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10주년을 통해 본 산별노조운동의 성과와 과제

노동사회

보건의료노조 10주년을 통해 본 산별노조운동의 성과와 과제

편집국 0 4,281 2013.05.2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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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2월27일 보건의료노조 창립10주년 기념 대토론회, <보건의료노조 10년, 한국 산별운동의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에서 발표된 같은 제목의 글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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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2008년은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창립된 지 꼭 10돌을 맞는 뜻 깊은 해이다. 지난 10년 동안 보건의료노조가 이룩한 성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지난 10년간 보건의료노조가 걸어온 길은 곧바로 한국의 산별노조, 산별교섭의 역사이기도 했으며 또 노동조합의 공공성 추구의 역사이기도 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최초의 업종별·지역별 연대체인 병원노련 설립(1988), 최초의 전국적 규모의 산별조직인 보건의료노조 설립(1998), 최초의 산별 중앙교섭 성립(2004), 산별중앙교섭 최초의 비정규직 조항 및 공공성 조항 타결(2007) 등 보건의료노조는 항상 한국의 산별노조, 산별교섭 운동의 최선봉이자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한국노동운동을 이끌어 왔다.

보건의료노조의 이러한 성과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보건의료노조는 거의 해마다 파업, 농성, 직장폐쇄, 직권중재, 공권력 투입 등 사측과 정부를 상대로 피나는 투쟁을 벌여 왔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보건의료노조 간부와 노조원들이 징계, 해고, 무노동 무임금 적용, 손해배상 청구, 압류, 고소고발, 구속, 징역 등 온갖 탄압을 당해 왔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영남대의료원, 세종병원, 성모자애병원 등 장기투쟁 사업장에서는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IMF 경제위기 이후 불어 닥친 의료보건산업의 구조조정, 신경영·신인사제도의 도입, 인력 감축, 비정규직 투입, 외주·하청화, 노동강도 강화 등의 외부환경 변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십 년 동안 기업별 노조, 기업별 교섭체제 하에서 안주해 온 한국노동운동의 관성으로 인한 산별노조, 산별교섭 운동에 대한 내부적 갈등이라는 환경 속에서 추진되어 온 보건의료노조의 산별노조, 산별교섭 운동은 때로는 역풍을 맞기도 하고, 때로는 아쉬움도 남긴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산업 내 조직대상 노동자의 10%에 불과한 낮은 조직률, 방대한 규모의 중소영세병원 노동자 및 비정규직을 감싸 안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대표성의 위기,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을 종종 듣는 산별 조직구조, △산별교섭 구조와 내용상의 미흡한 점,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노조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의료공공성의 미흡한 점, 그리고 보건의료노조의 향후 방향을 둘러싼 조직 내외부의 갈등 등 여전히 보건의료노조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태산처럼 쌓여 있다.

2. 보건의료노조가 걸어온 길

1998년 2월27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창립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기업별노조 시대로부터 산별노조 시대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라 할 것이다. 

민주노동운동 최초의 본격적인 산별 단일노조인 보건의료노조가 탄생하기까지 무려 10년 이상의 준비와 투쟁이 필요했다. 민주노동운동의 무풍지대였던 병원에서 노동조합이 탄생한 것은 1987년 6월 시민항쟁과 그에 뒤이은 7~8월 노동자대투쟁 때였다. 1987년 7월31일 서울대병원노조가 최초로 결성된 데 이어 8~9월에 걸쳐 고려대병원, 한양대병원, 이화여대병원 등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집중적으로 결성되었다. 이들 병원 노동조합들은 결성 초기부터 병원으로부터 전임자 해고 등 부당노동행위를 당했으며, 이에 항의하여 파업 등 연대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대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리하여 1987년 12월12일 전국병원노조협의회가 결성되었으며, 다시 1년여의 준비를 거쳐 1988년 12월17일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병원노련)이 결성되었다. 병원노련의 창립 당시 87개 노조가 참가하였다. 

그러나 당시 병원노조들은 창립 당시부터 법외 노조로서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중소병원에서 위장폐업을 하거나 조합원을 해고하는 등 부당노동행위가 많았고, 이에 항의하는 파업으로 구속된 조합원 수는 전교조 외에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 병원은 직권중재 대상 사업장이므로 파업에 참가하면 곧 불법파업으로 구속되었다. 이에 병원노련은 1989년 2월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길고 긴 법정투쟁 끝에 병원노련은 1993년 5월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음으로써 합법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로써 미합법단체이던 병원노련 제1기(1988~93년)가 끝나고, 합법적 단체인 병원노련 제2기(1994~97년)가 시작되었다.

병원노련은 합법성 쟁취 이후 1994년부터 산하 단위노조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아 공동교섭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동교섭에 대한 사용자들의 거부, 대병원과 중소병원의 격차, 지역본부 간 역량의 격차, 병원노련을 구성하고 있는 5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직종 간의 격차 등으로 인해 공동교섭은 많은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병원노련은 산별노조 건설을 결심하게 되고 1994년 하반기부터 산별노조 건설에 착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산별노조 건설경로를 둘러싸고 조직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1997년 3월 열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1998년 2월에 전국단일 의료산별노조를 건설할 것을 결의하고, 의료산별건설추진위원회를 두어 의료산별노조의 구체적인 상과 내용을 마련하기로 결의했다. 

1998년 1월의 임시대의원대회에서는 의료산별노조의 명칭, 규약, 조합비 배분, 특성조직 편제 등 ‘의료산별노조 건설안’을 최종 확정하였다. 이러한 계획안을 바탕으로 하여 1월16일 서울대병원노조, 포천의료원노조 등을 시작으로 전국의 단위노조들이 의료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조직형태 변경을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2월27일 93개 노조 25,704명의 조합원이 참여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창립되었다. 

보건의료노조의 창립은 전교조(1989년 5월28일 창립)를 제외하면 민주노총 내에서 실질적으로 최초의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이는 이후 민주노총 내의 다른 연맹에도 영향을 미쳐 대학노조(1998년 11월9일), 건설노조(1999년 7월 합법화), 언론노조(2000년 11월), 금속노조(2001년 2월8일) 등의 산별노조가 잇달아 창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1998년 보건의료노조 창립 후 10년간의 역사는 △초창기 산별노조 활동의 토대를 구축했던 산별 1기 시대(1998∼2003년), △1만 조합원 산별 총파업투쟁으로 산별교섭을 처음으로 쟁취한 2004년부터를 산별 2기 시대(2004∼2007년) △그리고 산별교섭을 바탕으로 산별운동의 완성과 도약으로 더 나아갈 2008년 이후를 산별 3기 시대(2008년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이주호, 2007). 

보건의료노조는 발족 직후부터 큰 시련을 겪게 된다. 1997년 말의 IMF 경제위기와 그에 뒤이은 보건의료산업의 구조조정에 따라, 여러 병원에서는 인력감축, 비정규직화, 업무의 외주하청, 임금 및 근로조건 악화, 임금체불, 임금삭감, 임금반납, 휴가반납, 부서통폐합, 단체협약 개악, 단체협약 불이행, 부당노동행위 등 사용자의 공세가 계속되었다. 이에 대응하여보건의료노조는 노동시간 단축, 산별중앙교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구조조정 저지 등 다양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병원 측은 직장폐쇄, 노조 간부 및 노조원에 대한 징계, 해고, 용역 깡패를 통한 폭행, 정리해고 등을 자행하였다. 이 시기에는 경영상태가 악화된 병원은 물론이고 멀쩡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 병원들조차 IMF 위기 상황을 이용하여 노동조합을 억누르려는 계획을 추진하였다(나영명, 1998a; 1998b; 1998c).

따라서 1998~99년의 산별노조 건설 초기 보건의료노조는 구조조정 반대에 집중하게 되며, 이와 더불어 산별 중앙교섭, 대정부 교섭 등을 요구하였다. 한편 의료법 제정과 의보 통합, 의약분업 투쟁 등 의료공공성 확보를 위한 투쟁도 계속하였다(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2008). 그러나 개별적인 단위노조, 기업별 교섭 체제로서는 구조조정에 대항하는 데 한계를 느끼게 되고, 따라서 2000년부터 산별중앙교섭 요구를 본격화하였다.

그러나 초기 보건의료노조의 전국중앙교섭과 대각선교섭 추진 노력은, 대정부 교섭투쟁 등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와 정부의 완강한 반대로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이에 따라 교섭은 결국 대각선교섭 위주로 교섭이 흐르게 되었다. 2000년 보건의료노조 최초로 직선으로 선출된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산별교섭 쟁취투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보건의료노조는 4대 목표와 20대 과제를 선정하였는데 그 핵심은 산별중앙교섭의 실현이었다. 노조는 다른 5개 산별노조와 더불어 ‘산별중앙교섭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공동활동을 하는 한편, 정책세미나 개최, 대정부 및 대언론 활동을 진행했고, 이어 대규모 중앙상경투쟁, 병원협회 점거농성 등 투쟁 강도를 높였다. 2001년에는 해마다 요구와 거부라는 평행선을 달리던 산별교섭에 약간의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사용자단체인 병원협회는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산별교섭을 거부했지만 보건의료노조와의 대화는 거부하지 않았으며, 산별교섭 요청에 참석하고 교섭진행과 관련한 합의를 하는 등 일정하게 태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2002년은 산별교섭 쟁취투쟁의 역사에 있어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 동안의 산별 중앙투쟁의 현실적인 한계와 병원협회가 사용자단체로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평가에 기초해서, 보건의료노조는 개별 병원 사용자를 대상으로 직접적인 산별교섭 쟁취투쟁을 벌이기로 방침을 세우고 현장 사용자를 상대로 한 동시 교섭 및 사상최대 규모의 동시 조정신청, 그리고 동시 총파업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결국 주요 대학병원을 포함한 63개 병원으로부터 2003년부터 “노조가 요구할 시 산별교섭에 참여한다”는 합의를 끌어낼 수 있었다. 

2004년은 드디어 산별중앙교섭이 실현된 원년으로 기록된다. 보건의료노조는 2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산별 5대 요구를 확정하고 지부요구를 최소화하기로 결의하였으며, 이후 이를 바탕으로 통일교섭, 통일투쟁을 벌였다. 사측은 당초 특성별 교섭, 산별 요구안 중 일부만 교섭 등을 주장하다가 결국 노조의 파업 돌입 후 사측 교섭단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집단조정신청에 대해 과거처럼 이를 지방노동위원회로 보내지 않고 산업 전체에 걸친 조정을 진행한 첫 사례를 기록하였으며, 조건부 직권중재 회부로 노사 자율교섭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노사는 총 10개 장으로 구성된 산별협약에 합의함으로써, 병원노련의 공동교섭 요구(1994년) 이래 10년 만에 그리고 보건의료노조의 산별중앙교섭 요구(1998년) 이래 6년 만에 산별중앙교섭이 실현되기에 이르렀다. 

보건의료노조의 산별중앙교섭 실현은 그 동안 다소 침체상태에 빠졌던 노조 내부의 산별운동에 대한 관심과 열정에 새롭게 불을 댕겼을 뿐만 아니라 금속노조 등 민주노총 내의 다른 산별노조에도 큰 자극이 되어 산별노조, 산별교섭 운동을 진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역사적 사건이라 하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2004년의 보건의료노조 중앙교섭은 산별협약의 구조를 둘러싼 산별노조 본조와 지부 간의 권한 다툼과, 이에 따른 조직 내부 분열이라는 큰 시련을 가지고 오기도 했다. 즉 산별중앙협약을 지부협약에 우선하는 것으로 규정한 산별협약 제10조 2항의 규정에 따라 임금 인상률이 중앙협약에서 결정되면서, 일부 대형병원지부들이 이에 대해 크게 반발한 것이다. 애초 쟁점은 과연 산별협약이 최저기준만 정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규모별 편차를 줄이기 위해 통일기준을 정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출발하였지만 이는 곧 본조와 지부 간의 권한 다툼 및 더 나아가 산별노조의 진로를 둘러싼 이념적 갈등으로 비화되어, 결국 서울대병원지부를 비롯한 9개 지부가 보건의료노조를 탈퇴하는 사태로 확대되었다. 이들 탈퇴 노조들은 이후 공공연맹에 가입을 신청하고 공공연맹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민주노총 내의 산별노조와 연맹 간 관할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2004년 산별교섭에서 산별중앙협약이 처음으로 맺어지기는 했지만 이것이 곧 보건의료산업에서 산별중앙교섭이 안정적으로 정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측은 비록 노조측의 강력한 공세에 의해 산별중앙협약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이는 사측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사측은 기회만 있으면 산별중앙협약을 거부하거나 내용 및 형식을 축소하고자 시도하였다. 2005년의 산별교섭은 사측의 이러한 태도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5년 교섭에서 사측은 2004년의 합의사항인 사용자단체 구성을 깨고 노무사에게 교섭을 위임함으로써 교섭은 처음부터 난항에 부딪쳤다. 병원장 중심의 사측 대표단 구성을 요구하는 노조측의 반발로 무려 3개월간 교섭이 이루어지 않다가, 결국 파업 직전에서야 사측은 노무사 위임을 철회하고 병원장 중심으로 대표단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노사는 많은 쟁점에서 대립하다가 결국 노조 측의 산별총파업 선언과 정부의 직권중재로 결말지어졌다. 2005년 교섭에서 보건의료노조는 비록 산별중앙교섭의 체결에는 실패하였으나, 산별 5대 협약 틀 마련, 병원 대표자 중심의 단일대표단 구성 관철, 무상의료 등 산별적 의제 사회쟁점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사 모두에 있어 산별이 대세가 된 점 등을 성과로 자평하였다(이주호, 2007).

2006년 교섭에서도 노사는 4개월 가까이 대립을 계속하다가 8월24일 노조의 파업 돌입 하루 만에 극적으로 잠정합의를 하였다. 2006년 산별교섭에서 보건의료노조가 합의한 산별 타결내용을 보면, 그 동안 노조가 수년간 요구해왔던 △사용자단체 구성 등 산별기본협약, △의료공공성 강화 등 보건의료협약,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고용협약, △필요인력 충원 등 노동과정협약, △그리고 임금 3.5∼5.54% 인상 등 임금협약까지, 산별 5대 협약의 체결에 성공함으로써 이제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산별중앙협약에 큰 진전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직권중재 회부 없이 노사 자율타결이 이루어진 점, 의료 공공성 강화와 산업정책 관련 조항들이 대거 협약에 포함된 점 등을 성과로 들 수 있다(이주호, 2007).

보건의료노조의 2007년도 산별교섭 및 산별협약은 한국의 산별교섭에 있어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의미 있는 것이었다. 즉 2007년도 교섭에서 정규직 조합원이 앞장서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처우개선 비용을 일부 분담하여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의 산별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여론의 큰 주목과 찬사를 받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사용자단체의 정식 출범, 2004년 산별교섭 시작 후 처음으로 전면 파업 없는 타결, 법제도 개선투쟁의 새로운 진전 등 산별중앙교섭의 안착을 향한 여러 가지 움직임이 있었다(이주호, 2007). 즉 2007년 산별합의는 산별노조로서 개별 기업이나 정규직 중심의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연대와 평등의 정신에 기초하여, 초기업적이고 초계층적인 내용의 산별협약을 실현시킨 것이며, 이는 바로 산별노조, 산별교섭이라는 틀이 있었기에 가능한 쾌거였다고 할 수 있다.

3. 보건의료노조의 성과와 과제

1) 산별노조, 산별교섭운동의 성과


지난 20년간 한국의 노동운동에 있어 산별노조 건설은 핵심적인 과제였다. 노동운동 내의 다양한 정파들 간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산별노조 건설문제에 관해서는 커다란 이견이 없을 정도로 노동운동 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아온 과제였다. 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양 조직 모두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동일한 의지를 표명해왔다. 초기의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교섭력 증대보다는 기업과 업종의 틀을 넘어서는 노동자들 간의 폭넓은 단결을 촉진하기 위한 이른바 ‘계급적 산별운동’이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기업 내에 묶어두려는 국가와 자본 측의 봉쇄전략으로 인해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1996~97년의 대파업 투쟁과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구조조정을 저지하고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다시 힘을 얻었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에 걸쳐서는 보건의료산업을 비롯하여 금속산업, 금융산업 등에서 속속 산별노조 건설이 실현되었다. 2006년의 주요 금속대공장의 금속노조 가입을 계기로 해서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일단 한 고비를 넘은 것으로 판단되며, 이와 더불어 금속, 보건 등 주요 산업에서 산별중앙협약도 실현되기에 이르렀다(윤진호, 2007).

보건의료노조가 진행해온 그간의 산별노조 건설, 산별협약 체결운동은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윤진호, 2007). 첫째,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교섭, 산별협약은 한국 노동운동사상 최초의 진정한 산별교섭, 산별협약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1백 년을 넘는 한국 노동운동사상 산별교섭, 산별협약은 지금까지 몇 차례밖에 시도된 적이 없다. 먼저 1920년대 후반에 종전 직업별로 조직되어 있던 초기 노동조합들이 산별 노조를 결성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실패함으로써 산별 교섭은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 두 번째 시도는 해방 후 전평에 의한 것이다. 당시 전평은 16개에 달하는 정연한 산별노조 체제를 갖추고 전국 각지에서 강력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해방 공간 속에서의 좌우대립으로 인해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으로 과도하게 흐름으로써 산별교섭은 시도되지 못했으며, 결국 미군정과 자본에 의한 전평 불법화와 더불어 산별노조, 산별교섭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세 번째는 5?16 쿠데타 후 한국노총체제하의 산별노조 구성이었지만, 이 역시 당시의 군사정부가 노동운동을 통제하기 쉽도록 만들기 위해 구성한 형식적 체제에 불과했다. 또한 산별노조가 구성됐음에도 단체협약은 기업별로 진행됨으로써 역시 산별교섭, 산별협약은 시도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2000년 이후 금속과 보건의료 등 일부 산업에서 산별교섭, 산별협약 체결을 위한 시도가 계속되었지만, 자본 측의 완강한 거부로 일부 사용자와만 부분적으로 협약이 체결됨으로써 전국단일협약 체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렇게 볼 때 2004년 이후의 산별 교섭, 산별 협약 성사는 한국노동운동사 최초의 진정한 산별 협약으로서 한국노동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것으로 평가된다. 

둘째, 노동조합 구조 측면에서도 산별노조 중앙으로의 인력 및 재정 집중, 산별 중앙교섭의 성사 등 산별노조의 틀을 갖추어 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은 전국단일노조 대 전국단일 사용자단체 간의 중앙교섭과, 지부노조와 개별 사용자 간의 지부교섭이라는 전형적인 산별교섭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분산교섭은 물론이고 독일의 지역별로 진행되는 산업별 교섭구조에 비해서도 산별교섭, 산별협약의 원형에 더 가까운 교섭구조로 평가할 수 있다.

셋째, 산별협약의 내용 측면에서도 기존의 개별적 의제로부터 보다 체계화, 범주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산별중앙교섭 의제는 범주적으로 분류되어 산별기본협약, 보건의료협약, 고용협약, 임금협약, 노동과정 협약 등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이들 협약은 그 내용 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형식 면에서는 산별협약의 전형적인 의제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산별 최저임금 설정, 비정규직 관련 협약의 체결, 사회공공성 확보를 위한 조항 등, 기업별 협약에서는 불가능한 전 계급적, 전 사회적 의제가 비록 초보적인 형태이나마 산별협약에 포함됨으로써, 향후 진정한 산별협약으로의 발전에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특히 보건의료노조의 의료노사정위원회 구성을 통한 중층적 사회적 대화체제 구축 노력, 환자와 국민건강권 실현을 위한 다양한 노력, 비정규직과의 차등임금인상을 통한 고통분담노력 등은 산별협약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아직 초보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산업 내 임금 및 근로조건 통일을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산별 최저임금의 설정이나 주5일제 공동기준 마련 등 산별 통일기준이 마련되었고,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의 차등인상이나 산별 최저임금제 도입 등을 통해 임금 및 근로조건의 통일을 위한 첫걸음을 떼놓았다. 

2) 산별노조, 산별교섭의 한계 

그러나 이러한 산별노조, 산별협약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보건의료노조의 산별노조, 산별교섭운동은 선진국의 산별노조들에 비추어 많은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으며, 산별 노동시장 내의 독점적 지위를 가진 통일적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첫째, 기업별 노조로부터 산별노조로의 형태상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아직 보건의료노조는 기업별 노조의 연합체로서의 특징을 강하게 갖고 있어 진정한 산별노조로 보기에는 미흡한 상태다. 현재의 산별노조는 기업별 노조의 조직전환 결의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서,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형태다. 그 결과 산별노조의 기업별지부가 온존하고 있으며, 재정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고, 직접선거제도를 통해 노조 간부의 인사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집행 및 의결기구를 보유하고 있는 등의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곧 산별노조 전환 후에도 기업별 노조의 조직구조(기업별노조의 연합체) 및 기업별 의식과 관행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뜻한다(조효래, 2007). 이러한 측면은 보건의료노조가 산별노조이기는 하지만 기업별 노조의 조직형태 전환을 통해 이루어졌고, 기업별 노조에 소속되어 있던 정규직 노동자들의 동원을 주된 조직자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임영일, 2006). 

둘째,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산업 내 전체 노동자를 포괄하여 계급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조직이 되지 못한 채 정규직 중심의 일부 조합원들만을 대변하고 있어 ‘대변성의 위기’를 안고 있다. 산별노조의 전체 산업 내 조직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조직된 노동자가 주로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광범한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노조는 정규직 조합원으로 구성된 조직기반의 이해와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로 구성된 조직 외 부문 간의 이해관계 조정 및 산별적 과제 추진에 있어 근본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즉 노동조합 투쟁의 공공성, 공익성을 고리로 한 연대의 방향을 구체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결국 산별노조의 조직기반인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불만과 요구를 어떻게 사회적 쟁점과 연결시킬 수 있도록 의제와 실천을 확장할 것인가의 문제이다(조효래, 2007).

셋째, 산별노조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인 산업 내 임금 및 근로조건의 통일적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2007년 교섭에서 정규직 임금인상률을 억제하고 이를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사용하게 함으로써 노동자 내부 격차 해소에 큰 진전을 보였지만, 여전히 임금교섭은 기존의 임금수준을 그대로 둔 채 단순한 인상률 교섭에 머물러 있어 규모별, 특성별, 직종별 임금격차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즉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산별노조의 대원칙은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현재의 노동조합이 교섭을 통해 확보하는 임금인상률이 개별기업의 지불능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산업 내 임금 및 근로조건의 통일에 대한 기존의 대병원 노조원들의 거부감이 있으며,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전략적 방향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전술적 단계를 설정하지 못하는 등, 산별노조 임금정책에 대한 노동조합의 원칙이 아직 확고하게 수립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조합은 산업 내, 혹은 업종 내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의 실질적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구심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넷째, 산별교섭의 안정적인 교섭 틀이 취약한 상태다. 2004년에 산별중앙교섭이 성사되고 2007년에는 사용자단체 구성과 더불어 중앙교섭이 체결됨으로써 산별교섭은 외형적으로는 안정적인 교섭틀을 갖추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한국 노사관계의 산별체제 이행을 산별노조가 주도하면서 새로운 노사관계모델의 형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노동조합이 조직구조 변화를 통해 교섭구조와 노사관계의 지형 변화를 촉발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보기 힘든 현상이다(김승호, 2005). 그러나 산별협약의 기본틀을 자세히 보면 여전히 매우 초보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서울대병원 등 일부 대학병원들이 노조를 탈퇴하면서 조직 축소는 물론이고 일정하게 산별교섭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2007년 교섭에서 사용자단체 참가병원 수는 96개로 2006년의 산별협약 수용병원 수 102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중앙교섭 참여를 강제하기 위해 사용자단체 구성을 법적으로 강제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실현가능성은 매우 낮은 형편이다. 또 산별협약의 산업 내 효력확장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3) 보건의료노조의 과제

① 산별노조와 산별협약의 미래상 구축


이제 산별노조 설립 1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보건의료노조는 중장기적인 산별노조, 산별교섭의 미래상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향후 보건의료노조가 추진해야 할 과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노동조합 조직구조와 교섭구조의 집중화를 통해 교섭력과 단결력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임금 및 근로조건의 개선과 산업 내 임금 및 근로조건의 격차 해소를 이루어야 한다는 과제이다. 둘째, 광범한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이해관계 대변 등을 통해 산업 내 노동시장을 독점함으로써, 조직/미조직, 정규/비정규 노동자 간 연대를 확고하게 만드는 한편 진정한 산업 내 노동계급의 대표자로서의 위상을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셋째, 의료공공성의 확보를 통해 국민 대중의 건강권을 확보하고 사회민주화와 경제민주화 및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에 기여함으로써, 노동조합이 사회진보의 선도자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의 구조 면에서 볼 때 가장 큰 과제는 민주노총의 전체적인 구조개편 그림 안에서 보건의료노조의 위상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현재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조합원 수가 4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로서, 산별노조로서는 매우 작은 규모에 속한다. 규모가 작고 조직률이 낮기 때문에 노동시장에 개입해도 영향력이 크지 않고, 산별노조로서 인력 및 재정 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최소 10만 이상의 산별노조로 확대 통합을 이루어야 보건의료산업 전체에 파급력 있는 산별교섭을 추진할 수 있고 노동시장에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정치적 영향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이주호, 2007).

이를 위해서는 먼저, 보건의료산업 내부에서부터 목적의식적인 조직 확대사업과 더불어 민주노총의 구조개편 계획과 관련하여 어떻게 보건의료노조의 위상을 정할 것인가에 대한 중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2008년 사업계획에서 4~5개의 대산별노조로 조직을 재편할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이에 따르면 민주노총 전체 가맹조직을 제조업 대산별노조, 교육 대산별노조, 서비스부문 혹은 공공부문 대산별노조 등으로 통합하되, 2008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빠른 곳은 2009년부터 늦은 곳은 2010년 이후 통합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보건의료노조가 속한 서비스 부문은 워낙 다양한 산업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산별 간 상호논의에 따라 대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각 산별조직 내 통합을 추진하되, (보건+민간서비스부문) (보건+공공부문) (교육+보건부문) 등 다양한 통합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 측에서는 이러한 대산별 통합이 올바른 경로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도식적인 산별구획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당사자들 간의 공동사업, 공동투쟁의 실천 결과를 통해 재편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2008). 특히 보건의료노조의 경우에는 그동안 무상교육, 무상의료투쟁을 통해 공동실천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는 공공노조 사회보험지부, 전교조 등과 더 큰 산별노조에 대한 지향을 함께해 나갈 필요가 있다. 

유럽의 산별노조들은 기업규모 간 임금 및 근로조건의 격차나 성별 격차, 정규-비정규 간 격차를 축소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하에 노동자 간 연대의 형성을 이루어왔다. 아울러 산별 연금이나 고용안정망, 복지제도 등을 통해 산별노조의 물적 토대를 구축하고 산별교섭의 의제를 확장해왔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인해 기업규모 간 임금격차,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산별교섭을 통해 무엇을 극복하고 개혁할 것인지, 즉 산별교섭의 의제 선택과 전략적 접근방향이 매우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양극화, 유연화되고 있는 노동시장을 산별협약으로 개혁할 수 있는 산별교섭의 의제와 추진전략을 설계하고, 중장기적인 노동연대의 교섭방안을 마련할 것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 임금, 복지 등이 별도로 분리되지 않고 총체적으로 접근된 대안모델이 제시돼야 하고, 각각의 교섭정책과 그 내용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예: 산별 기업횡단적 임금정책, 차별해소를 위한 중장기 전략, 산별 고용안정망, 사회안전망과 기업복지의 산별복지방향 등). 

산별협약은 그 동안 일관된 전략이 부재한 상태에서 개별조항들을 하나하나 발전시켜왔으며, 산별협약의 장기적 로드맵이나 방향성 속에서 개별적 협약을 발전시켜온 것은 아니다. 산별협약과 기업별협약의 구분, 위상 등도 분명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현재 형식상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산별 5대 협약체제의 내용을 보다 풍부하고 실질적인 것으로 발전시키고, 산별협약과 지부협약 간의 구분 및 위상을 분명히 함으로써 진정한 산별협약으로 한걸음 다가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산별교섭, 산별협약 완성을 향한 이행전략계획(로드맵)을 수립하고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2008).

② 노동자 간 격차 해소와 연대 

앞에서 본대로 보건의료노조는 형식상 산별노조로 전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별노조 시대의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산업 내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이라는 원칙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방향정립조차 아직 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 간 격차 해소는 필연적으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노동자와 상대적으로 이익 보는 노동자 집단을 낳게 마련이고, 이는 다시 조직 내 갈등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연대의 정신에 입각하여 일시적인 부분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중장기적인 전체의 이익을 교육, 토론을 통해 설득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점점 벌어지는 임금 격차를 감소시켜야 한다는 당위적인 압력은 주로 고임금 사업장인 대규모 병원의 조직노동자의 산별교섭에 대한 참여를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산별교섭에서 임금교섭을 하지 말고 지부교섭에서 하자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방향이다. 기업규모별 임금격차 해소는 단지 연대와 평등이라는 노조의 가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노조운동의 지속과 노조원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규모별 임금 격차가 유지, 확대될 경우 필연적으로 노조가 있는 대형병원들의 임금비용부담이 커지면서 사용자는 노조를 회피하거나 그 영향력을 약화시켜려는 유혹을 받게 되고, 이는 다시 노조의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산별노조의 가장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가 산업 내 임금 및 근로조건 통일을 통해 노동자 간 경쟁을 피함으로써, 고용을 보호하고 최대의 임금 및 근로조건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 이를 위해서는 노조 내에서 배분교섭에 대한 인식이 넓어져야 한다. 즉 대규모 사업장의 임금인상분 일부를 기금화하여 그 재원을 연대운동, 또는 공공성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노조의 도덕성 확보 및 연대 실현을 가능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동일가치 동일임금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숙련, 직능, 학력, 경력, 직무 등에 따라 임금의 기준선을 정하는 임금기본협약이 필요하다. 이 때 필연적으로 기존의 연공급은 완화될 수밖에 없으며, 대신 ‘노동력 가치’와 ‘직무의 내용’이 임금 결정기준으로서 중요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들은 노동조합 내의 노조원의 다양한 성격(근속기간의 차이, 성별, 직종별의 차이 등)의 차이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므로, 상당한 논쟁과 파열음을 내기 쉬운 ‘핫 이슈’이다. 따라서 노조 내의 다양한 교육과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음의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가장 바람직한 해결방안으로서 보건의료산업의 공공성 비중을 높여가는 방식이다. 현재 대병원과 중소병원 등 규모 간 수입 차이의 상당부분은 규모의 경제와 더불어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재원의 대부분을 보험료 혹은 조세로 충당하는 방식의 완전무상의료가 가능하다면 규모 및 특성 간 수입의 차이는 상당히 축소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산업 내 임금 및 근로조건의 통일도 보다 쉬워질 것이다.

둘째, 보건의료산업 전체의 공공성 강화가 어렵다면 인건비에 한해 공공화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미 교육부문에서는 사립학교의 경우에도 국고로 인건비를 부담함으로써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간에 인건비 격차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보험 수가 가운데 표준인건비를 산입하고 이를 개별 병원의 인건비와 연동시키는 방식의 인건비 공공화가 이루어진다면, 특히 중소병원 노동자들이 그 주된 수혜자가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병원 규모 및 직종 간 임금격차는 크게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규모 및 특성 간 격차의 완화를 위한 사회기금의 조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보건의료산업 내 노사정의 공동 출연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중소병원 지원, 비정규직 및 저임금 노동자 지원 등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넷째, 이상의 방식이 모두 불가능한 경우 결국 인상률 교섭만 지속될 것이며, 이는 “무늬만 산별”인 상태가 계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중장기적으로 이는 보건의료산업에서의 노동조합의 통일성과 교섭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③ 조직확대와 단결의 강화 

산별노조는 단순한 기업별노조의 결합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전체가 작업장과 사회의 양쪽에서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산업 내 모든 노동자를 단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의 보건의료산업 노동운동은 그 조직률이 10% 정도에 머물고 있어, 산별 노동시장의 독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더욱이 주로 대형병원의 정규직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고, 비정규직, 중소병원의 노동자들은 미조직 상태에 있기 때문에 2중 노동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이로 인해 보건의료노조의 조직노동자들이 과연 보건의료산업 전체 노동자들을 대표하느냐 하는 계급대표성에도 큰 의문이 제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방대한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의 존재로 인해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임금 및 근로조건에의 압박 등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노조는 목적의식적인 조직확대사업을 통해 조직률 향상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기존 지역본부와 지부를 통한 기업 및 지역 내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직종별 조직화, 산별노조 본부 직속 조직화 등 다양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조직화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또 조직화사업에 인력과 재정을 대폭 투입해야 한다. 적어도 노동조합 자원의 20% 이상을 조직화 사업에 투입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고, 장기적으로 이 비율을 30%까지 올리도록 한다. 그밖에 의사(전공의), 보건업, 사회복지사업 등 인접 직종 및 업종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산업의 구획을 넘어선 광범위한 미조직 분야로 조직대상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또 산별 협약에서는 연대임금정책, 연대고용정책, 연대복지정책, 연대숙련정책 등을 추구하여야 하며 특히 비정규직 이슈를 본격적으로 제기, 관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대변노력이 곧 이들을 조직화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협약의 효력을 협약대상이 아닌 미조직 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 적용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먼저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를 끌어안을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교육, 실천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④ 사회적 연대와 공공성의 확대 

현재의 산별교섭 및 산별협약은 사회적 연대와 공공성의 확대를 위한 기초적 요소들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앞으로 산별교섭, 산별협약은 의료, 보건, 고용, 복지 등 공공적인 이슈를 적극적으로 담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를 위해 보건의료산업 노사공동위원회의 구성, 정책 참여를 통한 정책의 제도화 관철, 정치활동의 강화 등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재정과 인력의 집중을 통한 정책역량의 강화도 필수적이다. 

의료공공성 문제는 앞으로 큰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영보험제도의 도입을 통한 공적 건강보험제도의 파괴, 의료기관의 영리화, 의료산업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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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31호