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패배, 이후가 중요하다

노동사회

'예고된' 패배, 이후가 중요하다

편집국 0 3,040 2013.05.29 09:24

이 글은 민주노총 중앙조직의 공식적인 평가가 아니라 울산지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경험과 그동안 느꼈던 절절한 한계를 근거로 작성하였다. 이번 17대 대선을 통해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며, ‘민주노조운동의 부활’이 없다면 민주노동당의 추락은 아직 바닥에 닿지도 않은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노동자·서민을 대변하는 독자적인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그들만의 진보’에 민심은 희망을 접고 등을 돌렸다. 민중들의 심판을 왜곡하며 남의 탓을 하고, 남의 뼈를 깎으며 권력투쟁이나 할 시기가 아니다. 끝까지 소신을 지키며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던 마지막 보루 71만 표까지 걷어차는 수습과정에 내년 총선도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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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은 11월5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정책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도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밝혔다.  ▶ 매일노동뉴스 ]

반노무현의 광풍에 맞선 민주노동당의 미약한 입김 

어느 외신은 한국의 대통령선거를 조롱하며 “지나가는 개에게 한나라당 목걸이를 걸어주고 출마시켜도 당선된다”는 분위기를 설명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선거 과정을 거치면서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싹 쓸어 가버리는 광풍이 지나갔다. 먹고 사는 문제를 외면하고 배신한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려는 이 ‘바꿔보자 광풍’에 모든 정치적 쟁점이 다 휩쓸려 날아갔다. 

광풍에 마주선 민주노동당의 활동은 입김에 불과했다. 광풍을 입김으로 막을 수 없었다. 후보를 교체해도 입김은 입김일 뿐이다. 식어버린 대중들의 관심에 열기를 불어넣으려는 입김은 처음부터 가당치 않았으며, 열심히 하면 할수록 빨리 지쳐버릴 뿐이었다. 광풍은 대세로 작용했다. 좌파정권으로 곡해되는 노무현 정권과 함께 진보개혁세력은 심판을 당했으며, 2중대 혐의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던 민주노동당도 당연히 이렇게 심판당한 무능세력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정책대결이 아니었으며, 다자구도에서 TV 토론에 나가 말 몇 마디 잘 한다고 표를 줄 판세가 아니었다.

권영길 후보라서 실패했으므로 노회찬, 심상정을 후보로 내세우면 성공했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증거가 필요하다. 권영길 후보는 도덕성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보다 약점이 적었으며, 이회창 후보보다 젊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의 이미지는 50%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키는 게 전략이며 선거참모, 당원, 지지자들의 역할이 아닌가. 부끄럽게도 진보정당에서 모든 것을 후보 탓으로 돌리는 책상머리 진단으로는 민주노동당의 회생 가능성마저 말아먹는다. 절망적으로, 총선까지 실패하는 식물정당이 될 것이다. 

이러한 ‘후보 탓’은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즉, 향후에도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가 모두 징치의 대상이 된다면, 그 칼끝은 지금 이를 권력투쟁에 이용하는 모든 자들의 가슴을 향하게 될 것이다. 후보는 당원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열망을 실현시키지 못한 만큼만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는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국민들 사이에서 인식시키는 데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빨리 정신 차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애정을 가진 국민들에 대한 보답이다. 

예고된 패배, 충격과 참패는 호들갑 

정당으로서 선거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사로 받아 들여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실력으로 성장해오지 못한 것을 인정한다면, 선거패배의 경험은 당을 깰 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가서는 안 된다. 현재의 모습은 정파 간 권력다툼과 자리싸움으로 비춰질 뿐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자기 돈을 들여가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선거운동에 나선 수천 명에 이르는 무명의 용사들, 민주노동당을 믿고 찍어준 국민 71만 명이 지켜보고 있다. 민주노동당을 아끼고 사랑하며, 생각보다 적게 나온 득표를 보고 걱정과 격려를 해주는 많은 이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준다면 영원히 회생불능에 빠질 수 있다. 

2004년 4월15일 총선에서 탄핵정국의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 반대편에 섰던 덕에 152석을 얻은 열린우리당과 함께, 민주노동당도 10석을 확보하여 감격스러운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감격은 감격대로 하되, 2002년 대선 이후 별로 득표 상승요인이 없었음에도 스스로의 실력이 아니라 ‘반사이익’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는 점 역시 분명하게 상기해야 한다. 당시 국민들은 분명 민주노동당을 노무현 정권과 뭉뚱그려 ‘진보개혁세력’으로 보고 있었다. 또한 독자적 정치노선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동반 몰락할 것이라 염려하고 경계를 주문했던 이들이 많았다. 

이렇듯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들은 부정부패의 상징, 병역비리와 차떼기의 한나라당에 반대하며 노무현 정부에게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을 몰아주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오히려 민생을 후퇴시켰다. 배신감과 좌절감에 빠진 분노한 국민들은 2007년 대선에서 이회창보다 훨씬 비도덕적인 신보수 신자유주의자 이명박에게 민심을 쓸어 주었다. 그러나 이는 ‘경제’에 대한 기대보다 ‘안정감 있는 국정운영’에 대한 선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 속에는 국정파탄 2중대 혐의자 민주노동당의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 설 땅은 처음부터 없었다. 민주노동당이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이라는 사실은, 이미 2007년 1월 당대표와 진보정치연구소장이 스스로 진단했던 바였다. 

예고된 패배 위에 “충격” 또는 “참패”라는 자극적인 포장을 덧씌워 마녀사냥식 희생양 찾기를 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할 뿐이다. 후보선택의 불만, 불명확한 슬로건, 선거전략의 부재, 정파 간의 갈등, 애매모호한 정체성 등 최악의 상황은 민주노동당 자신들 스스로 만들었기에 서로 남의 탓을 할 일이 아니다. ‘후보에 대한 정계은퇴 책임론’과 ‘분당론’에 대해서 “노동자들의 지도자를 노동자들이 그렇게 함부로 말하느냐”며 택시기사에게 핀잔을 받는 민주노동당의 수습과정이, 현재의 수준이고 실력이다. 

뒤늦게 발동인 걸린 민주노총, 그러나…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는 다급하게 민주노동당 지지와 계급투표를 호소하며 뛰어 다녔다. 대선용 벽보 3종, 공약비교 자료집, 대선 홍보물 3종, 현수막 부착뿐만 아니라 “2007년 11월27일부터 선거운동기간 일상업무를 중단하라”는 대선투쟁지침 1호부터 4호까지 내렸다. 조합원 행동의 날, 조합원 교육의 날, 현장순회와 교육, 단위노조 대표자 지지선언, 정치실천단 조직과 연고자 파악, 참정권 서명, 세액공제와 당원확대, 휴대폰 컬러링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열거하며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현장의 노동대중은 냉담했다.

이미 민주노총 현장은 일부 금속이나 화섬을 제외하고 선거운동에서 공조직 가동이 멈춰선 상태나 다름없었다. 매일 도착하는 벽보와 홍보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러다 선거 끝나면 현장에 도착하는 것 아니냐”는 독촉을 할 정도로 현장과의 소통은 단절되어 갔으며, 현장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 남발되는 지침에 항의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80만 명의 조합원이 10명씩 조직한다는 계급투표 전략은, 처음부터 그저 보기 좋고 그럴듯한 선거전략일 뿐이었다. ‘몸부림’은 통하지 않았다. 

2005년 2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와 이어서 터져 나온 노조간부들의 비리사건은 민주노총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이었다. 또한 2006년 10여 차례의 총파업 투쟁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지 못하며,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역풍을 맞게 된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고립과 위기는 더욱 심화됐다. 그 결과 보수세력의 분할 지배정책에 따라 전통적인 여성과 남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와 자영업자 간 철저한 계급분열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주노총당’으로 여겨지는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지지율 동반하락은 비켜갈 수 없는 운명이었고, 이로 인해 정치적 대격변기이며 대중들의 역동성이 가장 활발해지는 대선정국에서 사회변혁의 주체로 각인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과정에서 표출된 정파적 갈등의 열기는 경선이 끝났음에도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그대로 온존했다. 노조 집행부의 성향에 따라 선거결과를 대하는 온도 차이가 극심했으며, 특히 ‘한국노총 사과 사건’은 개인의 정치성향에 따라 불만을 확대해서 표출할 수 있는 좋은 빌미가 되었다.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입에서, 노조간부들의 입에서 민주노동당 내에서 발생하는 정파 간의 갈등과 권력다툼의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전달되고, 이는 보수언론의 악의적인 매도를 통해 확산되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인기와 지지는 더욱 악화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비전 제시능력마저 취약한 민주노동당에 대해 국민 대중들이 희망을 접기 시작했고, 핵심노동자들의 가족들에서부터 출세를 위한 정파 간 암투만 횡행한다고 전해지는 민주노동당에 대해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이 역대 선거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역량과 노력을 쏟아 부었지만, 체감되는 결과는 어느 때보다 초라했다. 민주노총이 아무리 몸부림친다 해도 큰 흐름을 변화시킬 동력은 되지 못했을 거라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그토록 갈망해오던 ‘노동자 정치 세력화’에 대해서 총체적인 재검토를 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대선 이후 시련의 광야에 홀로 선 민주노총 

한국노총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무리한 정책연대를 강행했다. 녹색사민당이라는 정치실험을 실패로 끝낸 한국노총은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며 가장 ‘반노동 친기업’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내세우는 한나라당 이명박과 손을 잡았다. 이를 통해 수천억 원에 이르는 정부의 노사발전재단 자금을 확보하고, 지역노동시장까지 개입할 근거를 탄탄하게 마련하고자 했다. 또한 향후 5년간 대격변을 불러올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후광을 등에 업고자 했다. 비정상적인 노동운동을 해온 한국노총은 그들만의 역사 속에서 형성한 특유의 처세술로 생존의 기반을 다졌다. 

민주노총은 광야에 홀로 서 있다. 7년간의 민주노총 정치세력화 노력의 성적표는 너무 왜소하고 초라하다. 민주노총은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위해 민주노동당만을 배타적 지지하기로 결의하고 선거운동을 해왔다. 그 민주노동당은 현재 대선결과를 놓고 분당사태가 거론되며 뜬구름처럼 흩어져버릴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고 있고, 민주노총은 이를 바라만 보고 있는 신세이다. 당내에 28%라는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주체이지만 민주노총은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해결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뿌리 깊은 정파 간 갈등이 민주노총까지 덮칠까 눈치만 보고 있으니 영향력 있는 지분은 0%이다. 

이명박은 현대라는 재벌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사용자 출신이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착취하며 노예처럼 부려먹는지를 터득한 사람이다. 줄서기를 한 한국노총과 반대하며 저항하는 민주노총을 어떻게 차별화하여 고립시킬지 잘 아는 사람이다. 이명박은 95%의 노동자를 관리하며 “5%에 불과한 강성노조의 상징인 민주노총”, “노동귀족과 정규직 대공장노조만을 대변하는 민주노총”으로 더욱 고립하고 탄압을 가속화할 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양보가 필요하다”며 압박할 것이다. 강성노조 민주노총은 경제 살리기를 반대하는 ‘공공의 적’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명박 식의 신자유주의, 기업독재시대를 견제할 정치적 방어막이 없는 민주노총에게는 노무현 정권 시절보다 혹독한 시련과 고통의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에게 든든한 정치적 바람막이 구실을 기대했던 민주노동당은 오히려 민주노총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통해 노동자 정권을 창출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실현해 줄 희망이 아직 민주노동당에 아직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민주노총의 정치 세력화는 실험이 불발로 끝날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노동자정당 ‘정체성’과 뗄 수 없는 민주노총당 ‘이미지’

해방 이후 숱한 진보정당의 실험과 탄압의 역사를 뚫고, 19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성과가 모여 1990년대 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정치세력화의 방침을 갖고 ‘시기상조 반대론’을 제어하며 주도적으로 만든 정당이다. 그러기에 당연히 민주노총당이며, 민주노동당과는 자웅동체이다. 노동운동이 침체되면 민주노동당도 침체되며, 민주노총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면 민주노동당도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지지율이 추락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이렇듯 민주노동당의 성공과 실패에는 민주노총의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기에,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패배자는 민주노총이다. 

민주노동당은 대선 전략을 세우며 민주노총과 긴밀하게 상의하는 게 상식이었다. 그러나 당선 가능성도 없는 군소정당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과정에서, 정파들이 이해득실에 따라 민주노총을 ‘왕따’시키며 개입할 여지를 없애 버렸다. 또한 노무현 정권과 궤를 같이하는 자유주의 세력에 동조하며 “대공장 정규직노조를 대표하는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자들도 있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 이후 국민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민주노총과 함께 하는 것이 민주노동당 득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하며, “관계를 멀리하거나 민주노총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성당원 중심의 당원직선제가 정답이라면, 국민적 고립을 당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부담스러운 배타적 지지’는 철회를 요구하는 게 선결과제일 터다. 그러나 노동계급을 기반으로 삼는 민주노동당이 80만 노동자들의 대표기구인 민주노총의 전폭적인 지지를 부담스러워 한다면 그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이 지지를 철회한 민주노동당을 상상이나 해보았는지 궁금하다.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민주노총당”이라는 애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할 지배관리하려는 신자유주의 보수세력과 투쟁으로 극복하려는 태도가 노동자정당의 올바른 자세이다. 민주노총의 위기와 고립을 함께 극복하면서 동반 성장하려는 전략을 포기한다면, 배타적 지지도 포기하고 용감하게 홀로서기로 나가야 한다. 조직과 돈, 표에 대한 욕심을 갖고 노동자들 위에 올라 타 이용만 하려는 태도를 대중들은 직관과 본능으로 알아챈다. “언제까지 돈 대주고 표만 대줄 것이냐”라는 현장 노동대중들의 불만과 원성을 민주노동당은 제대로 들어야 한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울산에서 노동계급 동원전략으로 실시된 ‘민주노총 조합원 총투표를 통한 후보선출’은 정치신인 노옥희 시장후보가 26%의 계급투표를 득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참여한 만큼 책임을 졌다. 그러나 때늦은 감이 있었지만 다급하게 제안된 민주노총 이석행위원장의 민중참여경선제 제안은 거절당했다. 노동자정당에게 노동자·민중들의 참여를 통한 후보선출은 ‘선거와 재정에 대한 민주노총의 책임’을 의미한다. 그러함에도 민주노총의 고육지책이었던 노동계급 동원, 계급투표 전략마저 거부되고 노동자·민중의 정당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린다면, 배타적 지지는 철회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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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만 명의 민주노동당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뼈아픈 자기 반성이 절실하다. 12월29일 대선 결광에 따른 당 쇄신 방안을 위해 열렸던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 모습. ▶ 진보정치 ]

긴 호흡을 갖고 정치세력화 재강화로 나서기 위하여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를 위한 진로선택에서 여지를 별로 갖고 있지 못하다. 이미 표면에서까지 거론되기 시작한 분당, 봉합, 재창당, 청산 등 무엇을 하든 모든 선택의 주도권은 민주노동당 내부에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7년간의 노력과 조합원들의 피 같은 돈과 표를 받았던 부채를 갖고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이 어떤 선택을 하든 민주노총은 ‘압도적 다수인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 민중이 주인 되는 노동자정권 창출’이라는 사회변혁 노선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러기에 노동자·민중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중병이 들어버린 민주노동당에 대한 치유가 최선의 선택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의 정치권력 창출을 위한 노동자정당”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NL과 PD가, 자민통과 좌파그룹이 싸움박질로 날을 새우며 노동자·민중의 열망에 대해 한 치의 발전 없이 배신으로 답한 데 대해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최근 당내에서 불거져 나온 소위 ‘종북주의자’와 ‘반공주의자'라는 양극단은 해당행위의 책임을 물어 출당시키는 정풍운동을 강행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아끼고 사랑하는 민주노동당 사수세력의 힘을 모아 분당을 막아내고, 무책임한 외부세력의 분당 선동으로부터 바람막이가 되어야 한다. 7년간 해결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비정상적인 정당운영에 대한 혁신이 성공할 수 있도록, 혁신세력에게 힘을 실어 줄 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대장정은 계속될 수 있다.

한편으로, 민주노총의 위기와 고립이 민주노동당 지지율 하락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재출발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대의명분을 다시 획득하여 국민적 지지를 복원하지 못한다면, 내부혁신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지속되고 결국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세력화도 실패로 끝날 것이다. 95%의 국민들이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극복하고 투쟁의 대의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헌법수호운동’, ‘노동법 지키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헌법에 보장하고 있는 국민들의 행복추구권과 인간답게 살 권리,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교육하고 전파하여, 전 노동자가, 전 국민이 헌법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투쟁에 나서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이젠 선거시기에만 이상한 옷 입고 나타나 표를 달라고 구걸하는 방식의 선거운동이나 노동자들의 표를 쥐어짜는 방식의 동원전략은 한계에 봉착했다. 정치위원회는 일상의 정치운동은 하지 않고 선거운동을 전담하는 기구이고 정치실천단은 단지 선거운동원으로만 전락해 있는 천박한 수준을 빨리 극복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각 지역본부, 산별노조에 ‘정치국’을 설치하여 정치현안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대응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치의제를 발굴하고 해결을 전담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정치현안과 지역사회에서 요구하는 민생현안을 책임지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멀어져간 국민들의 관심을 붙들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지지세력으로 돌려 세워야 한다. 

또한 지역본부가 총괄 관리하는 ‘준조합원제도’를 도입하여 퇴직조합원과 가족, 당원들을 가입시켜 주변에서부터 일상적인 우군을 조직해야 한다. 가능한 지역부터 진보진영의 독립언론매체를 발행하여 보수언론의 여론조작에 대응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단시간에 완성할 수는 없다. 그러나 총연맹과 지역본부, 산별노조와 지부별로 역할과 책임을 분장하고, 현실화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여 세력을 규합한다면,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고 성공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