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정부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전망과 과제

노동사회

차기정부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전망과 과제

편집국 0 2,802 2013.05.2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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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08년 1월2일 오후 5시~7시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사회: 김영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토론: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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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_02.jpg김영두: 좌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2007년 대통령 선거가 끝났는데요. 이번 대선 결과가 우리 사회나 노동운동에 던지는 화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순서는 특별히 정해놓지 않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분이 먼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병훈: 벌써 지난해가 됐군요. 신년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셈인데, 이번 권력이동에 대해 우리가 음미해야 할 지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길게 10년으로 보면 김대중 정부, 짧게 보면 참여정부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었다는 평가가 한편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데, 사실 저는 그런 표면상의 평가에 더해서 근본에 깔려 있는 민심의 동향을 잘 읽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생계형 보수층’, 정권과 진보세력을 심판하다

외환위기 이후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양극화, 즉 소수의 대기업과 자산가들이 부를 독식하는 편중이 심화되고 다수의 서민들은 먹고살기 힘들어지는 문제가 날로 심각해짐에도, 참여정부가 이렇다 할 대응이나 양극화의 추세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정책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민심은 참여정부에 대한 크나큰 불만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지지로 연결됐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보수화된 서민들, 즉 ‘생계형 보수층’이 널리 확대되면서 그들이 정권교체의 가장 큰 지지기반이 됐다는 점에 주목을 하게 됩니다.

이런 양상은 노동운동에게도 던지는 의미가 굉장히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양극화가 심화됐음에도 참여정부가 정책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무기력하게 쓰러졌듯이,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최근에 여러 가지 안 좋은 시각들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때는 반(反)기업 정서가 많이 논란이 되기도 했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반노조 정서가 팽배해 있는 것을 여러 조사를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양극화 과정에서 서민의 우군이 되고 노동자들 연대세력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제대로 책임 있는 주체의 역할을 못해오다 보니, 그만큼 노동운동이 위축되고 여러 가지 위기론까지 대두되는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동조합은 한편으로는 친재벌·친기업·친시장 중심의 정책을 풀어나가겠다며 새롭게 탄생한 보수 정권을 상대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를 통해 심화된 양극화 이면에 고착화되어 있는 반노조 인식을 상대해야 하는 샌드위치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샌드위치 상황에서 자칫 제 역할을 바로 잡지 못한다면 말로만 위기가 아니라 실제로 절체절명의 생존을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김영두: 이번 대선 결과가 노동운동에 던지는 의미에 초점을 맞춰서 김태현 실장님께서 토론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신보수진영이 된 이유

special_04.jpg김태현: 선거 결과가 신보수진영이 압도한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소위 개혁진보진영, 즉 자유주의 개혁파들이 신자유주의 진영으로 통합되면서 가져왔던 신자유주의 양극화 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심판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왜 그 대안으로서 국민들이 진보화되지 않고 신보수진영으로 갔느냐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는 진보진영 그리고 노동운동 진영이, 냉철하게 보면 새로운 비전과 내용들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실천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년 전 선거에서 보여줬던 새로운 모습도 이번에는 전혀 보여주지 못했고, 내부의 권력투쟁 성격이 강한 분파적 갈등 같은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저희 민주노조 진영으로 보더라도 현실적으로 올해 이랜드 투쟁 등과 같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 투쟁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후에 노동운동이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주체라고 느끼도록 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로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시대에, 기존의 기업별 교섭의 한계를 극복 위해 산별노조운동을 의제화시켰다고 얘기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소수에 지나지 않고 전체 운동의 혁신은 가져오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혁신, 성찰, 반성 속에서 운동의 재생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노동운동에 있어서는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장 중심의 개혁을 많이 추진하고는 있지만 이명박 정권은 과거 1970년대 구 보수세력들과는 굉장히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구 진영은 변화가 있었는데 이쪽의 운동 진영은 변화가 없었다는 면을 진지하게 돌이켜봐야 합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성과 있긴 했었나

배규식: 이번 선거를 통해 객관적으로 확인된 것은 노동을 넘어서서 기업의 성장이나 경제의 발전을 통해 일자리나 양극화, 교육 문제,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보자는 입장이 국민적으로 합의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향이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고 그것은 사후에 봐야 알겠지만, 어쨌거나 이런 내용들이 일단 이번 대선을 통해 주요하게 화두가 됐고 주된 해법으로 국민들에게 인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식으로 담론이 형성되고 확인된 것에 대해서는 당분간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참 놀랐는데, 이번에 권영길 후보 득표를 보니까 민주노총 조합원 수만큼도 안 됐습니다. 울산에서도 굉장히 낮더군요. 그동안 노동운동 안에서는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를 내세우고 실천해왔는데 이번 선거 결과는 조금 한심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왜 그런가? 이런 것들을 한 번 잔소리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호주에서 선거가 있었는데 호주 유권자 5~6%가 지지정당을 옮겼다고 합니다. 즉 집권당이었던 보수적인 자유당에서 노동당으로 옮긴 지지층이 5~6%인데, 우리 같은 경우는 지난 선거와 비교해 지지정당을 옮긴 유권자 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만큼 각 정당의 고정지지층이 적고 유동층이 많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치구도가 다이내믹한 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정지지층 같은 기반이 확보가 안 되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추진해왔던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도 아직까지 굉장히 불안한 것이 아닌가, 어쩌면 그동안의 성과가 별로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이 지지했던 민주노동당조차도 국민들이나 노동자들이 느끼는 면에서 이명박 후보 이외의 체감적인 대안을 제시 못했고, 이런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점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확인되고 출발점이 되어야 할 지점들입니다.

김영두: 양 노총의 대선과 관련된 정치전략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들을 하실 수 있는지 김태현 실장님부터 민주노총 중심으로 말씀을 해주십시오.

김태현: 민주노총의 경우에 대선과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집니다. 하나는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했지만 조합원 전체에게 당이 각인되지 못했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 민중경선제를 주장했었고, 다른 하나로는 대선 시기에 계급투표 전술을 실시해서 조합원들 그리고 주위에 있는 가족·친지까지 노동자 후보인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하게 하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민중경선제가 당내 여러 가지 정파 구도 속에서 좌절되면서 당과의 관계에 있어서 조합원 대중을 발동시킬 기제가 사라졌다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후 대선 시기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거의 전면적으로 결합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역부족이었다고 판단이 됩니다. 
노총과 당의 관계,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까

이러한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당에서도 대선 평가가 있겠지만 첫째로는 당이 구체적으로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드러났고, 또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정파적 갈등들로 인해 어느 것 하나도 책임 있는 결정과 집행들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면이 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심지어 각 정파의 핵심적인 관점이 대선보다는 총선에 집중되면서, 일부에서는 거의 손 놓고 있는 모습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습니다. 

당과 민주노총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당이 많이 커졌지만 오히려 5년 전보다 유기적인 결합 같은 부분은 더 취약해진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당이 제대로 굴러갔냐고 하면 앞에서 말씀드렸던 그런 구도 때문에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려워졌던 부분들이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현재 분당이다 뭐다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당의 선거 평가와 이후 진로에 따라 민주노총과 당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영두: 배규식 박사님께서 양 노총 평가 모두 종합을 좀 해주시지요.

special_05.jpg배규식: 우리나라 같은 처지에서는 노총이 특정한 후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것은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노총의 혼합된 구성원들은 아주 다양한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정한 후보를 지지할 때 내부 반발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우선 모두 따라가지도 않습니다. 

나라별로 보면 한국의 대통령과 같은 중요한 선거를 할 때 노동조합 총연맹의 정당에 대한 지지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독일 같은 경우는 독일노총이 사민당을 지지하지만 기민당을 지지하는 소수파도 인정을 하거든요. 영국 같은 경우는 개별 노동조합이 노동당에 가입돼 있고, 노동당을 지지하지 않는 노동조합은 TUC에도 가입이 안 되어 있고 이렇게 구분돼 있죠. 프랑스는 아시다시피 각각의 정당을 각각의 총연맹이 따로 지지하고 있죠. 미국은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공화당을 지지하는 그룹이 또 따로 있습니다. 이렇게 정당과 노동조합총연맹의 관계는 다양하고 모두 똑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노총은 지난 번 사민당 경험이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리한 시도를 했었던 건데 그것이 굉장히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던 경험 때문에 ‘편입적인 노선’을 택했다고 할까요. 어쨌거나 선거 결과를 현상적으로만 보면 민주노총은 실패했다고 보이고, 한국노총의 전략은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노동운동 전반적으로 노동운동의 정치역량이나 영향력 강화 측면에서 긍정적인지는 나중에 평가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한국노총이 새롭게 전화 투표 같은 것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인 토론 등이 이루어지는 형태를 거쳐서 했다면 훨씬 더 내부적으로 동의가 수월했을 텐데 그런 면에 관한 준비 없이 이뤄지다보니까 내부에서 여러 가지 반발이 있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실험을 한 것 같은데, 앞으로 이런 실험에 대해서는 다각적으로 분석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내부의 반발도 있었고 이런 방법이 지난 번 사민당 실험과 연관해 어떤 식으로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 논의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흐름 읽지 못한 계급투표, 형식만 갖춘 정책연대

special_03.jpg이병훈: 앞서 두 분이 지적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민주노총은 배타적 지지와 계급투표 그리고 한국노총은 정책연대를 선거 전략으로 취했고, 정권을 인수한 결과를 놓고 보면 외향적으로는 한국노총의 선택이 성공한 게 아니냐는 평가도 될 법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두 노총의 이러한 선거 전략을 누가 얻고 잃고, 누가 승리하고 패하고 하는 식의 구도로 이해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이번 선거의 똑같은 패자일 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선 민주노총은 계급투표를 선거 전략으로 취했음에도, 앞서 언급이 됐습니다만, 다수의 민중, 노동자들이 날로 살기 힘들게 되어가는 변화에도 지난번보다도 더욱 판에 박힌 전략으로 다수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고 표로 결집시키기지 못했습니다. 책임 있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이 염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그런 실력 있는 정당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얘깁니다. 이는 민주노동당의 문제일 수도 있고 그런 목표를 지지한 민주노총의 실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민주노총의 계급투표 등의 전략은 과거 운동의 연장에 머물렀을 뿐이었고, 환경의 변화나 다수 노동자의 인식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그에 걸맞은 다양한 선거 전략전술을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을 반성해야 합니다. 

한국노총은 정책연대를 내걸었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으니까 승리를 ‘자축’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아이러니하게 노총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기 전에도 그랬지만 당선된 후에도 친노동적인 정권을 만들어야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언제나 친기업적인 발언만을 하는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그런 후보를 뽑는 것이 노총의 올바른 선택이었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물론 정책연대를 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공약을 당시 이명박 후보로부터 서약을 받아서 나름대로 담보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담보가 백지어음으로 끝날지 현찰로 돌아올지는 두고 봐야 될 사항입니다. 현재 이명박 차기정부가 여러 정책에 대한 구상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과연, 한국노총의 이름을 내걸고 지지할 만한 후보였는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듭니다. 

절차적으로는 자기 나름대로 세운 정책연대의 틀에 걸맞은 과정으로 결정했다고는 하지만 노총이 온통 기업만을 위하겠다는 후보를 지지하는 선택이 과연 적절했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런 식의 선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성공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노총이 자신들의 의도와는 상반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저는 일단 상당히 유감스럽습니다. 또한 잘 지켜봐야 될 사항입니다만 이런 정책연대가 상층부의 노정 야합으로 국회의원 의석이나 장관 자리로 귀결된다면, 정책연대를 둘러싼 몇 가지의 논란은 한국노총의 정체성 위기로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노총 지도부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해봐야 된다는 말씀을 덧붙입니다.

김영두: 그럼 향후 새 정부의 노동사회 정책이 기존 정부에 비해 어떤 부분이 부각될 수 있을지 말씀을 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차기정부 노동정책의 큰 그림은?

배규식: 일단 인수위원회 10대과제를 보면 노동개혁은 빠져있더군요. 현재까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노사관계에서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그런 선택이 될 것이란 점입니다. 그리고 노동시장 정책은 일자리 창출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길 것 같습니다. 일자리 창출과 연계된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이 다양하게 모색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본적 방향이 ‘규제 완화→기업하기 좋은 나라→투자 활성화→일자리 창출→경제 활성화’ 이렇게 넘어가겠죠. 

그런데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면 실업수당이나 재직자 교육훈련활동 강화 문제, 노인들의 기초노령연금 인상 등 같이 따라가야 할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방향 자체는 기업 위주로 노동시장 유연화로 가겠지만, 일반 기업 정책 같은 데서는 노조가 개입해 그 나름대로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공공부문 구조개혁이 강도 높게 추진되지 않을까 합니다. 현재로서는 그 정도 이상으로 구체화되어 나온 계획들이 아직은 없습니다. 

노사관계 관련해서는 이미 파업 건수, 특히 불법파업 건수 등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비정규직 쪽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큰 변화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걸릴 만한 것들이 있긴 한데, 대체적으로는 법과 원칙의 틀 안에서 이뤄질 부분들이 많죠. 다만 비정규직 관련한 노사쟁의들은 법을 넘나드는 문제라서 법과 원칙을 강조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든 다른 정책적 해결이 모색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김영두: 노사관계 쪽으로는 제도적 변화가 크게는 없을 것 같다는 말씀이시죠?

배규식: 그 부분은 뒷부분에서 다시 얘기를 하겠습니다만, 노사관계에서도 예를 들어 비정규직 법안 개정 같은 경우, 노동계도 개정을 요구해왔지만 노동계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될 가능성은 많지 않을 겁니다. 설사 된다 하더라도,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한다든지 파견노동 범위를 확대한다든지 이런 내용들이 들어가고, 그 대신에 차별시정의 주체로 노조를 인정하는 정도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노동조합이 원하는 방향만이 아니라 기업들이 원하는 쪽이 함께, 오히려 더 강하게 추진되는 것이죠. 노동계에서 아마 판단을 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것 말고 다른 식의, 예를 들어 노동법 개정 문제 등에서는 개별법을 하나하나 바꾸기보다는 향후 복수노조·전임자 문제 등과 연계해서 큰 틀에서 같이 처리되지 않겠는가 합니다. 그런 것들이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지는 아직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경제에 종속된 노동, 유연화와 법치의 틀에 갇히다

이병훈: 현재 신정부의 노동정책, 사회정책에 대해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가 발표한 공약을 통해서 대략 흐름을 따져볼 수 있고 또한 인수위 구성을 두고 인수위 내에서 논의된 내용을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지난 참여정부와 비교했을 때 인수위를 통해서 노동정책에 대한 비중이 크게 변화됐다는 점을 주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는 인수위 구성에서 인적으로나 외형적으로도 노동정책들이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수위의 국정과제로도 노동문제가 선정이 됐고 그 과제를 개발하는 데 노동계 출신의 여러 사람들이 관여해서 나름대로 큰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이에 반해, 아시다시피 이번 인수위에서는 노동을 다루는 사람으로는 노동부 출신 관료 한 사람만이 가 있는 수준입니다. 국정과제에서도 ‘일자리 창출’ 정도가 강조되고 있을 뿐 노동이 철저히 경제에 귀속되고 경제에서 파생되는 수준의 정책영역으로 한정되고 있습니다. 배규식 박사님이 말씀하셨듯이 경제가 잘 되고 성장이 잘 되면 노동자의 문제는 다 해결될 수 있다는 당선자나 한나라당의 문제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차기정부 출범을 앞두고 제기된 것은 크게 두 가지 키워드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유연화’와 ‘법치’입니다. 먼저 기업들이 보다 투자를 늘리고 성장을 확충하는 데 중요한 조건으로서 노동시장을 얼마나 유연화할 것인가가 그 핵심입니다. 다음으로, 사실 기존 참여정부까지는 노사관계에 대해 노사정위원회 등의 투자를 많이 한 것은 사실이죠. 그럼에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던 것은 한나라당도 익히 잘 아는 바니까, 그런 투자보다는 오히려 법치, 소위 불법 노사분쟁이라든가 노동조합으로부터 발생한 ‘과잉행위’를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수준에서 오히려 노동조합에게 압박을 하겠다는 기조가 읽힙니다. 

지난 국민·참여정부가 좌파정권이라고 많이 평가됐음에도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진행했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사회적인 갈등 비용을 나름대로 제도권 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의 사회적 대화나 다른 노정 협의 등의 채널을 유지했다고 한다면, 이번 정부에서는 노동조합과 정부의 관계는 찾기가 쉽지 않고, 그만큼 노동계로서는 더 답답한 구석이 커질 겁니다. 음으로 양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창구가 막히고, 반면 재계와 정권의 창구는 크게 열리면서 재계의 목소리, 재계의 의견이 주요하게 반영되는 노동사회 정책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노동계로서는 굉장히 궁지에 몰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성장 독식체제’, 새 정부의 아킬레스건

마지막으로, 그런 가운데 새 정부도 사실 큰 부담을 안고 시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경제 대통령’을 들고 나온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1등 공신이 민생문제였다고 한다면, 새 정부는 그 민생문제 해결에 대해 정권 초기서부터 국민에게 크나큰 기대를 받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여하히 해결하지 못하면 바로 지지기반이 허물어지고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정부는 성장을 통해 일자리와 국민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파이를 창출해서 경제를 꾸려나가겠다고 얘기를 하는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새 정부가 인식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고착화된 양극화 구조, 즉 성장을 10% 한들 성장의 과실이 이미 소수에게 독식되어지고 한쪽으로 집중되는 방식으로 구조화된 재분배 메커니즘을 발본색원하지 않는 이상, 성장의 과실은 여전히 일부에게 돌아가고 다수의 사람들은 민생문제에 허덕이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현재의 기대가 탈각되면서 민심의 역풍이 터져 나올 수도 있는 것이죠. 한편, 그런 면을 의식한 새 정부가 조기에 성장 과실이 가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게끔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게 될 경우에는 물가문제 등의 새로운 문제가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장이 된다 하더라도, 구조적인 양극화의 독식체제 속에서 그 과실을 일부가 독차지하는 재분배의 문제 등으로 인해, 새 정부가 지금은 큰 지지를 받지만 사실 뒤에서는 상당히 큰 부담과 짐을 안고 있다는 것을 본인들 스스로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면들을 앞으로 어떻게 꾸려 나가는지도 주목할 만한 관전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김영두: 김태현 실장님이 이어서 말씀해 주시지요.

새 정부의 각개격파 전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김태현: 차기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업친화적인 얘기를 하면서 나오고 있는 게 금산분리 철폐,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법인세 인하 등입니다. 재벌들의 완전한 지배체제를 전면화하고 그동안 노무현 정부부터 계속 해왔던 한미FTA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역시 전면화하는 사회로 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해서는 크게 강조를 안했지만, 기업친화적인 정부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재계 인사들이 비정규직법을 재개정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주한외국상공회의소 인사들이 정규직 정리해고를 완화해 달라고 하는 등 요구가 많습니다. 

다음으로, 지금 노동부를 해체하느니 마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아까 말씀하셨지만 그 얘기는 노동부가 완전히 경제부처에 종속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실 현재의 노동부가 노동 분야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않더라도 경제부처에서 계속해서 요구를 해왔었단 말이죠. 그것이 노동부와의 큰 틀에서 조금이나마 제어되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것이 그대로 여과되지 않고 공세적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됩니다. 결과적으로는 정규직에 대한 각종 공세가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비정규직법의 문제는 정규직까지 완전히 유연화가 되지 않아서”라는 식으로 공세를 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른 노사관계의 규율을 계속 강조를 해왔습니다. 정부는 전투적인 민주노총은 억압·배제하고 한국노총은 일정하게 포섭하는 이중적 전략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노사관계에서 중요하게 확실시되는 것 중의 하나가, 공공연히 언명하고 있는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공기업 민영화 부분입니다. 은행기관이라든가 정부 산하 공기업들을 대상으로 하게 될 것이고요. 또 최근 얘기되고 있는 의료보험의 당연지정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얘기나 고교평준화 해제, MBC 민영화 등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으로서 자리 잡고 있는 공공부문들이 ‘공공부문의 시장화’ 논리로 상당히 많은 공격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문제와 관련해 현실적으로 가장 먼저 대립전선이 취해질 부분들이 한미FTA 문제, 공기업 민영화 같은 부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내년 사업과 관련해 여러 가지 고민 지점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신정부가 수구적 신자유주의 정권인 것은 분명하고 여기에 대해 투쟁 전선을 모아내야 합니다만, 보나마나 각개격파하는 전술로 나올 텐데, 즉 한편으로는 조직된 대오에 대해서는 탄압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유류세 인하와 같은 선심성 공약으로 치고 양면적으로 쳐들어올 텐데, 우리 투쟁들이 이 부분들에 대해 어떻게 제대로 대응할 것인가 고민이 필요한 것이죠.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국민들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 집권 초기라는 상황에서 어떻게 역전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논의들이 현재 굉장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올해 이런 부분들을 모아서 한 판 큰 투쟁을 벌여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입장들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아직 올해 당장 투쟁의 대오들을 모아내기에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까 좀 더 내부적으로 토대를 갖추면서 전선을 형성해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춰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이렇게 크게 두 가지의 입장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오는 1월24일에 대의원대회가 열릴 예정인데 그 전 산별대표자회의가 다음 주 월요일에 있고 수요일에 중앙위원회가 있습니다. 또한 각 산별지역 순회사업계획 등 관련된 일정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과정들을 거쳐 조직적 논의들을 모아내 결정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집중’과 ‘현장’

김영두: 이명박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들이 올해부터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김태현: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공기업 민영화 같은 경우에, 규모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한꺼번에 할 수가 없습니다. 공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자본이 있어야 하는 거고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소화를 못 하는 거죠. 또 기업의 특성에 따라서 프로그램이 배치가 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부분들은 정권 초기에 쉽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편 정부부처 개혁 같은 것이야 여기서 떼서 저리 갖다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공기업이나 이런 부문들은 쉽지 않다는 것이죠. 또한 각각의 부문들의 노동자들이 집결되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단계적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입니다. 

또한 공공부문 시장화는 공감대가 많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나뉘어져 있단 말이죠. 예를 들어 교육 문제 같은 경우에는 자신들이 이미 정당성을 획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빨리 추진할 가능성이 높지만, 의료보험 같은 경우를 민영화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현 정부처럼 아마추어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나름대로 상황을 봐가면서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김영두: 민주노총의 내년 사업 방향은 구체적으로 확정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김태현: 큰 흐름은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모아낼 것인가 하는 겁니다. 하나는 인수위 시기부터 1년 내내 큰 흐름을 가지고 전선을 만들어 가자는 겁니다. 한미FTA 문제, 공공 민영화, 사회 양극화 해소, 비정규직 문제, 크게 4개 정도의 의제가 있는데 각각의 영역별로 큰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 큰 흐름 중에서도 국민적 공감대가 높으면서 투쟁을 통해 집중할 수 있는 의제를 구체화해서 몇 개로 축약하자는 논의가 한편으로는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투쟁도 투쟁이지만 현장의 투쟁역량 같은 부분들이 취약하기 때문에 현장을 묶어세워 조직력을 강화하고, 미조직 부문 조직화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토대, 즉 밑바닥을 깔아가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들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영두: 차기정부 아래 2008년을 준비하고 있는 양 노총에게 주문하고 싶은 바들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배규식 박사님부터 말씀을 해주십시오.

공공부문노조, 환원주의적 시각은 독이 될 것

배규식: 아직 확정된 게 없어서 조심스럽기는 한데 저는 공공부분 개혁과 노동시장 유연성문제에 대해서 이야길 하고 싶습니다. 먼저, 공공부문과 관련해서는 2007년 철도노조의 투쟁 경험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참여 정부가 철도에서 추진한 개혁은 기본적으로 ‘공공적 소유’라는 틀을 인정하면서 진행된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철도노조에서는 그동안 이걸 전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라는 환원주의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봤어요. 철도를 분할해서 매각하는 것과 공공적 소유를 인정하면서 공사로 형태를 바꾸는 것은 상당히 큰 차이가 있는데, 이러한 차이를 환원적인 틀 속에서 매도해버리니까 모든 변화를 총체적으로 거부하는 식으로 대응하게 된 거죠. 이번 2007년 투쟁에서 노조 지도부가 사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제가 보기에는 이런 맥락 속에서 논리적으로 내정된 것이었습니다. 현실 조건상 파업을 시도하되 하지도 못하고 사퇴하거나, 하는 시늉만 하다가 말거나 하는 선택밖에 없었다는 거죠. 

어쨌든 공공부문 개혁과 관련해서 노동조합운동이 앞으로도 이런 환원주의 시각을 유지한다면 더욱 어려워지리라 판단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공공부문 개혁도 잘 들여다보면 부문별로 조금씩 다르거든요.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의 경우 아직까진 공공성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산업은행 등 일부 영역의 경우에는 매각하겠다는 것이고요. 이러한 정부의 부문별로 각기 다른 대응에 걸맞게 다양한 현실적 대응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처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라는 환원주의적인 틀로 모든 것을 뭉뚱그려서 전면적으로 대항하다가는 오히려 노동조합이 공공부문 구조개혁 와중의 최대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국민들이 보기에 공공부문은 고용도 안정돼 있고 취업 희망자도 굉장히 많은 곳인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조건 때문에 싸운다고 하면 잘 수긍하기가 어렵거든요. 따라서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조합원들의 손해를 조금 감수하더라도 공공성이나 공공재 생산의 필요성 등의 담론을 통해서 이뤄져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노동조합운동이 담론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라든지 공공부문 개혁에 저항하는 방식을 기존과 달라지도록 하지 않는다면 굉장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주관적으로 매몰되지 않은, ‘유연한 투쟁’을 바란다

다음으로, 노동시장 개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노동조합운동처럼 단호하고 봉쇄적인 투쟁으로만 일관한다면 더욱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례로 독일에서 지난 20년간 노동시간 단축운동을 해서 성과를 봤단 말이죠. 그런데 지난 2~3년 사이에 거꾸로 별다른 보상 없이 노동시간을 늘려놓는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이렇게 투쟁의 성과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독일의 강력한 노조운동이 몰랐을 리는 없죠. 노동조합이 힘이 없거나 사측에 투항해서가 아니라, 이런 양보교섭을 강제하는 엄밀하게 객관적인 조건이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상황에서도 힘도 없으면서 주관적인 투쟁에 매몰되면 오히려 노조운동의 전망을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엄중한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운동 역시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해서 나름의 구체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 없이 저지와 봉쇄투쟁으로만 버티고 있다가는 결국 사용자와 정부가 강제하는 유연화가 도입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업 내부의 유연화와 관련해서는 노동조합이 좀 더 새롭게,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선에서는 좀 더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운동에게 동시에 제시되는 상충적인 요구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외적인 조건이 경쟁적으로 변하면서 기업들은 노조가 개별 기업의 특수한 이해에 조응하길 바라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양극화 문제 등이 심화되면서 이러한 부분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역할을 하길 바라는 사회적 요구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죠. 이렇듯 기업과 사회가 서로 다른 요구를 하고 있는 가운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어떻게 중장기적인 전망을 열어가야 할지, 그동안 노동조합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사회통합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장단위에서는 개별기업의 특수한 이해에 매몰되어 가는 모습을 보였다는 겁니다. 이러한 모순과 갈등을 사회, 정부, 기업 시장과 관계 속에서 어떻게 조정해가면서 새로운 관계 맺기를 할 수 있을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기존과 같은 관성과 행태로는 앞으로 닥칠 위기적 상황에서 더욱 더 어려운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노총, 조합원 동원 기반을 확충하라

이병훈: 저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나눠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한국노총입니다. 물론 이번 달 말에 예정된 위원장 선거가 끝나봐야 한국노총이 차기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구체적으로 상이 잡힐 겁니다만, 현재의 한국노총이 두 가지 어려운 딜레마를 겪게 되리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먼저, 이번 대선에서 정책연대를 통해 이명박 당선자와 손을 잡았는데 앞으로 이명박 정부가 반노동적인 정책들을 실시할 때 현재의 한국노총 지도부가 어떤 입장을 펼칠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노총은 1990년대 중반까지 보수 정부와의 관계를 너무 가깝게 가져가려고 하다가 조직 내부가 이완되고 현장이 공동화됐던 경험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들이 한국노총 지도부가 차기정부와의 관계에서 노골적으로 가까이 하기도 그렇다고 멀리하기도 어렵도록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어려운 사정이 작용하지 않을까합니다.

다음으로, 정책이 구체화되지 않아서 섣부른 점이 없잖아 있지만, 차기정부에서 사회적 대화 기구의 위상이 위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그만큼 기존 한국노총 방식의 상층 중심 정치활동의 힘, 즉 다시 말해 사회적 대화기구를 중심으로 지난 10년간 노동의 장에서 한국노총이 누려왔던 역할과 위상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책연대를 선언한 한국노총 지도부로서도 고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딜레마들 가운데 한국노총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조직 내부에 조합원 동원의 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 과제로 제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제기됐던 것처럼 말이죠.  

한편, 민주노총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전투적 노동운동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외부적 위상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민주노총이 차기정부와의 관계를 고민할 때는 대선 결과뿐만 아니라 앞으로 4월에 있을 총선 결과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한나라당이 총선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렇다면 이미 보수화되어 있는 재벌 등의 경제권력, 검찰 등의 사법권력과 더불어 입법권력까지 완전히 보수세력에게 장악당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될 것이란 얘깁니다. 그렇게 일사분란하게 보수권력에 둘러싸인 상황 속에서는 기존의 전투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민주노총, 이기는 싸움을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하자

민주노총은 1997년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 승리를 최고점으로 해서 안팎의 문제 상황 속에서 사실상 쇠락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총체적인 절대 보수권력에 맞닥뜨린 민주노총이 과거의 전투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더 어려워지기 쉽다는 거죠. 그렇지만 어쨌든 이러한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합니다. 외부의 보다 강대한 보수권력의 압박을 맞이하면서 내부적으로 단결하고 응집력을 만들어낼 수만 있으면, 이제까지 퇴보하는 운동의 흐름에서 반전을 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부의 전략적 선택입니다. 이기는 싸움을 의식적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좀 전에 김태현 실장님도 한 판 크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매년 되풀이되는, 안에서도 밖에서도 ‘하면 뭐 하리’하는 관성적인 총파업이 아니라 정말 이기는 싸움을 조직해야 합니다. 분위기를 반전시키시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에게 흥미를 주고 책임감을 느끼게 만드는 투쟁이 되어야 하지, 그냥 머리 박고 아무 생각 없이 자리 채우는 투쟁을 해서는 얻는 것도 없고 자조와 무력감 등으로 이어질 겁니다. 우리가 겪게 될 강대한 권력 앞에서는 그런 투쟁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지도부의 전략적 준비와 선택이 중요합니다.

배규식 박사님도 호주의 사례를 언급하셨는데 최근 호주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는 데 호주노총의 기여가 무척 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호주노총이 선거 훨씬 전부터 ‘일터에서의 권리 쟁취 캠페인’이라는 것을 준비해 국민들을 울리는, 국민들의 마음을 읽고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운동을 제대로 만들어냈다는 것이었죠. 우리에게도 남발하는 식의 파업이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동원되는 만큼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파업, 국민들에게 호응을 받고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기존과 같은 무모한 총파업전술을 넘어서 조합원 내부의 승리,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투쟁을 준비하지 못하면 아니 싸우니만 못하다는 강조를 하고 싶습니다.

김영두: 김태현 실장님 말씀을 한 번 더 듣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산별의 단결된 힘으로 현장을 지향하자

김태현: 위원장 요청으로 올해 사업계획 작성은 좀 더 일찍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논의를 하다 보니 예전과 달라진 부분을 느낍니다. 한 번 싸우려고 해도 요구를 적절하게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제기하는 요구가 국민들에게 어떻게 공감을 받고 조합원을 발동시킬 것인지 등에 관한 고민들이 더 많이 소통됐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올해에는 조건이 어려워진 측면도 있지만 어쨌든 과거처럼 관성적으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모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올해 투쟁전선에서는 무엇보다도 산별전선, 특히 금속부문 전선에서 돌파가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가 좀 전에 배규식 박사께서 말씀하셨던 사회적 통합의 요구,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분단된 부분을 모아낼 수 있는가 없는가의 척도가 되리라 봅니다. 또한 다양하게 예상되는 제도적 공격에 대해서 노동조합이 자신의 힘으로 방어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산별교섭 전선에서의 돌파 전망이 좋지 못합니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2008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산별교섭 준비상태는 금속, 보건 등을 비롯한 몇몇 산별노조 말고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습니다. 말로는 70% 이상이 산별노조로 전환했다고는 하지만 그 대부분은 공무원이나 교사처럼 단일직종이고 사용자단체가 공공부문인, 집중된 교섭은 준비가 안 된 덩치만 큰 조직들입니다. 민간부분에서는 기업별 토대가 여전하죠. 그렇지만 이렇듯 돌파가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에 한편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집중해서 통일된 대안을 갖지 못하면 힘들다는 생각이 점차 공감대를 이루고 있기도 합니다. 고무적인 부분이긴 한데, 문제는 그러한 생각들이 얼마나 실천될 수 있나 하는 거겠죠.    
    
또 다들 아시겠지만 민주노총이 몸담고 있는 토대와 지향점의 차이가 산별교섭 진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심이 돼서 싸울 수 있는 조직들은 그동안 전투성을 보여 온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들인데, 노조운동의 지향점으로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부분은 비정규직들이란 거죠. 그렇지만 비정규직들이 실제 투쟁의 주력이 되기에는 처한 현실이 너무 어렵고요. 이러한 괴리를 연계해서 대안을 만들어내는 장치나 풍토는 아직 전면화되지 못했습니다. 작년 보건의료노조의 교섭에서의 성과는 상당히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노동운동 전체로 확대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는 경험이었죠.

이제 조직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텐데요. 그동안 우리 민주노총은 너무 투쟁만을 많이 외쳐왔던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현장의 토대들이 많이 취약해져 있습니다. 특히 어려운 조건에서 더 필요한 기초체력이 튼튼해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현장대장정을 다녀온 이석행 위원장은 열심히 잘 하는 사례들이 꽤 많으니 이런 사례들이 소통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그런 기본적인 토대를 다지는 부분이 정말 중요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다른 토론자들이 지적하신 것처럼 능동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든지 하는 부분은 누구보다도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잘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많이들 어렵지만 다시 돌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할 거라고 봅니다.    

김영두: 말씀들 잘 들었습니다. 위기지만 기회가 될 수 있는 지점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인 지적 부탁드리고요. 또한 젊은 노조 간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말씀해주십시오. 

산별교섭, 내부 이해관계 조정이 핵심

배규식: 산별교섭의 핵심적인 문제는 노동자들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돌파구는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사용자들이 객관적인 변수로 존재하긴 하지만 노동조합 주체들의 노력이 더욱 요구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특히 금속 같은 경우 작년과 같은 방법으로 시도했다가는 올해는 더욱 어려울 것이고 산별교섭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산별노조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봅니다. 
보다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부에서 이견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 그게 되려면 내부 교육이 상당히 필요합니다. 비정규직 사업도 현장에서 계속 교육을 했던 곳하고 안 하다가 갑자기 사업을 진행하는 곳하고 반응이 굉장히 다르더라고요. 산별교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도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관행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먼저 깨줘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노조 간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과거 노동조합 했던 사람들은 사실 군사독재, 개발독재의 고도성장시대를 살면서 부지불식간에 형성된 사고틀, 원칙과 대의를 갖고 활동해왔죠. 이제 정치·경제적 환경이 크게 변한 이상 그러한 원칙과 사고틀을 원점에서 다시 한 번 검토해볼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마냥 싸움을 벌리는 식보다는 자신을 낮추고 묵묵히 참아내는 것이 더 필요한 시기가 될 텐데, 어쩌면 굉장히 갑갑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다시 한 번 훈련하는 과정들을 잘 겪어내야 한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으로서보다는 자기 실리를 추구하는 과정으로 노동운동을 대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해졌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젊은 간부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요구됩니다. 노동조합운동은 이익단체운동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보편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이기도 하죠. 이러한 부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공동체운동, 지역사회 공동체운동과 결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공동체가 많이 파괴됐는데, 이제 다시 보편적 성격을 띠는 운동의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노동운동도 사회적 고립도 벗어날 수 있고, 당장의 현안에 대한 지나친 강박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공부하고 전문성을 키우는 자세 길렀으면

이병훈: 제가 좀 전에 산별노조운동 이야기를 빼먹었던 것 같은데요. 산별노조운동은 이명박 정권에 대응해서 노동조합이 살 길이자, 구조적인 양극화문제에 대응하는 노동계다운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불씨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는 현재 노동운동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렇듯 노동운동이 산별노조를 통해 내부 격차를 줄이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기존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양보를 얻어내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흘려보내야 하는데, 기존의 이해와 관성 속에서는 진행이 불가능할 겁니다. 지도부의 적극적인 결단과 설득, 교육 등이 필요할 텐데, 이러한 과정은 노동조합운동이 새롭게 정의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전 조직적인 운동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강조를 드립니다.

향후 보수정권 시기를 맞이하는 노조 간부들에게는 다양한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저는 두 가지 정도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최근 노조 활동하는 분들이, 단체든 조합에 있든, 현장에 있든 공부를 많이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급변하고 새로운 환경과 요구가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이러한 상황에 발맞추려면 새로운 의제를 검토하고 노동운동이 처한 기반 속에서 이를 소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공부가 필요할 텐데 그러한 풍토가 사라지고 관성화된 운동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기업가 이상으로 노조 활동가들에게도 학습이 필요합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나를 따라오면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강력한 비전에 대응할 수 있는 노동운동의 비전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미래의 비전을 만들어가는 공부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으로, 노조 간부들에게는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간부가 대중들 앞에 서려면 당당해야 하는데, 과거처럼 목소리 크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어떤 ‘장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선전선동이든 미디어관리든, 교육이든, 정책개발이든, 조직이든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스스로를 단련해야 대중들의 신뢰가 만들어질 수 있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노조에서 학습할 수 있는 시간을 지원해야 하고, 간부들도 그런 공부들을 통해 자신의 분야, 전문성을 키워나갈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진중하게, 전문적으로, 책임 있게

김태현: 두 분이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특별히 덧붙일 말이 없을 것도 같은데요. 어쨌든 요즘 젊은 활동가들은, 운동이 성장 후에 약간 후퇴하는 시기, 뭐랄까 운동이 이미 대중화돼서 이것저것 떠드는 사람은 많은데 치열함은 떨어지는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책은 중고생들의 필독도서가 됐지만, 그 책이 예전에 주었던 느낌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는 거죠. 또 과거보다는 상당히 풍요로운 조건에서 성장한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려운 시대일지라도 쉽게 판단하고 쉽게 투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운동이 소수화되고 있는데 어려운 조건일수록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젊은 간부들이 전문성과 내용을 가지고 승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대중운동이 성장했기 때문에 과거 세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현장에서부터 운동을 시작할 필요가 별로 없죠. 그런 점에서 요즘 노동조합운동을 하는 세대들에게는 전문성과 내용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늙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미 낡은 이야기들을 떠드는 훈고학자 같은 사람들을 간혹 봅니다. 그런 부분들이 좀 극복됐으면 좋겠습니다. 반대로 여기저기서 들은 게 많아서 새로운 말을 많이 쓰는데 자기에게 체화되지 않은 내용들이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진짜 운동을 제대로 하면 체화된 용어를 써야 하는데, 사실 운동 내에서만 사용되는 용어들을 관성적으로 그대로 쓰면 대중들은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 부분도 단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 어떤 경우는 대충 아이디어는 있는 것 같은데 깊이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천착해서 깊이 있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부분들이 필요합니다. 젊은 간부들이 그렇게 내용들을 잘 채우고, 그리고 공부하는 자세를 가지고 승부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로 풍요롭게 자라서 그런지 안 좋은 의미의 리버럴함이 많습니다. 규율이나 이런 것들이 없고요. 한국사회의 자유주의라는 것이 서양과는 또 다른 측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별로 규율이 없습니다. 출퇴근 문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했으면 그것에 대해 책임지는 게 필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많이 취약합니다. 형식적인 규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맡은 것에 책임성을 가지고 천착하고, 누가 뭐래도 결과를 내놓는 그런 부분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이 그런 경향이 강한데 우리는 자유주의 하면 편하게 늘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을 좀 채워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동체를 되살리는 노동조합운동을 바란다

이병훈: 말씀을 듣다보니까 지난해 한국노총 정책연구원이 대학생들에 대한 노동조합·노동운동에 대한 의식조사한 것이 떠오릅니다. 그와 관련된 토론회에 참여하면서 굉장히 흥미로웠고, 우리 사회를 잘 투영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젊은 사람들의 가치관은 친자본주의라는 겁니다. 어려서부터 배운 게 그렇기 때문이죠. 제도교육이 잘했든 못했든 간에 그런 교육을 받으면서 자본주의에 친숙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은 또 매우 크다는 겁니다. 이런 조건에서 그들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게 되느냐 하면 결국 남이 어떻게 되든 나 혼자 살 길을 찾겠다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가 깨지고 있고 개체화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이 이명박 정부하에서 더욱 더 강화될 것이고, 젊은 세대들은 더욱더 개체화된 존재로 전락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사회가 자신을 보호해주는 장치가 없으니까 각 개인이 개체화되는 시대적인 분위기를 다시 공동체적으로 바꿔나가는 고민을 노동운동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총파업이 아니라 담론 각축, 혹은 헤게모니 획득에 이를 수 있는 고민이나 연구, 대안 찾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죠. 단순한 싸움만으로는 국민들이 “당신에게 날 의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쪼그라들고 배제되는 사람들이 자신을 안심하고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적 대안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의식을 점검하고 묶어세울 수 있는 논의도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규식: 노동조합운동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다 같이 묶여서 다 같이 움직이다가, 그럴 만한 동기가 사라지면 다 흩어져버리는 운동이 되어버리면 안 됩니다. 생태운동, 환경운동 하는 분들을 보면 노동자와 같지는 않지만 공동체와 비슷하게 서로 끈끈한 게 있단 말이죠. 우린 그런 기억들이 많지 않은데 서구에서도 옛날 노동조합들을 보면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역이 지역적으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게 힘인 거죠. 우리 같은 경우는 주거지역도 그렇고 상당히 많이 깨져 있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 하는 사람이 5년 뒤에 노동조합 그만 두고 나서 술잔 같이 나누고 자기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옆의 간부들 중에 있느냐, 그런 게 서로 간에 안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영두: 오늘 수고해 주신 세 분께 감사 말씀 드리면서 2008년 특집 좌담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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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