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상식적인 요구, ‘조합원을 위한 노동조합’

노동사회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 ‘조합원을 위한 노동조합’

편집국 0 3,227 2013.05.2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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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조건의 개선 및 노동자의 사회적·경제적인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노동자가 조직한 단체. 기업별, 산업별, 지역별 따위의 다양한 형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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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노동조합을 위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민중국어대사전은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노동 조건의 유지·개선 및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조직하는 단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차이가 있다면 “자주적으로”라는 표현이 더해져 조금 강조되는 느낌이 든다는 정도일까. 하지만 공공서비스노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지부(비정규지부) 조합원들에게는 그 차이가 작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최근 1년간 겪은 일들이 고스란히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체육진흥공단에는 ‘3개의 노조’가 있다. 정규직을 가입대상으로 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노동조합(정규직노조)’과 기간제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국민체육진흥공단 일반노동조합(일반노조)’, 그리고 비정규지부다. 한 사업장 안에 노조가 3개까지 만들어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현재 한국의 많은 노동조합들이 처해 있는 딜레마가 그대로 담겨 있다.

jslee_01.jpg한 사업장 세 개의 노조, 어떻게 된 일일까?

시계추를 2006년으로 돌려보자. 원래 공단 안에는 사무직을 중심으로 하는 정규직노조만이 있었다. 그런데 공단에서 일하던 기간제 노동자(상용직)들이 2006년 2월20일 일반노조를 설립하면서 노조가 2개로 늘었다. 이들은 공단의 가장 큰 사업인 경륜·경정의 심판이나 전산, 사무보조 등의 업무에 종사하던 노동자들로서 보통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어왔다. 일반노조는 설립 후 한국노총 연합노련에 가입해 2006년 단체협상을 추진했지만 협상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그리고 이렇게 기간제 노동자들이 일반노조를 설립하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정규직노조는 별다른 지원이나 연대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같은 해 12월에 공단은 ‘경륜, 경정 경주종사원’으로 분류하고 있는 발매원들을 시급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발매원들은 경륜과 경정 경주가 이뤄지는 본장과 고객들이 경기중계를 시청하고 베팅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각 지점에서 발권업무를 담당한다. 일당제로 일하면서 9~10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어왔던 이들은 보통 1주일에 3일 경륜 발권업무를 하면서 60~65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그런데 공단은 이 비용마저 줄이려고 이들에게 1주일에 이틀, 그 중에서도 14시간만 일을 하는 시급제로 전환하기를 강요했던 것이다. 

백복균 비정규지부장은 “별안간 ‘근로시간 단축 및 2007년 입사 희망지원서’라는 걸 쓰라고 내밀었다. 결국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바꾸라는 얘긴데 일주일에 15시간 미만으로 일을 시켜서 4대보험 혜택마저도 안 주려는 속셈이 훤히 보였다”고 말한다. 결국 이들은 난생 처음으로 회사에 ‘반항’이라는 걸 해보게 됐다. 현재 비정규지부 집행부를 맡고 있는 이들이 주축이 되어 시급제 전환 동의서에 서명하지 말자고 설득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공단은 시급제 전환 계획을 철회했다.

이 과정에서 발매원들은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시급제 전환 거부가 성공할지에 대해 반신반의했는데 실제로 공단이 계획을 철회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뭉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2007년 1월12일, 일반노조에 정식으로 가입하기에 이른다. 백 지부장은 “사실 (시급제 싸움에서는) 일반노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시급제 전환에 대한 설명회를 하기로 하고 각 지점마다 전화를 해 한 번 모여 보자고 했는데, 건물도 일반노조를 통해서 빌렸고……. 설명회에 550여 명이 왔다. 일반노조 위원장도 설명회에 와서 같이 해보자고 얘기를 했다. (일반노조가) 경륜본부 사장에게서 시급제 전환 철회를 문서로 약속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에 가입했다고 모든 일이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노조에 가입했다고 끝이 아니더라

일반노조는 2006년 결성된 후 시작한 단체협상을 발매원들이 일반노조에 가입한 직후인 2007년 1월 말에서야 마무리지었다. 불신은 여기서부터 싹텄다. 일반노조는 발매원들을 비롯한 일용계약직들의 요구에도 단체협약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상용직들은 연봉을 10% 인상하기로 했는데 일용직들 관련 내용은 아무 것도 없다”는 소문이 입으로 퍼졌다. 백 지부장은 “노조 규약도 공개하지 않아 겨우겨우 입수했지만 단협 내용은 알 길이 없었다. 듣기로는 ‘일용계약직은 보충협약을 한다’고 했다던데 보충협약도 진행되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일반노조가 “발매종사원들은 노사협의회를 따로 구성한다”고 공단과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불신은 조금씩 싹텄다.

일반노조와 일용계약직들 사이의 틈을 더 벌어지게 한 것은 ‘인사 거부운동’이었다. 발매원들은 공단 규정상 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과 경기가 끝난 직후에 매표소 자리에서 일어나 고객들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이는 경기가 실제로 이뤄지는 본장뿐만 아니라 중계방송만 이뤄지는 각 지점에서도 공히 해당되는 규정이다. 그 정도면 당연히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륜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에 18번 경주가 이뤄진다. 1경기당 2번씩 총 36번, 하루에 8시간 일한다고 했을 때 대략 13분마다 1번씩 일어나 인사를 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는 ‘신체의 힘듦’보다는 ‘정신적 스트레스’의 측면이 더 크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에는 모두 경기를 관전하러 가기 때문에 인사를 받는 사람이 없다. 허공에 대고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라고 인사하는 것이다. 가끔 늦게 들어온 손님으로부터 “이 사람들 미쳤나보네. 어디다 인사하는 거야? 허허”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표를 돈으로 환전하러 사람들이 몰린다. 인사를 하면 “빨리 돈이나 바꿔달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커지는 불신의 늪,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만들다

어떻게 보면 작을 수도 있는 이 사건이 일용계약직들로 하여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했다. 비정규지부에 따르면 이런 사정을 전해들은 모필환 일반노조 위원장은 “그런 불합리한 게 있다면 하지 말아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 후에 발매원들은 2007년 9월 말에 3일간 인사 거부운동을 했고 이에 공단은 10월14일자로 18명에 대해 견책에서 정직 2개월에 이르는 징계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모필환 위원장은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이에 총회 소집을 요구한 일용계약직 조합원 7명을 오히려 제명 조치했다. 

불신이 커지면서 “공단이 발매원 900여 명을 몇 개의 회사로 나눠서 외주화 할 예정인데 모필환 위원장이 그 회사 중의 한 곳의 사장 자리를 받기로 하고 외주화에 합의했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았다. 실제로 공단이 2007년 4월에 정부에 제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따른 공단의 계획을 보면, “경륜·경정 경주종사원(발매원)들은 비정규직법 적용의 예외 규정 중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로 사회적 합리성이 인정되는 경우’로서 향후 경주종사업무 전체에 대한 외주화를 추진하겠다”고 명시되어 있다. 

모필환 위원장의 인사 거부운동에 대한 답변이 공식적인 위원장의 지시였는지 혹은 단순히 인사가 불합리하다는 개인적인 생각의 표현이었는지, 또한 공단의 외주화 계획과 연관된 소문이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반노조로서는 조합원의 다수를 점하는 일용계약직들의 돌출 행동이 있다면 이에 대해 일정 정도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합원 7명 제명’이라는 조치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은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반노조 스스로 불신을 증폭시킨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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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28일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지부의 조합원 총회 모습.  ▶ 이지섭 ]

상용직 위해서는 규약 변경, 일용직은 대의원 4명

앞서 일반노조는 2007년 8월 말에 정규직도 일반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규약을 변경한 바 있다.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과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따라 일반노조의 상용직 400여 명 중 280여명이 10월1일부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도록 결정됐고, 이들의 조합원 자격 여부가 문제가 되자 계속 일반노조에 남을 수 있도록 규약을 변경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노조는 일용계약직들이 조합에 가입한 직후 2월에 있었던 대의원 선출 과정에서는 조합원 20인당 1명의 대의원을 선출하도록 한 규약도 어기고 900여 명에 이르는 일용계약직들에 대해 4명의 대의원만을 배정하는 등 일용계약직들의 소외감을 지속적으로 증폭시켜 왔다.

백복균 지부장은 “(공단과 일반노조 사이에) 밀약이 있었다고 의심이 들 정도다. 일용계약직을 노사협의회로 운영한다는 얘기도 (공단이 일반노조에게) ‘노조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서 잘 관리해라’고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인사 거부운동 때 그렇게 한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반노조의 주축인 심판직들은 힘이 세다. 심판들이 경기 안 들어가면 경기가 진행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산과 창원에 파견 갔던 심판들이 처우가 나빠지게 되자 서울에 올라와서 격렬하게 항의하니까 공단도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다 들어줬다”고 말했다. 일반노조가 보여준 부적절한 행보에도, 일용계약직들의 소외감 밑바닥에도 ‘우리와 저들은 다르다’는 이질감과 현실 인식이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일용계약직 발매원들은 일반노조와 같이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다시 총회 소집을 요구했지만 일반노조 집행부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발매원들은 서울지방노동청동부지청에 총회소집권자 지명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2007년 12월26일에 임시총회를 열어 조합원 범위에서 일용직 발매원을 제외하도록 하는 규약개정안을 통과시키고 공공서비스노조에 가입해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지부를 결성했다. 공단은 기다렸다는 듯 12월30일자로 집행부를 비롯한 조합원 7명에 대해 계약을 해지했고 240여 명의 조합원에 대해서는 원거리 전보 조치했다. 2007년 인사 거부운동 때의 징계조치를 이유로 한 계약해지였지만 그 징계에 대해서는 이미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와 부당징계 판정이 내려진 상태다. 그리고 비정규지부는 이제 스스로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스스로의 싸움을 준비하는 그들에게

1년여 동안 그렇게 원했던 ‘조합원을 위한 노동조합’을 스스로 결성했지만 비정규지부의 앞날은 여전히 순탄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공단 측에 지속적으로 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단은 비정규지부가 복수노조라며 교섭에 나올 자세가 아니다. 복수노조 여부와 관련해서 2007년 12월에 일용직을 조합원 범위에서 제외하도록 했던 일반노조 임시총회의 성사 여부는 법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설령 임시총회가 법적으로 성사된 것이 아니라서 조합원 범위가 서로 겹친다 하더라도, 최근 금속노조 이젠텍지부의 복수노조 여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도 보이듯이 ‘산별노조에 종속된 지부 형태의 노동조합은 복수노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도 있다. 비정규지부는 지난 1월28일에 조합원 총회를 열어 단체교섭 요구안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최종 쟁의행위 돌입 여부는 2월17일까지 연장한 찬반투표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한국 노동시장의 현주소다. 노동조합이 무엇을 더 할 것이냐는 접어두고 노동조합의 사전적 정의에 따른 기능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일 수 있다. 문제는 기존의 노동조합들이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결성해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전면에 나서서 싸우기는 힘들더라도, 비정규직들 스스로가 “자주적으로 노동 조건의 유지·개선 및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나서는 싸움을 더 힘들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국민체육진흥공단의 경우에는 외곽에 있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비정규직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여 함께 하겠다고 했던 노동조합이기에 더욱 그렇다.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지부의 싸움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본격적으로 공단 측을 상대로 시작될 싸움에서, 공단 정규직노조나 일반노조의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소식이 “비정규지부의 싸움에 함께 하고 있다”는 훈훈한 소식이 되면 더욱 좋겠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