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이 바쁠수록 돌아봐야 할 지나온 길

노동사회

갈 길이 바쁠수록 돌아봐야 할 지나온 길

편집국 0 3,744 2013.05.29 09:23

민주노총 교육활동가 대회에 다녀왔다. 전교조 조합원이 된 지 8년, 전교조 집행부로 활동한지는 7년. 그동안 숱한 연수와 교육에 참가했지만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연수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석행 위원장은 조합원들을 가리켜 “당신이 바로 민주노총”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내가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스스로 각인하며 살아왔는지, “조합원들의 노동자 의식을 고취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일 자격이 되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이런……. 쪽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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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민주노총 교육활동가 대회에서는 노트북을 이용한 동영상 교안 시연도 있었다. 만화가 강풀이 그린 한미FTA 만화로 만든 PPT 교안의 한 장면 ▶ 민주노총 교육원(준) ]

큰 기대만큼 실망도… 하지만 딛고 가야할 현실

전교조가 민주노총과 한 몸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는 문제에 있어 활동가라는 나조차도 문제의 일부였으니 새삼 ‘나 자신이, 전교조가 아직 멀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기대를 많이 가졌었다. 전교조의 몇 배나 되는 공룡 조직, 독한 맘 먹고 파업한다면 전기, 가스, 운수, 항공, 공장 등 한국사회 전체를 멈춰버릴 수 있는 민주노총의 교육일꾼들이 모인다는데, 그 규모나 형식 등 하나 하나를 다 배워가야겠다고 다부지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게 뭔가? 생각보다 인원도 적고 참가한 노조도 기대만큼 다양하지는 못했다. ‘이것이 민주노총의 현실인가?’하고 의아심이 불끈 솟을 때 이석행 위원장은 강연에서 “이것이 민주노총의 현실이다.”라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개인적으로 민주노총 위원장의 생생하고 고뇌가 담긴 이야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위원장이라면 으레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며 “힘내자! 고지가 코앞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석행 위원장은 냉정하게 현실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며 솔직한 고뇌를 시원시원하게 털어놨다. 

그 어느 강연보다 진정성이 느껴지고 그러기에 나 자신에게 채찍질이 되는 이야기였다. 누구 말대로 위원장을 ‘고무·찬양’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거듭 “당신이 바로 민주노총”이라는 말을 되새김질 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의 모든 조합원들이 서로의 처지와 조건의 소소한 차이를 넘어, 같은 입장에서 하나의 깃발에 모여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함께 행동하는 그런 벅찬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너무 멀지만은 않은, 손에 잡힐 듯한 그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로 민주노총이고 우리 교육일꾼들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대회의 연수 내용보다도 이를 계기로 다양한 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육일꾼들의 경험과 사례를 보고 듣는 것이 나에겐 매우 신선했다. 특히 “교육을 할 마땅한 장소도 없고 교육에 참가하려면 조합원들이 하루 일당을 포기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던 건설플랜트노조 교육일꾼의 이야기는 평소 사업의 부진함을 조건의 탓으로만 돌리며 투덜대던 나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자기성찰의 참맛을 일깨워 준 ‘참여형 교육프로그램’

dhkim_02.jpg전교조는 명색이 교육을 업으로 삼는 노동자들의 조직임에도 이전까지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대부분 1회적 대중강연 형태의 주입식 교육이었으며 이마저도 흥미는 충족했을지언정, 고집과 자기주장이 강한 조합원들의 성향상 기대하는 방향으로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교육효과는 미비했다. 그러던 중 “교육을 통해 조직에 생기를 불어넣자!”며 작년에 서울지부에서 개발한 ‘참여형 분회장 교육프로그램’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성과를 일구어냈고 올해는 전교조 본부를 통해 이 프로그램의 보급과 개발에 많은 힘이 보태졌다. 내가 속한 경기지부에서도 올 초 2회의 강사단 교육을 통해 10여 개의 지회에서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나 역시 지부의 교육선전국장으로 이 프로그램의 보급에 힘껏 소매를 걷어붙였다. 처음 참여형 프로그램을 접했을 땐 가만히 ‘참선’하듯 듣기만 하던 강의에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발표까지 해야 하는 방식으로의 변화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나의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이 의미 있었다. 특히 게시판토론, 역할극 등 다양한 형태로 조원들과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이전의 고리타분한 강의보다는 분명 진일보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조합원들에게 “재미있는 교육”이라며 참가를 독려했다. 실제 참가한 조합원들은 새로운 형식이 재미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했다. 나조차도 처음엔 그저 지루한 강의가 아니라 “참가자들이 만들어가는 생기 있고 재미있는 교육”이라고 참여형 교육프로그램을 정의했었으나 스스로 몇 번 참여하면서 곰곰이 되짚어보니 이 프로그램의 참맛은 ‘자기 성찰’에 있지 않은가 싶다.

전망의 홍수 속에서 길어올리는 희망

“이렇게 가야한다.”는 전망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지나온 길을 돌아봄’은, 자신에 대한 ‘성찰’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특히 활동해왔던 경력과 경험이 많은 활동가일수록 돌아보는 일에 더 인색해 보인다. 뭔가를 제시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서일까? 앞서 말했듯 전교조 활동가로 7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큰소리치는 나 자신은 과연 7년 전보다 얼마나,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했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해야 할 당면과제에만 쫓겨 코앞만 보며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분명 지난 7년의 시간과 경험은 나에게 큰 밑거름이 되었을 터인데, 내가 그 경험들을 올곧게 체화했는지는 그 경험을 했다는 것과는 다른 별개의 문제인 듯하다.

참여형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전교조와 나와의 관계를, 활동가로서 나의 모습 등을 계속 되새겨보게 되었다. 애써 한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가 그렇게 이끌어 간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일어서려면 프로그램 와중에 떠올랐던 지난 나의 모습에 좀 아프지만 여운이 남는다. 이 아픔과 여운이 나를 더욱 단련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석행 위원장은 “조직의 현실은 이렇다.”고 고뇌하셨다. 난 그것이 현실일 뿐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거는 과거 민주노총이 만들어왔던 역사다. 그 역사를 혈관 구석구석에 새겨놓은 노동자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런 노동자들이 자기 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단련한다면 이전까지 없던 더 큰 승리의 역사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교육일꾼인 내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런 성찰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런 ‘돌아봄’이 전망의 홍수 속에서 올바른 진로로 동지들을 모아낼 것이라 믿는다. 그런 동지들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우리들이 바라는 ‘노동자들이 행복하고 살맛나는 세상’이 현실로 우리 품에 안겨올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아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