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투쟁에 나섰던 여성노동자들이 살아온다면

노동사회

100년 전 투쟁에 나섰던 여성노동자들이 살아온다면

편집국 0 3,347 2013.05.29 09:32

지금으로부터 91년 전인 1908년,
먼지와 악취가 가득 찬 지하실에서 
빵 대신 먼지를 먹으며 
출입문도 잠긴 채 하루 14시간씩 일해야 했던 
미국의 섬유노동자들.

급기야 트라이앵글이라는 한 피복회사의 여성노동자 146명이
불에 타죽는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으며
드디어 분노에 찬 여성노동자들이 일어섰다.

“노조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임금을 인상하라!”

루투거스 광장에서 무장한 군대와 맞서며 외쳤던 
인간으로서, 그리고 노동자로서 피맺힌 절규였다.

- 3·8 세계 여성의 날 90주년 기념 전국여성노동자대회 편집비디오 대본 중에서 -


sangrim_01.jpg그로부터 12년이 지난 1920년 미국의 여성들은 선거권을 획득했다. 
현재의 ‘3·8 세계여성의 날’은 1910년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2차 국제사회주의여성회의에서, 「여성의 투쟁을 기리고 연대를 표방하는 국제 여성의 날에 대한 결의」를 채택한 후 국제적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성의 권리와 연대를 위한 활동을 토대로 UN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선포했고, 1977년 12월 UN총회에서 모든 국가가 ‘여성의 권리와 세계 평화를 위한 유엔의 날’을 정하여 공포할 것을 독려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2008년 한국에서 그들은 누구인가

1908년 여성노동자 투쟁이 올해로 100주년이 된다. 1908년이면 우리나라에서는 1907년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당하고 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때였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931년 5월29일, 평양 고무공장 임금삭감 반대투쟁 등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인 남성노동자의 4분의 1에 불과한 저임금, 하루 14시간의 노동, 비인간적 처우”에 시달리던 평원 고무공장 여성노동자들은 일본인 기업가의 일방적인 임금삭감 방침에 항의해 파업투쟁에 돌입했다. 파업 13일째 강주룡이 을밀대 지붕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갔고, 이후에도 치열한 투쟁을 벌이며 파업 한 달 만에 임금삭감을 철회시켜냈다. 

100년 전의 미국 여성노동자, 80년 전의 일제하 여성노동자를 2008년 우리사회에서 살려낸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이들일까? 아마도 가정 먼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떠오를 것이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로 통칭되고 있는 그 여성들은 ‘정규직 남성노동자’로 통칭되고 있는 사람들의 38%쯤의 임금을 받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청업체나 용역업체에 소속되어 원청업체에서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고, 바른말이라도 좀 하면 다음 해로 바로 계약해지 되니 속으로 응어리져 있는 사람들”, “영세업체에서 사장하고 나 하나 혹은 몇 명이 같이 일하다 보니 노동조합이니 근로기준법이니 모두 다 그림에 떡이고 사내 복지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사람들”, “가사 간병 노동자로 일하면서 퇴직금도 없고 4대 보험도 적용 안 되어 몸이라도 아프면 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바로 100년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일 것이다. 이 같은 여성들이 전체 여성노동자의 50% 이상을 점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의 삶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노조운동 성과, 여성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돌아갔을까 

얼마 전 부산에서 교육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자활후견기관의 여성, 가사 간병 재가파견 돌봄서비스 여성, 텔레마케터 여성, 한부모 여성, 사회적 일자리 여성들이었다. 교육 도중에 “여러분 중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는 분이 있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아무도 대답을 안 한다. 그래서 “왜 조합에 가입하지 않았습니까?” 하니까, “여건이 안 돼서”, “조건이 안 돼서” 그렇다고 한다. 작은 사업장이어서 노동조합을 만들 여건이 안 되고, 특수고용이나 가사 간병 여성노동자여서 노동조합을 아예 만들 수가 없는 여성들인 것이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뭘 하고 싶으십니까?”라고 물으니 “아이들 학원 보내고, 영어과외도 시켜주고, 내 집 마련하고, 여행도 가고, 문화생활도 가능한 돈”(임금인상), “자녀 학비지원, 내 집 마련 대출, 경조사비, 자기개발”(사내 복지), “정년 때까지 안정적으로 근무”(고용안정)라고 외치면서 즐거워했다. 그리고 “이 정도가 되려면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이거나 공기업이어야 하는데, 우리들은 아예 접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 어떡하죠?” 하니까 모두 웃으신다.

이 분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19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쟁취해 온 것들, 딱 그만큼이다. 지불능력이 있는 회사에서만 가능한 것들이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구호가 되고 있는 것이다. 1987년 이후 대기업 남성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이 성취한 것은 임금인상, 주택대출, 자녀학자금 지급 등 기업이 제공하는 복지의 향상과 사회보험의 혜택이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노동정책은 대기업 남성노동자 중심의 노동에 맞추어 있다. 그곳에 포함되지 못하는 영세사업체 노동자, 비공식 부문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등에 대해서는 노동법이나 사회보험체계에 적극적으로 포섭하려는 노력이 부진할 뿐더러, 그 수요조차 제대로 파악되고 있지 못하다.  

한편, 1987년 이후 여성노동자운동 역시 고용안정과 고용평등, 모성보호, 직장·가정 양립을 위한 지원조치 확대, 여성노동기본권 확대라는 ‘5대 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 같은 운동은 남녀고용평등법의 개정, 출산휴가에 대한 사회 분담, 보육의 공공성 확대 등과 같은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여성취업자 중 겨우 30%만이 이 같은 제도의 보호를 받고 있는 현실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이런 현실이 우리가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넘나들 수 없는 ‘벽’ 허물기

지불능력이 있는 사업장, 투쟁능력(?)이 있는 노동자들이 쟁취할 수 있는 목표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목표가 되면, 목표는 선명하되 해결방법은 너무나 멀어 사람들이 흩어지게 된다. 세계화와 양극화, 근로빈곤, 비정규직 이란 용어를 익숙하게 만든 1997년 경제위기 이후의 한국사회는, 경제성장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일자리를 통해서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회가 됐다. 그 사회 속의 우리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큰 사업장과 영세사업장, 부자와 가난한자,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 사이에 서로 넘나들 수 없는 고정된 벽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다수의 여성들이 이러한 같은 현실의 다른 끝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평생직장과 사내복지, 정규직, 가족임금이 보장되는 사업장 만들기를 목표로 하고 있는 노동운동에 포섭되기 힘들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함께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여성노동자의 힘’을 키우는 적극적인 시도가 있어야 한다. △사업장을 넘어서는 공정한 임금, △지불능력에 의존하지 않는 4대 보험의 확장, △주택과 의료 등의 사회보장 체계를 도입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며, 좀 더 많이 쟁취한 후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삶 속에서 노동자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수 있는 대안적 삶의 내용 만들기’를 노동운동의 목표로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저 너머의 것 아닌 현재 삶이 대안이 되기 위해서

이러한 것들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조직적 힘’과 ‘대안적 가치관’을 성장시키는 많은 질문들이 필요하다. 먼저 조직적 힘과 관련해서, 산별노조 전환을 통해 동일산업 내 노동자들이 좀 더 쉽게 조직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같은 직종 내에는 기업규모와 관계없이 공정한 임금이 지급되도록 하는 활동은 여전히 노동운동의 주요한 과제다. 더불어 그 속에 편입되기 힘든 사람들이 희망을 만들어 가는 경제활동으로서 협동조합운동을 강화해야 한다. 요즘은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권장되고 있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의지가 빠져 있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협동조합이 더 걸맞은 듯하다. 

한국사회에서 생산자 협동조합운동은 1990년대에 시도되었지만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협동조합들에서 생산한 재화들이 새로운 사회를 소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정적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경쟁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적 경제운동’ 등 세계화에 대응하는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당시보다 조건이 좀 더 좋아진 것 같다. 굳이 정부와 기업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노동조합과 농민회, 협동조합(가사서비스, 간병, 보육, 청소 등)이 지역사회 안에서 상호 호혜적인 경제를 연결해 나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즐거운 일자리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내가 왜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설득력 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대안적 가치관을 성장시켜야 한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1987년 창립 후 지난 20년 활동을 평가하면서, 열심히 투쟁했지만 크게 변화하고 있지 못하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진단하고 이를 넘어서는 대안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지금까지 함께 해왔고 또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많은 여성노동자들과 어떤 가치와 미래 비전을 소통하고 있는가? 혹시 우리가 20대 80의 사회에서 20의 사람들이 가지는, 소비를 통한 과시, 노동을 통하지 않은 부의 증식, 경쟁에서 승리할 것을 주문하는 교육방식 등을 좇아가면서, 우리도 거기에 끼워달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뒤집어보기 질문들이 던져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지금 현재 부족하기 때문에 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 대안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속에서 삶의 조건을 개선해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힘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운동은 생산과 소비, 경제활동과 가족돌보기, 조직과 제도개선이 함께 해야 가능하다.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그리고 다양한 사회운동이 지역사회에서 연대해서 만들어 가야 할 큰 숙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