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을 의심해 본 적이 있나요?

노동사회

‘일중독’을 의심해 본 적이 있나요?

편집국 0 6,064 2013.05.29 09:24

지금은 멀리 이사를 와서 주말에 연구소를 가는 일이 거의 없지만, 서대문에 살 적에는 주말에도 특별한 이유 없이 연구소에 나가곤 했다. 바쁜 일이 있다면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연구소 근처를 지나가는 버스를 탔을 때도 “내려서 한 번 들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중독’의 초기 단계가 아니었나 싶다.

book_01.jpg‘일중독’의 정의와 그 징후

일중독이란, “일이 사람들의 삶에서 지배적 비중을 차지하면서 자기 일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도 병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또 갈수록 더 많은 일이나 더 높은 성과를 내야 만족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  일을 중단하는 경우엔 견디기 어려운 불안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병적 상황”이라고 한다.

매우 흥미로운 점은 경영학에서는 일중독을 ‘질병’이라기보다는 ‘몰입’의 한 형태로 본다는 것이다. 일중독이 모범적인 근로윤리의 상징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물론 이 입장이 모든 일중독에 대해서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성취지향적 일중독’이라고 하여 바람직한 일중독에 대해서는 권장하고 조장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반면 정치경제학에서 일중독은 ‘자본’의 산물이자 토대로 간주된다. 책에는 뜻을 파악하는 데 한참 걸릴 전문 용어가 나오지만, 인간의 노동력을 많이 빨아들이면 빨아들일수록 더 발전하는 자본주의가 ‘일중독’의 체제라는 점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독자들의 흥미 유발을 위해서 몇 가지 측정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일중독자와 열심히 일하는 건강한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미루어 버릴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일중독의 초기 단계에서는 “서두르거나, 바쁜” 태도를 보이며, “아니오”라고 거절하는 법이 없다. 쉬는 날이 거의 없고 계속 일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중기 단계에 가면 음식이나 알코올, 돈 등 다른 중독도 생겨나고, 친구도 하나 둘 사라져 인간관계가 단절되기 시작하여 사회생활 자체가 단순해진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변해보고자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여 다시 ‘일’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린다. 마지막 후기 단계에 가면 육체적으로 지치고 수면 장애가 온다. 만성적인 두통이나 척추통, 고혈압, 우울증에 시달리고 중대한 질병에 걸리거나 입원을 해야 하는 처지에 빠진다. 이런 육체적 결과를 넘어서서 정서적인 ‘죽음’에 처하면서, 도덕적 파탄에 이르기까지 한다. 

일중독에서 해방되기

여기서는 ‘일중독’의 개인적 차원을 부각하였지만, 책의 강조점은 오히려 조직과 사회의 차원에서 일중독을 조장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또한 일중독은 개인과 조직의 이념을 가리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간부나 비영리 조직 활동가 사이에서 일중독의 유형을 많이 발견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적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중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자본주의 체제가 중독 그 자체이니까, 자본주의 체제를 타파하자고?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은 요원한 목표라 여기서는 다룰 수 없을 것 같고, 책에서 제시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자. 

우선 “오늘 못 다한 일은 내일로 미뤄야 한다.” 일 보따리 붙들고 집으로 가거나, 밤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옆 동료에게 “넌 부모로서 게으르구나”라거나, “성실한 게 아니라 무능함의 증표”라고 면박을 줘서 집에 보내야 한다. 일중독을 긍정적으로 간주하는 사회 풍토를 바꾸기 위해서 내 조직부터 변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 차원에서 일중독을 극복하거나 예방하려면 ‘삶의 질 중심 구조 혁신’이 필요하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경쟁력’ 중심에 대한 대안인 것이다. 그 세부 내용은 하루 4시간 생계노동, 4시간 사회활동, 4시간 친교활동, 주거와 교육 의료 문제의 공동체적 해결, 세제 개혁 및 행정 개혁을 통한 자원의 재분배, 사회적으로 무의미한 노동의 축소 내지 폐지이다. 

그런데 앞의 ‘4시간’이 들어간 아젠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들어본 것들이다.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이 그간 추구해 온 것들이 아닌가 싶은데, 사회 차원에서의 해결점은 “모두 통하는가 보다.” (강수돌 지음 | 메이데이 냄 | 1만2천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