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망칠 성장에 종속된 복지

노동사회

경제 망칠 성장에 종속된 복지

편집국 0 3,874 2013.05.29 09:29

이명박 정부가 등장했다. 역전의 드라마 없이 시종일관의 압도 속에 마침내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하였고, 두 달간의 인수위원회 활동을 거쳐 2월25일 ‘이명박 대통령 시대’가 문을 여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난 10년 상대적으로 친복지적 성격의 정부가 걸어온 길과 이후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행보는 어떻게 다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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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정부하에서도 사회복지의 후퇴는 일정 정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 폭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공공서비스노조가 2007년 국민연금법 개정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 공공서비스노조 ] 

“어쨌든… 성장하면 복지도 다 해결된다”

한편으론 기대의 목소리도 드높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생애 희망 7대 디딤돌 프로젝트>를 복지공약으로 하기도 했고, 국민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예방형 복지서비스를 다짐하였다는 면에서 그렇다. 적어도 공약상으로는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를 내세웠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 신뢰에 동의하지 못하게 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후보 시절 복지에 대해 부정적인 공약을 내걸 사람은 누구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명박 당선인이 후보 시절 노인과 여성, 장애인, 청년, 아동에 이르기까지 선심성 공약을 일방적으로 내걸었다고 무조건 의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이명박 정부에서의 복지정책에 대한 판단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그 첫 번째는 후보 시절 각종 단체들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현안의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힌 내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참여연대와 한겨레신문이 공동으로 보건복지정책에 대한 핵심 쟁점이나 과제에 대한 입장을 물었을 때, 이명박 캠프는 몇 가지 부분에서 우려를 자아내는 입장을 전달해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빈곤층을 위한 기초생활보장 부분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정책기조로서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양산과 빈곤층에 대한 일자리 제공”을 제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부양의무자의 기준 축소나 개별급여 전면 도입, 계층할당제라는 다른 전향적 정책들이 있었지만 우리사회 빈곤층의 발생 원인이 경제성장 둔화에 있다는 이러한 인식은 우려를 자아낼 수밖에 없다. 성장이 되어도 소득재분배 기능의 미약, 일자리 없는 성장기조의 정착, 사회양극화 심화의 기전 고착 등 복잡다기한 현재 빈곤의 발생구조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노인 분야에서 장기요양보험제도에 대하여 그 적용대상에는 찬성하지만 국고지원의 확대, 국공립시설 인프라의 50% 수준 확대, 지역 내 장기요양센터의 설치 등 공공책임을 강화하는 데에 대해서는 모두 반대 또는 답변유보의 입장을 보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공공성 강화와 배치되는 답변이 더욱 뚜렷했다. 건강보험 재정의 국고지원율 30%로 확대, 선택진료제도 폐지, 총액예산제도 및 포괄수가제도 실시, 전국민주치의제도, 공공의료기관 확충, 도시보건지소 확대 등에 모두 반대 또는 답변유보라는 소극적 의사를 보였다.

이명박 선거캠프는 아동분야에서도 보편적 아동수당은 찬성하지만 국공립보육시설 30% 확충에는 반대했다. 여성분야에서는 여성의 차별적 지위 해소와 관련된 적극적인 정책을 발견하기조차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인수위서 찾기 힘든 복지정책, 그나마 ‘가능성’만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복지재정 확충에 관한 것이었다. 이명박 캠프 역시 예산 확대의 필요성에는 동의했지만, 그 대책이라는 게 이른바 ‘대한민국 747’에 의해 늘어나는 재정수입과, 정부재정사업 10% 절감분뿐이었다는 점이다. 비록 이명박 후보가 복지인력 처우 개선, 급여 수준 현실화, 종사자 전문성 강화 등에 동의하였고 또 많은 복지발전을 기대케 하는 답변들을 제시했음에도, 이러한 재원대책의 소극성은 그 실현을 쉽게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다른 근거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과정에서 드러나는 차기정부의 정책 대안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공식적인 결정사항이라기보다는 언론이나 여타 경로를 통해 드러나고 있지만, 어쨌든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복지정책 부분에 대해 그리 무게중심을 많이 두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 드러난 중요한 정책들을 몇 가지 나열해보면, 기초연금제도의 도입, 건강보험제도상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 폐지나 건강보험공단의 분리, 민간보험 활성화, 보육료의 자율화, 보육료지원의 빈곤층 집중화, 복지서비스 바우처제도 활성화, 자활부분의 전면 개편 등이다. 물론 대부분이 단지 ‘가능성’을 갖고 있을 뿐이라는 전제를 달고서.

결국 이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은 공공성보다는 시장과 경쟁 중시, 보편적 복지보다는 기초생계보전층에 집중되는 복지 중심, 국가 및 공공의 책임성을 중시하는 전달방식보다는 민간주도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전달방식의 선호, 그리고 복지재정의 목적적 확충보다는 성장에 종속된 재원조달 방식 등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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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서비스노조가 국내 개봉을 추진중인 영화 <식코>의 포스터. 건강보험상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미국이나 멕시코처럼 비싼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은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 힘들어질 수 있다. ] 

오래된 위험과 새로운 위험 사이에 낀 한국사회

그러나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의 문제들이 이러한 접근 방식으로 풀릴 정도인가 극히 의심스럽다. 바야흐로 한국사회 및 한국의 사회복지는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복지환경은 매우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대전환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사회적 위험(social risks)이 복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기존의 사회적 위험’으로서, 주로 전통적인 산업사회에서의 소득중단 문제와 연결되는 위험들이다. 실직, 빈곤, 질병, 장애, 노령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대응체계가 여전히 부실한 상태여서, 국민최저선의 확보를 위한 공공부조제, 최소한의 위험대처 방안인 사회보험 등을 내실화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최근 또 하나의 위험, 즉,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급속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는 탈산업사회, 지식기반사회에서 돌봄과 일의 병행, 저출산, 정보격차 등으로 표현되는 위기들이다.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 있어 아직 대응제도가 초보 수준임임은 물론, 아직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구사회적 위험과 더불어 이중의 부담이 되고 있다.

둘째로, 세계화·개방화에 따른 양극화의 심화현상이다. 한미 FTA, 한EU FTA, 한중 FTA 등 다양한 형태의 개방 추진이 자타에 의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조세와 복지제도를 통한 소득재분배효과가 심각히 저수준인 상태에서 개방화의 ‘파이 증대’ 효과가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지는 것은 애초부터 기대 불망이다. 따라서 복지부문에 선제적인 투자를 하고 제도를 확대하여 양극화 저지를 위한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셋째,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모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노동인구의 내포적, 외연적 확대가 필연적 요망사항이 된다. 여성, 노인, 장애인 등의 경제활동인구 편입 확대, 기존 노동인구의 노동생산성 증대 등을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재편도 요구된다. 인구감퇴의 억제를 위한 출산장려정책, 이를 위한 일과 돌봄의 양립이 가능한 사회구조로의 재편이 요구되기도 한다. 노령인구의 비중 증대에 따른 사회·경제적 대응도 필요하다. 실버산업 및 노인복지의 중요성이 증대하고 건강하고 오래 사는 노인들의 삶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직면하여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이 새롭게 구성될 필요가 있는데, 우선은 생산력 변화에 따르는 경제성장 전략과 연관된 복지정책이 전개될 필요가 있다. 이제 더 이상은 저임금 노동에 근거한 대량생산과 저가수출의 구시대적 방식으로는 한국경제가 세계경제 속에서 경쟁력을 갖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 경제는 이러한 산업 구조로는 중국, 동남아, 인도 등과 경쟁할 수 없는 상태로 이미 진입하였다. 따라서 이에 부응해 사회적 재생산 구조도 자본과 노동 등의 ‘요소투입형’에서 인적 자원개발을 통한 ‘기술혁신구조’로 전환되어야 한다. 또한 인구의 감소에 따라 사회경제 및 인구계층의 구조가 변화가 예상되므로, 이에 따른 복지정책의 전환도 절실하다. 

출생 인구의 감소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2002년 이후 한해 50만 명 이하의 출생자 시대가 개막됐고 이에 따른 영향력이 사회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정된 생산인구 내에서 가용한 노동자원을 모두 활용하기 위한 적극적 보육정책(여성인력 활용), 정년 연장 및 재교육 정책(노인인력 활용), 학제개편 및 군복무 단축(청년인력 활용) 등 전국가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더 이상 복지가 시혜차원이 아닌, 생산력 확보를 위한 인력육성 및 노동력 확보를 위한 인적자원 투자정책으로 접근되어야 함을 말해 준다.

다른 한편 양성평등의 진정한 실현이 미래 복지정책 방향의 변화에 중요한 지표가 되어야 한다. 2만 불 국민소득 시대,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여성인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2만 불 시대에 돌입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60%대로 진입했다. 특히 글로벌 경제환경은 지식경제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고, 여성들은 지식경제 패러다임에서 요청되는 창조성, 소통능력, 수평적 리더십 등을 갖추고 있어 여성인력의 성장과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청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국가·사회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담대한 복지정책의 구현이라는 시대적 명제를 생각할 때, 앞에서 살펴본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와 정책수단은 큰 괴리를 보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복지와 경제는 선순환할 수 있다!

이러한 ‘이명박식 복지정책’이 구사된다고 할 때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화의 진척에 대응하는 적절한 사회 방어적 기제가 구축되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사회학적 위기에 대응하기조차 어려워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에 ‘올인’하는 전략을 통해 복지문제가 해소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복지제도 내적으로는 시장과 민영화, 경쟁의 원리 속에서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게 될 것이고, 복지의 발전모형은 결론적으로 북구형보다는 영미형으로 귀착될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낙관적인 견해일 수 있다. 경제성장에 부과되는 동력이 개방화와 민영화, 친기업화로 더욱 드러나게 될 때는 개방과 성장 속의 빈곤을 겪고 있는 멕시코가 우리의 전철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시민사회에서는 ‘담론의 지배’와 ‘복지발전 추동세력화’라는 두 개의 숙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흔히 한국사회에서는 아직도 담론의 영역에서 “복지와 경제가 상충적 관계에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진정 양자가 상충적인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요구된다. 특히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에 대한 정당성의 확보는 복지가 피폐화되는 이명박 정부하에서 적극적 복지정책의 국민적 수용가능성을 확보하는 격발자(trigger)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복지와 경제가 선순환할 가능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발견된다. 복지의 발달로 보건 및 복지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기대되는 측면이 있으며, 사회안전망 구축은 노동의 유연안정성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노인과 여성의 노동공급 확대와 출산력 향상이라는 기대효과 역시 발휘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 우리는 “한국 상황에서 복지와 경제가 선순환할 수 있다”는 명제의 정당성을 지식인은 물론 국민 일반이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지배적인 담론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하여

한편, 적극적 복지정책의 전개에 대한 정당성과 재원조달 가능성을 확보했다 해도, 이를 주도해 나갈 주체세력의 확보를 또 하나의 실현조건으로 추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 정치권에서는 과거 민주화시대의 민주세력들이 새로운 시대의 담론을 주도해나갈 세력으로 주목되어야 한다. 진보적 성향의 의원들이 복지국가에 대한 전망을 공유하고 동참하는 것이 매우 긴요하다. 그리고 아직도 노동계가 복지이슈를 자신들의 우선순위 높은 주요의제로 설정하지 못하는 현실은 유감이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진영이 복지운동에 동참하며 ‘신사회 건설’의 핵심적인 정책으로서 사회정책을 설정해야 한다. 운동의 성과로서 이를 관철시켜 나가는 과정을 통해 담론을 지배할 수 있는 주체세력이 확보되며, 사회정책 진전의 담보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에서 복지정책은 피폐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복지발전의 잠재력이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이, 현재로서는 그나마 가장 ‘희망’적인 전망에 해당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