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한마디로 예측불허이다. 이는 비단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오락가락하는 대외정책 발언 때문만도, 그가 외교 문제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성’을 자신의 가장 큰 무기로 삼고 있다. 상대방을 헷갈리게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최대한 관철시키겠다는 ‘헤드 게임’을 즐긴다고 자부한다.
대북정책은 여러 행위자들과 여러 변수들의 복잡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자 결과로 나타난다. 기존 관성과 변화에 대한 욕구가 끊임없이 충돌하기도 하고, 조건과 환경에 따라 예상하지 못했던 정책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말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북한과의 “터프하고 직접적인 대화”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겠다고 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내내 ‘전략적 인내’로 후퇴하고 말았다. 이러한 변화는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측 범위 밖의 일들이었다.
북미 정상회담 의지 강력 피력한 트럼프
대선 후보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미치광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북한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입장을 내놨다. 역대 미국 대선 후보 가운데 북한과의 정상회담 의지를 가장 강력하게 피력한 인물이 그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2016년 5월 <로이터> 통신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만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김정은)와 대화할 것이며, 대화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트럼프는 대통령의 자질이 없다”며, 대표적인 이유로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들었다. “미국을 향해 핵무기를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가학적 독재자가 이끄는, 지구상의 가장 억압적 국가인 북한에 의한 위협을 생각해보라”며, 김정은을 상대하는 방법은 대화보다는 미사일방어체제(MD)를 비롯한 “동맹의 힘”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클린턴의 발언을 두고 “그들은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 꺼려지지 않느냐고 말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대화 용의를 거듭 확인했다. 또한 “(대화가) 효과를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진실을 알고 싶다면 아마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평양에 갈 생각은 없으며 김정은이 미국으로 오면 국빈 만찬이 아니라 햄버거를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9월9일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하자, 트럼프는 클린턴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그는 “북한의 핵실험은 클린턴 장관의 재앙적인 외교 실패의 결과 중 하나”라며,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종결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더 강력해지고, 더 정교해지기만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아울러 중국을 압박해 북핵 문제를 풀게 해야 한다고도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다음날인 1월6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한에 대해 전적인 통제권을 갖고 있지만, 만약 우리에게 제대로 된 지도자가 있었다면 우리는 중국에 대한 전적인 통제권을 가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역을 매개로 중국을 더 압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리 보는 트럼프 정부 대북정책
이러한 트럼프의 발언은 두 가지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김정은과의 담판을 선호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역을 지렛대로 삼아 중국을 보다 강하게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들을 참고삼아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전망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1차 변수는 트럼프가 대북정책을 어느 정도의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에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대한 역설이 존재한다. 올해 북한의 두 차례의 핵실험과 여러 차례의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는 대북정책을 미국 대선의 주요 화두로 올려놓았다.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도 차기 미국 정부의 우선순위 가운데 하나로 대북정책을 꼽았다. 이러한 사례에 비춰볼 때, 북한이 미국 행정부 인수위 기간이나 트럼프의 임기 초반에 추가적인 핵실험이나 인공위성, 중장거리 미사일 등을 발사하면 트럼프도 북한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주목의 결과는 ‘악순환의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북한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은 지난 11월 하순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의 전직 관료들을 만난 자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파악하기 전에는 양국 관계를 해칠 수 있는 도발 등 섣부른 행동에 나서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당선인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며 “그에 대해 더 파악하기 전에는 입 다물고 잠자코 있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 2321호 채택에 대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차분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전환될 것인가
1기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큰 목표는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해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정보기관과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북한이 2020년까지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재선에 도전할 트럼프로서는 악재가 될 수 있고, 또한 미국의 안보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트럼프는 이를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를 막기 위해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강도 높은 압박에서부터 김정은과의 담판, 그리고 ICBM 시설을 겨냥한 정밀타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옵션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한반도 정세의 핵심 변수는 ‘핵탄두 장착 ICBM’을 보유하려는 김정은의 시도와 이를 저지하려는 트럼프의 대응이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킬 것인가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양측의 초기 신호는 대화 가능성을 암시해주고 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자 ‘선택을 달리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전략적 패배’로 끝나게 됐다”며 차기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그 구체적인 방향은 다음날 <노동신문> 논평에서 언급되었다. “(제임스 클래퍼의) 견해에 기초해야만 다음기 미국 대통령이 현실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클리퍼의 견해란 ‘북한 비핵화’라는 불가능한 목표보다는 북한의 핵 능력을 제한하고 이를 위한 중대한 인센티브의 제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북한으로서는 트럼프를 상대로 ‘핵 동결’ 문제는 협상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셈이다.
트럼프는 당선 이후 현재까지 북한 관련 공개 발언은 12월1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가 유일하다. 그는 “‘하나의 중국’ 정책이 뭔지 이해하고 있지만, 무역을 포함한 여러 가지와 관련해서 중국과 협상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중국’ 정책에 우리가 왜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솔직히 중국은 북한 문제에서 우리를 전혀 돕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대만 문제를 북핵 문제 등에서 중국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는 또한 11월10일 오바마와의 회동에서 “진정 집중하고 싶었던 안건은 중동과 북한이었다”고 말했다고 <미국의 소리(VOA)>가 전했는데, 이는 북핵 문제를 우선순위 가운데 하나로 다루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대북정책 ‘키 플레이어’인 푸틴
북미 관계의 전개 과정에서 트럼프와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도 주목된다. 먼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이다. 트럼프는 10월17일 “지금 미국-러시아 관계는 냉전 이후로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내가 11월8일에 승리하면 취임 전에 푸틴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만큼 푸틴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고 또한 그와의 관계를 중시한다. 기본적으로 러시아를 경쟁자보다는 파트너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트럼프는 친러시아 인물인 렉스 틸러슨 엑슨 모빌 회장을 국무장관으로 지명했다.
이에 따라 나토의 확대 자제 및 대(對)러 경제제재 해제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도모할 것으로 예상되고, IS의 발호 및 시리아 사태에 대해서도 공동의 해법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트럼프와 푸틴의 유대 관계는 대북정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푸틴은 사드 배치 대신에 북한과의 대화를 강력하게 권고할 것이고, 이는 트럼프의 대북 접근과 일부 조화를 이루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푸틴이 ‘키 플레이어’ 가운데 한 사람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관련된 미중관계의 3가지 당면 과제
미중관계의 향방도 주목된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에서 중국이 위안화 평가 절하를 앞세워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미국의 적자를 눈덩이처럼 불리는 등 미국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 주범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리곤 미중 무역 전쟁을 예고하면서 “승리하겠다”고 장담했다. 이에 반해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 봉쇄를 겨냥한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양대 축으로 삼아 온 동맹 강화와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이 강하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미중관계의 당면 과제는 크게 세 가지이다. 사드 배치 여부, 유엔 안보리의 추가적인 대북 결의 이행, 그리고 6자회담 등 대화와 협상 재개이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도 조속한 사드 배치를 추진하면 미중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일대 파란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기존의 한반도 정책 3원칙(반전, 반핵,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에 더해 자신의 전략적 이익 수호를 추가하게 될 것이다. 또한 안보리의 대북 제재 수위를 크게 낮추려고 하면서 북중관계 강화를 도모할 것이다. 중국은 또 러시아와의 전략적 결속을 강화해 사드를 포함한 미국 주도의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전략 무기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공산이 크다. 예상컨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와 푸틴의 유대 관계를 자신의 입장을 투영시키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시진핑 독자적으로는 미국을 설득하는 데에 한계가 있겠지만, 푸틴과 손을 잡으면 사드 배치 철회와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시대에 주목해야 할 여러 행위자들
트럼프 시대의 북미관계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한명의 인사가 있다. 바로 NBA 스타 데니스 로드맨이다. 그는 지구상에서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와 친분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났을 정도로 김정은과의 친분이 두터웠다. 그런데 로드맨은 트럼프와도 절친 사이다. 그는 2015년 7월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다른 정치인은 필요없다. 우리는 트럼프와 같은 비즈니스맨이 필요하다”며 공개적인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고마워 친구,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시간이 왔네!”라고 화답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는 로드맨의 방북 후 ‘종북주의자’로 비난이 쏟아질 때, 그를 엄호했었다. 그는 2013년 3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데니스는 대단히 영리한 사람”이라며, 그가 말한 김정은과 오바마의 전화 통화는 “결코 나쁜 게 아니다”라고 말했었다. 로드맨이 북미관계의 중재자를 자처하거나 김정은이 그에게 메신저 역할을 요청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행위자들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팀 인선이 관건이다. 이미 지명되었거나 거명되는 상당수 인사들은 대북 강경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까지 트럼프의 한국 측 상대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이다. 권한대행 체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북 대화보다는 제재와 압박이 필요하고, 사드 배치를 통해 한미동맹을 강화하자고 요구할 것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자율성 커질 수 있어
트럼프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방위비 분담금 등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도 있다. 하지만 그의 발언 속에 담긴 직관은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다. 60년 넘게 유지되어 온 한반도의 현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현상 유지 체제의 핵심은 북미 간의 적대관계를 포함한 정전체제와 한미동맹이다. 그런데 역대 미국 정부는 대체로 현상 유지를 선호해왔다. 이는 북한의 핵을 앞세운 현상 유지 흔들기와 맞물려 한반도 위기의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역대 미국 정부는 이를 ‘제국 유지’의 근거로 삼아왔지만, 트럼프는 이를 ‘제국의 부담’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미국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고, 이는 곧 한반도 문제 해결의 자율성이 커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이와 병행되는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그리고 축소지향적인 한미동맹의 구조조정을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