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원 노동자 정해진 열사를 보내며

노동사회

전기원 노동자 정해진 열사를 보내며

편집국 0 3,319 2013.05.29 09:24

정해진 열사의 분신이 있고나서 지역과 건설노조의 선배들이 염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인천에 또 다른 분신노동자가 생긴 것입니다. 정해진 열사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들 아직도 가슴이 먹먹한데 이동호라는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분신하여 정해진 열사가 떠나가셨던 한강성심병원 바로 그곳에서 힘겹게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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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14일 정해진 열사 영결식 모습. ▶ 매일노동뉴스 ]

또 한 명의 분신… 왜 착한 사람들이 죽어야만 하는가

이동호 동지는 인천 부평 지역에 있는 콜트악기라는 회사에서 일하다 정리해고에 맞서 27명의 해고동지들과 투쟁한 지 314일차 되던 날 분신을 결행하였습니다. 전기원 동지들이 정해진 열사의 죽음에 항의하며 경인지방 노동청 앞 천막농성장에서 아침저녁으로 진행했던 추모집회에도 이동호 동지는 누구보다 열심히 연대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이 일하던 사업장인 콜트악기의 해고자 원직복직투쟁에 가장 열심이었고, 해고되기 이전부터 지역에서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등을 해온, 정이 많고 법이 필요 없는 그런 동지였다고 했습니다. 열사가 되신 정해진 동지나 힘든 병상투쟁을 하고 있는 이동호 동지의 가장 큰 공통점은 ‘나 한 사람 희생되어서라도 동료들과 동지들을 힘든 파업투쟁과 해고투쟁에서 이기게 하고 싶다’는 열망이었을 겁니다. 또한 두 분 모두 동료들과 동지들을 끔찍이 아끼고 솔선수범하던 더없이 착한 분들입니다. 

전기파업투쟁이 백일이 되어가던 지난 추석 때였습니다. 지부장으로서 “추석연휴기간 농성장 당번을 정하자”고 제안해 놓고도 걱정이 앞섰을 때였습니다. 그때 정해진 열사는 농성장 지킴이를 자원하셨습니다. 파업대오에 일찍 결합하지 못한 것을 늘 미안해하던 정해진 열사는 “명절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다녀들 오시라”며 밝게 웃으셨습니다.  

그렇게 추석이 지나갔고, 파업대오는 눈에 띄게 줄어갔습니다. 백일을 넘게 함께 생활하며 투쟁했던 남은 동지들마저 상당수는 농성장에 발길을 끊거나 현장에 복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질 수 없는 싸움, 아니, 꼭 이겨야만 하는 파업투쟁이라는 것을 마지막 남은 십여 명의 동지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참으로 싸움의 끝은 보이지 않았고 모두가 힘들어 하던 때였습니다. 한평생 전기원 노동자로 산 정해진 열사는 일하다 허리를 다친 적도 있었지만, 회사는 산재처리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고 계속 고용을 거부당하고, 퇴직금도 못 받은 채 현장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노동의 희망을 노동조합이라 여겼던 것 같습니다. 정해진 열사는 “현장에서 불이익과 사고를 당해도 말 한마디 못했었다”, “노조가 있다면 더 이상 나 같은 불행은 없을 것”이라 말하곤 했습니다.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조합의 파업투쟁 대열에는 정해진 열사가 알만한 친구들과 형, 동생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끄덕도 않는 사장들과, 장기화 되어가는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으로 생활고에 시달린 동료들이 미안해하며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정해진 열사는 안타까워했습니다. 함께 고생하던 동료들만이라도 자신처럼 더 이상 내팽개쳐지고 고통스럽게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가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힘들 땐 말하자, 죽지 말고 싸우자

새로운 사회와 세상을 위하여 노조활동을 하고 사회운동을 하는 삶은 가시밭길, 고난의 길이 분명할 겁니다. 공권력에 의해 구속되고 때로는 하중근 열사처럼 맞아 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살아서 투쟁하자고 죽지 말고 싸우자고 말하겠습니다.   

장기투쟁을 하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노동형제들! 

함께 하는 동지를 믿읍시다. 또 아무리 짓밟혀도 고개를 들어 투쟁에 나서는 전국의 수많은 노동형제들을 믿읍시다. 그리고 힘들 땐 힘들다 말합시다. 도움이 필요할 땐 도와 달라 말합시다. 그렇게 서로 씩씩하게 연대투쟁하며 살아갑시다. 더 이상 남겨진 동지들과 동료들이 남은 삶을 살아가며 가슴에 잊지 못할 아픈 기억을 갖지 않도록, 살아서 투쟁하며 아름답게 기억되는 모두가 되자는 겁니다.

질 수도 있습니다. 아니 실제로 많은 경우 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어야 또 동지가 살아 있어야, 진짜 단 한 번의 큰 싸움을 우리는 이겨내지 않겠습니까? 

사람 사는 세상,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은 꼭 올 것입니다. 녹록한 정세와 조건은 아니지만, 새해엔 더욱 건강하시고 조직과 자신의 삶에서 일보 전진하는 모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것이 앞서간 수많은 열사들의 바람일 것이라 믿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