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이 글자를 배웠어요!

노동사회

까막눈이 글자를 배웠어요!

편집국 0 3,900 2013.05.29 09:13

실업계인 우리 학교에서는 종종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약물 오남용 문제부터 경제교육, 예절교육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이론적이고 일방적인 설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친구들은 쉽게 흥미를 잃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 강의도 비슷했습니다. ‘노동기본법 교육’이라는 내용을 접한 친구들은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아직 학생이고, ‘노동’ 자체를 조금은 먼 훗날의 일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왜 우리가 벌써 이런 강연을 들어야 돼?”라며 서로 의아해 하기도 했습니다. 

jhlee_02.jpg
[ 지난 9월7일 일산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있었던 노동인권교육 수업 모습. ]

알바도 저런 게 보호가 돼!?

하지만 강사님들이 미리 준비해주신 책을 시작으로 조금씩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강연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책을 뒤척이며 “법에 이런 것도 있었어?”라며 관심을 보이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미리 마련하신 노란 책이 친구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좋은 매개체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 관심과 호기심은 강연이 시작된 후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준비해오셨던 교재도 물론 좋았지만, 저는 특히 프레젠테이션 중에 있었던 플래시로 만든 동영상이 참 좋았습니다. 모 TV 프로그램을 패러디해서 재밌게 만들어진 점이 좋았고, 앞으로 사회인이 됐을 때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직접 실연해서 보여주었기에 ‘과연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저런 점도 법에 보장돼 있나?’라고 자문해 보도록 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리얼한 연기가 단연 최고였지만요. 

강의를 통해 알게 된 점들을 사실 반신반의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아르바이트생도 일한 기간에 비례해서 퇴직금도 받을 수 있고, 주말에는 1.5배의 수당을 받을 수 있고, 밥 먹는 시간까지도 노동시간에 포함된다는 점이 그랬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처음에는 우리 중 대부분이 “우리가 왜 이런 강의를 들어야 하니?”라고 질문한 친구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 3분의 1 이상이 지속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빠르면 3개월 뒤부터 진짜 노동자가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니, 그런 내용들이 매우 현실적으로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jhlee_01.jpg
[ 노동인권교육 영상교안의 한 장면. ]

“사장은 뭘 먹고 사냐?” “그런 얘기하면 잘려요!”

이렇게 유리한 사실을 알게 되다니! 처음에는 거의 모두 ‘설마’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 역시도 ‘에이, 이론적으로는 다 좋지 뭐.’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강연이 진행될수록 법에서 보호·보장해주는 노동자로서의 권리의 종류와 범위를 알게 되면서, 마치 글을 전혀 모르던 ‘까막눈’이었다가 한 글자 한 글자 글자들을 깨우쳐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법이 이렇게 생각보다 넓은 범위를 보호해주는지 전혀 몰랐고 그 속에 우리와 같은 아르바이트생도 포함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그날 강의를 듣지 못했던 한 친구에게 “알바생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대.”라고 가르쳐주자 그 친구는 “그건 정규직이고.”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도 포함이 된다니까!”라고 재차 말해 주어도 “그럼 사장은 뭘 먹고 사냐?”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법을 모르고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반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강연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르바이트를 1년 반 이상 해온 친구들조차 근로계약서나 퇴직금은 물론 야근수당이나 주말, 휴일의 수당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새로 알게 된 사실, 몰랐지만 우리가 갖고 있었던 많은 권리들에 대해 토의하면서 그러한 권리들을 주장할 수 없다는 의견이 조금 더 많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얘기하면 잘려요.”라는 의견과 “잘리면 신고하고 관두면 되지.”라는 의견들이 함께 나오긴 했지만, 야근, 주말 수당은커녕 오히려 약간의 보너스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분위기였고, 오래 일하긴 했지만 퇴직금은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생각들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놀라워하고,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 하는 바로 그곳에서 사장님께 뭔가를 말씀 드리고 요구하거나 근무 환경이 바뀌는 일은 없었지만, 몰랐던 권리를 알게 된 그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지’에서 내딛는 한 걸음, 그 소중한 변화

어느 수업시간에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가고 비인격적·비합리적인 대우를 받는 점에 대해 K선생님께서는 그 이유 중 한 가지가 ‘무지’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전혀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그로 인한 무지함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그저 그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포기를 넘어 아무런 비판조차 없이 주어진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들 역시 같은 인간이고 그 무엇보다 소중한 인권을 지니고 있는데 말입니다. 비록 매우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권리를 알고 그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의 권리를 찾기 위해 민주 항쟁을 벌였던 먼저의 세대들처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분신도 서슴지 않았던 고 전태일 씨처럼, 우리도 이번 강연을 통해 배워 알게 된, 조금은 놀라웠던 노동자의 권리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때까지 차근차근 하나씩 노력할 것입니다. 쉽게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는 냄비보다는 한방울 한방울 계속 노력해서 바위도 뚫는 낙수처럼 꾸준함을 갖고 한발 한발 내딛는다면, 우리가 기성세대가 될 그때에는 노동자에게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새로운 점에 눈 뜨게 해 주시고, 중요한 가치들을 알려주신 이번 강의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꾸벅)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