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공공성 위기와 진로 모색

노동사회

한국사회의 공공성 위기와 진로 모색

편집국 0 3,485 2013.05.2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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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5월21일부터 23일까지 민주노총 주최로 개최된 사회공공성포럼에서 필자가 발표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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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청와대 앞 투쟁’과 함께 6월이 왔다. 밤새 뿌려진 물대포와 무자비한 ‘파쇼적’ 진압을 뚫고 시민들의 촛불은 6월의 아침을 밝혔다. 5월2일부터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에 반대하며 시작된 촛불문화제의 촛불은,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오만으로 인해 국민적인 저항의 횃불로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이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는 거대한 ‘반권력 민생민주주의 국민항쟁’으로 발전할 가능성마저도 보여주고 있다.  

6월은 직접민주주의를 열고 ‘87년 체제’를 탄생시킨 민주항쟁의 달이다. 21년 전 6월에는 위대한 민중항쟁으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면, 2008년 6월에는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올곧게 확보하고자 하는 촛불축제가 권력의 반민주성과 기만성 및 음모성에 대항하며 한국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자 하고 있다.

처음 10대들이 촛불을 들었을 때는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지키지 못한 정부에 대한 항의가 교육자율화 조치에 대한 불만과 복합되어 나타났지만, 점차 촛불을 드는 세대와 계층이 확산되면서 저항의 이슈도 폭이 넓어졌다. 민생문제, 사회경제적인 이슈, 정부의 핵심정책들이 저항의 테마가 되었으며, 이러한 저변에는 대다수 국민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양극화와 상대적 빈곤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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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 1,000일을 맞아 시청 앞 철탑에 올랐던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다시 또 구로 디지털단지 역 앞에 위치한 CCTV탑 위에 올랐다.  ▶ 참세상 ]

지난 5월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도 더욱 커지고 있다.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파업 1,000일을 맞아 서울 시청 앞의 철탑에 올라 국민적인 관심을 호소하고 사태 해결을 위해 서울시장의 개입을 요구했으며, 이후 구로동의 고공 안전탑에 올라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KTX 승무원들은 파업 800일을 맞아 서울역 광장에서 눈물의 투쟁결의와 대국민 호소를 하였다. 양극화의 폐해를 극적으로 대변하는 이들 비정규직 사업장들의 장기 파업은 노무현 정부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정책에 따른 희생이었는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자임하는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더욱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쇠고기 촛불시위, 쇠고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당선인을 거쳐 취임하기까지 지속적으로 기업친화적인 경제관리, 산업의 시장주의적 재편 그리고 공공부문의 통폐합과 민영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한다는 이름 아래 추진되는 경제살리기 정책을 비롯한 국정 전반은 취임 벽두부터 커다란 장애물을 만나고 있다. 정권 초기부터 드러난 부도덕성과 현실감각의 결여로 인한 무능력, 여기에 국제적인 상황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MB 정부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특히 한반도 대운하 사업, 한미 FTA 협정의 비준, 공기업의 통폐합과 민영화, 중·고등교육의 자율화, 지역균형발전 관련 사업의 조정 등 역점사업들의 추진에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일방적인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국민배제적이고 반민주적인 국정운영을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공공성과 공익성의 감퇴와 해체에 대해서 국민들이 더 이상 좌시하지만은 않으리라고 본다. 

이 글에서는 먼저 ‘사회공공성’의 실천적 의미를 천착하고 역대 정부에서 강행된 공기업 민영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정치사회적 성격과 사회경제정책의 공공성 수준, 공기업 민영화 계획을 평가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에 따른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공공부문과 사회공공성 사이의 함수관계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민간자본의 축적기반이 부실했던 한국에서 공공부문은 자본축적을 주도했다. 또한 자본축적과 동전의 양면관계에 있는 노동통제에 있어서도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1987년 이후 민주개혁과정에서 공기업 민영화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주요 의제가 되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공공부문은 IMF 프로그램이 요구한 시장지향적 경제개혁의 전략적 요충으로서 임금동결 및 감소, 고용감축, 복지축소 등 긴축정책의 핵심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분할 및 민영화의 대상이었다(김상곤, 2008).

한편, ‘사회공공성’은 심화되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사회구성원에게 필요한 기본생활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담고 있는 개념이다. 모든 사회구성원은 자신의 경제적 능력과 무관하게 사회공공적 서비스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공공적 서비스는 개인의 ‘구입능력’이 아니라 ‘생활필요’에 맞추어 제공되어야 하고, 이를 위하여 사회공공적 서비스는 비록 자본주의체제일지라도 시장과 이윤논리를 일정 정도 정정하면서 생산·공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공공성 활동은 교육시장화, 의료시장화, 연금시장화, 기간산업 시장화, 농업 개방, 지적서비스 상품화 등 사회공공적 영역이 시장논리에 지배되어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저지하고자 이루어지고 있다(오건호, 2006).

현대경제의 목표는 재화와 용역을 능률적으로 생산·공급하고 그 결과로 발생하는 소득이 형평성 있게 분배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효과는 국가와 공동체의 의무와 연대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개인의 능력과 선택에 따른 것으로 바꾸었다. 또한 사회구성원 다수가 더 이상 용인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할 만큼 심한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초래됨에 따라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현장에서 본격화되고 담론화되었다(김윤자, 2006).

사회공공성 논의를 촉발시킨 2002년 기간산업 연대파업

2002년에 벌어진 기간산업 3사 노조(발전노조, 철도노조, 한국수력원자력노조)의 민영화 저지 연대파업은 사회공공성 논의 담론화의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38일간에 걸친 장기파업은 사회 전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기간산업의 공공성을 둘러싸고 무엇이 기간산업이며 무엇이 공공성인지에 대한 다양한 공개토론회도 연이어 열렸다(김상곤, 2008).

이 3사 노조 연대파업이 사회적으로 제기한 공공성 이슈는 ‘제1회 한국사회포럼 2002’에서 핵심적인 토론 주제가 되었다. 당시 토론회에 참가한 이들은 기간산업과 공공성, 넓게는 한 사회의 경제발전과 공공성을 둘러싸고 매우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였다. 노동계에서는 환경운동진영이 ‘탈계급적 환경지상주의’에 매몰되어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노동자 생존권 문제를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환경운동 측에서는 노동계 전체에 좀 더 대자적인 문제인식이 필요하다고 반박하면서 1980년대식으로 ‘노동운동이 곧 사회민주화운동’이 아닐 수 있음을, 해당 노동자의 생존권이 달려있는 특정 기술이나 산업이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폐기되어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노동운동의 공공성문제로까지 확대된 당시 토론회에서는 예컨대 한국전력을 비롯한 공기업들이 개발과정에서 지역주민의 생활권을 얼마만큼 짓밟았는지, 그러한 기본권의 침해가 노동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양해될 수 있는 것인지, 혹은 경영권을 전혀 갖지 못했던 노동조합에 그런 침해에 대해 얼마만큼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지 등등이 토론되었으며, 기업단위·지역단위·전국단위, 나아가 국제적 수준에서 의사결정의 민주성과 책임성·효율성들이 함께 모색되어야 비로소 공공성 문제에 답할 수 있다는 잠정적 정리에 도달하였다.

이 토론회에서의 합의에 기초하여 그들은 별도의 기자회견을 통해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공동선언문 취지문에서 그들은 “그동안 참된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해 전력산업 구조를 친환경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시민단체들과, 정부의 과격한 민영화 정책에 저항해 온 노동조합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현상유지와 졸속매각 모두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데 공감하였고, 이에 따라 민영화의 유보와 전력산업의 친환경적 구조개혁을 골자로 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히고 있다. 공동선언문은 민영화를 유보하고 시민사회의 참여와 국민적 공감 속에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여 친환경적이며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시민·노동단체 공동선언문, 2002. 3. 27).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에서 1990년대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사회공공적 서비스의 생산과 분배방식을 둘러싼 자본과 운동진영의 사회적 대항전선이 형성되었다.

공공부문 민영화 추진의 역사적 과정

우리나라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은 그동안 총 5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1차 민영화(1968~79년)는 민간기업 육성 차원에서 추진되었는데, 주로 민간과 경합되는 공기업인 제조 및 운송업 분야의 한국기계, 대한통운, 조선, 항공 등 11개 공기업을 민영화시켰다(장병완, 2008). 2차 민영화(1980~87년)는 전두환 정권 시절 주로 은행 자율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일, 제일, 조흥, 신탁은행 등 7개 공기업이 민영화되었는데,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시행되어 효율이 낮았다. 3차 민영화(1988~92년)는 국민주 방식이 도입되고 자회사 매각이 이루어졌는데 포철, 한전 등의 지분 매각과 효성물산, 동해펄프 등 7개 자회사가 대상이었다. 이 기업들의 매각은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달러가 많이 유입되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자본시장 육성차원에서 이뤄졌다

4차 민영화(1993∼97년)는 김영삼 정권 시절로 대규모 민영화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실제 추진은 저조하였다. 58개 공기업의 민영화 계획이 수립되었지만 22개 사의 지분매각에 그쳤고 10개의 통폐합 계획도 5개 사로 축소 추진되었다. 5차 민영화(1998~2002년)는 국민의 정부 시대로 한국통신 등 8개 공기업 민영화와 67개 자회사 매각을 완료하였고 본격적이며 체계적인 민영화가 이루어졌으나 한전 등 일부 공기업의 민영화는 유보되었다. 11개 공기업의 민영화 계획이 수립됐고 노동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8개 공기업의 민영화가 완료되었다. 한국전력의 경우 매각을 전제한 발전사 분할도 이루어졌다.

참여정부(2003~07년)에 들어와서는 네트워크 산업의 민영화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초기의 입장이 유지되면서 2004년 6월 배전분할이 중단되었으나, 철도청의 공사화가 마무리되고 이후 철도 운영부분의 민간위탁방식 등이 검토되었다. 2007년 7월에는 한전 KPS 등 3개 사의 부분적인 지분매각 방식이 결정되었다.

민영화의 목적은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변화되었다. 1970년대 민간산업 육성, 1980년대 은행 자율화, 1990년대 자본시장 육성 등 경제·산업 정책적 필요에 따라 민영화가 추진되었다. 이후 정부는 공공부문 비대화, 방만 경영 억제, 공적자금 투입기관의 매각 등 공공부문 효율화와 시장기능 정상화라는 명분하에 민영화 논의를 추진하여 왔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는 공기업 매각을 통한 정부 재정 수입의 확보, 부실 공기업에 대한 예산지원의 축소로 재정 절약, 국민의 주식소유 확산, 자본시장 육성 등을 명분으로 대대적인 민영화를 강행하였다.

민영화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민영화는 정부정책, 산업구조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경제력 집중, 금산분리 등 정부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며 1970년대 특혜시비, 1980년대 민영화 은행에 대한 관치금융 문제 등 과거 민영화 과정에서도 다양한 경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었으며 이해관계 집단이 광범위하여 엄청난 갈등이 발생하였다. 

민영화는 국가의 자연독점을 국내외 민간독과점화로 전환함으로써 경제력 집중을 강화하고 국부유출을 초래했다. 거대한 공기업을 사유화한 국내기업은 대부분 재벌과 대자본이었다. 또한 민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는 동일인 지분 소유한도와 외국인 소유한도를 정해서 마치 경제력 집중과 국부유출을 막을 것처럼 말했지만, 나중에 이 한도들은 확대되었고 완전 민영화 시에는 아예 없어지기도 했다. 

한편, 민영화는 노동배제적이고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권력과 자본은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민영화저지 노동운동을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여 징계, 징역뿐만 아니라 거액의 손해배상, 가압류까지 부과하여 기본권 행사 자체를 막는 간교한 노동정책을 구사하였다. 이 밖에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민영화의 부작용은 다양하다. 민영화의 수혜자와 비수혜자가 생기게 되므로 부의 불균등 분배 효과가 생기고, 일반적으로 고용감축을 동반하며, 단기적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장기투자나 연구개발비의 감소 가능성으로 기업의 위험이 증대된다.  

국민이 진정 이명박 정부에게 원했던 것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10년은 1987년 항쟁의 엄청난 동력을 추진력으로 민주주의의 실험을 해온 중요한 기간이다. 일부 언론들이 근래의 보수적인 정치 분위기를 틈타 1997년 이후의 민주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폄하하고 6월 항쟁의 성과인 87년 체제를 무력화하고자 하지만, 민주주의 실험 10년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축소될 수 없을 뿐더러 이명박 정부 또한 이러한 ‘민주화의 효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최근의 촛불집회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87년 체제의 성립 이후 20년간의 민주화 과정, 특히 1997년 이후 10년의 민주정부의 개혁정치 과정에서는 국민이 바라는 개혁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과 심화되는 양극화 속에서 개혁방향의 변질로 인한 실망과 피로감이 누적되었다. 이명박 정권은 그 반작용으로 성립된 권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17대 대선에서 그 전과는 달리 큰 표차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은 일반적으로 대통령 후보에게 요구하는 도덕성을 포함한 기본적인 가치덕목보다 경제살리기와 추진력이란 능력을 훨씬 더 중시하며 후보를 선택하는 투표를 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즉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도덕성과 관련된 많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걸어온 CEO와 행정가로서의 경력을 유권자에게 높이 평가받았다. 하지만 국민은 취임 100일도 안 되어 이명박 정부에게 크게 실망하여 지지를 거두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핵심공약과 관련해 다각적인 비판을 받아 왔다. ‘747 공약’은 경제 발전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현실과는 터무니없이 동떨어진 수치로 선언적인 의미를 넘어 기만적이라고까지 평가되었다. 그래서 인수위를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6%로 목표치를 줄였고 지금은 5% 성장도 쉽지 않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온다. 일자리 문제도 한국경제의 최근 성장의 내용상 애시 당초 가능하지 않은 수치라는 지적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금년의 목표치는 연 35만 개로 하향 조정되었으나 최근의 추세로 보건대 이것도 달성이 어려울 것 같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008년 4월에 발표한 연간 신규 취업자 증가규모 예측에서 취업자 증가규모는 해마다 점차 감소하여 2012년에는 15만 2천 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보았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08년 3월의 전년 대비 취업자 수 증가 규모는 18만 4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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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발전노조·철도노조·화물연대의 연대파업은 '사회공공성' 논의를 촉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2002년 발전노조의 파업 모습   ▶ 한겨레21 ]

일방적 신개발주의 추진이 국민 섬기기?

사상 최저의 총선 투표율(46.1%)을 기록한 18대 총선에서 승리한 보수진영이 행정, 지방자치, 의회의 3대 권력을 모두 확보한 이후, 이명박 정부는 임기 중 수행할 국정과제 293개를 4월 말에 발표하고 거시경제정책 방향 등도 마련하였다. 하지만 이 정부는 성장주의적인 신개발경제체제를 지향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 정도가 아닌 ‘대기업하기만 좋은 나라’를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정책들이 국민적인 의견 수렴이나 피드백이 없이 수립되고 일방적으로 제시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촛불 항의’도 이러한 권력의 통치 행태에서 비롯되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전 국민을 섬기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수차례 언명하였다. 하지만 취임 후 지금까지의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지금의 리더십은 카리스마 없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서 기업 CEO적인 리더십에 불과하다. 게다가 정부 각료와 청와대 고위직 인사 행태나 한미 정상회담의 과정, 쇠고기 협정과정, 그리고 국민저항에 대한 대응 방식 등을 보면 대통령의 리더십이 5년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지고 국민에게 수용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정부가 국정의 목표, 핵심적인 정책 방향, 집행상의 과정과 절차 등 제반 수준을 종합적으로 검토 수정하지 않으면 국민의 불만과 불신은 치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즉 다시 말해서 신개발주의적이고 자본친화적인 시장만능주의 목표를 국민이 원하는 대로 수정하고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제시하지 않으면 ‘정권의 생명’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다.

전방위적 민영화 추진… 오히려 역효과 가능성 다분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정책을 보면 공기업 민영화와 경영효율화의 동시 추진을 통해 국가재정 및 국민부담 최소화를 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대한주택공사·한국토지공사 등 건교부 산하 4개 공사의 통폐합을 포함, 현행 298개의 공공기관(시장형 공기업 6개, 준시장형 공기업 18개,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 13개,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64개, 기타 공공기관 197개이고 이들의 총예산 규모는 300조 원 정도가 된다)에 대한 민영화 및 통폐합(공공기관 통폐합의 경우, 유사한 기능 및 업무를 수행하거나 설립 목적을 달성한 기관들을 중심으로 추진)을 추진하고 각종 기금의 통폐합도 과감히 추진할 예정이다. 현 정부는 민영화를 통해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 비효율을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공기업을 매각하여 총 60여조 원의 재정을 조성하여 일자리창출 사업 등에 충당한다고 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법인세 감축을 포함한 조세부담률 하향 조정으로 인한 재정 결손을 충당하는 형태가 되리라고 본다.

한편 이명박 정부 출범을 계기로 공공부문 개편과 관련해 국내외 기업과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08년 6월 말 공기업 개혁 로드맵이 수립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금융권 공기업 기관장 물갈이를 시작으로 240개 공공기관 기관장의 강압적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개혁 로드맵의 일정이 앞당겨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미국산 쇠고기 졸속협상에 대한 거대한 국민적 촛불 항쟁으로 오히려 7월로 늦춰질 예정이다. 정부는 공기업 개혁의 속도를 내기 위해, 소유의 민영화에 앞서 운영권의 민영화와 구조조정을 우선 추진키로 하고 계획을 다듬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 구상하고 있는 민영화 구상을 분류 제시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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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의 민영화를 포함한 구조개편은 신중하게 접근하여야 한다. 국민의 후생복지를 증대시키기 위한 공공재와 공적서비스를 담당하고 있을 뿐더러 국가경제에서 공공부문의 조절적인 역할 또한 지대하기 때문이다. 당장의 재정부담을 줄이려거나 거꾸로 알짜 공기업을 매각하여 재원을 마련하려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많다. 다른 나라들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민영화로 인해 국민 후생이 감소하고 국민 부담이 늘어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특히 자연독점성이나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 효과가 두드러지는 산업의 경우에는 분할 매각을 한다 해도 민간 흡수합병과 독과점화가 이루어져 시장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고, 나아가 특정 자본과 기업만을 살찌움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사회의 양극화를 증대시키는 효과가 발생한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일단 민영화가 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도 불가역성이 높아 재공유화가 어렵고, 한다 해도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적 구조개혁’과 ‘공공적 민생민주주의’를 향해

민주정부 10년의 특성은 한마디로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개혁이라고 볼 수 있다. 참여정부까지의 민주정부들은 절차적인 민주주의와 사회개혁을 일정 부분 이룩하긴 하였지만 보다 깊이 들여다보면 국민에게 개혁의 피로감과 실망을 크게 안겼다고 본다. 이제 보수정권이 들어선 상황에서 사회운동진영은 그간의 민주화 성과를 바탕으로 슬로건으로서의 민주와 개혁이 아니라, 촛불시위에서의 민심이 보여주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국민대중의 일상생활 속에 민주주의적 내용을 제시하고 실천해 나가는 작업을 하여야 한다.

거시적인 담론투쟁과 전투적 실천운동도 필요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민원이나 집단 간 이해갈등의 현장에서 어떤 민주, 어떤 개혁이 절실한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진보적인 대안생산의 민생정치 또한 중요하다. 나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민주주의로서 공공성과 민생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의 실질적 확보가 절실하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약화되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안고 있는 한계를 딛고 진보 대 보수의 정치사회적인 구도를 더욱 발전시켜, 이제까지 이룩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형식적 민주화의 한계를 넘어서 진보적 민주주의의 지향 아래 민주적 구조개혁을 추진하며 공공적 민생민주주의를 이룩해 나가야 한다.

먼저 민주적 구조개혁은 지배세력에 대항하는 사회운동의 대안적 개혁이다. 이것은 정치적 민주화를 단순히 절차적 민주주의로 한정하지 않으며,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경제과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연관지어 정치·제도적으로 민주주의를 실질화하는 방안을 말한다. 또한 공공성 확대에 기반하는 민생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와 시장경제의 무제한적 방임이 오히려 시장불균형과 시장파괴, 공황과 실업, 사회적 격차 등을 야기하여 민생을 핍박하고 사회적 양극화와 적대를 극대화한다는 인식하에, 경제적으로는 사회적 공공성을 중심으로 국민대중의 공평하고 내실 있는 삶을 구현하고, 이를 위해 실질적이고 자주적인 참여와 통제를 시스템화하는 방안이어야 한다.

새로운 대안체제로서의 ‘진보적 민생민주주의’의 핵심적 정책에는 다음의 것들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인간의 공동체적인 행복 추구를 위해 양극화, 차별, 격차 등의 해소와 공정한 분배의 실현, 둘째, 대안적 세계화의 추구와 △경제 민주주의, △정보 민주주의, △전자 민주주의의 등의 부문별 민주주의의 구현, 셋째, 시장적 조절 외에 사회적 조절을 결합하여 경제활동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조절을 확보하고 사회적 공공성 중심의 민주적 시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 넷째, 시민사회의 기본적 권리와 인권, 그리고 노동자·민중의 민주적 제반 권리의 보장, 다섯째, 자주적이고 대등한 국제관계 확립과 남북공존을 위한 헌법체제 추진 및 미래형 자주사회국가의 프로그램 수립, 여섯째, 기본권적 생활에 필수적인 재화의 공공화, 즉 △토지의 공개념화, △부동산 시장의 사회적 통제, △교육·의료·전기·가스·물 등의 보편적 서비스화로 기본적인 복지 요소들을 공공화하는 것 등이다.

진보적 민생민주주의의 ‘08년 체제’를 꿈꾼다

위의 대안 체제는 교조적 슬로건을 모험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는 게 아니라 현실의 민생적인 개혁과제와의 연관 속에서, 개혁투쟁의 민주화 속에서 그리고 개혁과제의 질적 고양을 통해서 실현할 수 있다. 그것은 또 이에 상응하는 사회운동의 정치적 조직력의 강화라는 주체적 조건을 전제로 한다.

민중운동은 정치세력화의 확고한 뿌리를 내리고 민중권력의 프로그램하에 한 차원 높은 진보운동을 펼쳐 나가고, 시민운동은 개혁이니셔티브를 쥐고 절차적 민주주의 수준의 우리 사회를 한 단계 급진화시키면서 진보적인 시민권력을 형성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사회운동 전체로는 정치사회의 약화된 ‘진보 대 보수’ 구도를 더욱 확대하고 시민·민중운동의 연대를 통해 진보적 민생민주주의를 실현할 다층적인 진보정당운동을 펼쳐야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신개발주의적 보수권력의 조직적 공세를 막아낼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국면은 앞으로 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고자 하는 몇 가지 핵심 정책들이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 발전되어 나가리라 예상된다. 앞으로 한반도 대운하 사업, 한미 FTA 비준, 공기업의 민영화와 통폐합, 그리고 정치권 재편과 개헌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운동진영이 이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해 나가는가가 지금까지 고양되어온 투쟁 열기를 ‘제2의 6월 항쟁’ 격의 국민항쟁으로까지 승화시켜 나갈 수 있는가를 가름하리라고 본다. 노동민중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은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강고한 연대 틀로 국민대중의 요구를 바탕으로 진보적인 민생민주주의를 구현할 새로운 체제, ‘08년 체제’를 만들어 가는 데 헌신하여야 한다. 이러한 헌신 과정에서 사회운동은 공기업 민영화와 부당하고 편의주의적인 통폐합도 국민과 함께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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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