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문화사회로 가는 길

노동사회

복지문화사회로 가는 길

편집국 0 3,463 2013.05.2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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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7년 11월30일 <연세대학교 제10회 효정 이순탁 선생 기념강좌>에서 발표된 연설문을 일부 수정·편집한 것입니다. 필자 김윤환 명예교수는 1965년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 관련 연구소인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를 창립해 초대 소장을 지냈으며, 김낙중 선생과 함께 저술한 『한국노동운동사』(1970)를 비롯해 노동문제와 서민을 위한 경제문제에 애정을 갖고 다양한 연구 및 활동을 펼쳐온 원로학자이십니다. “신나게 일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깊은 호흡의 성찰이, 격동의 시대를 맞는 노조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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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왜 복지문화사회인가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산업화를 이룩하면서 민주화개혁을 시도했고, OECD 가입, 외환위기의 시련을 겪으면서 정보화시대 및 세계화시대에 대응하여 선진화를 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단계에서 미래 한국을 설계하는 비전으로 선진화, 복지사회화 등이 다채롭게 제기되고 있다. 비전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공감과 지지를 얻어 실현가능성이 있는 것이라야 한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고 공산주의에 대결해야 하는 시기에 나타난 ‘재분배형 복지국가론’을 오늘날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 타당한지 살펴보고 싶었다. 이에 인간의 삶의 본질이나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방향에서 복지사회의 개념이 수정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본인의 지론인 ‘복지문화사회론’을 펴볼까 한다. 구체적인 설계도를 제시하기보다 방향제시에 그치고자 한다. 그러기에 본론에 앞서 다소 지루하지만 삶의 본질이나 시대변화를 장황하게 늘어놓게 되었다.

2. 산다는 것의 뜻과 내용

1) 먹고 사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


모든 생물은 살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여 먹을 것을 구하고, 자기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고통까지도 감내하는데, 이것이 생물들의 타고난 성품이다. 이러한 기본 이치는 인간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식욕을 채우려는 개체유지본능은 인간으로 하여금 일하는 직업, 직장을 갖게 했고 성애욕을 채우려는 종족유지본능은 자식을 키우는 가정을 꾸리게 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힘있는 사람 힘없는 사람 할 것 없이, 인간의 일생은 직장과 가정 사이의 계속적인 왕복이다. 자식과 재산문제로 행복할 수도 있고 죄를 지을 수도 있다. 아마 이왕이면 신나게 일하고 즐겁게 사는 삶으로 인생을 빛나게 하자는 것이 인생의 목표일 것이다. 이러한 이치에 비추어 인류 역사의 전제조건은 재화생산과 인간생산이고, 양자의 불균형에서 과잉인구니 과소인구니 하는 것 등 각종 문제가 일어난다. 

인간생활의 행복여부는 노력, 환경, 시대성 등에 의해서도 좌우되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선택 노력이다. 어떤 배우자를 고를 것인가, 어디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사귈 것인가,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중 어떤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질 것인가가 인생의 운명을 좌우한다.

인간사회는 슘페터(J. A. Schumpeter)가 말하듯이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조적 파괴에서 발전·진보한다. 그 중 기본조건은 기술혁신과 조직혁신이다. 기술은 손노동을 도와주는 도구로부터 시작하여, 손노동을 대신하는 기계로 나아가, 정신노동을 대신하는 지식정보기술로 발전되고 있다. 기술혁신은 인간생활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지만 마르크스(K. Marx)가 말하는 노동절약에 의한 실업으로 빈곤을 가져왔고, 케인즈(J. M. Keynes)가 말하는 과잉생산에 따른 유효수요부족에 의한 불황으로 실업을 가져왔다. 

조직운영의 효율화를 가져온 조직혁신은 조직의 거대화에 의한 비인간화로 비능률화가 초래되자, 절대적인 명령적 지배구조에서 상대적인 합의적 지배구조로 점차 바뀌고 있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집단생활을 해왔는데 그 집단을 개인본위로 운영할 것인가 사회 본위로 운영할 것인가가 문제되었다. 이것은 또한 사회사상, 사회제도, 학문 등 모든 분야에서 논쟁의 씨앗이 되었다. 예컨대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 전제정치와 민주정치,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인간의 몸은 병에 걸려도 스스로 낫게 되는 자연치유의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순조롭지 않을 때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치료라고 했다. 따라서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고 자연치유를 도와줄 뿐이며, 자연치유력이 없으면 병이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신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에서도 자연치유를 돕는 기능을 하는 ‘시장’이 있고, 외부의 힘에 의한 ‘조정’과 같은 치료가 있다. 시장은 자본주의의 전유물인 것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 인간의 오랜 생활체험 중에서 찾아낸 불이나 문자와 같은 위대한 발명품이다.

자본주의경제는 다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시장의 자동적 조정으로 장기적,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것이 고전파 및 신고전파의 경제사상이다. 이에 대해 자본주의가 과잉생산공황과 대량실업에 의한 사회주의혁명으로 쓰러질 것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사상이다. 또한 자본주의경제는 비틀거리는 불안정상태에 있지만 정책적 조정을 잘하며 부축하면 존속가능하다는 것이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사상이다. 

짧은 사회주의 실험을 거쳐 자본주의만이 살아남은 현재에는 자동적 조정에 전폭적인 신뢰를 두는 미국의 시장원리지상주의와, 자동적 조정에 정책적·합의적 조정을 가미하려는 유럽의 복지중시주의가 대립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민주화, 산업화로 사회갈등이 격화된 상태에서는 자동적 조정, 정책적 조정에 더하여 대화와 협의에 의한 합의적 조정이 가미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민경제도 ‘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경제’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2) 신나게 일한다는 것

우리는 왜 일하는가? 우선 먹고 살기 위해, 돈벌이를 위해 일한다고 할 수 있다(경제적 의미). 그렇다면 돈을 적게 버는 사람보다 많이 버는 사람이 잘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남을 위한 값어치 있는 것을 만들어 사회에 공헌하고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으며, 사람들과 폭넓은 교류를 할 수 있다는 데서 노동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사회적 의미). 또한 출세만이 행복한가 하는 견지에서 노동에 대한 자기만족, 자기충실 등 자아실현을 위해 일한다고도 할 수 있다(인간적 의미). 

경제적 의미에서만 노동의 의미를 찾는다면 전문직과 같은 상위직종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허드렛일을 하는 하위직종에서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공동체의 유지 발전을 위한 불가결한 조건으로서 일을 해야 한다는 데서 노동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노동의 의미에는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근원적인 규정이 얽혀 있고, 때문에 노동은 한 인간이 사회적 인격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필수조건,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런데 현대산업사회에서는 지나친 업적주의가 노동소외, 즉 노동의 비인간화를 자아내고 있다. 노동의 의미를 살리는 방향에서 노동인간화가 이루어진다면 노동은 물질생활의 충족, 행복감의 원천, 인격도야의 기반, 사회의 유지발전의 기반이 될 것이고, 인간은 물적, 심적 행복을 크게 하며 신나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즐겁게 산다는 것

즐겁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요구되는 많은 물질적, 정신적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부족, 불평불만, 불안 등으로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불행이다. 인간은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온갖 노력으로 극복하여 행복하게 즐겁게 살려는 희망으로 산다. 인간의 욕망은 하나가 충족되면 또 다른 새로운 욕망이 계속 생겨, 욕망에는 끝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욕망의 덩어리이다. 현대인의 의식주, 건강, 문명적 환경, 문화적 수준은 미개사회의 생활에 비하면 그야말로 극락생활이라 할 수 있음에도, 부족, 불만을 느끼는 것은 욕망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은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 또는 진행형의 문제이다. 또한 그것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능력 즉 분수에 맞게, 그리고 사람다운 이상에 비추어 추구되어야 한다. 사람다운 이상은 단순한 생존에 그치지 않고 보다 참되게(眞), 보다 선하게(善), 보다 아름답게(美), 신앙생활로 보다 성스럽게(聖) 하는 가치실현과, 자기능력을 발휘하는 자아실현이다.

행복은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금전욕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애, 명예욕, 권세욕, 창작활동, 포교 등에 목표를 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친구, 조직, 국가, 인류 등에 대한 사랑도 있지만,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이성에 대한 사랑이다.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현대문명사회에서 자유연애를 한다는 것은 행복감을 주는 매우 좋은 일이다.

이러한 이성에 대해 좋은 분위기를 느껴 일어나는 충동적인 연애는 매우 감동적이지만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자유연애와는 배치되지만 결혼은 정애(情愛)의 배타성을 사회적으로 승인받은 안정적인 제도이다. 자유연애가 감성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면 결혼으로 맺어지는 가정은 습관적 사랑(정) 또는 다소 허물이 있어도 덮어두고 사는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다. 가족은 사회의 기본단위로서, 이것이 무너지면 사회가 해체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꿈같은 유토피아를 그리지만 그러한 행복은 찾아내기 힘들다.

어쨌든 이만하면 된다는 의식상태, 또는 불행한지 행복한지 관심조차 없는 상태가 행복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문제 삼는 빈곤, 실업, 공해, 인권, 사회적 갈등, 전쟁 등은 어느 것이나 살아가는 생활에서의 고통이다. 이밖에 오늘날에는 세계화에 따른 여러 민족의 교류, 이주에 따른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대립, 갈등이 문제가 되는데, 이는 다른 문화를 수용, 동호하는 다문화주의로 해소되어야 한다.

고도의 과학기술발달도, 이상사회를 꿈꾸는 사회변혁도, 인간존재에 관련된 번민이나 고통을 뿌리 뽑아 주지는 못한다. 이처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인간성의 한계이다. 생물적 존재로서의 한계는 생로병사(4苦, 生老病死)이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한계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쓰라림, 원수를 만나는 고통이다(4苦에 계속되는 8苦의 후반, 愛別離苦, 喜怒哀樂). 이러한 고통은 수양이나 체념으로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절대자를 믿음으로써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종교(불교)이다. 또한 인간은 양심에 어긋나는 죄악으로 번민과 고통을 받는 윤리적 존재인데, 이 윤리적 한계를 믿음으로 용서받아 해소하려는 죄의 종교가 기독교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인간존재의 한계를 절대자에 대한 믿음 즉 종교의 힘으로 극복하여 불안한 마음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꾸어 행복해지고자 한다.

3. 산업사회의 성격과 변화

1) 자기실현과 자기표현의 조화


현대인은 업적주의 가치관에 따라 생활하는 존재다. 산업사회에서는 관공서, 대기업과 같은 조직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수험경쟁을 거쳐 학교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이 조직에 집중되고, 조직에서는 업적본위의 승진경쟁을 하게 된다. 이에 끼지 못한 사람과 퇴직하여 중심부를 떠난 사람들이 주변부를 차지하게 된다. 산업사회는 고도의 산업문명과 복잡하게 분화된 사회제도로 뒷받침되기 때문에 그 운영에는 다른 사람의 역할과 자기의 역할의 분별, 협력과 조정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일하는 과정에서의 ‘자기실현’과 소비하는 과정에서의 ‘자기표현’이 시장기구 안에서 이루어진다. 일하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여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는 경쟁을 하고, 기업은 기술혁신, 이윤추구, 판로개척 등의 경쟁에서 이겨야 발전한다. 개인이나 집단의 업적경쟁이 산업화를 위한 원동력이 된다.

산업사회에서는 누구나 자립생활을 위해 직업을 갖는 것이 당연하고 직업을 가지면 일을 통해 자기실현을 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실현의 통로가 막힌 사람들은 자기표현의 세계에서 사는 보람을 찾게 된다. 자기실현의 영역인 중심부는 철저하게 조직화되어 충성심, 일체감이 요구된다. 그러나 소비나 애정의 자기표현 국면은 좀 더 자유롭다. 

산업화가 진전되어 생산이 생존유지에 필요한 최저선을 크게 상회하게 되면, 지금까지 근면절약을 통해 자기실현을 찾은 것에서 분열되어, 소비에서 즐거움을 찾는 자기표현의 가치관이 독립하게 된다. 시장과 조직이 산업사회의 핵심이 되고 있다. 시장은 경쟁과 교환을 위한 제도이고, 대중의 수요를 중심부 조직이 경쟁하여 공급하며, 이를 통해 사회진보가 이루어진다.

산업화 단계는 19세기적인 전기 단계와 20세기적인 후기 단계로 구분되는데, 발달된 산업사회는 후기단계 중의 최근단계이다. 이 새로운 단계에서 구조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나타내는 말들로 포스트산업사회, 정보화사회, 제3의 물결, 성숙사회, 고도대중사회와 같은 것들이 등장하고 있다. 또한 사회과학분야에서는 패러다임전환이라고 할 만한 코포라티즘과 같은 새로운 분석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변화는 근대사회를 구성하는 자본주의, 산업주의, 근대국가, 개인주의, 과학주의 등의 요인을 앞으로 변화시키는 싹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정치와 경제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2) 정치면의 변화

정치면의 변화로서는 첫째, 하위(sub) 정치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시민운동, 사회운동, 자발적 결사 등이 복지, 환경, 의료, 지역문제 등의 분야에 정치참가를 하게 되었다. 특히 생활을 중심으로 전개된 생활(lively) 정치의 비중이 지역에서 증가되고 있다.

둘째, 결사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근대사회는 국가와 개인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중간단체를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자발적 결사 없이는 사회운영이 어렵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협동조합, 기업조직 등이 거대화 되고 코포라티즘 정치체제가 문제됨에 따라 20세기말에 결사혁명이 주장되었다. 어떤 학자는 지나친 집단주의도 지나친 개인주의도 부정하고 그에 대신하는 새 시대의 결사혁명을 주장했다. 결사란 의료, 복지, 생활향상 등의 구체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되어 민주주의적으로 자기통치를 하는 조직이다. 결사혁명은 개인의 자유를 우선하나 그 개인은 동료와 협동할 때 비로소 효과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셋째, 새로운 사회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체제변혁을 목표로 하는 혁명운동도 아니고, 빈곤의 연대로서 노동운동도 아니다. 흩어진 개인의 연대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사회참가의 기풍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이는 어떤 명백한 결과를 얻기보다 사회의 권력관계를 폭로하고 그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하는 데 목표가 있다. 이 운동은 직접적인 저항보다 메시지를 전하는 데 목표가 있고 정치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3) 경제면의 변화

다음으로 경제면의 변화로서는 첫째, 완전고용의 파탄을 들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선진국에서 한때 완전고용을 달성했으나 고도성장의 결과로 나타난 석유파동, 세계화, 노동절약적 기술혁신은 완전고용시스템을 무너뜨렸다. 이와 같은 완전고용의 붕괴는 발전된 산업사회의 특질이 되었다. 이에 따라 고용이 중요시되고 이것이 정치문제로 비화되었다.

둘째, 시민노동 또는 사회노동이 새로운 고용증대의 방안으로 등장하였다. 즉 공공복지사업을 위해 자발적으로 보수 없이 일하거나 또는 노동에 대한 기초 제비용을 실업보험기금이나 생활보호비에서 지급한다. 이렇듯 사회노동은 국가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셋째, 시민소득 또는 기초소득이 주장되고 있다. 완전고용의 파탄, 근로소득 감소에 따른 재정자금 조달의 한계, 노동운동의 약체화로 조직노동자의 요구에 따른 사회적 공정을 기하기 어려워졌다. 다른 한편으로 복지사회사상이 보급되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기초소득론’이 등장하였다. 기초소득 구상은 취로의 유무, 재산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모든 개인에 대해 가계조사 없이 기초적 필요를 충족시킬 소득을 보장하려는 제도이다. 그 재원은 모든 근로소득에 대한 비례과제, 각종 소득공제의 폐지, 소비세 기타의 과제, 사회보장급부 중의 현금급 부분의 전환사용으로 충당한다.

정치와 경제 외에 현대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세계화의 충격, 차이의 존중과 문화의 공존을 지향하는 다문화주의이다. 이런 변화에 따라 권력의 장악유지의 중심에 서 있던 정치경제가 생활에 중심을 둔 것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생활정치, 생활경제의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 나갈 것이다. 따라서 위로부터의 복지국가론이 밑으로부터의 복지국가론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감수성 있게 받아들여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제3의 길을 내세우는 정치세력일 것이라고 한다.

4. 바람직한 복지사회상

이제 앞에서 살펴본 삶의 의미, 우리가 살고 있는 산업사회의 성격과 변화에 비추어, 종래의 복지국가론이 어느 면에서 새로이 보태져야 하는가를 본격적으로 밝혀보고자 한다.

1) 복지국가에서 복지사회로

원래 인간은 오늘은 어렵지만 내일은 보다 잘 살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산다. 인간은 아무런 꿈 없이 땅만 보고 사는 동물과 달리, 하늘을 우러러 보며 꿈을 키워가면서 살아가는 미래지향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동물은 꿈 없이 타고난 조형능력(造形能力)으로 정교한 벌집을 짓는 벌과 같이 유전정보로 산다. 인간은 이미지나 상징을 조작하는 구상능력(構想能力)을 지녔고, 창조적인 구상능력은 미래를 발명 디자인하여 인간문화를 발전시키는 기본조건이 된다. 인간은 주어진 세상에서 그대로 사는 동물과 달리 바람직한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다 잘 살려고 한다. 때로는 비관적인 디스토피아를 그리기도 하고 낙관적인 유토피아를 구상하기도 한다. 때문에 어떤 학자는 공상이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하기도 했다.

1930년대의 세계 대불황을 계기로 북구의 여러 나라들과 뉴질랜드가 경제계획화와 사회보장을 추진했고, 대전 후 1945년 집권한 영국 노동당 정부가 기간산업의 국유화, 경제계획화, 광범한 사회보장과 완전고용정책 실시로 복지국가를 내세워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처럼 복지국가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나타나 성장했다. 어느 정도 산업화가 달성된 나라들은 복지사회로의 이행이 국민적 합의에 의한 ‘역사적 필연’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일반적으로 복지국가란 사회보장제도가 실시되고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피구(A. C. Pigou)는 복지의 의미를 만족·불만족을 나타내는 의식상태와, 화폐와 관련된 경제복지 증진으로서 소득의 증대, 평등 안정에서 찾았다. 이렇듯 사회복지 전반을 문제 삼으려면 경제적 복지에 비경제적복지(문화, 교육, 생활환경 등)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복지정책과 복지국가를 높은 차원으로 올리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소득과 물질적 최저한 등 생활의 질을 보다 고차적으로 개선할 것을 포함한 복지정책이 수립?실천돼야 한다. 둘째, 소득재분배에서 더 나아가 비물질면에서의 평등화 및 소유면의 평등화를 추진하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 셋째, 모든 조직을 분권화하여 참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어떤 학자는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 전 국민에게 매력이 있고, 참가와 분권화로 집권화의 폐해가 제거된 복지국가를 ‘복지사회’라고 불렀다. 하지만 복지국가의 대표적인 나라인 영국이 지나친 복지정책으로 경제위기에 처하게 되자 이것을 선진국병, 영국병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복지국가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그만큼 강한 비판도 일어났다.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제기됐다. 첫째, 사람들을 게으르게 하고 자본축적을 어렵게 하여 경제성장에 해롭다. 둘째, 완전고용 정책은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강화하여 지나친 임금인상으로 물가를 올리고 국제수지를 약화시킨다. 셋째, 정부개입이 시장기능을 약화시킨다. 넷째, 정부개입은 관료주의 또는 전체주의를 초래한다. 다섯째,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키고 허무하게 만든다. 여섯째,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분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등등. 물론 이러한 비판들은 본질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복지국가론에 대한 반성을 환기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2) 복지문화사회의 지향점 

이상에서 개략적으로 무엇이 복지사회인가를 살펴보았다. 본인은 이에 위에서 살펴본 삶의 본질이나 산업사회의 변화상에 비추어 몇 가지 새로운 관점을 보태어 ‘복지문화사회’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인간본위의 사회경제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본위의 비전이 복지사회의 지도이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경제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 위해 경제가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풍부성의 추구는 무분별한 경쟁으로 격차와 불안을 초래하고 도덕성을 잃게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인간본위 사회경제체제는 ‘시장경제’(이기심), ‘공공경제’(정의감), ‘사회경제’(자비심)로 구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장기능의 강화와 공정경쟁으로 활력 있는 사회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깨끗하고 능률 있는 정부가 기술, 조직, 자립능력을 키우고 처진 자와 가난한 가정을 추켜세워, 꿈과 희망이 있는 사회경제를 이룩해야 한다. 더욱이 양심 있는 시민이나 집단이 시장이나 정부만으로 풀기 어려운 사회경제문제를 자발적 협력으로 풀어, 평화롭고 밝은 사회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인간본위 사회경제체제는 경쟁원리뿐 아니라 협력 또는 연대원리(비자발적·자발적)로 균형적이고 조화로운 것이 되어야 한다. 왈라스(L. Walras)도 순수경제학에서 경쟁이 제대로 안될 때의 정부개입을, 응용경제학에서 조건의 평등을 위한 토지국유화의 주장을 사회경제학에서 밝혔다. 

한편, 경제학계에도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학문체계는 이기심(신이 내린 것)과 공감(정의감과 자비심)의 균형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기심에 입각한 경쟁원리를 키워 고전파나 주류경제학이 만들어졌고, 공감에 입각한 협력원리에 입각한 것이 재정사회학이나 사회경제학 등 비주류경제학이다. 경제학계는 이기심으로 행동하는 경제인(homo economicus)뿐 아니라, 특히 지식경제시대에는 지혜 있는 사람(homo sapiens)도 경제학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류경제학으로 일원화되고 비주류경제학이 배제된다는 것은 귀중한 다양성을 상실시켜 자유로운 사고를 가로막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경제시대가 문화시대로 바뀌고 있음을 반영하여 문화지향적 복지사회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물적 풍부성이 충족되고 나면 심적 풍부성을 바라게 되는데, 이 정신적 행복이 문화이다. 매슬로우(maslow)는 인간욕구가 배부르면(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다음에 마음 편하기(애정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를 바라게 된다고 하였다. 종래의 재분배형 복지국가론은 물질적으로 풍부하면 정신적으로도 행복하다는 가정 아래 물질적 풍부성만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물적 행복과 정신적 행복은 때에 따라 배치될 수 있다. 

발전된 산업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은 물적 풍부성이 확보됨에 따라 여가, 휴양, 예술 등 정신적 풍부성을 절실히 요구하게 되었다. 그렇게 경제시대는 문화시대로 바뀌었다. 따라서 현대복지사회는 당연히 ‘복지문화’를 누릴 수 있는 사회라야 한다. 문화는 예술문화, 생활문화로서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를 폭넓게 이해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러기에 국제적인 문화충돌, 문화공존, 문화교류, 다문화주의 등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셋째, 복지의 내용이 분배에서 고용이나 교육으로 옮겨가는 추세를 감안하여, 고용형 복지사회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후 선진국들은 완전고용을 달성했으나 고도성장의 결과로 나타난 석유파동, 세계화 등으로 완전고용시스템이 무너졌다. 때문에 고용이 큰 정치문제가 됐고, 종래의 복지, 환경 등의 공공사업분야에서 자발적으로 일하던 시민노동이나, 노동시간 단축, 파트타임노동의 증가 등이 주목되었다. 또한 중화학공업 중심의 양적 소품종 대량생산체제가 시장의 포화와 소득증대에 따른 소비수요의 다양화에 대응하지 못해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위기를 거쳐 다양화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정보기술에 의한 질적인 다품종 소량생산체제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지식집약형 산업에서는 지식자본 축적을 위해 개인의 지적능력을 높이는 교육서비스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생활보장도 중요하지만 인간생활을 지탱하기 위한 고용이나 교육훈련서비스도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나라를 고용복지형 국가(workfare state)라고 한다.

넷째, 복지국가 아닌 복지사회라야 한다. 복지국가의 개념은 복지정책을 실시하는 정책주체가 국가라는 뜻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하나의 사회 또는 체제를 가리키는 복지국가사회라는 뜻으로도 사용할 수도 있다. 어떤 학자는 복지국가의 이념인 사회연대와 협력의 정신이 희박해지고 있고, 또 복지국가가 개인이나 단체의 이기적 태도를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복지국가의 성과를 지키면서 그 결함을 극복하여 고차의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한다. 

국가가 국민복지의 보장을 위한 제도적 조건의 정비에 모든 책임을 지는 방향에서, 시민참가를 토대로 사회 전체의 저변을 개혁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도모한다는 뜻에서, 이러한 변화를 나는 “복지국가에서 복지사회로 가는 길”이라 칭하고자 한다. 1970년대 말에 이데올로기정치, 이익정치에 대해 생활을 내세우는 생활하위 정치활동이 일어났고, 국가권력의 절대화 시대가 시장, 시민, 기업, 국제기구 등에 의한 상대화 시대로 바뀌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복지국가보다 복지사회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다섯째, 관료주의를 극복한 민주복지사회가 되어야 한다. 복지국가에 대항하는 시장주의는 유토피아이고, 복지사회는 관료주의화 되기 쉽다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복지사회는 돈이 매우 많이 드는 사회인 동시에, 경제의 정치화로 집단주의 및 관료주의를 강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관료제는 전문가가 원칙과 분업에 따라 객관적으로 공무를 집행하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능률적이다. 그러나 관료제는 상하주종관계를 형성하기 쉽고, 조직에 대한 지나친 충성도가 규칙만능주의, 무책임, 게으름 등 비합리성과 비능률을 초래하기 쉽다. 따라서 복지사회체제의 관료화를 참가, 감시, 여론형성, 저항 등의 여러 방법으로 방지해야 한다.

이상에서 재분배형 복지국가를 보강해야 할 몇 가지 논점을 밝혔다. 이를 통해 보다 바람직한 복지사회상이 그려질 것으로 기대했다. 만일 바람직한 복지사회의 밑그림이 그려진다면 그 다음 순서는 그에 접근 실현하는 방책의 강구일 것이다. 하지만 신바람 나는 꿈같은 복지사회 실현은 잡으려면 사라지는 무지개 같은 환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은 오늘은 못살아도 내일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꿈, 희망, 기대감을 주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다 줄 것이다.

5. 시장원리주의와 복지중시주의 

1)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20세기의 화제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였으나, 냉전 종결 후인 21세기의 논쟁거리는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이다. 즉 어떤 자본주의가 바람직한 모습이냐에 관한 논의이다. 미국·유럽 대립의 핵심이 바로 같은 자본주의지만, 시장원리의 관철을 보다 중요시 할 것인가 아니면 복지의 충실에 의한 사회안정을 보다 중요시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형 자본주의는 시장의 자동조정 기능을 활용하여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고, 유럽형 자본주의는 시장기능을 활용하면서 적절한 규제강화와 복지증진을 꾀하자는 것이다. 유럽자본주의가 복지중시라 하더라도 그 내용은 나라들에 따라 다양하다. 특히, 계급 대립이 격화되었던 영국에서는 1924년 노동당 정권이 성립된 이후 복지국가형성을 추진했지만, 1979년 성립된 대처정권은 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했고, 1997년 집권한 노동당 정권은 대처노선을 유지하면서 복지중시 노선을 택하고 있다. 

어쨌든 유럽의 미국에 대한 비판은 미국의 시장원리지상주의와 일국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유럽은 미국과는 다른 자신들의 사회모델을 지키기 위해 통합을 추진했다. 또한 디지털혁명과 세계화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무기는 복지국가를 발전시켜 사람들의 능력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유럽연합(EU)이 지향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사회란 ‘부유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평화의 유지와 식료의 확보라고 하였다.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적 화해와 냉전종료로 항구적인 평화는 어느 정도 확보됐고, 전후의 굶주림도 EU 공통농업정책으로 해소되었다. 이러한 것들 다음으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건강과 안정된 노후이다. 이것의 구체적인 표현은 의료체제, 교육, 노인복지의 충실이다. 그리고 EU가 주력하고 있는 다른 중요한 목표는 지구환경의 보호로 환경보호 선진국이 되는 것이고, 각종 공공사업이나 약자와 노동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대립은 기본적으로 양국의 사회사상의 차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서구 근대사회는 풍부성과 평등성이란 이율배반적인 가치를 정신적 지주로 하고 성립되었다. 따라서 서구정신은 근대를 믿으면서(효율, 신념) 믿지 않는(불평등, 회의) 이중구조를 하고 있다. 이것은 유럽의 복지중시주의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이 미국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신념’만 남고 ‘회의’는 버려져 일원화됨으로써 미국의 시장원리지상주의, 약탈자본주의가 되었다는 것이다. 

2) 참가형 복지사회실현 방책으로서 ‘제3의 길’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발달된 산업사회의 성격과 변화를 집약하고 대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제3의 길’이다. 이 노선은 영국노동당 중도좌파인 블레어(Blair. Tony) 정권에 의해 주장되었다. 종래의 계급정당의 테두리를 벗어나, 근대의 변화양상에서 결과한 자기실현파의 시민들을 자기편으로 하지 않고서는 그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노선은 전후 노동당의 위로부터의 복지국가노선과, 그 한계에서 자유화, 민영화, 시장경제화를 내세운 대처(Thatcher. Magaret. H)의 신보수주의 노선에 반대하여 나타난 것이다. 블레어의 두뇌역할을 한 기든스(Anthony Giddens)가 주장하는 제3의 길은 개인의 자립과 건전한 가정 꾸미기가 사회의 기본이라 한다.

제3의 길은 고전적인 우익과 좌익을 극복한 것으로서 우선 개인이 자립하여 책임을 자각하고 민주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 시대 자본주의 정신은 민주적인 가정으로부터 출발하여 개인의 자립과 가정의 옹호, 민주화 추진, 시장의 활용과 적절한 규제로 분권화를 추진하여, 투명도가 높은 정부를 꾸며야 한다는 것이다. 제3의 길은 시민참가를 촉진하기 위한 민주화(지방분권, 공공부문의 경영공개 책임과 개방, 종업원 참가나 권한이양에 의한 행정효율화)를 지향하고, 국가사회투자, 지방활성화, 고용촉진운동을 추진하여, ‘전원 참가형 아래로부터의 복지사회실현’을 목표로 한다. 이 노선의 성공여부는 장기간 시간을 두고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6. 한국사회의 복지지향적 진로

우리나라는 장기적으로 어떤 형태이든 간에 복지사회실현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선 당장에는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고 사회경제의 기초체력(fundamentals)을 강화하기 위한 발전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오늘의 갈등과 대안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경제개발 4개년 계획을 보면 1~2차(1962~71)에서는 ‘경제개발’에만 주력했고, 3~4차 계획(1972~81)에서는 ‘사회개발’을 가미했으며, 제5차(1982~86)에서 비로소 정의로운 ‘민주복지국가 개선’을 위해 온 국민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하였다. 제6차(1987~91)에서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대응한 ‘국제화·선진화’를 내세웠다. 민주화 후 김영삼 정권은 자유주의 경제체제로 탈바꿈하기 위해 세계화 정책하에 시장개방, 규제완화, 지원철폐 그리고 국제경쟁력강화를 내세웠다. 

또한 지난 10년간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성장만이 아니라 분배에도 역점을 두고 복지사회 건설을 표방했다. 이들 정권 내부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와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가미하자는 주장이 있기는 했지만, 사실 복지사회건설 주장은 대중영합적인 것이었고 실제로는 신자유주의노선을 취하고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에 이르고, 수출이나 경제규모로 보더라도 세계에서 무시 못 할 존재가 되었다. 그럼에도 양극화, 사회적 갈등, 서민생활난, 기업경영의 어려움 등으로 국민의 불만은 크다. 우파는 그 까닭이 인기영합주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띤 정책에 있다고 보고, 좌파는 김대중 정권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충실한 신자유주의노선을 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한국경제가 보다 시장 중심적이 된 것만은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 재무성, 월스트리트의 큰 은행들, IMF 등 국제기구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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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