매우 절실하다.

이렇듯 현재 연맹의 분위기는 조직체계에 대해 ‘업종본부를 중심으로 하되 지역을 강화하려는 지향을 분명히 한다’는 원칙이 대체로 합의된 상황이다. 그러나 지역을 강화하기 위해서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인가는 과제로 남겨져 있다.

산별노조로 가기 위한, 아직은 멀고 험한 길

넷째, 기업별노조의 해체냐 기업조직 인정이냐이다. 금속노조의 경우 ‘본조-지역지부-분회’라는 체계에서 분회조직은 사업장단위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산별전환의 경우에도 기존 기업별노조가 명칭만 ‘노조’에서 ‘분회’로 바뀌었을 뿐 사업장 자체의 분리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국사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금융기관의 경우 ‘본조-지역지부-분회’의 시스템은 기업단위의 지역조직에게 ‘헤쳐 모여’를 하도록 요구한다. 이런 식으로 급작스런 조직형태를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지역에서 발생한 민원의 대부분이 본사의 의사결정단위에서 해결된다는 점에서도 지역지부가 분회의 조직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산별노조로 전환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기업단위’의 조직적 역할이 있으며 기업단위 시스템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연맹에 속한 단위노조의 복잡한 현실을 감안하여, 대산별노조는 기업지부와 함께 업종지부와 지역지부를 모두 인정하기로 했다. 기업별 관성이 거의 없는 중소조직의 단일노조인 상호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의 경우에는 업종지부로 남게 되었다. 

이외에도 아직 연맹에서 실제 쟁점이 되지는 않았지만 산별로 가는 과정에서는 더욱 다양한 쟁점들과 만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합비 문제는 두말할 것 없이 가장 큰 쟁점사항이다. 산별준비위원회는 건강보험공단 기준 평균보수월액의 0.7%를 산별노조의 조합비 납부기준으로 제안하고 있다. 또한 산하 단위노조의 1인당 평균조합비에 대한 샘플작업과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거쳐서 창립발기인대회에서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또한 ‘산별교섭의 문제’ 역시 고민해야 한다. 산별교섭의 문제는 업종노조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창립 초기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의 역량으로는 전체 업종을 아우르는 사용자단체의 구성을 압박해내기는 힘들며, 업종 본부별로 현실적인 역량을 고려하여 진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별준비위원회는 규약제정 소위원회와 함께 사업계획 소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남은 3개월 동안 새롭게 건설될 산별노조의 교섭과 투쟁을 위한 사전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산별노조 건설은 임박한 산업구조조정 저항투쟁 

현재 금융권은 자본시장통합법 등 금융의 겸업화와, 은행·보험·증권을 결합한 금융상품과 종합금융서비스의 등장이라는 대규모 산업구조 개편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금융기관 간 M&A와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그에 따른 고용문제는 거의 재앙수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도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의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이미 수년간 지속되는 상시적인 구조조정 속에서 ‘시장에 적응’하는 데 온 신경을 다 뺏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무금융연맹의 대산별노조 건설사업은 다가올 산업구조 개편에 대한 공동대응과 공동투쟁을 위한 사업에 가장 적합한 체계가 무엇인가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또한 그 길에 얼마나 많은 간부, 조합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지가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